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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634

『진해』(1912) - 12. 산업 12. 산업 토지에 생산물이 있느냐 없느냐는 그 땅의 소장(消長, 성쇠, 쇠함과 성함) 문제에서 결코 내버려 둘 수 없다는 것이 자명(自明)한 이치이다. 우리 진해는 생산물이 적은 지역, 즉 소비지이며 생산지가 아니라고 하는 자가 있지만 이는 사리에 어두운 사람이 하는 소리이며 소생은 찬동할 수가 없다. 진해만에서 나오는 어류는 조류 관계상 한난류 양류(兩流)에 서식하는 것들 모두를 망라하고 있다. 겨울철에는 특히 많은 어류를 포획하는데 이는 고장 수요를 충족시키기에 여유가 있으며 조선 내 여러 곳은 물론 일본의 각 지방에 수송하고 있다. 행암만 부두에 있는 조선해수산조합의 모범어촌이 완성됐을 적에는 놀랄만한 기세로 어획물을 만재한 어선들이 아침, 저녁에 출입함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것이 진해만에서 나오.. 2025. 2. 10.
『진해』(1912) - 11. 종교 11. 종교 그 땅의 종교 상태라는 것은 바깥에서 관찰할 수는 없다. 그것은 심리의 움직임이기에 결코 외형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진해의 종교란 불교가 주가 되어 있다고 보는데 별 지장은 없으리라.기독교나 곤코오쿄(金光敎 敎派神道의 하나)나 텐리교(天理敎派神道의 하나) 등도 있기는 한데 종교상의 세력은 극히 미미한 것임에 틀림없다. 불교라 함에도 종지(宗旨, 종문(宗門)의 교의(敎意)의 취지)는 여러 가지가 있거니와, 우선 신슈(眞宗, 淨土眞宗의 준말), 조오도슈(淨土宗, 불교의 한 종파인 정토종을 말함), 니치렌슈(日蓮宗, 일본 불교 종파의 하나로 법화경(法華經)을 종지(宗旨)로 함), 신고슈(眞言宗, '진언종'으로 불리며 일본 불교의 한派), 젠슈(禪宗, '선종'으로 일컬어.. 2025. 2. 3.
『진해』(1912) - 10. 소방기관 10. 소방기관 진해의 소방 설비는 개항 당시 호구(戶口, 호적상 집의 수효와 식구 수)가 아직 적었을 때부터 갖추어져 있었다. 조장(組長)에는 미야자키 미네타(宮崎峰太)를 추대하였고, 조원은 혈기 넘치는 사람이 꽤나 있었다. 그리고 단순히 소방뿐만 아니라 일반 공공사업에도 진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호구가 증가함에 따라 일대세력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의용소방조라 칭해 공공기관의 하나로 지목되어 있었는데 시가지가 급속히 발전함에 따라 어떻게 해서라도 완전한 조직으로 거듭나야하기에 이르러, 경찰에 직속해 소방기구 설비등도 충분히 갖추느라 당시 구와바라(桑原) 경찰서장이 위원장이 되어 유지들과 협의한 결과 창립위원 몇 명을 선별해 기부금 모금에 착수했다. 그런데 약 3천 엔이란 기부금이 모아져 바로.. 2025. 1. 27.
『진해』(1912) - 9. 통신 9. 통신 진해에 우편국이 개설된 것은 올해 1912년 1월 25일이며, 그 때까지는 현동 우편소에서 우편사무 전반을 취급해 왔다. 진해우편국에서는 우편, 우편어음, 우편저금, 전신 및 전화를 취급해, 마산부 중진해,웅서 2면을 그 우편구역으로 삼고 있으며 진해, 웅동(熊東), 웅서, 천가(天加), 웅읍 각 면을 전신구역으로 삼고 있다. 또한 전화통화구역은 사천(泗川), 방어진(方魚津), 삼천포(三千浦), 영산(寧山), 자인(慈仁), 마산, 대구(大邱), 약목(若木), 군위(軍威), 안동(安東), 영천(永川), 경산(慶山), 기장(機張), 창원(昌原), 부산진(釜山鎭), 부산(釜山), 초량(草梁), 동래(東來), 울산(蔚山), 장생포(長生浦), 왜관(倭館), 성주(星州), 의성(義城), 경주(慶州), 진.. 2025. 1. 20.
