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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도시이야기

『한 도시 이야기』

by 운무허정도 2024. 11. 11.

이 글은 2024.11.7일자 경남도민일보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마산'이란 도시가 걸어온 길 담아

『 한 도시 이야기』 발간

"살기 좋은 도시로 남았으면"

 

"독립 시로서의 마산은 없어졌지만 물리적 공간과 환경은 그대로다. 때로는 확산되고 때로는 위축되며 지금에 왔다. 마산시가 없어질 줄 아무도 몰랐듯이 앞으로 전개될 이 도시의 미래 역시 아무도 모른다." (7쪽)

허정도 건축사가 최근 낸 <한 도시 이야기>엔 경술국치 이전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까지 마산이란 도시가 변화해 온 역동적인 역사가 꾹꾹 눌러 담겨 있다.

책 /불휘미디어

 

◇ 도시 문제를 고민하다 = 허 건축사는 1980년 건축사 자격시험에 당시 최연소로 합격했다. 1981년부턴 서진 종합건축사무소를 운영해 오다 2018년 폐업했다. 그동안 경상남도 총괄건축가, 한국토지주택공사 상임감사위원(2018~2021), 창원물생명시민연대 공동대표, 창원대 겸임교수 등을 맡았고 마산YMCA와도 인연이 깊어 지금도 이사로 활동 중이다.

그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1970년대 한국기독교장로회 강원용 목사가 세운 크리스천 아카데미를 다니면서다. 이는 한국 사회 여러 문제를 가르치고, 실제 현장에서 사회 운동을 할 사람을 기르는 교육 단체였다. 그는 그곳에서 듣고 배우며, 세상을 읽는 관점을 세웠다고 한다.

민주화 이후 전국적인 시민 운동이 늘던 1990년대 초, 허 건축사도 그 흐름에 몸을 실었다. 특히, 건축가로서 건축과 도시 분야의 변혁에 관심을 뒀다. 알고 행동하고자 연세대학교와 울산대학교에서 도시학을 공부하며 도시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리고 그 도시가 어떻게 변해가야 하지를 연구했다. 또, 마산YMCA를 기반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지역 사회 운동에 참여했다. 그가 보기에 마산은 도시 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었다.

허정도 건축사가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백솔빈 기자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듣던 말이 '전국 7대 도시'였다. 인구가 전국에서 일곱 번째였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것이 이 도시 사람들에게 어떤 인식과 결과를 주었는지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나이 들어 그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그 과정에서 지난 세월, 이 도시가 겪었던 영욕의 부침을 알게 되었다." (5쪽)

그가 보기엔 마산 인구가 전국에서 일곱 번째로 많았다는 건 자본에 의해 성장한 결과다. 이는 일제강점기 마산 도시 발전 역사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마산은 오랫동안 일본 사람들이 직접 지배했습니다. 그들은 도시를 경영할 때 공간을 이용해서 돈을 벌 궁리를 했죠. 해방 이후 도시가 팽창할 때도 그런 관점으로 정책을 폈어요. 시민들은 도시 공간에서 휴식도, 오락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마산은 오랜 시간 그럴 수 있는 도시 공간이 부족했습니다."

도시 핵심은 공공성에 있다.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직접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공공성은 정책을 통해 결정된다. 도시의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그 최종 결정권자를 뽑는 사람은 시민이다. 그가 마산에서 도시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결정적인 이유다.

◇ 평생 살아온 도시를 위해 = 허 건축사는 오랫동안 마산이 더 나은 도시가 되길 꿈꿨지만, 현재 마산은 사라졌다. 하지만, 마산시가 없어질 줄 아무도 몰랐듯, 미래 역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산의 미래를 바라보고자 과거 기록이 필요했다. 하고 싶었다기보단 해야 할 일이었다.

"누군가 기록해 주기를 바랐고 그렇게 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흐르는 시간만큼 잊히는 것이 점점 많아졌다. 그래서 시작했다. (이것이) 평생 살았던 이 도시에 대한 도리라는 생각도 있었다." (4쪽)

2021년부터 집필에 나섰다. 꾸준히 모아온 자료와 언론 보도를 뒤져 수집한 내용을 종합해 보니 1000쪽 분량이 나왔는데, 이를 400쪽으로 압축했다. 그만큼 밀도 높은 정보들로 가득 차 있다는 의미다.

'생성과 변화의 지속'이란 부제가 달린 책은 크게 경술국치 이전,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세 시기로 나눠 시간순으로 마산이란 도시의 변화를 정리했다. 경술국치 이전 부분에서는 조선 영조 때 마산창을 설치한 일부터 개항기 신마산의 형성과 원마산(마산포)의 복원을 다뤘다. 일제강점기에는 신마산의 정체와 중앙마산의 형성 그리고 이를 통해 이전까지 서로 다른 도심이었던 신마산과 원마산이 연결된다는 내용을 담았다. 해방 이후 부분에서는 전쟁과 산업화로 인구가 급증하고 공업도시로 성장하는 과정과 이후 변화를 외면하고 정체되는 모습을 정리했다.

허 건축사는 도시란 풍선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한 곳을 잡아 누르면, 풍선 안 공기가 다른 한쪽에 쏠리며 팽창한다. 도시도 마찬가지이다. 한쪽을 개발하면 인구가 쏠리고, 다른 한쪽은 버려지기에 계획적인 균형발전이 필요하다. 그가 보기에 현재 마산은 균형 발전은커녕 도시 변화를 이끌 동력마저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마산) 시가지의 규모는 1990년대가 정점이었다. 정점에 도달한 도시는 정체되었다. 외부요인이 컸지만 내부요인도 있었다. 양적성장이 어려우면 질적인 성장을 가져와야 했고, 도시의 질이 높아지면 그로 인한 양적성장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도시정책은 처음도 끝도 양적성장에만 집중하였다. 해안을 매립하고 토지를 개발하고, 사람은 떠나는데 건설만 계속되었다." (386쪽)

마지막으로 그는 창밖으로 펼쳐진 마산 풍경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참 애잔한 마음이 듭니다. 돈이나 사람 숫자가 아닌, 이곳(마산)이 정말 사람 살기 좋은가 하는 기준으로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마산이 사람 살기 좋은 도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꿈같은 이야기지만 그게 제 바람입니다."

그가 얼마나 마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책을 썼을지 이제 짐작이 된다.

400쪽. 불휘미디어. 2만 2000원.

/백솔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