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속 도시이야기

『진해요람』(1926) - 6. 산업

by 운무허정도 2025. 9. 15.

6. 산업

그 고장의 산물의 유무는 성쇠에 관련된 문제라 결코 등한시할 수는 없다.

그런데 진해는 소비지이며 생산지는 아니라고 말하는 자도 있었지만 그것은 옛날 얘기이다.

점차 생산하고 있는 해륙의 여러 산물(産物)을 여기서 언급할 겨를은 없지만 진해만 해산물 중 멸치와 대구 종목은 남선(南鮮)에서 유일한 보고(寶庫)로 지목되어 있다.

 

수산

(연혁) 진해수산시장은 군항 개시 당시 덕산리 해변가에서 이시다 후사지로 (石田房太郎)씨가 주목한 것이 선편(先鞭, 남보다 먼저 시작하거나 자리를 잡는 것을 말함)인 셈이다.

또한 시가지가 정리됨에 따라 행암만에 옮겨졌지만 당시의 어획량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명치 45년(1912) 3월, 엔도 다모츠(遠藤保)씨가 경영하게 된 후에야 처음으로 시장다운 시장이 나오게 되고, 아침마다 경매하는 시장 광경도 떨쳐 일어나고, 해마다 3, 4만 엔대에서 4, 5만 엔대의 경매가 있었다.

그 후, 대정 8년(1919) 4월에 멸치조합과 생선시장이 손을 잡아 자본금 20만 엔의 진해수산주식회사를 설립해 해마다 선어(鮮魚) 10만 엔에서 15, 16만 엔, 건어 5, 6만 엔에서 11, 12만 엔의 경매를 올리다 오늘날에 이른다.

판로는 주로 지방으로 나가되 선어 2, 3할은 조선과 일본으로, 건어의 7. 8할은 모두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어획의 주된 어종은 도미, 농어, 갯장어, 붕장어, 광어, 삼치 등 저인망으로 잡힌 것들인데 어업 종사자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바는 만내에서 잡히는 멸치는 주로 통영상인들의 손에 의해 거래되고 있는데 부디 진해만 내의 것은 진해 어업종사자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노력을 기울어주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수산부산물로서 장천리에 데라오카 유조(寺岡勇造)씨가 경영하는 굴껍데기열조소(裂造所)가 있다.

연간 금액 7, 8만 엔 매상을 올린다. 또한 덕산리에 식염제조소가 있다.

시미즈 마타키치(淸水又吉)씨와 야마자키 고조(山崎光造)씨가 각각 경영하는 두 곳인데 연간 액 5만 엔 쯤 산출하고 있다.

그 외에 한인제조업자 2, 3명이 있고 각기 연간 액 2, 3만 엔의 매상을 올리고 있다.

 

육산물

토지는 협소했으나 농산물은 모두 자급자족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수출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개항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양잠업(누에를 기르거나 또는 그 일을 가리킴)이 가장 성하며 그 다음이 과일을 들 정도이다.

양잠업에 관해 아래에 적는다.

 

양잠조합

(연혁) 당지 진해에 해군진수부를 설치한다는 계획이 있었는데 후일 이것을 변경해 당분간 요항부(要港部)에 머물게 되자 거주민의 다수가 다른 곳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빈 집수가 나날이 늘어나고 실업자가 속출했을 때 도고중장(東鄕中將)이 요항부사령관으로 부임하였다.

그 환영석상에서 진해의 현상을 살려내기 위해서는 거주자 각자가 산업을 새로 개발해 갈 수 밖에 없다는 점, 특히 양잠업의 이익을 위해서나 국가적 사업을 위해서도 필요함을 추천하시니 잠업을 일으킬 것에 생각이 닿아 처음으로 유지 20여 명으로 양잠조합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조합장에는 당시 진해면장인 오오츠보 젠에몬(大坪善右衛門)씨를 추대해 대정 6년(1917) 7월 10일, 당시의 도장관인 사사키 후지타로(佐々木藤太郎)씨의 인가를 받아 본 조합설치를 보기에 이르러 ・・・ (조합기록 중에서)

 

뽕밭(뽕나무밭)

진해요항부 사령관인 도고중장 각하의 원조를 받아 우선 뽕밭에 충당할 토지를 전부 해군 보유지이던 현동리, 중초리(中初里), 속천리(束川里)에 산재하는 약 4만 평을 특별히 본 조합에 대하(貸下)받아・・・ (이상은 같은 기록 중에서)

진해양잠업은 위와 같은 연혁으로 발달해 온 것이나 도고중장이 지원한 해군보유지 뽕밭은 이제는 총독부에 이관되어 동 조합은 상응한 토지임대료를 부담하면서 계속 사업을 추진해 그 확장에 노력하고 있다.

 

잠종제조소(蚕種製造所)

시가지 북방에 가와바타 치요키치(川端千代吉)씨가 경영하는 잠종제조소가 있다.

올해 봄에 설립된 것이며 올해는 잠종(누에) 6천매를 주로 경상남북도에 보내고 있다.

 

뽕밭

  기설뽕밭 신설뽕밭 합계
년차 반별 인원 반별 인원 반별합계 인원합계
1917 3 21 141 33 144 54
1918 144 54 66 44 210 98
1919 210 98 75 65 285 163
1920 285 163 43 25 329 185
1921 328 165 50 30 378 215
1922 378 215 5 △42 383 172
1923 383 175 4 △15 387 158
1924 387 158 100 19 487 177
1925 487 377 309 346 796 523

※주의: △표는 줄어듬

 

누에 생산표

년차 양잠호수 알(2만단위)상자수 누에집 수확량(단위 근) 가격(엔)
1917 54 153 62 3,727
1918 98 512 141 8,168
1919 163 678 206 20,665
1920 138 845 389 36,065
1921 110 992 462 36,960
1922 120 1,154 424 36,022
1923 123 1,398 517 36,707
1924 132 1,399 514 32,382
1925 147 1,488 540 45,900

 

고치 판로

년차 내지 조선 내 적요
1917 6 56 62 본 표는 매입자가 제1차 보낸 곳에 따름
1918 42 99 141  
1919 82 124 206  
1920 117 272 389  
1921 185 277 462  
1922 174 260 434  
1923 259 258 517  
1924 308 206 514  
1925 378 263 540  

 

조합원수

년차 내지인 조선인 합계 적요
1917 34 0 34  
1918 85 4 89  
1919 92 18 110  
1920 100 15 115  
1921 87 17 104  
1922 77 30 97  
1923 78 21 99  
1924 85 24 107  
1925 88 27 115  

 

이 글은 2022년 창원시정연구원이 1910년대와 20년대 진해의 모습을 담은 세 권의 책을 번역하여 하나로 묶어 낸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3 근대 문헌 속 진해  진해요람 부분이다. 1926년 출간되었으며 저자는 오카 만키치(岡萬吉)이다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