『진해』(1912) - 8. 교육 8. 교육 진해에 심상고등소학교(아래 사진, 1920년대)가 개교된 것은 올해(명치 45년, 1912) 1월 10일부터이며 개교 당초에는 130여명 아동을 수용한 것에 지나지 않았으나 개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250명에 도달했다. 그 이유는 당지에 개교를 보기 이전에는 아동 모두가 해상 7해리(약 13km)여를 소증기선(기선(汽船)의 옛 명칭으로 기계력(증기기관)으로 추진시키는 배의 총칭)으로 마산에 통학했기 때문이다.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며 아침 해뜨기 전부터 저녁 5시나 6시경이 될 때까지는 집에 못 돌아올 지경이었다. 게다가 그 기선의 승강은 아주 위험한 것이라 바다 속에 떨어진 아동 숫자도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몸이 발육 도상에 있는 아동에게 마산 진해 해상 통학이란 쉽지는 .. 2025. 1. 13.
『진해』(1912) - 7. 위생 7. 위생 진해는 조선에서 보기 드문 건강지로 지목되어 있다. 위생시설에 관해서는 아직 만전을 기했다고까지는 말 못하겠지만 결코 불완비한 것은 아니다. 십수 명의 개업의가 있어 이들이 시정(市井, 인가가 모인 곳으로 중국 상대(代)에 우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여 살았다는 데서 유래)에 흩어져 개인위생을 통어(統御, 통괄)하고 있으며 나아가서 공중위생에 보탬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공립병원도 조금 있으면 훌륭한 것이 설치될 것이다.또한 사립병원으로는 진해병원 외 두세 개 규모 있는 병원이 있다.군항지이기 때문에 위생 단속에 관해서는 엄중하다. 해군병원도 멀지 않아 설립될 것에 틀림없을 터이니 위생기관에는 유감이 없음을 기할 것이다. 학교조합에서는 중초리(中初里)에 격리병사를 건축하여 전염병 환자 수용이 가.. 2025. 1. 6.
『진해』(1912) - 6. 풍광미(風光美) 6. 풍광미(風光美) 진해에 풍광미가 풍부하다는 것은 이제 와서 거론할 나위는 없을 터이지만 서너 개 있는 그대로를 기록해 두자 (일) 일출안개 속에 햇님이 하얀 옥처럼 빛나고 있다. 울퉁불퉁한 천자봉연산(天子峰連山)이 서서히 밝아지며 짙은 회색 쪽배가 한 척, 조용이한 기름 같은 수면에 까만 선을 가느다랗게 그어가면서 저쪽 덕산(德山) 쪽으로 저어 가고 백의 입은 한인이 깜짝 놀라 서서 지켜보고 있다 (행암만).그렇게도 유명한 큰 팽나무 부근의 상야등(常夜燈)에 엷게 불씨가 남아 있다. 아직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을 때에 무슨 구미(組)이라고 옷깃에다 적힌 작업복을 입은 사내다운 젊은이가 상반통(常磐通, 도키와도오리, 아래 사진-상반통 2정목)를 꺾어 천첨정(川添町, 가와조에초)쪽으로 들어갔다. 무언가.. 2024. 12. 30.
