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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도시이야기

남해각의 빛나는 변신

by 운무허정도 2022. 11. 30.

남해각의 빛나는 변신

이 글은 2022년 11월 29일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그것은 감동이었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의 판박이 다리가 남해 섬에 들어서다니. 마주보고 선 두 개의 거대한 붉은 주탑과 휘영청 얹힌 케이블에 놀랐고, 아슬아슬 매달린 가늘고 긴 다리에 놀랐다. 지금이야 흔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 뒤 한참동안 ‘남해대교 건너봤나?’고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개통하던 날 대통령이 걸어서 건너는 장면은 동네가게 흑백티비에서 얻어 보았고, 현수교라는 명사는 한참 뒤에야 입에 익었다.

그 후 남해로 여름 캠핑을 두어 번 갔지만 버스를 탔기 때문에 다리 볼 기회가 없었다. 가까이서 자세히 본 것은 80년대 중반이었다. 송정해수욕장이 우리 가족의 붙박이 여름휴가처였기 때문이다. 모래와 솔숲이 아름다웠고 마을인심도 좋아 매년 찾았다. 5~6년 간 한 해도 빼지 않고 다닌 것 같다. 농민 운동하느라 피서객들에게 무언가 캠페인을 하고 있는 청년 김두관도 거기서 처음 보았다.

송정해수욕장 갈 때마다 우리 다섯 식구는 남해대교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꺾어들어 차를 세웠다. 대교가 배경이 되는 기막힌 포토존 때문이었다. 조랑말에 카우보이 복장까지 비치하고 사람들을 유혹해 남해 오는 사람치고 그냥 지나치는 이가 거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똑같은 배경의 사진을 만들어준 곳, 우리 가족의 행복했던 순간을 생생하게 남겨준 영원한 포토존, 그곳은 남해각이었다.

지난 9월, 총괄건축가 일로 남해에 갔다. 갈 때는 새로 세운 노량대교를 건넜지만 올 때는 남해대교로 왔다. 새로 태어난 남해각이 보고 싶어서였다.

 

남해각의 변신은 감동적이었다. 50년 전 남해대교 때와는 다른, 그것은 기억 속의 장소와 사라져간 시간이 주는 감동이었다. 건물은 복원이지만 시간을 돌려세운 여러 회상장치들은 오늘의 물음에 답하고 있었다. 남해각과 남해대교의 추억에 대하여, 남해에 몸담고 사는 주민들의 삶에 대하여, 지워져가는 그 시절의 희미한 기억에 대하여, 그리고 남해각 자신의 연륜에 대하여, 오래된 콘크리트와 벽돌들이 담담하고 소박하고 진실하게 자신과 남해 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감동을 느긋이 이어가기 위해 먹을 것을 조금 찾으니 없다고 했다. “저어기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면 노량마을에 커피숍과 식당들이 있어요. 이거 가져가면 할인해줍니다.” 젊은 여직원이 친절하게 할인표식을 건넸다. 주민과 상생하고 싶은 남해군의 의지가 듬뿍 담겨있었다.

낡고 방치되어 철거직전이던 남해각은 개인소유 건물이었다. 1975년에 지었으니 대교보다 두 살 아래다. 이 오래된 집의 변신을 꿈꾸며 남해군이 사들인 것은 2018년이었다. 재탄생은 2021년, 공직자의 판단과 전문가의 역량이 만들어낸 빛나는 성과다. 철거라는 죽임의 방식을 버리고, 힘들지만 복원 후 재사용이라는 살림의 방식을 택했다. 디자인을 했던 건축가는 이 작업으로 큰 상을 받았으며, 안재락 남해군 총괄계획가는 ‘공간 환경의 시간가치를 이해하고 미래를 상상할 줄 아는 분들의 헌신이 이루어 낸 성과’라 했다. 예산 때문에 채 마무리 못한 외부공간이 아쉬웠지만 그마저도 나의 감동을 줄이지는 못했다.

2021년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한 프랑스 건축가 안느 라카톤은 ‘철거는 쉽고 단기적인 결정이며 에너지와 물질은 물론 역사까지 낭비하는 행위다. 철거는 폭력과 같다’고 했다. 기억을 담고 있는 건축물을 어떤 가치로 바라보며, 공공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그 질문에 남해각이 답한다. 여기 와서 나를 보라고.<<<

허정도 / 경상남도 총괄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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