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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593

마산번창기(1908) - 4 - 제1장 마산의 대관 제1장 마산의 대관(大觀) -2 ■ 각국 거류지(各國 居留地) 월영동의 일부와 신월동 일부를 쪼개서 이루어진 해변의 신시가(新市街)이며 마산이사청 관내의 중심인 곳이다. 1898년(명치 31년) 2월 21일부 칙재(勅裁)로 개항되고 다음 해 1899년(명치 32년) 5월 1일에 거류지 구획이 정해졌다. 그 면적은 138,888평 남짓이며 이것을 A, B로 나누어 A는 일등지를 뜻하며 그것을 1호부터 47호까지 세분했다. B호는 이등지이며 1호부터 47호까지 세분되어 있다. 그 일등지 전부는 이미지상권 경매가 종료되고 현재로서는 러시아인 소유자 중 몇 개 구획이 빈터로 남아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본식 기와집이 즐비해 있다. 이등지는 17호 및 39호부터 45호까지 여덟 구획을 제외하고는 경매가 끝나.. 2021. 9. 13.
마산번창기(1908) - 3 - 제1장 마산의대관 제1장 마산의 대관(大觀) -1 한국에서 마산같이 산이 좋고 물이 밝은 데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음양의 영혼인 대기(大氣)가 응어리져서 마산만의 물이 되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빛이 나는 아지랑이 속에 마산항의 땅이 굳어진 것이다. 구라파의 어떤 이는 이 항만을 가리켜 태평양 해안으로서는 호주의 시드니 항, 북 아메리카의 샌프란시스코 항에 다음가는 세계 세 번째 최우량의 산수(山水)라 하여 그 얼마나 군침을 흘렸는지 모른다. 러시아가 동양에서 얼어붙지 않는 항구로서 마산을 얻으려고 마산사건을 일으킨 것만으로도 짐작이 가듯이 얼마나 마산이 그 형세가 좋고 그 풍경 역시 보기 좋기는 누구나가 아는 바이다. 마산만은 부도수도(釜島水道)라 부르는 입구에서 9해리 거리를 두고 진해만에 붙어 있다. 진.. 2021. 9. 6.
마산번창기(1908) - 2 - 추천사, 목차, 서언 서언 마산의 진상(眞相)을 그야말로 적절한 표현으로 세상에 알리는 일은 오직 스와교도(諏方去洞) 씨가 편찬한 『마산번창기』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시찰이나 관광 명목으로 수많이 관민에 의한 수기가 잡지, 신문 등에 기술되었건만 여태껏 정곡을 찌른 것이 없었음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비평과 판단이 적절하고 저자의 평소의 언론관으로 과감하게 써 내려간 점은 그 강직하고 영리한 저자의 성격 덕분이라 감동하는 바이다. 저자가 마산을 사랑하는 마음은 세상사람 모두가 잘 알고 있고 저자의 강직한 언동 역시 주지된 바이거니와, 잘 웃고 잘 나무라고 술잔을 기우리면서 얘기를 나누는 속에서 이 글들이 써진 것이라 하겠다. 저자의 준명함 없이 이 일을 어찌 완성할 수 있단 말인가. 넘쳐흐르는 큰 재간은 없다 해도 두.. 2021. 8. 30.
마산번창기(1908) - 1 - 발간사, 해제 창원시정연구원이 올 초에 번역한 『馬山繁昌記』(1908)를 포스팅한다. 기록전문가 박영주 선생이 일본의 한 대학도서관에 잠자고 있던 이 책을 찾아냈고, 이를 창원시정연구원이 번역 출판하였다.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마산이 언급된 책은 『韓国出張復命書』(1901), 『韓国案内』(1902), 『韓国水産誌』(1908) 등이 있지만 단행본으로는 이 책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는 『馬山と鎮海湾』(1911)으로 알려졌었다. 을사늑약과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 통감부 설치와 통감 정치, 고종의 강제퇴위와 순종 즉위 등으로 이어지는, 사실상 반(半)식민지 상태였던 당시의 시대상황은 마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한제국의 창원군청이 아니라 통감부의 마산이사청이 실질적인 통치기관이었다. 더구나 개항 .. 2021. 8. 23.