『진해』(1912) - 5. 기후 5. 기후 조선 속에서도 경상남도 일대는 기후가 좋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마산, 진해, 부산은 기후가 온화하며 어느 계절이나 한결 같이 내지와 다름이 없다고 전해지고 있다. 우리 진해 땅은 마산과 부산 중간에 위치해 각 계절의 기후는 또렷이 나뉘어져 우량이 많지도 않고 바람 또한 강하지 않게 적절하니 참으로 살기 좋은 곳이라 하겠다. 동서로 길게 뻗어 있고 남북으로 짧으니 마치 한 일자 모양인데, 시가지는 언덕과 언덕사이에 있으며 단 남쪽 한정된 곳만이 재등만을 면하고 있을 뿐이다. 그 때문에 겨울에도 귀를 찢을 만한 센 바람이 불지도 않으며 여름에도 혹서로 쇠를 녹일 듯한 더위는 없다. 그는 전면이 바다인 반면 후방에 높은 산이 있어서 유명곡(有明谷, 아리아케다니) 깊숙한 곳까지 바람을 보내기 때문이.. 2024. 12. 23.
『진해』(1912) - 4. 이상적인 시가지 4. 이상적인 시가지 진해 시가지는 군항경영이란 제1차 계획에 따른 것이며, 해군당국이 꽤 고심한 끝에 설계 한 것임은 명백하다. 시가지 대하를 제3기로 한 것도 결국 완전한 시가지를 조성한다는 방침 아래 나온 것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것은 제1기 대하지 36,000여 평에 집들이 나란히 세워지게 된 후, 이 정도이면 수급이 일치해 조금도 불편을 느끼지 않을뿐더러 나아가 이 정도로도 부족하다고 사료되었을 때에 제2기 대하를 실시하게 되며, 제2기 대하가 제1기와 마찬가지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 제3기 대하를 실시할 것이라는 순서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제2기까지는 기술한 바와 같이 실시되었는데 다만 제3기 대하가 제2기의 완성 이전에 발표된 것은 학교조합 유지를 위해 연구 결과가 예정보다 빨.. 2024. 12. 16.
『진해』(1912) - 3. 시가지 3. 시가지 진해 일대의 지세는 이미 기술한 바와 같으나, 시가지 지형이 어떻게 생겼느냐 하면, 서북에서 동북에 걸쳐 산맥이 있고, 서남에는 재등만이 있으며 동북은 행암만을 바라보고 있다. 북광소로(北廣小路, 기타히로코지, 北辻, 기타츠지로도 불렸으며, 현 북원로터리를 가리키는 말)에서 관사 지역인 앵전통, 사쿠라다도오리)을 따라 원산(圓山, 円山, 마루야마, 진해공립심상고등학교가 있던 현 도천초 지역과 진해헌병분대의 나무가 울창했던 구릉지역을 가리킴)을 왼쪽으로 보면서 동남쪽으로 몇 정(町, 60間으로 약109미터를 말함)을 가면 진수부(鎭守府, 현 해군진해기지사령부를 말하는 것으로 진수부 설치가 예정되었음)부지에 도달한다. 두산(兜山, 가부토야마, '투구모양처럼 생긴 산'이라는 의미에서 가부토야마로 .. 2024. 12. 9.
『진해』(1912) - 2. 지세(地勢) 2. 지세(地勢) 진해는 웅중(熊中), 웅서(熊西) 양면의 일부이며 기후는 온화하고 땅은 비옥한데다가 풍치(風致)가 다채로운 곳이다. 해륙에 자연의 산물이 나오며 한국에서는 다른 유례가 없을 만큼 자원이 풍부하다. 지금 지형 개요를 설명하자는데 웅중, 웅서 양면의 동북쪽은 가파른 산들이 이어져 있고, 웅중면 동북 끝에는 장복산(長봉우리가 높이 솟아 있으며, 여기를 넘으면 즉 웅읍면(熊邑面)이다. 웅서면 동방에는 옛적부터 이름 높은 산성산(山城山, 야마시로야마)이 있다. 이 산성산에는 지금부터 약 4001년 전, 임진왜란(文祿慶長の役, 분로쿠게이조노에키)에서 우리 맹장과 맹졸들이 성을 지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이렇게 삼방이 뾰족한 산에 둘러싸여, 오로지 남쪽만이 세계에 명성 높은 진해만인 것이다. 진해만은.. 2024. 12. 2.
