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도시이야기667 마산번창기(1908) - 18 - 제9장 경제사정 제9장 경제사정 - 1 마산에서 금융기관으로 확립된 데는 두 군데밖에 없으며 제일은행 마산출장소(아래 사진)와 경상농공은행 마산출장소가 그것이다. 전자는 일본이 설립에 관여한 상업기관이며 후자는 한국이 세운 농공업기관이다. 이 외에도 이자가 비싸서 가혹하다는 평을 받는 일시적으로 편리한 전당포도 있다. 또한 한인을 상대로 작은 자본으로 막대한 이익을 악착같이 남기면서 부자가 된 고리대업자도 있다. 그들도 일본을 위한 생산증식의 자본을 공급하는 하나의 기관이기도 하니 동정을 해 줘야겠다. 원래 한국 연안은 일본 경제계의 영향을 많이 받아 금융에 변동을 초래하게 되어 있으며 본 항구도 그 예외일 수는 없다. 그래서 만약 일본 농업에 흉작의 기미가 있다면 본 지방의 중요한 산물인 쌀, 보리, 대두(大豆), 소.. 2021. 12. 27. 마산번창기(1908) - 17 - 제8장 호구(戶口) 제8장 호구(戶口) 본 항구의 일본인은 개항 당시 모두가 한국인 집을 빌려서 살기 시작했으며 신시(新市)에 열 몇 명의 러시아인과 한두 명의 영국, 프랑스인이 거류할 뿐이었다. 다음 해 신시에 일본인 가옥이 두세 채 나오게 되고 광무 7년 즉 1903년에 이르러 그 인구가 많이 늘었지만 신시는 여전히 러시아가 독점하다시피 하여 러시아 군함의 출입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 기생이 러시아 수병에 의해 욕을 당한 사건도 터져 영사관의 유시(諭示)는 있었지만 일본인들은 다 신시에 이사해 오는 것을 꺼리며 청국(淸國) 사람과 함께 마산포에서 같이 살며 서로 상업에서 경쟁하고 있었다. 그 당시 경찰관이란 오직 영사관을 지킨다는 직무를 수행할 뿐 일반인들에게 대해서는 아주 오만불손하며 뇌물이나 주지 않으면 그들.. 2021. 12. 13. 마산번창기(1908) - 16 - 제7장 교통 제7장 교통 □ 우편전신, 전화 이들 사무는 모두 마산우편국에서 취급하고 일본인, 청국인, 한국인은 물론 구미인의 서신, 전보도 다 다루고 있다. 집화와 배달은 매일 수차례 행해지며 아주 편리하다. 특히 마산포에도 히로시 세이조(弘淸三) 씨를 소장으로 하는 우편소가 있어 서신과 전보를 취급하고 있다. 부근 각지의 서신과 전보를 처리하고 마산국과 연락을 취하는 곳으로 진해우편소, 통영우편소, 진주우편국과 청도 연선(沿線)의 각 역(驛)이 있어 공중전보(公衆電報)를 취급하고 있다. □ 철도 마산철도는 원래 일본 육군의 군사용으로 1904년 8월, 러일전쟁 교전 중에 경부선의 삼랑진에서 분기(分岐)시켜 속성 공사로 부설되어 다음 해 6월에 개통했다. 평화가 돌아와 다음 해 1905년 10월부터 일반 승객의 편.. 2021. 12. 6. 마산번창기(1908) - 15 - 제6장 신도 및 종교 제6장 신도 및 종교 일본 고유의 신도(神道)에 관해서는 아직 아무런 시설도 없지만 멀리 고향을 떠나 한국에 머물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가 이세신궁(伊勢神宮)을 숭배하여 앞날의 안전을 기원하지 않는 자는 없을 것이다. 한국에 건너와 오늘날 평온하게 살 수 있음은 신명(神明)의 가호(加護) 덕분이라 감사하지 않는 자 또한 없으리라. 날마다 신에게 감사하고 우국지심을 굳건히 하는 데는 간접적으로라기보다 직접적으로 참배를 통해서 그 기원을 실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이것이 무사도(武士道)의 장려에 도움이 되고 일본 정신을 양성한 기초가 된다고 생각한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신시 제일의 경승지(景勝地) 속칭 호시오카(星岡)는 당국자들 사이에 이미 공원지가 될 것으로 예정되어 맨 먼저 이세신궁의 그 혼을 나누어.. 2021. 11. 29. 마산번창기(1908) - 14 - 제5장 교육기관 제5장 교육기관 일본인 아동의 교육기관으로는 마산거류민단이 공설(公設)한 마산심상고등소학교가 있다. 위치는 전에 신월동 지역 내에 있던 철도관리국의 소관지이며 신시와 마산포 사이에 있으면서 약간 신시 쪽에 가깝다. 그 소재지는 사방이 뚫려서 조금 높은데에 있기에 소학교의 위치로서는 최고라 하겠다. 학교 건물은 1908년 2월 11일, 기원절(紀元節, 일본의 건국기념일)에 낙성식을 올린 것이다. 부지는 2,500여 평이며 교사 및 부속건물의 건평은 380여 평, 그 경비는 29,510여 원이 들어간, 항내(港內)의 장대미려(壯大美麗)한 큰 건축물이다. 