창원시 근대건조물 10호, 마산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 - 4 지난 3월 21일 창원시 근대건조물심의위원회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 1가 4-17번지의 옛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을 ‘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0호’로 결정하였다. 앞선 이들이 남겨 놓은 문화유산의 보존책무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있다. 그중 근대기 유산은 도시의 형성기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이 땅을 강점한 일제가 남긴 건물이라도 마찬가지다. 근대건조물로 결정된 뒤 이 건물에 대한 명칭과 건축연도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에 산호동 지하련 주택 보전문제에도 관심을 깊이 가졌던 마산YMCA 시민사업위원회는 7월 14일 제22회 시민논단의 주제로 이 문제를 올렸다. 시민논단에서 발제한 내용을 4회로 나누어 포스팅한다. 이 글이 마지막이다. 1. 마산의 전기회사 궤적 2. 건축.. 2021. 8. 16.
창원시 근대건조물 10호, 마산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 - 3 지난 3월 21일 창원시 근대건조물심의위원회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 1가 4-17번지의 옛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을 ‘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0호’로 결정하였다. 앞선 이들이 남겨 놓은 문화유산의 보존책무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있다. 그중 근대기 유산은 도시의 형성기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이 땅을 강점한 일제가 남긴 건물이라도 마찬가지다. 근대건조물로 결정된 뒤 이 건물에 대한 명칭과 건축연도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에 산호동 지하련 주택 보전문제에도 관심을 깊이 가졌던 마산YMCA 시민사업위원회는 7월 14일 제22회 시민논단의 주제로 이 문제를 올렸다. 시민논단에서 발제한 내용을 4회로 나누어 포스팅한다. 1. 마산의 전기회사 궤적 2. 건축 연도 추정 3. 건축.. 2021. 8. 9.
창원시 근대건조물 10호, 마산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 - 2 지난 3월 21일 창원시 근대건조물심의위원회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 1가 4-17번지의 옛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을 ‘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0호’로 결정하였다. 앞선 이들이 남겨 놓은 문화유산의 보존책무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있다. 그중 근대기 유산은 도시의 형성기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이 땅을 강점한 일제가 남긴 건물이라도 마찬가지다. 근대건조물로 결정된 뒤 이 건물에 대한 명칭과 건축연도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에 산호동 지하련 주택 보전문제에도 관심을 깊이 가졌던 마산YMCA 시민사업위원회는 7월 14일 제22회 시민논단의 주제로 이 문제를 올렸다. 시민논단에서 발제한 내용을 4회로 나누어 포스팅한다. 1. 마산의 전기회사 궤적 2. 건축 연도 추정 - (이번.. 2021. 8. 2.
창원시 근대건조물 10호, 마산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 - 1 지난 3월 21일 창원시 근대건조물심의위원회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 1가 4-17번지의 옛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을 ‘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0호’로 결정하였다. 앞선 이들이 남겨 놓은 문화유산의 보존책무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있다. 그중 근대기 유산은 도시의 형성기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이 땅을 강점한 일제가 남긴 건물이라도 마찬가지다. 근대건조물로 결정된 뒤 이 건물에 대한 명칭과 건축연도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에 산호동 지하련 주택 보전문제에도 관심을 깊이 가졌던 마산YMCA 시민사업위원회는 7월 14일 제22회 시민논단의 주제로 이 문제를 올렸다. 시민논단에서 발제한 내용을 4회로 나누어 포스팅한다. 1. 마산의 전기회사 궤적 - (이번 글) 2. 건축 연도.. 2021. 7. 26.
유물과 유적으로 본 창원의 역사와 문화 마산YMCA 제89회 아침논단 이번 마산YMCA 아침논단에서는 창원대학교 박물관 김주용 학예실장이 준비한 이번 강연은 유물과 유적으로 창원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현장 중심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현장 참석자에게는 특별한 기회가 있을 예정입니다.(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도록...) 창원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된 사실과 관련한 2021년 4월 20일자 경남도민일보 최석환 기자의 기사입니다. 창원지역 구석기 흔적 첫 확인 창원대·목포대박물관, 동읍 용잠리·도계동서 유적 발견 모룻돌 등 뗀석기 채집…"지역 고대사 공백 새롭게 써" 창원대박물관이 창원 의창구 도계동과 동읍 용잠리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을 발견했다. 이 지역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2021. 6. 28.