『진해』(1912) - 1. 진해 1. 진해  진해 땅은 원래 물이 동서남북으로 흐르고 뽕나무가 심어진 적적한 한촌이었으며 단지 바다에 면하고 있어서 반농반어(농사를 지으면서 어업도 함께 하는 일)로 사는 한인이 띄엄띄엄 살고 있을 뿐이었다. 해 저문 뒤의 풍경이야 황량하기 그지없고 저 멀리 흩어져 보이는 고깃배 불을 유일한 구경거리로 삼아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러일전쟁 때부터 아주 중요시되는 곳이 된 연유는 앞에 진해만이란 세계에서 유일하게 좋은 항만을 가졌기 때문이다. 군항시설에 관한 발표가 있고 난 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주목하게 되었다. 제1기, 제2기, 제3기에 이르는 시가지대하(市街地貸下)가 발표되자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전의 한촌(寒村)은 다른 곳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일대도시가 된 것이다. 말할 필.. 2024. 11. 25.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10절 행암만(行巖灣)과 덕산리(德山里) 제10절 행암만(行巖灣)과 덕산리(德山里) 신시가지에서 약 일 리(1里)거리, 행암만(아래 사진은 현 행암만 전경)에 면한 덕산리는 가까운 장래에 상항으로서 상선 출입이 빈번해질 것이라는 예상 아래 이에 부수할 사업을 계획하는 자도 많다.  현재 행암만에서 매축(埋築)에 종사하고 있는 오사카 세라 류조(瀨良隆三)의 철공소 신설지가 1,200평, 도쿄의 엔도 다모츠(遠藤保), 야마모토 가타로(山本嘉太郞) 두 사람의 800평, 도쿄 가네코 치호(金子千芳)의 우유 착취장 1,000평 등인데, 앞의 세라 씨는 꽤 넓은 주물공장을 설치해 군항은 물론 시내외의 모든 수요에 응하는 한편, 재목상 및 토공구용 철물상도 경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또한 덕산리에는 세관감시원이 출장을 하고 있다. 올해 안에 감시서를 건설하게.. 2024. 11. 18.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9절 교육과 종교 제9절 교육과 종교 현동 신시가지에서는 이미 작년 9월에 취학 아동 수는 124명에 도달하여 계속 증가할 모양새이다. 이 아동들은 해상 8리(3.141818km에 해당함)를 작은 증기선으로 마산에 통학하고 있다. 그 위험성과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으니 재류 주민들의 과반이상의 결의에 의해 현동학교조합의 인가를 당국에 신청해 허가를 받아 10월 1일부터 개교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있으니 이 책이 독자 앞에 닿을 시기에는 신시가지의 새 학당에서 아동들의 책 읽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또한 신사불각(神社仏閣)을 세울 곳으로 태신궁(太神宮)을 유히가오카(夕日ヶ丘)에 세우고, 진종(眞宗, 정토진종의 준말로 일본 불교의 한 파), 정토종(淨土宗, 일본 불교의 한파), 일련종(日蓮宗, 가마쿠라시대에 일연 대사.. 2024. 11. 11.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8절 목축 제8절 목축목축은 시작한지 얼마 되지는 않는다. 진해만내에 산재하는 해군 소속인 여러 섬 중에서 육지에 가까운 부도, 모도, 실리라는 세 섬은 목축용지로서 사사노 진시로, 다카스합자회사 및 아비루 유사쿠(阿比留祐作, 아래 그림은 아비루가 운영하는 여관 광고) 세 사람에 대하되어 각각 섬 면적 22만 정보에서 56만 정보에 이르는 넓은 토지를 점한다.(1만 평마다 대하료 1년에 5엔) 그 중에는 기간지(旣墾地)와 미간지(未墾地)도 있으며 콩, 보리, 고량 및 각종 목초를 키우는 데 적절하고 수리 편의도 나쁘지 않다. 목사(牧舍), 농사, 기숙사는 다 설비되어 북한산(北韓産) 종우 수십 마리를 방목하여 그 발육상태는 양호하다. 장래 주목을 받을 것이다. 