이 학교는 1902년 11월 4일, 정토종 포교승 미스시다 지몬(三隅田持門, 삼우전지문) 스님이 혼자서 자금을 내어 신시의 남단에 일본소학교를 일으켜 생도 .. 2021. 11. 22. 마산번창기(1908) - 13 - 제4장 위생 및 의료 제4장 위생 및 의료 공중위생으로는 1906년(명치39년) 가을에 비로소 대청결법(大淸潔法)이 제정되어 매년 봄가을 두 계절에 집행을 보게 되었다. 또한 청결사(淸潔社)라는 회사가 있어 한인 인부들이 매일 일인 감독의 지휘 하에 쓰레기차를 몇 대 돌리면서 집이나 가게 앞의 쓰레기 함에 모아둔 것을 수거해 간다. 종두(種痘)는 매년 두 번 봄가을에 장려되었다. 마산포의 거리에서도 청결차가 다니는 것을 보게 된다. 종래부터 일인들이 곤란하게 여긴 것은 화장실 청소에 관한 일이다. 한인들은 일정한 시기를 빼고는 분뇨를 비료로 쓰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논밭에 시비를 할 때 이외에는 분뇨가 많이 남아서 한계에 도달하면 돈을 주어 투기하도록 했다. 청결사가 조직된 이래 이 회사는 연락을 받으면 이것을 날라 버.. 2021. 11. 15. 마산번창기(1908) - 12 - 제3장 지질 및 기후 제3장 지질 및 기후 마산 부근 일대는 제3기층에 속하는 데가 많고 산이나 계곡에는 화강암 또는 결정편암(結晶片巖)을 노출하고 있는 데가 있다. 해변 및 평야는 주고 제4기층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지미(地味)는 기름지고 좋다. 논에서는 쌀과 보리를 이삼모작(二三毛作)으로 짓고 밭에는 보리와 채소를 이모작하는 것은 다른 데와 같다. 거친 땅을 개척해 비료를 주지 않아도 여러 종류의 과일, 채소, 곡물이 알차게 자란다. 산악지역은 노출된 바위가 많고 거목이나 울창한 숲은 드물지만 산 중턱과 산 아래 평기의 묘역에서는 소나무가 성긴 숲을 이루기도 한다. 또한 신시 부근 혹은 관공서 소유지로 남별을 피한 곳에는 모두 소나무가 무성하다. 이러다보니 식림(植林)은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닐뿐더러 수원(水源)을 확보하기 .. 2021. 11. 8. 마산번창기(1908) - 11 - 제2장 마산의 관공서 마산의 관공서 - 5 □ 민의소(民議所)-마산포 소재(전 마산보통학교 터) 이것은 한인(韓人) 측의 자치기관이며 마산포 읍내 6개 동의 하급 행정을 담당하는 곳이다. 이 사무소에도 역시 민의소장과 부소장이 있고 의원도 있지만 그 의사(議事)나 역소(役所)의 모양새는 볼 것이 없다. 명치유신 때 일본에서 이루어진 그것보다 더 유치한 것이거니와 사무소는 담배 피우는 휴게실 모양이다. □ 창원재무서(昌原財務署)-마산포 소재 한국정보의 탁지부(度支部) 직할로 지방의 조세 등을 정리하는 기관이며 서장은 재무관인 한인인데 재무보좌관으로서는 일본인이 주로 책임지고 집무하고 있다. 그 위치는 오산으로 명태어 회사 남쪽 앞에 있는, 전에 한국척식회사 마산출장소 건물이었던 곳에 건물을 빌려 쓰고 있는데 현재 마산포 신마치.. 2021. 11. 1. 마산번창기(1908) - 10 - 제2장 마산의 관공서 마산의 관공서 - 4 □ 마산거류민단역소(馬山居留民團役所)-신시 사카에마치(榮町, 홍문동) 소재 1899년(명치 32년) 7월에 조직된 일본거류민회의 총대(總代) 사무소가 진화한 것이며 그 후 총대를 이사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사무소의 명칭은 그대로이다. 1904년(명치 37년) 5월 총대사무소는 처음으로 민간사무소 즉 민역소로 개정되어 이사는 민장(民長)으로 개명되었다. 이때 가고시마(鹿兒島) 현(縣) 사족(士族) 출신으로 한해어업조합(韓海漁業組合) 마산지부장인 미야하라 가네유키(宮原兼行)가 민장으로 추천, 선임되었다. 1906년(명치 39년) 9월 1일, 일본한은 통감부의 고시에 따라 거류민 단체를 만들고 미야하라 씨를 거류민단 민단장 대리로서 사무를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민단제도에 의해 선출된 의원.. 2021. 10. 25. 마산번창기(1908) - 9 - 제2장 마산의 관공서 마산의 관공서-3 □ 마산경찰서-신시 토모에마치(巴町, 대외동) 소재 각국 거류지회 조직과 더불어 각국 경찰 사무를 보기 위해 설치된 것이며 새로 신축할 곳은 마산정차장 앞 철도관리국 소관지를 예정하고 있다. 아마 1909년(명치 42년)에 기공할 것으로 보인다. 