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부영 우시장(府營 牛市場)
전에 마산축산조합의 사업이었던 오동동 성남천변의 우시장은 대정 15년(1926) 7월 1일 마산부의 경영이 인가됨에 따라 사무소 일부를 개수하였다.
그 집산 구역 및 거래는 부내 및 창원군을 주로 하고, 그 이외 함안, 진주, 통영, 고성의 각 군에서 끌려온 소를 매매 및 교환의 중개 알선을 주 업무로 하는 것이다.
매월 5, 10이 붙는 날의 정기장에 우시장이 열리며 한 번에 거래 예산액은 평균해서 8백 원이어서 한 달 4천8백 원, 일 년에 5만7천6백 원 내외가 될 것이다.
9. 급수기관
마산부윤은 마산 상수도 수원 후보지 조사를 위해 총독부 토목과장 스즈키 사카테츠(鈴木坂鐵) 기사장(技師長)의 출장을 요청해, 동 기사장은 대정 15년(1926) 7월 7일 히구치(桶口) 기사를 동반해 마산에 왔다.
테라시마(寺島) 부윤은 혼다(本田) 기사와 함께 명치41년(1908)에 마산거류민단이 상수도 수원지로 계획한 마산포의 산쪽 교방동 지역 내의 서원계곡을 답사했다.
이 수원 후보지는 동년 7월 19일부터 사흘에 걸쳐 나카지마(中島) 공학박사, 사노(佐野), 아사미(淺見) 두 기사와 함께 답사한 곳이며, 무학산 산맥의 고운대(孤雲臺), 부응봉(浮鷹峯), 봉암산(鳳岩山) 등의 여러 계곡물을 모으면 수량도 아주 풍부하니, 민단은 장래 사업을 수행할 때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수원(水源林)을 배양하고자 했던 곳이다.
그런데 그 후 진해 군항의 시가가 출현하면서 이주자가 속출하고 이어서 자유항으로서의 마산은 폐쇄되는 비운에 직면해, 시황이 많이 위축되어 상수도 가설 열기는 자연히 사그라들었다.
데라시마 부윤은 착임과 동시에 마산포 방면의 대부분의 민중이 나날의 음료수로서 공공우물에서 퍼 올린 물을 구입하며 한 말에 약 2전이나 3전을 지불할 뿐만 아니라 비상시에 용수의 결핍함을 전해 듣고 결연하게 상수도 가설이 급선무임을 느끼게 되었다.
대정 13년(1924) 6월 총독부의 전문기사를 불러 수원 조사를 의뢰하게 된 것이며 그 결과로 마산만 동해안의 반룡산의 기취곡(氣吹谷) 상류에 아주 좋은 땅을 발견하게 된 일은 건권(乾卷) 제1편의 ‘지질과 수질' 항에서 기술한 바 있다.
스즈키 기사장 일행은 교방동 서원계곡을 시찰하고 수질과 수량 다 장래 마산 상수도 보충 수원으로서는 좋은 것임을 확인하고, 그 배수지(配水地)는 수도 관말(管末)에서의 수압력이 균일하게 배수지역 내의 중앙을 골라야 한다고 자산동 뒤의 산 정상을 조사하였다.
또 마산포 시가지의 공공우물, 즉 현재 영업자에 의해 급수(汲水) 판매되는 우물을 검사해 성남교 위 좌측 천변의 우물은 좋지 않으니 음료수로 쓰지 말라며 우물의 폐쇄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더 나아가 일전에 상수도 배수지로 책정된 마산성 유적지 산정에 올라, 상수도 포설 목적이 마산포 방면뿐만 아니라 신마산 방면도 균등하게 공수되는 것이라야 하니 그 위치는 너무 멀어 신마산에는 수압이 감퇴되는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자산동 산지가 위치로서는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나서 반룡산 기취곡 상류의 수원 예정지로 발걸음을 옮겨 그 유수를 검사해보니 사람 몸에 해롭지는 않으나 수색이 탁한 것을 보고 비 때문에 그렇다고 하였다.
산 안쪽에 흙이 무너진 곳이 있기 때문이라며 토사 방지를 위해 곳곳에 돌을 쌓아 사방공사를 하고, 또한 이 일대가 지질상 조림에 적합하니 조림계획을 급히 행하면 취수지역 내에는 집도 논밭도 없는 관유림이므로 자연히 물이 청정화될 것이라 했다.
이 지역을 답사, 계측한 뒤 다음과 같은 요점을 설명했다.
"이 취수 면적은 약 50만 평인데 세밀히 측정하면 70만 평에도 이를 것이다. 여기에 높이 70자(尺, 21미터) 위치에 저수지를 만들면 거리도 짧아서, 또한 공사비용도 크지 않을 것이다. 우선 마산부의 현재 주민들에게 급수하여 사계절 단수의 걱정이 없도록 함이 중요하다. 그 저수지 둑을 흙으로 만드느냐 돌로 만드느냐는 기술적인 문제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특히 수질은 경수(硬水)에 속한 물이라 양조에 적절해서 일등급 우량주를 양성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총공사비는 45만 원을 예상하며 1천5백 입방 자(약 40만 입방미터)의 저수를 수용해 평균 급수량은 225일분 가량이 되며 급수 호수는 3천2백 호, 1만6천 명으로 친다면 부내의 인구가 5만 명이 될 때까지는 충분할 것이다. 만약 지장이 생기거나 혹은 장래 마산이 아주 대발전을 하고 수량이 부족해졌을 때에는 곧바로 서원계곡의 수원지를 응용하면 될 것이다."
이에 대해 마산부는 그 관계되는 지역의 고저(高低)를 세측할 준비를 했다고 한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2021년에 번역한 『馬山港誌』(1926) 중 101번 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港誌』는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앞서 게재한 『馬山繁昌記』와 같은 스와 시로(諏方史郞)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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