이 글은 2022년 창원시정연구원이 1910년대와 20.. 2024. 11. 4.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7절 다카스통조림합자회사(高須缶詰合資會社) 제7절 다카스통조림합자회사(高須缶詰合資會社) 본사는 히로시마현 구레시(広島県呉市)에 있으며, 명치 21년(1888)의 창업 시부터 통조림을 제국해군에 납품해 왔으니 해군과의 인연은 깊다. 이런 관계로 특히 진해 군항 내에 땅을 빌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회사 사업은 통조림 제조를 주업으로 하며 겸해서 목축, 도우(屠牛) 및 이에 부대될 사업, 부업으로서 철공 및 목욕탕 영업이 있다. 자본금 6만 엔, 적립금 19,600엔, 전기이월금 2,763엔 57전이 있으며 업무담당사원은 가다 긴사부로(賀田金三郎)가 하고 있다. 비봉분공장은 명치 42년(1909) 4월 1일 기공, 명치 44년(1911) 3월 말에 낙성, 4월 1일부터 사업을 개시했다. 기관(機關)은 육상모형(陸上模形) 코르닛슈식(式) 마력(동력이나.. 2024. 10. 28.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6절 사사노공장(笹野工場) 제6절 사사노공장(笹野工場) 사사노 진시로 씨는 제국해군이 필요로 하는 소고기, 생선고기 통조림 수백만 개 중 그 절반을 충당하는 일대세력가다. 그는 본점을 도쿄 후쿠가와 모토마치에 두고 명치 41년(1908)부터 진해만 일대의 장래성에 착목해, 거점을 군항의 관문인 비봉에 정해 기간지(旣墾地, 이미 개간하여 놓은 땅을 이르는 말) 45정보(町, 1정보는 9,917.35537㎡로 45정보는 446.280.99165㎡에 해당되므로 135,000평을 말함. 한 평은 약 3.3m²) 남짓 그리고 미간지 137만여 평을 부근 12개 동에 걸쳐 조차했다. 또한 재작년 명치 42년(1909) 7월부터 제반 설비를 비롯하여 택지 2,093평에 36동, 총건평 1,044평의 건축을 완료했다. 목축, 통조림, 정미농업,.. 2024. 10. 21.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5절 비봉 제5절  비봉비봉은 군항의 관문이며 부두도 있다. 마산에 가장 가깝고 증기선으로 30분 거리에 있다. 여기서 걸어서 약 30분이면 군항지 시가지에 도착한다. 비봉 시가지역은 통조림업자인 사사노 진시로(笹野茜四郎, 아래 그림은 본인의 사업 광고)씨 및 다카스(高須)합자회사의 조차지(租借地)에서 2천 평을 쪼개서 개인에게 임대를 개방한 것이다. 내지인 이주는 지난 명치 41, 42년(1908, 1909) 경부터 개시되었다. 작년 이래 군항경영공사가 착수됨에 따라 집들이 속속 지어지면서 그 후 빼곡해졌다. 전술한 사사노, 다카스 2대 통조림제조소를 비롯해 여관, 잡화점. 요리점 등이 생겨서 완연한(눈에 보이는 것처럼 아주 뚜렷한) 작은 시가지를 형성했다. 현재 주요한 거류자와 그 직업은 아래와 같다. 호수는 .. 2024. 10. 14.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4절 건축 및 토목공사 제4절 건축 및 토목공사 가장 많이 주시되어 소문난 목적이 되어 있는 군항 경영상의 제공사비는 올해 할당분인 56만 엔 안에서 절반 이상은 재료구입비로 내지(일본 본토, 일본 본국)에 흡수되어 버리고 얼마 남았는지 모른다.시가지 건축은 올해 약 500채를 예정하고 있으나 실제로 준공된 것은 백 채 안팎에 불과하다. 이것도 역시 청부인 이외의 직공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많다. 한 평당 30~40엔에서 70~80엔 쯤이 표준이라 보면 크게 차이 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임시건축지부에서 착수하고 있는 공사는 아래와 같다.기공연도                 공사명칭                                                        도급인 성명 1910년도         .. 2024. 10. 7.