영사관 소속의 경찰관은 애초부터 그 사무를 겸무하고 있었고 경부 사카이 요시아키(境喜明, 생몰년미상, 개명 전 이름은 사카이 에키타로 境益太郞. 1899년 4월부터 일본영사관 마산분관 주석경부로 1900년 9월까지 근무 후 같은 해 11월부터 1906년 1월 마산영사관이 폐지될 때까지 영사관 주석경부로 근무했다)가 서장이었다. 그 후 서장은 엔도 다다오키(遠藤忠興), 사카이 요시아키(재임), 경시(輕視) 미야가와 다케유키(宮川武行)로 교대했다... 2021. 10. 18. 마산번창기(1908) - 8 - 제2장 마산의 관공서 제2장 마산의 관공서 - 2 □ 러시아 영사관(露國領事館)-신시 다이마치(臺町) 소재 마산이사청의 구청사를 조금 남쪽으로 내려가면 붉은 벽돌 벽에 유리창이 있는 건물이 나온다. 이것이 러시아 영사관이고 지금은 영사 대리인 한 명과 한인 주방장이 있을 뿐이다. 1901년에 지어졌는데 당시는 사람들의 출입이 빈번했으나 지금은 찾아올 사람도 별로 없고 사무도 뜸하여 찬적하기가 이를 데 없다. 경내에는 소나무가 우거지고 초록이 깊어서인지 냉랭한 분위기조차 감돌고 있다. □ 창원부청(昌原府廳)-마산포 소재 왕년에 조창 건물로 사용하던 것을 수리해서 창원감리서(昌原監理署)가 쓰고 있던 곳이다. 감리서는 광무 2년 즉 1898년(명치 32년) 2월 마산개항 칙재(勅裁)에 의해 설치되어 주로 개항 준비를 위한 사무를 .. 2021. 10. 11. 마산번창기(1908) - 7 - 제2장 마산의 관공서 제2장 마산의 관공서 - 1 □ 마산이사청(馬山理事廳)-신시(新市) 다이마치(臺町) 소재 언덕 위의 조망이 좋은 데에 있으며 1899년(명치 32년) 개항 당시 부산 영사관의 분관으로서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郞)로 하여금 건축하게 했던 것을 빌려 쓰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규모가 작고 그 위치가 놓은 데 있어서 사람들이 불편해 하니 이사관 미마스 구메키치(三增久米吉, 1861~?. 1901년부터 서울 일본영사관 영사로 근무하다가 1906년 마산이사청 이사관으로 발령받았다. 이후 계속 이사관으로 근무하였으며, 초대 마산부윤으로 임명받은 뒤 1919년 11월까지 부윤으로 있었다) 씨가 1908년(명치 41년) 5월 그 북쪽 위치에 새 건물을 짓기로 했다. 공사는 아직 낙성을 못 보았지만 그 건축물의 수려함은.. 2021. 10. 4. 마산번창기(1908) - 6 - 제1장 마산의 대관 제1장 마산의 대관(大觀) - 4 ■ 마산포 - 2 □ 월영동(月影洞) 신시의 서쪽부터 남쪽 일대를 포함하는 큰 마을이다. 그 일부는 일본의 전관지(專管地)이기 때문에 1908년(명치 41년) 7월 퇴거령으로 인해 서쪽의 산 위로 이전하게 되고 까치나루 고개(鵲峴)의 근위(近衛, 메이지 시대의 화족이자 정치인이었던 고노에 아쓰마로-近衛篤麿, 근위독마 1863~1904. 월영동과 자복포 사이의 언덕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언덕 아래에는 웅장한 중포병 영소(營所)가 건축될 것인지라 원래 일본인의 모습이 없었던 이 마을에 점점 일본 가옥이 건축 중에 있고 옛 모습과는 많이 달라진 곳이다. □ 자복포(滋福浦) 깊은 산과 청송이 우거진 이곳은 물아일체의 경지를 자아내는 곳으로 월영동의 일부와 같이 일본 전관지였.. 2021. 9. 27. 마산번창기(1908) - 5 - 제1장 마산의 대관 제1장 마산의 대관(大觀) - 3 ■ 마산포 - 1 신시(新市)의 북쪽 약 2km 거리에 있는 본래의 마산이다. 조선수로지(朝鮮水路誌, 일본 해군성 수로부가 간행한 조선의 해안, 항로, 도서 등의 지리정보를 망라한 수로지로 동일 명칭으로 1894년, 1899년, 1907년 세 차례 발행되었다)에는 마산포읍이라 적었지만 한인(韓人)들은 모두 다 마포(馬浦) 혹은 신마포(新馬浦)라고 부르고 있다. 일본인은 구마산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왜 구마산이라 하는지 모를 일이다. 날마다 번성해가는 본래 마산에 낡은 구(舊) 자를 붙이는 이유는 도통 알 수가 없다. 각국 거류지를 신시라고 칭하는 것에 대하여 붙인 구 자일테지만. 각국거류지를 신시라고 부르는 것은 과거에 새 시장을 연 데에서 기인한 이름이며 결코 본래의 마.. 2021. 9. 20. 