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배우는 도시이야기

메데진의 교훈

by 운무허정도 2024. 1. 11.

이 글은 1월 1일 건축사신문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콜롬비아 제2도시 메데진(Medellín)이 뜬다. 2023년 초 도시학자 박용남 선생이 펴낸 『기적의 도시 메데진』이 밑불을 붙였다. 그의 소개로 이 도시에 간 적이 있다. 이 글은 그때 보았던 것 중 한 토막이다.

도시 이름은 조금 낯설지만 귀에 익은 두 사람이 살다간 곳이다. 한 때 전 세계 마약 시장의 80%를 주물렀던 세기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와 인체비례를 과장되게 묘사한 화가이자 조각가인 페르난도 보테로이다. 시내 중심지에 보테로의 조각 작품이 전시된 보테로광장도 있다.

메데진은 250만 명이 모여 사는 안티오키아 주의 주도이며 해발 1500m 안데스 산맥 고원지대에 있다. ‘영원한 봄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연중 기후가 쾌적하다. 클럽 문화가 발달해 콜롬비아의 레게톤과 힙합을 끌어가는 도시이기도 하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 금 개발기지로 건설된 도시지만 지금은 커피재배의 중심지이다. 한국인이 애용하는 콜롬비아커피의 집산지이다. 공업도시이기도해서 자동차, 제철, 섬유산업이 강하고 수제맥주도 유명하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메데진은 내전과 마약으로 얼룩진 디스토피아였다. 그랬던 도시가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부상하고 있다. 이유는 남다른 도시정책 때문이다. 메데진의 도시개발은 철저하게 주민 삶의 현장에 포커스를 맞췄다. 그 결과 그들은 불가능을 가능케 했고 상상만으로 끝날 일을 현실로 만들었다.

20세기 중반 인구가 급증하면서 산악빈민지역으로 팽창한 난개발확장(Urban sprawl)이 메데진의 심각한 문제였다. 이에 정책입안자들은 달동네 빈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도시 16구역 중 13구역 ‘COMUNA 13’ 개발이다. 이곳은 무장을 한 마약갱단과 반군들이 주둔했던 가장 위험한 지역이었다. 무력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정부는 전쟁 같은 진압작전으로 'COMUNA 13'의 마약갱단과 반군들을 기어코 몰아냈다. 평화가 회복되자 미래의 길을 모색할 수 있었고, 그 길의 방향은 과거에 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COMUNA 13'의 초입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에스컬레이터였다. 경사가 급한 산동네라는 특성을 고려한 무료 에스컬레이터는 'COMUNA 13'을 변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좁고 경사진 골목들로 된 지역이라 입구만 틀어막으면 외부진입이 불가능했던 곳이었다. 외부와 단절된 그 속에는 마약조직별로 구역이 나누어졌고 살인과 폭행이 다반사였다. 입구에 광장이 만들어지고 멋진 에스컬레이터까지 들어서자 공간이 변한 만큼 사람도 변했고 새로운 삶의 방식이 시작되었다.

메데진의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메데진 K-LINE으로 불리는 Metro Cable이다. 케이블카는 우리나라에도 곳곳에 있다. 내가 사는 창원시에도 케이블카 프로젝트가 계획되고 있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관광용 케이블카라 찬반의견이 많다. 하지만 메데진은 달랐다. 케이블카를 대중교통수단으로 도입하였다. 교통복지를 내건 세계최초의 시도였다. 현재 세계 30개국이 넘는 도시에서 메데진의 이 혁신적 시도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성공했다는 증거다.

 

메데진의 대중교통시스템은 전철이 도시 중앙을 가로 지르고, 지선은 버스와 케이블카로 연결되어 있다. 전철과 버스와 케이블카는 모두 무료 환승이다. 케이블카 설치 이전에는 달동네 주민들이 도심의 일터로 이동하기 위해 매일 새벽 4시에 집을 나서야했다. 하지만 케이블카 설치로 출퇴근시간을 최고 70%이상 줄였다. 케이블 K-LINE의 종착역에는 국립공원인 고산지대 산악관광지로 이어지는 케이블 L-Line도 있다. 여기는 추가비용이 필요하다. 대담한 구상이었다.

이런 변화를 두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2013년 ‘올해의 도시’로 메데진을 선정하였다. 선정이유는 “지난 20년간 콜롬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메데진 만큼 변화를 이루어낸 곳은 전 세계적으로 없었습니다. 메데진의 살인률은 1991년에서 2010년에 이르는 동안 80%가 급락했습니다. 메데진은 취약한 언덕 지역에 공공 도서관, 공원 및 학교를 건설했으며 거기로부터 상업 및 산업센터까지 일련의 교통연결을 구축했습니다. 메트로 케이블카 시스템과 급경사 언덕을 가로 지르는 에스컬레이터, 정류시간 단축, 민간투자 촉진, 사회적 형평성과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낸 결과입니다.”였다.

찬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Metro Cable이 자연환경에 편익을 증진시킨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다. 빈부격차를 현실로 인정한 고육지책이며 그 성공을 단언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지금까지 이룬 그들의 성과는 도시공간의 변화를 통해 주민 삶을 통째로 바꾼 대표적 사례로 부족함이 없다고 믿는다.

콜롬비아 국민평균소득은 7천 불 정도다. 메데진이라고 크게 다를 것 없다. 그럼에도 세계 도시들이 메데진을 벤치마킹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액을 들인 첨단시설 때문이 아니다. 기존시설을 전면철거하고 재건축 재개발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메데진 도시정책의 중심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연민, 그것이 메데진 도시정책의 시작이자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