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3절 해군용지 대하(貸下) 및 시가지 경영 제3절 해군용지 대하(貸下, 관공서에서 민간에 빌려줌) 및 시가지 경영 진해 해군용지 대하에 관한 내규는 작년 8월 5일부로 시행되었다. 그 내는 진해 해군용지 내에 있는 경작지, 미간지(未墾地, 아직 일구지 못했거나 않은 땅) 및 택지 대하에 관해 이하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경작지에 관해서는 경작지에 관해서는 제1조에서 이라는 취지를 정하고, 미간지에 관해서는 제17조에서 이라 정했다. 택지에 관해서는 제27조에 는 (남의 땅을 빌려 쓰는 사람)>이 아니라도 , 기타 에 으로 정했다. 시가지는 12만평이며 대규모 계획을 가지고 모범적인 시가지로 구획되어 형성되어 가고 있다. 폭이 20간(間, 1간은 1.818182미터로 20간은 약 36.36미터에 해당함), 15, 10간 등 큰 도로가 가로 세로 십.. 2024. 9. 30.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2절 현동의 발전 제2절 현동의 발전 현재의 현동은 시시각각 발전을 거듭하며 어제를 보고 오늘을 판단해서는 안 되며 오늘에 의거해 내일을 예상해야만 한다. 실제로 군항지 경영 800만 엔(圓) 10년 계획은 원래 갈대벌판이던 현동의 운명을 열성적으로 개척해보려는 이들에게 크게 주목받았다. 10월 초순의 조사에 따르면, 몰려오는 사람들은 남자 566명, 여자 346명, 합쳐서 812명, 호구 수는 289호에 이르렀으니 앞날의 성황도 예상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주자 모두가 꼭 확실한 조사를 하고, 이윤 나는 계산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무척이나 거대한 군항계획 소문에 홀려서 가벼이 전도유망함을 과대시하고, 정해진 목표 없이 한탕 해보려는 경거망동의 작자(作者, 여기서는 나 아닌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도 적지.. 2024. 9. 23.
『마산과 진해만』(1911) 제2장 「진해만」 - 제1절 군항지 개관 이 글은 2022년 창원시정연구원이 1910년대와 20년대 진해의 모습을 담은 세 권의 책을 번역하여 하나로 묶어 낸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3권 『근대 문헌 속 진해』 중 『마산과 진해만』의 2장 ‘진해만’ 부분이다.  제1절 군항지 개관 동양 제일의 대군항인 진해만(진해만이라는 명칭이 진해군의 앞쪽 해역을 포함하여 웅천군 거제군·고성군으로 둘러싸인 넓은 해역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중략) 1. 우선 조선시대부터 '진해(군)'이라는 고유지명(행정지역명)이 현재의 진해로부터 조금 떨어진 서쪽에 있었던 점. 2. 당해 해역(현재의 '진해만‘을 말함)에 접해 있는 몇 개의 지역명 중에서, 특히 진해라는 지역명에 당시(러일전쟁 개전 전)의 일본군(정부)관계자들이 주목했던 점. 다케쿠니 도모야스, 2019, .. 2024. 9. 16.
마산항지(1926년) - 116(마지막) - 마산항지 해제 마산항지 해제 창원학연구센터 초빙연구원 한석태 창원시정연구원 창원학연구센터에서는 『마산번창기』 번역에 이어 동일저자의 『마산항지』를 번역하고 각주 등을 통해 해석하는 일을 속행하게 되었다. 마산과 진해지역은 일본 제국주의가 건설한 대표적인 식민도시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식민도시 건설 당시 일본인의 시각과 사관에 의해 기록된 문헌자료 가운데 『마산항지』는 분량 면에서나 내용의 충실도가 뛰어난 향토 지리지라 할 수 있다. 1906년 마산에서 거주하기 시작하여 1926년에 이 책을 발간하기까지 20여 년을 마산에서 식민도시 건설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한 스와 시로(諏方史郎)는 『경남사적』(慶南史跡)과 그 『보유』(補遺)를 집필하는 등 문필과 저술활동을 펼치다가 이듬해 1927년 2월 8일 타계하여 마산에.. 2024. 9. 9.