마산번창기(1908) - 4 - 제1장 마산의 대관 제1장 마산의 대관(大觀) -2 ■ 각국 거류지(各國 居留地) 월영동의 일부와 신월동 일부를 쪼개서 이루어진 해변의 신시가(新市街)이며 마산이사청 관내의 중심인 곳이다. 1898년(명치 31년) 2월 21일부 칙재(勅裁)로 개항되고 다음 해 1899년(명치 32년) 5월 1일에 거류지 구획이 정해졌다. 그 면적은 138,888평 남짓이며 이것을 A, B로 나누어 A는 일등지를 뜻하며 그것을 1호부터 47호까지 세분했다. B호는 이등지이며 1호부터 47호까지 세분되어 있다. 그 일등지 전부는 이미지상권 경매가 종료되고 현재로서는 러시아인 소유자 중 몇 개 구획이 빈터로 남아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본식 기와집이 즐비해 있다. 이등지는 17호 및 39호부터 45호까지 여덟 구획을 제외하고는 경매가 끝나.. 2021. 9. 13. 마산번창기(1908) - 3 - 제1장 마산의대관 제1장 마산의 대관(大觀) -1 한국에서 마산같이 산이 좋고 물이 밝은 데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음양의 영혼인 대기(大氣)가 응어리져서 마산만의 물이 되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빛이 나는 아지랑이 속에 마산항의 땅이 굳어진 것이다. 구라파의 어떤 이는 이 항만을 가리켜 태평양 해안으로서는 호주의 시드니 항, 북 아메리카의 샌프란시스코 항에 다음가는 세계 세 번째 최우량의 산수(山水)라 하여 그 얼마나 군침을 흘렸는지 모른다. 러시아가 동양에서 얼어붙지 않는 항구로서 마산을 얻으려고 마산사건을 일으킨 것만으로도 짐작이 가듯이 얼마나 마산이 그 형세가 좋고 그 풍경 역시 보기 좋기는 누구나가 아는 바이다. 마산만은 부도수도(釜島水道)라 부르는 입구에서 9해리 거리를 두고 진해만에 붙어 있다. 진.. 2021. 9. 6. 마산번창기(1908) - 2 - 추천사, 목차, 서언 서언 마산의 진상(眞相)을 그야말로 적절한 표현으로 세상에 알리는 일은 오직 스와교도(諏方去洞) 씨가 편찬한 『마산번창기』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시찰이나 관광 명목으로 수많이 관민에 의한 수기가 잡지, 신문 등에 기술되었건만 여태껏 정곡을 찌른 것이 없었음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비평과 판단이 적절하고 저자의 평소의 언론관으로 과감하게 써 내려간 점은 그 강직하고 영리한 저자의 성격 덕분이라 감동하는 바이다. 저자가 마산을 사랑하는 마음은 세상사람 모두가 잘 알고 있고 저자의 강직한 언동 역시 주지된 바이거니와, 잘 웃고 잘 나무라고 술잔을 기우리면서 얘기를 나누는 속에서 이 글들이 써진 것이라 하겠다. 저자의 준명함 없이 이 일을 어찌 완성할 수 있단 말인가. 넘쳐흐르는 큰 재간은 없다 해도 두.. 2021. 8. 30. 마산번창기(1908) - 1 - 발간사, 해제 창원시정연구원이 올 초에 번역한 『馬山繁昌記』(1908)를 포스팅한다. 기록전문가 박영주 선생이 일본의 한 대학도서관에 잠자고 있던 이 책을 찾아냈고, 이를 창원시정연구원이 번역 출판하였다.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마산이 언급된 책은 『韓国出張復命書』(1901), 『韓国案内』(1902), 『韓国水産誌』(1908) 등이 있지만 단행본으로는 이 책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는 『馬山と鎮海湾』(1911)으로 알려졌었다. 을사늑약과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 통감부 설치와 통감 정치, 고종의 강제퇴위와 순종 즉위 등으로 이어지는, 사실상 반(半)식민지 상태였던 당시의 시대상황은 마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한제국의 창원군청이 아니라 통감부의 마산이사청이 실질적인 통치기관이었다. 더구나 개항 .. 2021. 8. 23. 창원시 근대건조물 10호, 마산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 - 4 지난 3월 21일 창원시 근대건조물심의위원회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 1가 4-17번지의 옛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을 ‘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0호’로 결정하였다. 