마산포 옛 모습 2020년 5월 6일 박영주 선생이 페이스북에 아래 글과 함께 마산포 옛 모습이 담긴 사진을 한 장 소개했다. 출처는 ‘東京大学学術機関リポジトリ https://repository.dl.itc.u-tokyo.ac.jp/’ 라고 밝혔다. 희귀한 자료다. 바다는 고요하다. 작은 고깃배 하나 보이지 않는다. 해안가 논밭에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120년 전. 1901년 1월 마산포 앞바다의 모습. 조랑말 4마리와 대원 6명으로 답사대를 꾸려 1900~1901년, 1901~1902년 두 번의 겨울에 걸쳐 266일간 한반도를 답사하며 지질조사를 했던 일본 지질학자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郎). 이 사진은 그가 1901년 1월 24일 부산을 출발하여 김해, 창원을 거쳐 1월 말경 마산포에 도착했을 때의 것이다. 사.. 2021. 4. 5.
<조선토목사업지>의 마산 상수도 이 글은 1928년에 펴낸 에 기록된 마산의 '상수도' 편이다. 초벌 번역이라 글이 거칠다. 마산은 경상남도의 제일 중요한 항구로서 내지 및 연안 항해선박의 중요 기항지이다. 또한 (항구의) 뒷편으로는 마산선과 함께 경남선의 철도가 있어서 해륙의 교통을 대략 갖추고 있어 다양한 상품들이 집산되고 그로인해 상업이 함께 번창하는 지역으로 성장해 왔으며, 향후 더욱 발전해 나갈 상황이다. 그렇지만 이 지역은 예부터 식수가 부족하고, 그 중 특히 마산(일본인이 살았던 신마산지역을 지창한 것으로 보임 - 글 옮긴이)은 부민(府民)의 태반이 살고 있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우물이 2~3개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매년 하절기에 이르게 되면 우물물이 모두 고갈되어 주민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 2020. 8. 3.
<조선토목사업지>의 마산항만 이 글은 1928년에 펴낸 에 기록된 마산의 '항만' 편 번역문이다. 초벌 번역이라 글이 거칠다. 그림은 책의 표지와 목차이다. 마산항은 경상남도의 중앙 진해만의 가장 안쪽에 있다. 동경 28도 33분, 북위 35도 11분에 위치하며, 동․북․서 세 방향으로는 육지로 둘러 싸여 있어 남쪽으로 항구를 열고 있다. 게다가 항외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섬들이 잔재하여 외해로부터의 파도를 막아 주며, 항내의 수면 면적은 752여 헥타르(2,276,010평)는 항상 잔잔하다. 간만의 차이는 2.22미터(7.33척)으로 수심이 깊어 진정한 천혜의 양항(良港)이다. 본항은 예부터 조선의 남쪽지역에 있는 유수한 항만으로 이용되어 왔고, 고려시대 원종 15년 갑술년 곧 일본의 문영(文永)11년, 충렬왕 7년 신사년 곧 .. 2020. 7. 27.
馬山繁昌記(마산번창기) / 1908년 발간 지난 3월 31일 페이스북에 흥미로운 글이 하나 떴다. 창원지역에서 기록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박영주 선생의 글이었다. 112년 전인 1908년에 발간된 『馬山繁昌記(마산번창기)』라는 고서를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반가운 일이라 포스팅한다. 먼저 페이스북에 올린 박영주 선생의 글 전문을 소개한다. 개항기 마산 문헌 하나 찾았다 오래 전부터 이름 정도만 알고 못 찾았던 자료인데 이번에 드디어 찾았다. 『慶南志稿第一編 馬山繁昌記』. 明治41年, 1908년 마산의 耕浦堂에서 발행한 책으로 저자는 諏方武骨. 일제강점기 마산에 대한 가장 유명한 문헌인 『馬山港誌』(1926)의 저자이기도 하다. 책은 광고면 등을 포함해 148면 분량으로 서언, 마산의 대관, 관공서, 지질및기후, 위생및의사, 교육기관, 신도및종교, 교.. 2020. 5. 11.
120년 전 마산은? - 6 120년 전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6 당시 마산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 일본인 가쓰기 겐타로(香月源太郞, 향월원태랑)의 『韓國案內(한국안내)』를 여섯 편으로 나누어 포스팅하는데 이번이 여섯번 째 마지막이다. 이 책에서 마산은 「마산포 안내」라는 제목으로 제8편에 수록되어있다. 1900년경 마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실태뿐만 아니라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韓國 案內 (香月源太郞 著, 1902年, 東京 靑木嵩山堂 發行) 제8편 馬山浦 案內 각국 거류지를 지나 약 10리 거리의 昌原街道에 있고 人家가 조밀하고 상점이 번화한 곳이다. 戶數는 2,000여戶이며 監理署(감리는 창원군수가 겸임), 경찰서 등이 있고 시가는 해변에 면하여 선박화물의 폭.. 2020. 5. 4.