마산항지(1926년) - 115 - 마산항지 건곤권(乾坤卷) 종료 마산항지 건곤권(乾坤卷) 종료 회고(會告) 본 항지(港誌)에 편성한 원고는 한 번 화재로 소실된 것을 다시 고쳐 모은 것이라서 정확하지 않다거나 누락, 착오, 탈락 혹은 지나친 표현 등의 결점을 면하기가 당연히 어려웠으니, 만약 이런 점을 발견하셨을 때에는 독자 여러분이 반드시 기탄없이 질책의 연락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제2판에 개정을 가해 점차 완벽함을 이루려고 하니 이 마음 헤아려 주실 것을 앙망하는 바입니다. 또한 본 편에 대한 의견도 자세하게 듣고 싶은데 이 모임이 재정적으로 빈약하니 우편엽서 혹은 3전 우표를 붙인 편지로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또한 경남 각 지방의 명승지 혹은 사적(史)에 관한 연락을 부탁드리겠는데 가능하면 사진을 첨부해 주셨으면 합니다. 마산부 사이와이마치(幸町) 65번지 / .. 2024. 9. 2.
마산항지(1926년) - 114 - 곤권(坤卷) / 제29장 마산의 장래 시가지와 매축지 5. 마산 민중의 목소리 A. 마산부의 위치에 관해 마산부청(馬山府廳)은 옳게 마산의 중앙에 위치를 잡아야 할 것이다. 이것을 인간에 비유한다면 몸의 중앙에 있어서 각 장기와 신경기관 기타 신체를 움직이게 할 최고기관인 심장인 것이다. 그 기관을 부의 서북 구석에 떨어져 있게 함은 결코 부치(府治)를 건전하게 발달시킬 수가 없을 것이다. 아니 건전한 발달을 위해서 다수의 관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치자(治者) 측에서의 관점이지 피치자(被治者) 측에서 보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부청을 학교로 비유한다면 자제를 가르치는 교문이다. 그 교사가 부근에 산다면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추워도 더워도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이 문에 통학할 멀리서 가까이에서 오는 애들의 편리함과 불편함은 그 신체와 의지에 미.. 2024. 8. 26.
마산항지(1926년) - 113 - 곤권(坤卷) / 제29장 마산의 장래 시가지와 매축지 3. 신마산 해안 간석지의 매립 마산포 오동동의 간석지 등에 개인적인 사용 목적으로 매립허가를 얻어, 이미 사업의 완성을 알린 데도 있으나 일반 공중의 목적으로 매립해 이것을 완료한 것은 마산포 모토마치(元町) 땅 끝의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郎) 씨의 1만2천여 평이 있을 뿐이다. 이 매축지 모서리에서 마산역 기관고의 모서리에 이르며, 나아가 미나토마치(湊町) 매축지 모서리에서 철도용지와 마산세관부두를 거쳐 군용지 근위 언덕에 이르기까지의 간석매립계획은 일전에 고베 스즈키상점계(鈴木商店系)의 남조선철도회사에서 실시했었다. 사철합동(私鐵合同) 결과 동 회사는 경성에 이전해 조선철도회사가 되고 난 후에는 설계가 중단되어, 신마산의 유지인 메카다 헤이사부로(目加田平三郎)씨가 새로이 미나토마치의 철도용지 매축.. 2024. 8. 19.