앞선 이들이 남겨 놓은 문화유산의 보존책무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있다. 그중 근대기 유산은 도시의 형성기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이 땅을 강점한 일제가 남긴 건물이라도 마찬가지다. 근대건조물로 결정된 뒤 이 건물에 대한 명칭과 건축연도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에 산호동 지하련 주택 보전문제에도 관심을 깊이 가졌던 마산YMCA 시민사업위원회는 7월 14일 제22회 시민논단의 주제로 이 문제를 올렸다. 시민논단에서 발제한 내용을 4회로 나누어 포스팅한다. 이 글이 마지막이다. 1. 마산의 전기회사 궤적 2. 건축.. 2021. 8. 16. 창원시 근대건조물 10호, 마산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 - 3 지난 3월 21일 창원시 근대건조물심의위원회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 1가 4-17번지의 옛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을 ‘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0호’로 결정하였다. 앞선 이들이 남겨 놓은 문화유산의 보존책무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있다. 그중 근대기 유산은 도시의 형성기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이 땅을 강점한 일제가 남긴 건물이라도 마찬가지다. 근대건조물로 결정된 뒤 이 건물에 대한 명칭과 건축연도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에 산호동 지하련 주택 보전문제에도 관심을 깊이 가졌던 마산YMCA 시민사업위원회는 7월 14일 제22회 시민논단의 주제로 이 문제를 올렸다. 시민논단에서 발제한 내용을 4회로 나누어 포스팅한다. 1. 마산의 전기회사 궤적 2. 건축 연도 추정 3. 건축.. 2021. 8. 9. 창원시 근대건조물 10호, 마산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 - 2 지난 3월 21일 창원시 근대건조물심의위원회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 1가 4-17번지의 옛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을 ‘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0호’로 결정하였다. 앞선 이들이 남겨 놓은 문화유산의 보존책무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있다. 그중 근대기 유산은 도시의 형성기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이 땅을 강점한 일제가 남긴 건물이라도 마찬가지다. 근대건조물로 결정된 뒤 이 건물에 대한 명칭과 건축연도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에 산호동 지하련 주택 보전문제에도 관심을 깊이 가졌던 마산YMCA 시민사업위원회는 7월 14일 제22회 시민논단의 주제로 이 문제를 올렸다. 시민논단에서 발제한 내용을 4회로 나누어 포스팅한다. 1. 마산의 전기회사 궤적 2. 건축 연도 추정 - (이번.. 2021. 8. 2. 창원시 근대건조물 10호, 마산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 - 1 지난 3월 21일 창원시 근대건조물심의위원회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 1가 4-17번지의 옛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을 ‘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0호’로 결정하였다. 앞선 이들이 남겨 놓은 문화유산의 보존책무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있다. 그중 근대기 유산은 도시의 형성기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이 땅을 강점한 일제가 남긴 건물이라도 마찬가지다. 