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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도시이야기

단체장에게 주는 야율초재의 고언

by 운무허정도 2022. 7. 29.

                                                                                                              이 글은 2022년 7월 28일 경남도민일보에 실린 칼럼입니다. 

 

'진정 백성을 위하는 일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 중 나쁜 것을 고치는 것이다.' 유비의 제갈량처럼 칭기즈칸을 도와 몽골제국 건립의 기초를 놓은 야율초재(아래 그림)의 고언이자 충언이다.

 

이 나라에 개발 사업이 덮친 것은 1970년대부터였다. 긴 시간 서서히 도시화가 이루어진 서방선진국과 달리 우리의 도시화는 급격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작정 진행된 도시화였다. 가난했던 시절이라 탓할 수도 없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현실과 시대정신을 고민해야 한다. 선진국이라지 않는가.

  수십 년간 진행한 국토개발은 지도를 바꿀 만큼 전국단위에서 이뤄졌고, 그 과정과 결과에는 명암이 있다. 건설업 비중이 높은 산업구조 때문에 경기호황의 원인이 되기도 했고, 도시산업사회로 가는 팽창시대의 지름길이기도 했다.

폐해도 컸다. 난개발은 말할 것도 없지만, 더 큰 폐해는 개발과 건설이 우리 삶을 윤택게 해주는 신념으로 내재화된 것이다. 개발이 마치 사회적 선(善)처럼 무엇보다 우선되고 강제되는 것도 이 때문이고, 선거 때마다 공약 1순위에 개발계획이 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발 선호가 마치 태초부터 있었던 DNA처럼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도시건축 전문가들도 다르지 않다.

돌이켜보면 개발시대에 수많은 삶터가 토막 난 생선처럼 난도질당했다. 논밭 한가운데 수십 층 아파트가 생뚱맞게 섰는가 하면 수백 년 묵은 마을공동체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기도 했다.

향후 4년간 지자체를 이끌 단체장의 임기가 새로 시작되었다. 너나 할 것 없이 공약마다 '개발과 건설'이 넘쳐났다. 선거 때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선거는 끝났고 현실만 남았다. 표를 준 사람들의 개발 선호는 당선자를 유혹하고 때로는 강압한다. 그런 만큼 당선자의 처지가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도시정책은 백년대계, 눈앞의 요구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대형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성공한다고 믿는 단체장들이 많고, 그런 생각을 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진정 그것이 중요한지 급한지 깊이 살필 일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일을 만들기 전에, 있는 것 중 나쁜 것부터 고쳐라'는 야율초재의 말을 깊이 새기기 바란다.

정작 급하고 중요한 과제들이 생활 주변에 널려 있다.

가난에 주린 이가 아직도 많고, 썩은 물이 고인 하천도 곳곳에 있다. 숲 속 산길은 수없이 나있지만 화장실 찾기가 어렵다. 도심에서도 마찬가지다. 체육시설은 곳곳에 있지만 어른들을 위한 것일 뿐 어린이가 갈 곳은 없다. 빈집은 많은데 이동노동자가 잠깐 쉴 곳은 찾을 수가 없다. 자주 끊어지는 자전거 길도 마찬가지다.

말하려 들면 끝도 한도 없다. 생활세계의 질을 높여야 할 것들이 곳곳에 널렸다.

〈페스트〉에서 카뮈는 '한 도시를 이해하려면 그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도시의 핵심은 거대시설이 아니라 사람들 삶의 모습이다. 삶의 모습은 생활세계가 결정한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 단체장의 손에 달렸다.

시민 삶과 별 상관 없는 대형사업보다 생활 가까운 것 중 나쁜 것을 먼저 고치는 단체장, 자신의 치적보다 시민 삶을 먼저 생각하는 단체장, 그런 단체장을 보고 싶다.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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