120년 전 마산은? - 5 120년 전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5 당시 마산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 일본인 가쓰기 겐타로(香月源太郞, 향월원태랑)의 『韓國案內(한국안내)』를 여섯 편으로 나누어 포스팅하는데 이번이 다섯번 째이다. 이 책에서 마산은 「마산포 안내」라는 제목으로 제8편에 수록되어있다. 1900년경 마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실태뿐만 아니라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韓國 案內 (香月源太郞 著, 1902年, 東京 靑木嵩山堂 發行) 제8편 馬山浦 案內 居留地 雜組 일본영사관이 있어 통상 및 彼我의 교섭사무외 경범죄 이하의 재판사무를 취급하고 있으며 현재의 領事는 阪田重次郞이다. 그는 처음에 부산영사관 마산분관이 마산영사관으로 개칭될 때 부임하였다. 부속 경찰서.. 2020. 4. 27.
120년 전 마산은? - 4 120년 전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당시 마산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 일본인 가쓰기 겐타로(香月源太郞, 향월원태랑)의 『韓國案內(한국안내)』를 여섯 편으로 나누어 포스팅하는데 이번이 네번 째이다. 이 책에서 마산은 「마산포 안내」라는 제목으로 제8편에 수록되어있다. 1900년경 마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실태뿐만 아니라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韓國 案內 (香月源太郞 著, 1902年, 東京 靑木嵩山堂 發行) 제8편 馬山浦 案內 일본인의 諸 물가와 노동임금은 다음과 같다 이발료 - 20錢 여자 미용료 - 10錢 숙박료(1박2식) - 80전 점심식사 - 40전 선원 임금(1인) - 10전 手荷物 - 3전 藝妓線香(1시간) - 45전 고용인 (仕切).. 2020. 4. 20.
120년 전 마산은? - 3 120년 전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3 당시 마산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 일본인 가쓰기 겐타로(香月源太郞, 향월원태랑)의 『韓國案內(한국안내)』를 여섯 편으로 나누어 포스팅하는데 이번이 세번 째이다. 이 책에서 마산은 「마산포 안내」라는 제목으로 제8편에 수록되어있다. 1900년경 마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실태뿐만 아니라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韓國 案內 (香月源太郞 著, 1902年, 東京 靑木嵩山堂 發行) 제8편 馬山浦 案內 마산浦의 수출입 무역은 1900년에 총액 241,789圓이며, 그 중 수출액이 87,024圓, 수입액 154,765원이다. 이 가운데 외국무역에 관한 수출 6,203원, 수입 13,185원, 합계19,388원이며 .. 2020. 4. 13.
120년 전 마산은? - 2 120년 전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2 당시 마산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 일본인 가쓰기 겐타로(香月源太郞, 향월원태랑)의 『韓國案內(한국안내)』를 여섯 편으로 나누어 포스팅하는데 이번이 두번 째이다. 이 책에서 마산은 「마산포 안내」라는 제목으로 제8편에 수록되어있다. 1900년경 마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실태뿐만 아니라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당시(1900~1901) 신마산 전경 / 이 사진은 1905년 뉴욕(and런던)에서 출판된 에 수록된 것으로 이 책은 forgottenbooks.com에서 무료 열람할 수 있다. Wiki에서 검색해 보면 이 책을 쓴 사람은 영국인으로 20세기 초 중국 해관청에서 근무하기도 했고 5개 국어에 능통했.. 2020. 4. 6.
120년 전 마산은? - 1 120년 전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1 당시 마산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 일본인 가쓰기 겐타로(香月源太郞, 향월원태랑)의 『韓國案內(한국안내)』를 여섯 편으로 나누어 포스팅한다. 이 책에서 마산은 「마산포 안내」라는 제목으로 제8편에 수록되어있다. 1900년경 마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실태뿐만 아니라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韓國案內』겉표지와 속표지 다음은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에서 정리해 놓은 『한국안내』에 대한 설명이다. 약간의 첨삭이 있었다. [정의] 개항기 조선을 소개할 목적으로 도쿄[東京]에서 간행한 책. [편찬/간행 경위] 1876년 조일 수호 조규의 체결 이후 조선으로 여행하거나 이주하는 일본인이 급증하였는데.. 2020. 3. 30.