마산항지(1926년) - 112 - 곤권(坤卷) / 제29장 마산의 장래 시가지와 매축지 제29장 마산의 장래 시가지와 매축지 1. 가까운 장래에 실현해야 할 마군(馬群), 마목(馬木) 철도 마산의 철도촉진기성회(鐵道促進期成會)는 본년(1926) 8월 21일 마산, 군산 간과 마산, 목포 간에서의 관계지방 연합기성대회를 주최했다. 마산을 기점으로 하는 이 양선(兩線)의 속성은 마산항만시설에 대한 관계를 가질 뿐만 아니라, 남선(南鮮)의 지방 개발상 가장 중요하게 그 성쇠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 촉진기성의 목소리는 이미 일찍부터 마산부민에게 일관된 기류가 되어 왔던 바다. 과연 본년 7월 22일에 마산부민대회는 이 양선 촉진기성회를 조직하기에 이르러 곧바로 규합해 드디어 촉진연합대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당일 마산부위원 및 경남관계지방 이외의 마군선(馬群線) 관계지방에서 구례, 곡성, 남.. 2024. 8. 12.
마산항지(1926년) - 111 - 곤권(坤卷) / 제28장 내선융화(內鮮融和)로의 운동(技動)과 언어 제28장 내선융화(內鮮融和)로의 운동(技動)과 언어 모든 규율 있는 운동은 내지인 선인 똑같이 각 학교 교정 혹은 공설운동장에서 행해지며, 여자의 율동 움직임도 내선인 여교사를 모아 같이 배우게 해서 특히 고녀교(高女校) 혹은 상업교와 같이 내선공학의 교정에서는 모두가 담화에도 일본말을 사용할뿐더러 그 체조와 운동도 똑같이 하기 때문에 가까운 장래에 서로가 어울려 같아질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내지부인이 선인과 결혼하는 자는 해마다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점은 좋은 현상이지만 조선부인이 내지인과의 결혼을 희망하는 자가 아직 적다는 점은 아직 전적인 융화에 이르지 못하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내지 유년자의 놀이 중에서 연날리기에서도 태반의 아이들은 다 조선 재래의 중앙에 동그란 구멍이 뚫린 연을 사용한.. 2024. 8. 5.
마산항지(1926년) - 110 - 곤권(坤卷) / 제27장 선인의 잡속(雜俗) 9. 선인의 하급생활과 그 버릇(習癖) 조선 내에서는 어디에 가도 같은 풍속이리라 사료 되겠지만 우선 마산부와 그 부근에서 보는 바를 대략 적어본다. 하급 생활자는 전체에 십 분의 육에 해당한다. 생활은 내선인을 위한 하루살이 노동에서 밥을 먹는다. 수입이 모자란 자는 하루 한 끼로 목숨을 이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루살이의 종류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여러 공장에 고용되는 자, 혹은 목석공(木石工)의 도우미를 하는 자, 농경에 힘을 쏟아 붓는 자, 관공서의 심부름꾼 등은 어느 것이나 비교적 상위에 속해 하루 세 끼 혹은 두 끼로 떼우고, 또한 인부는 지게꾼이라 불러 지게를 지며 길을 헤매거나 혹은 정차역에 서서 승강객의 짐을 운반하는 자 등이 최열등으로 그날 수확이 없을 때는 하루 한 끼 보리죽으로 .. 2024. 7. 29.
마산항지(1926년) - 109 - 곤권(坤卷) / 제27장 선인의 잡속(雜俗) 5. 씨름(角力) 조선에는 옛적부터 씨름을 영업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일 년 내내 수시로 마산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서 아마추어 씨름대회가 열린다. 그 승부는 도효(土俵, 스모 경기장, 씨름판)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빈터에서 하고 철저하게 적을 무너뜨릴 때까지 꽉 잡은 채로 하니 내지와 같이 도효에서 밀어내기란 전혀 승패와 관련되지 않는다. 언제든지 참가가 가능하나 상금품 등 기타 경비가 들어가니 입장료 즉 관람료를 징수하는 것은 물론이다. 씨름 경기는 2~3일 계속되는 것이 보통이며 최종일을 결승으로 하여 그 전에 계속 이겨 왔던 자, 즉 챔피언만이 다투게 되는데 소위 셋을 꺾었다. 다섯을 꺾었다고 하며 몇 사람에게 이겼느냐를 따져서 입상자를 결정하게 되어 있다. 6. 소싸움 글자 그대로 소.. 2024. 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