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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편

34년 전, 배움에 목말라 마산으로 달려갔어요

by 허정도 2009. 9. 15.

며칠 전에 ‘청산’이라는 분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름의 이미지가 강해서 당연히 무슨 공적인 편지이겠거니 생각하며 열었더니, 뜻밖에 제 책을 읽은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이순임(가명)이라는 여성이었습니다.

50을 막 넘겼다고 하니 저보다 몇 살 아래인 것 같습니다.

책이 출판되고 난 뒤 독자로부터 여러 번 편지를 받았습니다만, 이번 편지는 여느 것과 느낌이 달랐습니다.

▲ 전국 곳곳에서 학생들이 가져와 심은 한일여고의 팔도잔디



편지 중,

‘34년 전, 배움에 목말라 여기 경기도에서 마산한일여고로 달려갔었어요.’

라는 한 줄의 글이 제 눈을 확 끌어 당겼습니다.

34년 전이면 1975년인데,

그 때는 저도 이 도시 마산에서 살고 있을 때였거든요.

‘……마산한일여고로 달려갔었어요.’

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잘 아는 분도 있겠지만 모르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 한 마디는,

가난 때문에 교육받지 못했던 저 또래의 아이들이 제 시간과 제 몸을 갉아가면서 정상교육을 받았던 그 시절의 기억들을 화-악 떠올려주었습니다. 그 유명한 팔도잔디도 생각났습니다.

지금이야 대학 빼고는 하기 싫어서 안하지 돈이 없어 공부 못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지만, 그 때만 해도 돈 때문에 공부 못한 아이들이 지천이었습니다.

제 처지도 비슷했거든요.

아련하지만 뚜렷한 그 시절 그 추억을 이 한 통의 편지가 생생히 되살려주었습니다.

스무 살 순수를 되찾은 기분이었습니다.

 

편지를 보여주자 아내는,

‘저는 산을 무척 좋아하고 남편은 산에 오르기를 힘들어 합니다.’

라는 마지막 구절을 재미있어 하며 호호 웃었습니다.

제 책에

‘나는 등산을 좋아하지만 아내는 산에 오르는 것을 싫어합니다.’

라는 대목을 빗댄 글이거든요.

 

얼굴도 모르는 분이지만 경기도 의정부 이순임 씨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힘겨웠던 자신의 조건을 당당하게 극복했던 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며 살아가는 당찬 대한민국 아줌마 일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자신처럼 힘들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나누어주는 분이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순임 씨의 편지를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남편과 함께 들린 서점 에서 책을 만났습니다.

지금 반 정도 읽어 나가는데 끝내기가 아쉬운 마음입니다.

1편 2편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는 말이지요.

책속에 나오는 마산의 지명이 더 반갑기도 하고요.

 

34년 전, 배움에 목말라 여기 경기도에서 마산한일여고로 달려갔었어요.

그 3년이 힘들고 괴로웠지만 지금의 나를 지탱해주는 무언가가 있네요.

그곳을 떠나온 지 31년만인 올해, 마산을 하루 다녀왔습니다.

많이 변한 모습이었지만 반가웠어요.

혼자 다녀오는 바람에 그 유명한 아구찜을 못 먹고 온 것이 아쉬움입니다.

그리고 우연찮게 선생님의 책이 제게 왔습니다.

 

책속에 소개되는 책을 몇 권 쯤은 읽었지만

저도 책속에 있는 책은 다 읽어보려고요.

그리고 남편에게 제안을 했답니다, 우리도 이렇게 해보자고.....

선생님 말씀처럼,

내 아이들이 다 커버리고 나서는

내 목소리를 들어 본 것이 노래방이나 말 할 때 외에는 없어서 혼자 소리 내어 책을 읽어 본 경험이 있었지요.

그런데 들어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어색하기도 하고

의미가 없다는 걸 느끼고 친구들에게 제안을 했답니다.

우리도 방송에서 하는 것처럼 낭독의 시간을 만나보자고....

물론 친구들이 다 웃었지요.

이제 50을 막 넘기는 중년입니다

아주 좋은 시간을 갖게 해준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 올리고 싶어서 보내드리는 건데

실례가 되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저는 산을 무척 좋아하고 남편은 산에 오르기를 힘들어 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날마다 좋은 날 되세요.

경기도 의정부에서 이순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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