근대건조물로 결정된 뒤 이 건물에 대한 명칭과 건축연도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에 산호동 지하련 주택 보전문제에도 관심을 깊이 가졌던 마산YMCA 시민사업위원회는 7월 14일 제22회 시민논단의 주제로 이 문제를 올렸다. 시민논단에서 발제한 내용을 4회로 나누어 포스팅한다. 1. 마산의 전기회사 궤적 - (이번 글) 2. 건축 연도.. 2021. 7. 26. 유물과 유적으로 본 창원의 역사와 문화 마산YMCA 제89회 아침논단 이번 마산YMCA 아침논단에서는 창원대학교 박물관 김주용 학예실장이 준비한 이번 강연은 유물과 유적으로 창원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현장 중심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현장 참석자에게는 특별한 기회가 있을 예정입니다.(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도록...) 창원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된 사실과 관련한 2021년 4월 20일자 경남도민일보 최석환 기자의 기사입니다. 창원지역 구석기 흔적 첫 확인 창원대·목포대박물관, 동읍 용잠리·도계동서 유적 발견 모룻돌 등 뗀석기 채집…"지역 고대사 공백 새롭게 써" 창원대박물관이 창원 의창구 도계동과 동읍 용잠리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을 발견했다. 이 지역에서 구석기 유적이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2021. 6. 28. 마산포 옛 모습 2020년 5월 6일 박영주 선생이 페이스북에 아래 글과 함께 마산포 옛 모습이 담긴 사진을 한 장 소개했다. 출처는 ‘東京大学学術機関リポジトリ https://repository.dl.itc.u-tokyo.ac.jp/’ 라고 밝혔다. 희귀한 자료다. 바다는 고요하다. 작은 고깃배 하나 보이지 않는다. 해안가 논밭에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120년 전. 1901년 1월 마산포 앞바다의 모습. 조랑말 4마리와 대원 6명으로 답사대를 꾸려 1900~1901년, 1901~1902년 두 번의 겨울에 걸쳐 266일간 한반도를 답사하며 지질조사를 했던 일본 지질학자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郎). 이 사진은 그가 1901년 1월 24일 부산을 출발하여 김해, 창원을 거쳐 1월 말경 마산포에 도착했을 때의 것이다. 사.. 2021. 4. 5. <조선토목사업지>의 마산 상수도 이 글은 1928년에 펴낸 에 기록된 마산의 '상수도' 편이다. 초벌 번역이라 글이 거칠다. 마산은 경상남도의 제일 중요한 항구로서 내지 및 연안 항해선박의 중요 기항지이다. 또한 (항구의) 뒷편으로는 마산선과 함께 경남선의 철도가 있어서 해륙의 교통을 대략 갖추고 있어 다양한 상품들이 집산되고 그로인해 상업이 함께 번창하는 지역으로 성장해 왔으며, 향후 더욱 발전해 나갈 상황이다. 그렇지만 이 지역은 예부터 식수가 부족하고, 그 중 특히 마산(일본인이 살았던 신마산지역을 지창한 것으로 보임 - 글 옮긴이)은 부민(府民)의 태반이 살고 있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우물이 2~3개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매년 하절기에 이르게 되면 우물물이 모두 고갈되어 주민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 2020. 8. 3. <조선토목사업지>의 마산항만 이 글은 1928년에 펴낸 에 기록된 마산의 '항만' 편 번역문이다. 초벌 번역이라 글이 거칠다. 그림은 책의 표지와 목차이다. 마산항은 경상남도의 중앙 진해만의 가장 안쪽에 있다. 동경 28도 33분, 북위 35도 11분에 위치하며, 동․북․서 세 방향으로는 육지로 둘러 싸여 있어 남쪽으로 항구를 열고 있다. 게다가 항외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섬들이 잔재하여 외해로부터의 파도를 막아 주며, 항내의 수면 면적은 752여 헥타르(2,276,010평)는 항상 잔잔하다. 간만의 차이는 2.22미터(7.33척)으로 수심이 깊어 진정한 천혜의 양항(良港)이다. 