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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항지(1926년) - 44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by 운무허정도 2023. 4. 10.

 

8. 소학교 낙성식

본교 위치는 현재의 위치 즉 민단구역의 중앙에 있는 철도용지의 일부, 면적 약 2천5백 평을 무산으로 대여 받아 건축기사 노지마 다네조(野島種造) 씨와 금 2만9천512원 49전으로 청부계약을 맺어 전년 6월 27일에 기공했던 것이다.

그 가운데 6천여 원은 지방유지의 기부, 나머지 2만원은 민단이 빌린 것이다.

원래 본교는 취학아동 5백 명을 수용할 예정으로 건축시킨 것인데, 준공한 건물(아래 그림)은 교사 기타를 포함하여 384평 정도가 되지 않는데도, 당시 등교 아동은 남자 160명, 여자 186명 합계 346명에 불과하여 아주 여주가 있었던 것이다.

건물이 다 된 것은 1월 21일로, 노지마 씨는 이 공사로 7~8천 원의 손실을 보아 다시는 공사를 맡지 못하게 되었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지난 겨울 본교에 하사된 양 페하 사진과 교육칙어는 학교 준성의 그날까지 한동안 마산이사청에 보관되었다.

2월 11일에 낙성식의 거행됨이 결정되니 2월 8일 나카가와 마사타카(中川正孝) 경부 이사 순사들이 길가를 호위하는 가운데 나카지마 교장이 이를 받들고 천이식(遷移式)을 봉행했다.

 

마에다 민장은 신축하는데 특별공로자 및 기부자로 3백여 명에게 기원절(紀元節, 1872년부터 소위 진무천황의 즉위의 날을 설정하여 국경일로 삼은 것으로 2월 11일이었다. 제2차 세게대전 이후 폐지되었다.) 때 거행될 낙성식에 참가토록 초대장을 보냈다. 당일 민단 직원은 강당 전면 현관에서 토대장과 낙성된 교사 내외의 사진 한 조를 교환하였다.

진해방비대사령관 도미오카 나오키(宮岡直記) 소장 이하 장교 16명, 진해만방비대 중대장 요네다(米田) 포병 대위 이하 장교 9명이 낙성식에 참가했다.

식은 양 폐하 사진에 대한 경례, 칙어봉독으로 시작하여 국가 합창이 있은 후, 마에다 민장의 식사, 미마스 이사관, 통감부 교육사무촉탁 히로타 나오사부로(廣田直三郞) 문학사가 대독한 총무장관 츠루하라 사다키치(鶴原定吉) 씨의 축사, 나카지마 교장, 거류민 유지 대표로 이 책 저자의 축사와 도미오카 소장, 요네다 대위, 히다카 진종 개교사의 축사가 이어졌고, 학교입구 정문의 큰 돌기둥에 ‘마산거류민단립 마산심상고등소학교’란 표시가 걸리게 된 것이다.

때는 12시 반, 일동은 각 교실에 준비된 입식 식당으로 들어가 각자 알아서 환담을 나누게 되었고, 여흥으로는 학동들의 소운동회, 아마추어 씨름대회, 진해방비대가 기증한 육상어뢰군함 폭파와 해상기뢰전함 격침 등의 연기(演技)도 있었다.

관중은 산을 이루고 밤늦도록 비상한 성황을 이루었다.

 

9. 보통학교 낙성식과 건원절의 축하연

3월 10일은 한국 황제가 강탄하신 길상한 날로서 건원절(乾元節)이라 한다.

새벽부터 눈송이가 난무하더니 9시경에는 산이고 들이고, 도회고 변두리고 간에 온통 은세계가 되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마산공립보통학교(아래 사진)의 낙성식이 있었다. 학교는 현 교사가 있는 성호리의 조망이 좋은 데에 건설되었다.

 

당일 초대받은 손님은 일본인 측에서는 미마스 이사관, 미야가와 경찰서장, 마에다 민장, 나카지마 교장, 히로시 민회의장, 츠치야 고오타(土屋格太) 재무보좌관, 본 책 저자 등 8명이며 한국 측에서는 웅천군에서 전임해 온 감독관인 창원부윤 신석린(申錫麟, 1865~1948, 대한제궉과 일제강점기의 관료. 웅천군수, 창원부윤을 거쳐 경남 참여관, 경북 참여관, 충남지사,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등을 역임. 3·1운동 때는 이를 진압, 시위대 해산을 독려하던 단체인 자제단에 참여하였고 이후 각종 친일단체에서 활동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씨 이하 마산포의 관민 40여 명이었다.

식은 교감 구로키 겐지(黑木源二) 운도의 식사를 시작으로 교장 윤태권 훈도의 한국교육칙어 봉독에 이어 구로키 교감의 훈화, 미우라 이사관, 신 부윤 및 저자의 축사 및 기타 여러 한국인의 축하인사가 있었다.

그 후 일한양(日韓洋) 식의 혼합요리로 축연이 열렸고 이 자리에서 미마스 이사관은 학교비로서 금 30월을 기부했다.

당일 오후 6시부터 건원절의 축하연은 신 창원부윤에 의해 부청사에서 열려 보통학교 낙성식 임석자는 물론 마산포의 한국인 약 170명이 초대되었다.

요리는 일한 혼합으로, 술은 일한양의 세 가지가 제공되었다.

건배는 미마스 이사관의 한국 황제폐하 만세삼창과 신 부윤의 일본 천황페하 만세삼창으로 건배가 이어지고, 한국기생이 술을 따라주고 먹을거리, 마실거리에 조금 이국정취가 느껴졌다.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는 눈과 손과 몸짓으로 대체하고 일한이 교류하여 흥이 고조되었을 즈음, 마산포 미기들의 판진무(八陣舞)와 기타의 춤이 공연되었다.

마산포의 한인이 하급행정기관으로서 민의소를 건축한 것은 이때쯤이 아닌가 기억된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2021년에 번역한 『馬山港誌』(1926) 중 44번 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港誌』는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앞서 게재한 『馬山繁昌記』와 같은 스와 시로(諏方史郞)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