등록문화재 제198호 '옛 마산헌병분견대'의 건립연대 오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3·15대로 52 (월남동3가 11)에 소재한 등록문화재 제198호 '옛 마산헌병분견대' 건물에 대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정의]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남동에 있는 옛 일본군 헌병 분견대 건물. [개설] 구 마산 헌병 분견대는 옛 일본군 헌병 분견대 건물로, 일제 강점기 중반인 1926년에 붉은 벽돌로 지었다. 일본 군대의 마산 진출은 1905년 5월 마산선(馬山線) 철도가 건설될 때 시작되었다. 1909년 12월에 대구 주둔 일본군 헌병 분견소가 신마산에 설립되었고, 3·1 운동 후인 1920년에 이르러 일제는 헌병 경찰제를 보통 경찰제로 바꾸어 경찰이 치안을 맡도록 했다. 1921년에 지금의 마산 중부 경찰서 자리에 있던 헌병 분견대 건물을 증축해.. 2019. 6. 3.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13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5 4. 외관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2 5. 마치는 글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의 숙소로 시작되었지만 당시의 아파트는 19세기 서구사회가 꿈꾸었던 ‘유토피아적 공동체’의 발현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심리적 일체감과 만족감을 줄 것으로 기대했던 바람과 달리 지금 우리의 아파트는 ‘계층 간 분리’라는 새로운 사회 문제를 야기했다.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달리 취급되고 여가와 취미 등 삶의 질을 결정하는 생활방식도 달라졌다. 아파트의 대중화는 주거설비의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가장 큰 변화는 주방시설에서 비롯되었다. 주부의 가사노동을 줄여줄 뿐 아니라 세련된 디자인과.. 2019. 2. 18.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12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5 4. 외관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2 1) 단지계획 2) 주동계획 가. 동선유형 주동의 동선유형은 주동의 배치와 건물형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주동의 동선유형은 통로형식에 의해 좌우된다. 대원2지역의 경우 분절된 소규모 단지의 집합이므로 2-3주동의 진입이 각각 구분되어 있다. 동선의 구분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도 않지만 사실상 소규모 단지 하나에서 발생하는 동선체계와 다를 바 없이 분절적이며 직렬적이다. 나. 평면유형 주동의 수평 수직적인 형태구성은 단위세대의 조합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한 주동 내의 평면유형이 동일할 경우 주동의 형태는 동일한 형태의 반복적 조합.. 2019. 2. 11.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11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5 4. 외관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1 주거환경은 기후와 지형 등 자연조건과 도로와 수목 등의 공공시설에 의한 영향도 크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당해 건물의 외관이다. 특히 아파트라고 하는 집단주거시설의 외관은 공동체 형성은 물론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집단적 특성을 가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아파트의 외관은 단순히 물리적 혹은 인과적 결과가 아니라 사회문화적 요인의 결과이기도 하다. 아파트의 형태가 결정되기까지 경제적, 기술적, 문화적, 사회적 요인이 작용하겠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경제적, 제도적 요인이 결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성에 무게 중심을 .. 2019. 2. 4.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10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6 1) 전면 폭 2) BAY 수 3) 실 구성 가. 공실(거실 Living, 식사실 Dining, 부엌 Kitchen) 변화 나. 침실 다. 다용도실 라. 욕실 마. 현관 바. 계단실 각층을 연결해주는 동선으로서의 계단은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연결 장치이다. 아파트의 단위세대 규모가 크거나 고급일수록 계단의 규모나 시설의 수준이 높다. 대원2구역의 경우 단위세대의 규모가 크지 않고 비교적 초기에 건설된 아파트이기 때문에 계단실의 규모와 시설도 이에 걸맞게 구성되어 있다. 계단실의 크기는 다음과 같다. ① 현대사원아파트 ; 2.4×5.1 = 12.24㎡ ② 새경남아파트 ; 2.4×4.8 =.. 2019. 1. 28.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9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5 1) 전면 폭 2) BAY 수 3) 실 구성 가. 공실(거실 Living, 식사실 Dining, 부엌 Kitchen) 변화 나. 침실 다. 다용도실 라. 욕실 전용면적 85㎡ 규모의 경우 1980년대 중반부터 2개의 욕실을 두는 평면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1개였다. 