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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항지(1926년) - 43 - 건권(乾卷) / 제8장 거류민단 시대사요(時代史要)

by 운무허정도 2023. 4. 3.

 

5. 승마(乘馬) 합방호(合邦號)의 권위

번역관 겸 경시(警視)로서 한국의 내부(內部)로 발령 받은 사카이 마산경찰서장의 후임으로 명치 41년(1908) 1월 15일, 전남 광주에서 미야가와 다케유키(宮川武行) 경시가 왔다.

그가 타는 아라비아 종 애마 ‘합방호’는 아주 크게 생겼기 때문에 조랑말(果下馬)에 익숙한 한인들을 놀라게 했으며 그 말을 보고 귀마(鬼馬)라 하며, 일본 말이 이 정도로 큰다면 일본 소는 더 클 것이라고들 하였다.

씨는 도오야마 미츠루(頭山滿) 옹의 양자이며 현양사(玄洋社) 출신의 경부로 내무성 경관연습소에 들어가 졸업 후 경시가 되어 대만 가의현(嘉義縣) 서기관으로 부임했다가 그 직에서 풀려 한국통감부로 내임한 평민주의를 가진 독신자이다.

아주 많이 한국 사적 탐사에 취미를 가지고 있어, 씨가 서기관으로 있을 때부터 알고 지내는 관계로 저자는 씨 개인의 역사 고문으로서 경남 내의 사적 탐사를 개인적으로 의뢰받기도 했다.

 

6. 마산구 재판소의 개청

종래 사법의 재단은 군수 권한에 속하며 생사여탈은 오로지 군수 수중에 있었지만 사법권이 우리 사직부의 손에 맡겨지자 우리 법무 보조관은 창원감리서에 내임하여 마산구재판소(馬山區裁判所)의 표패(標牌)가 문기둥에 게시된 것은 이해 봄 즈음이었다.

그해 가을 이를 현재의 도미마치(富町)에 있는 일본어 학교 구사옥에 이전하여 감독서기 요시나리 긴타로(吉成欽太郞), 통역 및 서기 우에노 에이스케(上野榮助) 두 사람이 판사 오쿠보 우타하루(大久保歌治) 씨와 함께 내임해 일한 관민의 주요한 인사 2백여 명을 초대해 앞뜰에서 성대한 개청식을 거행하였다.

식후 일한 혼합의 향연 중간에 치크젠비파(筑前琵琶)가 연주되었다. 당시 오쿠보 판사는 현재의 미야코마치(都町)에 살며 재판소 사이의 왕래는 날씨에 관계없이 반드시 애완하는 당나귀를 타고 가는 것이 통례였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그를 당나귀 판사라고 불렀다. 소요(素謠) 호슈류(寶生流, 일본의 전통 예능 노가쿠(能樂)의 한 유파)의 애호가이기도 하다.

 

7. 마산부인자혜회의 조직

박애, 자선의 대주의에 의해 이사관 부인 미마스 도모코(三增友子)와 이사청 소속 마사오(正夫) 부인 사카네 조코(坂根兆子) 양 여사를 중심으로 이사청 간부와 직원의 부인들과 함께 한 마산부인자혜회(馬山婦人慈惠會)가 조직되어 융희 2년 즉 명치 41년(1908) 1월 19일에 신축 중이었으나 낙성되지 않은 마산소학교 강당에서 발개식(發開式)을 가졌다.

23명의 발기인이 당일까지 모집한 정회원 부인은 159명, 찬조원 남자 60명이었다. 식장 전면에는 홍백색의 모조(模造)한, 신사에서 쓰는 받침대에다 떡을 놓고 좌우에는 생화를 진열하고 장식용의 작은 깃발을 많이 붙여 놓기도 했다.

미마스 부인의 설립취지 낭독, 사카네 부인의 회계보고가 있은 후, 미마스 이사관, 마에다 민장, 진종(眞宗) 개교사(開敎使) 히다카 닷케이(日高達契), 선교사 코르테스 부인, 나카가와 마사타카(中川正孝) 경부 제 씨의 축하연설 등으로 식은 끝났다. 

여흥으로 고토(琴), 샤쿠하치(尺八, 아래그림, 대나무로 만든 피리의 일종으로 길이가 한 자 여덟 치이므로 이렇게 이른다. 앞에 네 개, 뒤에 한 개의 구멍이 있다.), 아코디언(風琴)의 합주 중에 다과가 나와 평화스러운 봄바람 속에서 폐회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발기인 23명 가운데 그 후 돌아가거나 전퇴(轉退)하여 현재 마산에 생존하는 이는 히로시 세이조(弘淸三) 부인 히로시 가츠에(弘かつえ), 츠케 유우미(柘植勇美) 부인인 원명 유카와 우미에(湯川海江), 저자의 처 스와 도요(諏方とよ) 세 사람뿐이니 헤어보니 20년 전의 옛날이로구나.<<<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2021년에 번역한 『馬山港誌』(1926) 중 42번 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港誌』는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앞서 게재한 『馬山繁昌記』와 같은 스와 시로(諏方史郞)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