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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항지(1926년) - 76 - 곤권(坤卷) / 제6 숭경신앙기관(崇敬信仰機關)

by 운무허정도 2023. 12. 4.

6. 죠도신슈 니시혼간지하 쇼간지(淨土眞宗西本願寺派勝願寺)

마산 유미마치(弓町) 2정목에 있으며 개교사(開敎使) 제1세이던 히다카 닷케이(日高達契) 스님이 떠나고 나서 제2세 기타미네 기조(北峯義淨) 스님이 절을 지키고 있다.

히다카 닷케이 스님은 명치 37년(1904)에 마산에 오고 러시아인 소유였던 현 마산우편국 맞은편에 철도감부 마산반이 빌려 쓰던 빈집에 들어가 개교하기 시작했다.

송진포에 있는 진해방비대에 정기적으로 포교할뿐더러 오사카매일신문의 통신원으로서 그 판매 확장에도 종사했다.

본산에서 오는 선물도 배척할 만큼 일불일체(一佛一體) 주의를 종규(宗規)로 완고하게 지킨 분이다.

명치 43년(1910)에 포교소의 전세집이 해약되어 한때 마산포 현 신마치로 이전해 있다가 귀향하게 되었다.

이때 기죠 스님이 교대를 하게 되었는데 사원 건축에 열심히 정재를 모아 마침내 사찰 터를 현재의 위치에 잡아 토지를 매수했다.

가람의 건축을 마치면서 성대한 입불식을 거행한 것이 대정 6년(1917)이다.

이에 앞서서 기죠 스님은 다른 곳으로 전직하고 대신 제3세로 들어온 이가 육군 예비역 소위인 기무라 노리오(木村敎雄) 스님이다.

재직기간은 아주 짧았으며 경성의 포교본부로 전직하고 그 뒤가 제4세의 현 주직인 데라모토 이치도(寺本一道) 스님이다.

마산분감 시대로부터 현재의 부산형무소 마산지소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그 교회사(敎誨師)를 촉탁 받아 온 것 외에도 이치도 스님은 일찍부터 사회교화사업에 뜻을 두고 우선 객전을 응용해 일요학교를 열어 소년문고를 설치했다.

그 외에 불교청년 조직을 만드는데 스스로 중심이 되었다.

대정 14년(1925) 가을, 사설 유치원 설립인가를 얻는 동시에 보모를 초빙해 내지인의 어린아이 70여 명을 수용했고, 대정 15년(1926)에는 소슈엔(早春園)의 건설에 착수해 일부 교실의 낙성을 보기에 이르렀고 그해 3월 14일에 보육증수여식, 원기대수식(園旗戴受式), 원사(園舍) 낙성식을 아울러 거행했고 아이들이 출연한 원예회(園藝會)는 박수갈채를 받았다.

내빈 및 학부모들은 다 같이 원아들의 사진을 찍고 별실에서는 낙성식 피로연이 열리는 등 아주 성황을 이루었다.

암수 병아리들 한 군데 모여 따는 여린 잎 (白猿)

 

7. 조오도슈 후쿄죠(淨土宗布敎所)

미스미다 지몬(三隅田持門) 스님은 명치 35년(1902)에 일본불교의 선구자로서 마산에 왔다.

그해 11월 4일, 거류지 서쪽 끝에 한옥을 빌려 수리, 개축해서 포교장으로 만들고 별실에는 연령, 학급을 불문하여 남녀 13명의 아동을 수용해 일본인 소학교를 표방했다.

그런데 명치 37년(1904) 1월에 새로 공립된 심상소학교(아래 사진)에 병합시켜 포교소를 혼마치 2정목 뒷길의 네 채를 연동한 나가야(長屋)로 이전했다.

 

당시 스님의 옆집에 후지하라 다케키(藤原建樹)란 열성적인 기독교 신자가 있어 스님이 목탁소리, 독경소리를 낼 때 옆집에서 경종을 울리며 찬미가 노래하며 기원을 드리는 참으로 해학, 그 자체였다.

또한 스님은 오사카아사히(大阪朝日) 신문의 통신원으로서 그 판매자이기에 오사카마이니치(大阪每日) 신문 통신원이던 히다카 스님과는 서로 반목하는 데가 있었다.

당시 신문통신판매에 오사카마이니치, 오사카아사히 두 신문이 모두 스님의 손에 맡겨진 것은 참 기이한 현상이란 감이 없지 않다.

또한 스님은 그 처가 자선상회(慈善商會)란 상호로 학용품 및 잡화상을 운영하고 있었다가 뒤에는 폐업하고 현재의 위치인 오기마치(扇町)로 이사해 동거한 것이다.

그 후 대구로 전임되었다가 대정 14년(1925)에 돌아갔다고 한다.

지몬 스님을 대신해 오하시 도시히로(大橋俊宏) 스님이 왔는데 애주가라 담백하면서 방종하기는 미츠미야 스님과 맞먹는다는 평이 있었다.

때로는 여성에 관한 소문도 흘러나오고 그 후 향리에 가까운 사이타마(琦玉) 현으로 전주했고 제3세로 현재의 가토 노리즈미(加藤敎純) 스님이 대신해 오늘까지 진지하게 일을 하며 교화에 노력하고 있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2021년에 번역한 『馬山港誌』(1926) 중 76번 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港誌』는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앞서 게재한 『馬山繁昌記』와 같은 스와 시로(諏方史郞)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