하지만 60㎡규모는 면적의 한계로 1개의 욕실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60㎡의 경우도 1998년 안목치수 도입 이후 실질적인 면적 증가로 소규모의 욕실이 추가되는 평면도 출현하였다. 1개의 욕실을 가진 60㎡규모 아파트의 경우 욕실면적은 2000년대까지 평균 4.32㎡였고 85㎡규모는 욕실 1개였을 때는 대략 5~.. 2019. 1. 21.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8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4 1) 전면 폭 2) BAY 수 3) 실 구성 가. 공실(거실 Living, 식사실 Dining, 부엌 Kitchen) 변화 나. 침실 침실 수의 변화는 면적에 따라 결정적으로 달라진다. 전용면적 60㎡의 경우, 1995년경까지는 침실 수가 2개인 경우와 3개인 경우가 비슷한 비율로 계획되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대부분 3개의 침실로 바뀌었다. 이는 주거동 형식이 편복도형에서 계단형으로 변화하여 침실 3개를 넣기에 용이하도록 된 것과 관계가 있다. 85㎡규모의 경우는 시기와 주거동 형식에 상관없이 대부분 3개의 침실도 설계되었다. 침실의 면적은 공실면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전용면적 60㎡에서.. 2019. 1. 14.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7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3 2) BAY 수 대규모 단위주거가 아니라면 BAY 수가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대원2지역이 건축되었던 1980년경에 지어진 60㎡는 전부 2BAY였고 85㎡규모의 계단실형 아파트도 대부분 2BAY였다. 최근은 두 규모 모두 3BAY, 심지어 4BAY까지 출현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BAY 수는 채광이 양호한 쪽의 실 개수를 말한다. 대원2구역 아파트의 BAY 수는 모두 2BAY이고 북쪽은 3BAY이지만 ②새경남아파트와 ⑥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 ⑦경남아파트는 남북 두 쪽 모두 2BAY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⑤동양상가아파트의 경우 주방과 거실 및 작은 방으로 구성된 3BAY이고 북쪽이 큰 방 .. 2019. 1. 7.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6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2 우리나라의 경우 초기에는 다양한 형태의 단위주거 조합방식이 나타났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편복도형식과 계단실형식으로 양분되어 정착하였다. 박노학의 「국민주택규모 아파트의 단위주거 평면계획 변화특성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편복도형은 아파트 주거동 형식의 대다수를 차지했지만 1980년대 이후부터 85㎡규모 중심으로 계단실형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여 1990년대부터는 그 변화가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시기부터 엘리베이터를 비롯한 설비가 보편화되었고 무엇보다 땅값과 건축비가 급등하면서 경제적인 측면에서 엘리베이터 설치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졌고 거주자.. 2018. 12. 31.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5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1 아파트의 기원은 산업혁명 이후 도시로 집중하는 노동자들의 숙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집단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18세기 후반 시작된 도시로의 인구집중과 그에 따른 주택난이 토지의 입체적 이용, 즉 공동주거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파트였다. 형식은 집단주거였지만 이념적으로는 19세기 서구사회에서 꿈꾸었던 ‘유토피아적 공동체’라는 이상주의의 산물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당시의 아파트는 전쟁 때 가족과 함께 들어온 주한미군을 위한 것이거나 그 외의 것은 극히 소규모였다. 따라서 국내 최초의 아파트는 일반적으로 60년대 초에 건설된 위 그림의 서울 마.. 2018. 12. 24.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4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 3 앞에서 본 것처럼 창원신도시의 계획과정에서 제시되었던 원칙들은 어디 내어놔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내용들이다. 이러한 최초의 의도는 건설과정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고 건설 후 관리과정에서 더 손상되었다.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따라 백년대계가 되어야할 도시정책이 갈지(之)자 걸음을 걸은 탓이다. 대원2구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민간대자본 투입이 용이치 못해 단지를 소규모로 나눈 것이 대원2구역의 가장 큰 문제였다. 소규모로 분절된 부지로서는 도시계획에서 내세웠던 아파트 단지 계획의 여섯 가지 원칙을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창원공단 조성 2년이 경과한 1976년 말에는 공단에 58개 업체가 입주하였고 그중 18개 업체가 .. 2018.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