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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진해요람』(1926) - 14, 관공서 및 수뇌 - 요항부

by 운무허정도 2025. 10. 27.

14, 관공서 및 수뇌

 

○ 요항부

 

(연혁)

진해요항부는 대정 5년(1916) 4월 1일에 개청되었으며 그 이전에는 거제도 송진포에 있던 방비대를 이곳으로 옮겨 진해군항을 설치할 계획으로 진해면 비봉리에서 행암리에 이르는 해륙일대 무려 1,312만 평에다 여러 시설을 갖추고 있었던 바, 세계의 전국(戰局)이 일변하자 명치 45년(1912) 3월 27일, 당시 시령관이던 가미이즈미 도쿠야(上泉德彌) 씨와 내무부장관인 우사미 가츠오(宇佐美勝夫) 씨 사이에서 이관계약을 체결하여 현재 소관은 해군성이 소관하는 약 7,544,652평, 총독부가 소관하는 약 8,373,792평, 육군성이 소관하는 약 91,532평, 민유지인 약 1,150,179평 등으로 육지를 나누어 소관하게 되었다.

이는 군사기밀에 관한 부분이 있어 여기에서 많이 얘기할 수가 없으니 이상을 연혁으로 갈음한다.

(참고) 시가지 큰 팽나무 아래에 비석이 있는데 그 비문은 이렇다.

(표면) 진해군항설치기념

해군대장 도고 헤이하치로 쓰다(東鄕平八郞 書)

 

(이면)

진해만의 지세야말로 동양에 유일한 기지로 예로부터 세계가 다 알아주는 곳이다.

멀리는 진구황후의 외정(外征), 고안분로쿠전쟁(弘安文祿の役)이란 양 전쟁. 가깝게는 러일 전쟁에서 동양 해전사상에서도 분명하다.

이점을 감안해 러일전쟁 후, 한일 양국이 함께 여기에 해군기지를 설치할 필요성을 인정해 우리 정부는 통감을 통해 한국정부와 교섭을 개시한 바, 명치 39년(1906) 8월에 통감 이토(伊藤) 공작과 한국의 참정대신 박제순 씨와 수차례에 걸쳐 교섭과 협의를 거듭하여 기어코 군항설치가 결정된 것이다.

두 나라는 위원을 파견해 군항경계선을 확정해 해군용지로서 거제면과 웅천면 양면의 일부를 매수했던 것이다.

이는 이토 공의 악전고투 덕택인바 깊이 감사를 해야만 할 것이다.

당시 소관(小官)은 통감부의 무관으로 이토 공의 곁에 있었으며 공이 온 신경을 쓰며 고생하신 것을 직접 봐 왔다.

그러다가 4년이란 세월이 흘러 기어코 군항시설공사가 시작하기를 보게 된 것이다.

상상도 못했지만 이토 공은 이미 운명하셨다.

당시를 추억하며 감개무량함을 못 이겨 명치 42년(1909) 7월, 이토 공이 통감자리에서 물러서고 도착한 이곳을 통과하셨을 적에 기념으로 이토 공에 간청해 진해만의 소감을 물어 얻어낸 즉석 시를 아래에 게재하고 기념으로 남긴다.

여기는 바로 동양 최고의 요새 진해만이로다

수군들의 드리운 그림자 몇 겹 관문을 안았네

이웃에서 격전 중에 침몰한 함대를 상기하라

성패는 손바닥 뒤집기처럼 순간에 달린 것을.

                                                     명치 43년(1910) 4월

                                                     진해방비대사령관 해군소장 미야오카 나오키(宮岡直紀)

 

러일전쟁기념관

이전에 두산(兜山, 가부토야마) 중턱에 있었다가 현재는 없어졌는데 그 편액 내용은 아래와 같다.

본관은 명치 32년(1899)경 진해만 율구미(栗九味)에 러시아 해군이 건축한 것이며 당시 러시아는 진해만을 거의 동양함대 집합지로 만들고 육상에는 병사들을 둔영시켜 만내에는 러시아 함정의 출입이 끊어지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러일전쟁 결과 이 건물을 수용해 우리 대원들의 손에 의해 그것을 해체 이송하여 다시 세운 것인 만큼 진해만의 러일전쟁기념물로 계속 보존해 주기를 바란다.

              명치 41년(1908) 5월 27일

진해방비대사령관 해군소장 미야오카 나오키 씀

전자는 현재도 큰 팽나무 아래에 있지만 후자는 저 <진해팔경명소안내>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 편액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역대 장군

  장군 명 보임 연월일 퇴임 연월일 비고
임시근거지
방비대사령관
모치하라 헤이조
(餠原平三)소장
명치 37년(1904)
1월 2일
명치 39년(1906)
1월 2일
 
방비대사령관 미야오카 나오키
(宮岡直紀)소장
명치 40년(1907)
9월
명치 43년(1910)
12월 1일
 
센도 다케오
(仙頭武央)소장
명치 43년(1910)
12월 1일
명치 44년(1911)
9월 4일
 
가미이즈미 도쿠야
(上泉德彌)소장
명치 43년(1910)
12월 1일
명치 43년(1910)
12월 1일
 
야마다 유노스케
(山田猶之介)소장
명치 45년(1912)
7월 9일
대정 3년(1914)
8월 8일
야마다소장은 사령부 배속 대좌로 재직 중, 명치 45년(1912) 12월 1일 소장으로 승진해 사령관으로 보임
요항부사령관 야마구치 구주로
(山口九十郞)소장
대정3년(1914) 8월 8일 (방비대사령관 보임 중) 대정 5년(1916)
12월 1일
대정 5년(1916) 4월 1일 요항부사령관이 되어 동년 12월 1일 퇴임
요항부사령관 도고 기치타로
(東鄕吉太郞)중장
대정 5년(1916)
12월 1일
대정 7년(1918)
12월 1일
 
다도코로 히로우
(田所廣海)중장
대정 7년(1918)
12월 1일
대정 7년(1918)
12월 1일
 
지사카 도모지로
(干坂智次郞)중장
대정 8년 (1919)
12월 1일
대정 9년(1920)
12월 1일
 
야마시 가즈요시
(山路一善)중장
대정 9년(1920)
12월 1일
대정 11년(1922)
12월 1일
 
햐쿠타케 사부로
(百武三郞)중장
대정 11년(1922)
12월 1일
대정 12년(1923)
6월 1일
중장은 소장으로 착임해 1923년 3월 1일부로 중장으로 승진
구와지마 세이조
(桑島省三)중장
대정 12년(1923)
6월 1일
대정 13년(1924)
2월 9일
 
마츠무라 가쿠오
(松村菊勇)중장
대정 13년(1924)
2월 9일
대정 14년(1925)
4월 22일
 
이누즈카 타로
(犬塚太郞)중장
대정 14년(1925)
4월 22일
  현재의 사령관

 

이 글은 2022년 창원시정연구원이 1910년대와 20년대 진해의 모습을 담은 세 권의 책을 번역하여 하나로 묶어 낸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3 근대 문헌 속 진해  진해요람 부분이다. 1926년 출간되었으며 저자는 오카 만키치(岡萬吉)이다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