본항은 예부터 조선의 남쪽지역에 있는 유수한 항만으로 이용되어 왔고, 고려시대 원종 15년 갑술년 곧 일본의 문영(文永)11년, 충렬왕 7년 신사년 곧 .. 2020. 7. 27. 馬山繁昌記(마산번창기) / 1908년 발간 지난 3월 31일 페이스북에 흥미로운 글이 하나 떴다. 창원지역에서 기록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박영주 선생의 글이었다. 112년 전인 1908년에 발간된 『馬山繁昌記(마산번창기)』라는 고서를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반가운 일이라 포스팅한다. 먼저 페이스북에 올린 박영주 선생의 글 전문을 소개한다. 개항기 마산 문헌 하나 찾았다 오래 전부터 이름 정도만 알고 못 찾았던 자료인데 이번에 드디어 찾았다. 『慶南志稿第一編 馬山繁昌記』. 明治41年, 1908년 마산의 耕浦堂에서 발행한 책으로 저자는 諏方武骨. 일제강점기 마산에 대한 가장 유명한 문헌인 『馬山港誌』(1926)의 저자이기도 하다. 책은 광고면 등을 포함해 148면 분량으로 서언, 마산의 대관, 관공서, 지질및기후, 위생및의사, 교육기관, 신도및종교, 교.. 2020. 5. 11. 120년 전 마산은? - 6 120년 전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6 당시 마산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 일본인 가쓰기 겐타로(香月源太郞, 향월원태랑)의 『韓國案內(한국안내)』를 여섯 편으로 나누어 포스팅하는데 이번이 여섯번 째 마지막이다. 이 책에서 마산은 「마산포 안내」라는 제목으로 제8편에 수록되어있다. 1900년경 마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실태뿐만 아니라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韓國 案內 (香月源太郞 著, 1902年, 東京 靑木嵩山堂 發行) 제8편 馬山浦 案內 각국 거류지를 지나 약 10리 거리의 昌原街道에 있고 人家가 조밀하고 상점이 번화한 곳이다. 戶數는 2,000여戶이며 監理署(감리는 창원군수가 겸임), 경찰서 등이 있고 시가는 해변에 면하여 선박화물의 폭.. 2020. 5. 4. 120년 전 마산은? - 5 120년 전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5 당시 마산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 일본인 가쓰기 겐타로(香月源太郞, 향월원태랑)의 『韓國案內(한국안내)』를 여섯 편으로 나누어 포스팅하는데 이번이 다섯번 째이다. 이 책에서 마산은 「마산포 안내」라는 제목으로 제8편에 수록되어있다. 1900년경 마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실태뿐만 아니라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韓國 案內 (香月源太郞 著, 1902年, 東京 靑木嵩山堂 發行) 제8편 馬山浦 案內 居留地 雜組 일본영사관이 있어 통상 및 彼我의 교섭사무외 경범죄 이하의 재판사무를 취급하고 있으며 현재의 領事는 阪田重次郞이다. 그는 처음에 부산영사관 마산분관이 마산영사관으로 개칭될 때 부임하였다. 부속 경찰서.. 2020. 4. 27. 120년 전 마산은? - 4 120년 전 마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당시 마산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 일본인 가쓰기 겐타로(香月源太郞, 향월원태랑)의 『韓國案內(한국안내)』를 여섯 편으로 나누어 포스팅하는데 이번이 네번 째이다. 이 책에서 마산은 「마산포 안내」라는 제목으로 제8편에 수록되어있다. 1900년경 마산 지역의 사회·경제적 실태뿐만 아니라 당시 마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韓國 案內 (香月源太郞 著, 1902年, 東京 靑木嵩山堂 發行) 제8편 馬山浦 案內 일본인의 諸 물가와 노동임금은 다음과 같다 이발료 - 20錢 여자 미용료 - 10錢 숙박료(1박2식) - 80전 점심식사 - 40전 선원 임금(1인) - 10전 手荷物 - 3전 藝妓線香(1시간) - 45전 고용인 (仕切).. 2020. 4. 20. 이전 1 ··· 4 5 6 7 8 9 10 ··· 2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