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씨름(角力)
조선에는 옛적부터 씨름을 영업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일 년 내내 수시로 마산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서 아마추어 씨름대회가 열린다.
그 승부는 도효(土俵, 스모 경기장, 씨름판)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빈터에서 하고 철저하게 적을 무너뜨릴 때까지 꽉 잡은 채로 하니 내지와 같이 도효에서 밀어내기란 전혀 승패와 관련되지 않는다.
언제든지 참가가 가능하나 상금품 등 기타 경비가 들어가니 입장료 즉 관람료를 징수하는 것은 물론이다.
씨름 경기는 2~3일 계속되는 것이 보통이며 최종일을 결승으로 하여 그 전에 계속 이겨 왔던 자, 즉 챔피언만이 다투게 되는데 소위 셋을 꺾었다.
다섯을 꺾었다고 하며 몇 사람에게 이겼느냐를 따져서 입상자를 결정하게 되어 있다.
6. 소싸움
글자 그대로 소싸움은 교외 혹은 산림에서 행해지는 개방적인오락이며 종전에는 마산시내의 빈터나 해안 등에서도 개최되었다.
뿔을 부딪치면서 이마로 미는 경기로 진퇴 시에 아주 위험하기 때문에 마산시내에서는 엄중히 금지되어 있다.
매년 8월 15일 혹은16일에 창원읍 외의 산에서 행해진다고 하는데 점차 쇠퇴하는 징조가 보인다.
이 지방의 소는 만주소 계통이다. 아니 제주도소 계통이라는 여러 소리가 있지만 아직도 판연하게 알 수는 없다.
당국자의 말에 따르면 소싸움 때문에 제이의 천성이 생겨 수컷 소인 황소는 뿔이 아주 딱딱해지고 두부와 이마 부위는 대체로 크게 발달했는데도 허리 아랫부분은 비교적 발육이 건전치 못하다고 한다.
7. 백일장(白日場)
예전의 한림학원(翰林學院)에서의 고시 즉 과거 시험을 흉내 낸일종의 문희(文戱), 문예놀이이며 각 지방에서 수시로 개최된다.
마산에서는 대정 12년(1923) 4월 27일 큰 활터(大弓場)를 중심으로 환주산에서 열렸다.
마산, 창원, 진주, 고성, 함안, 의령 기타 각지의 유생들, 즉 내지에서 말하는 문사(文士)들은 다 모이고, 관중을 합해 2만 명에 이른다고도 전해진다.
산복(山復)에서 아래 기슭에 이르는 사이는 마치 백로(白鷺)의 대군 아니면 흰눈이 쌓인 듯한 감을 품게 할 정도였다.
이 문예놀이는 한운(限韻, 특정 운(韻)이나 자(字)만을 사용하여 작시하거나 사용을 제한함)의 시문에 관해 제목을 제시하고 개장 며칠 전까지 주최자에 제출토록 하여 각 유림들이 함께 심사해 급제를 결정하는 것이어서, 응시자의 시문은 거의 스스로 지은 것은 없고 심사자는 그것을 알면서도 급제를 결정하는 것이니 대리 작성자의 고시라 해도 거짓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입상 수상한 당사자는 거의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젊은이들이며 심지어는 글자도 모르는 젖냄새 나는 총각도 적지 않다.
그들은 모두 다 시골의 부자집 자제들이며 그 가정에서는 대리 작성자나 주최자에게 잘 봐 달라는 의미로 환대를 하여, 친척 친구 이웃들을 연회에 초대하는 등 수백 원의 돈을 쓴다고 한다.
수상식에는 궁중관녀인 양 분장한 기생이 궁중언어로 한 사람씩 불러내어 등제장(等第狀)과 상품을 수여하여 잘 갖추어진 식탁에 앉게 한다.
이 아동들은 당일부터 시골 유림들의 행렬에 끼게 되고 조혼의 폐습을 유감없이 발휘해 총각머리를 상투 틀어 올리고 갓을 쓰고 연상의 배우자를 맞이해 세간에서 유림의 대우를 받게 되는 순서를 밟는다.
조선의 유림이 무학 문맹자가 많음은 이것만으로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선인은 근년에 와서 나이에 상관없이 향학심을 품고 문화의 선도자가 되고자 하는 기운에 기울어 백일장 등제가 의미가 없고 가소로운 것임을 깨닫게 되고 더불어 조혼의 폐해도 청소년 남녀 간에 인지되어 오는 것을 보니 몇 년 후에는 이 문예놀이도 조혼과 같이 바로 잡히게 될 것이다.
8. 조개캐기(潮干狩)
조간수(潮干狩) 즉 시오히가리란 글자는 풍아스럽지만 선인 부인들에게는 매일의 행사에 속한다.
생활비를 돕는 일종의 업무이기에 매일 간조 때는 마산만의 간석지에 수십 수백의 선인 부인이 조개 캐는 호미와 바구니를 지니고 운집한다.
캐낸 조개류는 다 껍데기를 벗겨 사계절 아침저녁으로 공설시장에서 판매한다.
그런데도 그 조개가 없어지지 않는 것이 참 신기하기만 하다.
데라시마(寺島) 부윤은 대합의 종자를 해수욕장에 살포해 아주 좋은 결과를 거두었지만, 쫓아내도 다시 몰려드는 선인 부인들이 이 대합마저 놓아두지 않는 것은 아주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2021년에 번역한 『馬山港誌』(1926) 중 109번 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港誌』는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앞서 게재한 『馬山繁昌記』와 같은 스와 시로(諏方史郞)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
'역사속 도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산항지(1926년) - 111 - 곤권(坤卷) / 제28장 내선융화(內鮮融和)로의 운동(技動)과 언어 (0) | 2024.08.05 |
---|---|
마산항지(1926년) - 110 - 곤권(坤卷) / 제27장 선인의 잡속(雜俗) (0) | 2024.07.29 |
마산항지(1926년) - 108 - 곤권(坤卷) / 제27장 선인의 잡속(雜俗) (0) | 2024.07.15 |
마산항지(1926년) - 107 - 곤권(坤卷) / 제27장 선인의 잡속(雜俗) (0) | 2024.07.08 |
마산항지(1926년) - 106 - 곤권(坤卷) / 제26장 내지인의 오락과 위안 (2) | 2024.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