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상업
당시의 상업은 소매 위주로 도매업자는 한 군데도 없다.
그 이유는 이곳에 대자본가가 없음과 교통이 끊어져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본이 취약하기에 대량구매를 할 수 없고 자연히 물품들 구매는 부산 내지 마산에 기대게 되니 도저히 도매업자가 등장하기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진창선이 이미 개통되어 해륙을 잇는 교통이 자유롭게 된 마당에서는 가까운 생산지와의 직거래도 빈번해져 물건 값도 저렴한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앞으로는 크게 상업도 번영해 갈 것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뒤에도 언급하겠거니와 진해상인들의 거래는 모두가 일정기간의 후불결재이다.
이는 물건 값을 비싸게 할 원인이니 가능한 한 고쳤으면 한다.
8. 공업
진해는 공업지로서 가장 적절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교통이 불편했던 이전에도 여느 종류의 공업은 아주 융성했다.
교통이 자유롭게 된 오늘날에는 각 공장마다 번성해지고 있음을 알아볼 수가 있다.
두세 명을 아래에 적는다.
진해연와(벽돌)공장
이 공장은 츠네카와 다다스케(恒川忠助)씨가 경영하며 명치43년(1910)에 창립되었다. 공장을 연 지가 벌써 18년이며 공장이 융성함은 진해의 공업계에서는 으뜸이라 하겠다. 현재 연간 생산이 150만 엔에서 200만 엔을 수출하고 시멘트만년기와라는 것을 제조 수출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품질이 우수하며 견고하면서 내한성(耐寒性)이 높아 각지에서 주문이 쇄도해 연간에 약 20만 엔에서 25만 엔을 생산한다고 한다.
타월공장
타월공장은 덕산리에 다나카 엔이치(田中圓一)씨가 경영하는 곳이 있고, 또한 북방시가(北方市街)에 후쿠다 시키부(福田式部)씨가 경영하는 곳도 있다. 두 공장 똑같이 대량생산 방식으로 공장설비도 잘 정비되어 있어 두 군데 각기 연간 액 10만 엔 내지 12, 13만 엔을 조선 전국에 내보내고 있다. 특히 최근 목욕용 타월이란 것을 짜서 이것 역시 호평을 받고 있다.
명주 진자쿠라의 이슬(鎭櫻の露)
진해의 명주 양조가로는 시내 에자키 리오여사가 경영하는 '진자쿠라노츠유(한국어로는 '진해벚꽃의 이슬'로 번역)'가 유명하다. 풍미가 아주 향기롭고 모든 시민이 즐겨 마신다. 연간 생산은 약 150석(1석이 180.39 리터이므로 150석은 27,058.5리터) 정도이다.
된장, 간장
앵전통(櫻田通, 사쿠라다도오리)에 노무라 세하치(野村淸八)씨가 경영하는 곳이 있다. 창립 당시에는 합자회사였지만 최근에는 노무라씨 개인 경영으로 되어 있는데 각 관청의 주문을 모두 독점하고 있는 모양이다. 연간 액은 7, 8만 엔에서 10만 엔 내외라고 한다. 이외에 마츠오 조이치(松尾長一)씨가 경영하는 양말 제조소, 미츠나리 히사키치(光成久吉)씨가 경영하는 목화솜 천 제조소 등이 있으나 모두 생략한다.
야마주구미(山十組)의 제사(製絲)공장
중초리에 부지 10만 평(330,578.512m²)을 매수하여 현재 공장 부지를 설비 중이다.
경성전기주식회사
대정 15년(1926) 상반기 조사표에 따르면 현재 진해시민이 사용하는 전등 수는 아래와 같다.
10촉광(칸델라) 환산등 수(전등 수)
월별 정액 종량 합계 수요 호수
1월 3,211 3,235 6,446 1,348
2월 3,214 3,236 6,450 1,348
3월 3,206 3,249 6,455 1,346
4월 3,228 3,258 6,486 1,354
5월 3,191 3,289 6,480 1,349
6월 3,202 3,297 6,500 1,361
명산물
대체로 천하에 명산물로 상품이 환영받는 것은 명산품 자체의 평판보다 명산품으로 선전되는 지명으로 인한 것이 많다. 진해콩도 그 말 그대로 진해의 진해콩인지 진해콩의 진해인지 최근에는 어느 쪽이라 말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놀라지 마시기 바라는데 아이카와상점(相川商店, 번역서 『진해의 벚꽃』(2019) 216쪽~217쪽에 의하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 아이카와 슈지로(相川修次郞)는 진해의 유명한 과자점이었던 '진해콩(鎭海豆, 진카이마메)‘을 만들었던 아이카와 상점의 2대째다. '진해콩'은 진해의 초창기인 1915년경에 초대 아이카와 다지로(相川太治郞)가 고안했다)이 판매하는 진해명산인 진해콩 제조량은 연간 약 300만 근을 넘는다고 한다. 약 100만 근은 조선 전국에 판매되고 나머지는 각 함대에 납품되는 것과 멀리 일본 각 방면에 수출된다. 명물에 맛있는 것은 없다는데 그것은 거짓말이다. 이 외에 아사히쵸(旭町)의 미린(조미료로 쓰는 달콤한 술의 일종)에 담가 말린 생선이나 고토상점(後藤商店)의 명소 센베(쌀가루를 구운 과자) 등 진해 토산품 중의 하나로 추천할 만하다.<<<
이 글은 2022년 창원시정연구원이 1910년대와 20년대 진해의 모습을 담은 세 권의 책을 번역하여 하나로 묶어 낸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3권 『근대 문헌 속 진해』 중 『진해요람』 부분이다. 1926년 출간되었으며 저자는 오카 만키치(岡萬吉)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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