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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8. 23. 00:00

마산번창기(1908) - 1

창원시정연구원이 올 초에 번역한 『馬山繁昌記』(1908)를 포스팅한다. 기록전문가 박영주 선생이 일본의 한 대학도서관에 참자고 있던 이 책을 찾아냈고, 이를 창원시정연구원이 번역 출판하였다.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마산이 언급된 책은 『韓国出張復命書』(1901), 『韓国案内』(1902), 『韓国水産誌』(1908) 등이 있지만 단행본으로는 이 책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는 『馬山と鎮海湾』(1911)으로 알려졌었다.

을사늑약과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 통감부 설치와 통감 정치, 고종의 강제퇴위와 순종 즉위 등으로 이어지는, 사실상 반(半)식민지 상태였던 당시의 시대상황은 마산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한제국의 창원군청이 아니라 통감부의 마산이사청이 실질적인 통치기관이었다.

더구나 개항 이후 마산으로 몰려 들어온 일인들의 수는 1908년 6월 3천355명에 달했다. 같은 통계로 한인은 7천515명이었으니 당시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책의 제목처럼 당시 마산은 '번창'해 가고 있었다.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에게 마산은 꿈을 주는 신도시였다. 책의 제목과 내용은 이런 시대 상황과 일인들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개항기와 식민지시대로 이어지는 시기의 마산이라는 지역 사회를 좀 더 깊이 이해하는 또 하나의 자료가 추가된 셈이다. 번역서에 실린 ‘발간사’와 ‘마산번창기 해제’를 우선 소개한다.

 

 

발간사

지역의 역사와 문화전반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일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지역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이웃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데 필수적인 기초가 될 것입니다. 또한 지역의 정체성을 찾고, 자긍심을 확립하려는 노력은 도시성장을 위한 지방자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난 2020년 12월, 지방자치법 정부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창원시는 마침내 인구 100만 대도시에 걸맞은 ‘특례시’로의 위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창원, 마산, 진해의 3개 시가 통합한 지 10년 만에 얻게 된 소중한 결실로, 통합창원시를 감싸왔던 3분 4열의 원심력이 ‘셋(3)이 하나(1) 됨으로써 다섯의 총합으로 나타난다’는 3·15의 구심력 원리가 발현된 것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 창원시는 2022년 ‘창원특례시로서의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게 됩니다. 따라서 ‘창원의 번창’을 위해 한 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야 하며, 이 행진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여러 시민의 발걸음과 함께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해 봄, 창원시정연구원은 창원이 가진 고유성과 차별성을 찾고 현재를 기록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데 필요한 역사·문헌자료의 발굴 및 번역, 시민·전문가 연구 공모사업 등의 다양한 연구 활동을 맡을 창원학연구센터를 출범시켰습니다.

그리고 오늘 2021년 새해의 시작과 함께 그 첫 번째 결과물로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마산번창기(馬山繁昌記)』를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마산을 다룬 문헌 중 가장 유명한 『마산항지(馬山港誌)』의 저자인 스와 부고츠(諏方武骨)가 1908년에 발행한 책으로, 전통적인 농어촌이었던 마산지역이 근대도시로 변화하는 과정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최초의 조사연구서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하에서 한국의 근대식민도시가 어떻게 형성되고 건설되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엿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일본인의 시각에서 근대 창원지역, 그 가운데 근대 마산사회를 대상으로 자신들의 번창을 구가한 점은 뼈아프지만, 한국의 근대사가 안았던 숙명을 반증하는 일이기도 하며, 역사의 교훈을 절실하게 새기게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마산번창기』가 출간되기까지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습니다.

오랫동안 제목 정도만 알 뿐 구할 수 없었던 귀한 자료를 찾아 내어주신 박영주 선생님, 자료가 지닌 학술적·역사적 가치를 알아보시고 창원학연구센터의 첫 과제로 제안하고 발간에 필요한 모든 작업을 도맡아 주신 한석태 초빙연구원과 송효진 센터장, 그리고 일본어와 우리말의 간격을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매끄럽게 번역해주신 재일동포 하동길 선생님, 어떤 요청에도 흔쾌히 도와주신 문창문화연구원의 안용준 연구위원 및 한 면 한 면 정성으로 디자인과 편집을 맡아주신 불휘미디어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창원시정연구원과 창원학연구센터는 창원인에 의한 『창원번창기』가 나오길 기대하고, 창원의 언어, 역사, 지리, 풍속, 예술, 문화, 인물 등의 인문학 분야를 중심으로 사회, 정치, 경제, 행정 등 사회과학 분야와 도시, 조경, 건축, 교통, 물류 등의 지역 도시학 분야 등과 연계할 수 있는 체계적인 연구기반을 다져 나가며 창원인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2월

창원시정연구원장 전수식

 

마산번창기 해제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침탈과 경영은 조선의 식민지화 과정과 그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근대 창원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일본 문헌자료를 번역하는 작업은 이 지역의 식민지화 전개과정을 살펴보는 데 필수적 과제이다. 창원의 근대사 연구에 선결해야 할 작업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마산과 진해지역은 일본 제국주의의 영향을 이른 시기에, 가장 직접적이고도 강력하게 받은, 일본제국의 식민도시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식민도시 건설 당시 일본인의 시작에 의해 기록된 문헌자료의 검색과 정리는 지역의 근대사 연구에 있어 더 이상 미루어 둘 수 없는 일임은 자명하다.

『마산번창기』는 1908년(명치 41년)에 발간된 저작으로, 1902년(명치 35년) 『한국안내(韓國案內)』 속의 마산편에서 소개된 소략한 기사와는 달리 한 개인 기록자이자 연구가인 단행본 체재의 형식과 내용을 갖춘, 창원지역 중의 마산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지리지이다. 동일 저자에 의해 보강된 1926년(대정 15년) 『마산항지(馬山港誌)』와 함께 근대 식민도시 마산을 조명하는 데 가장 비중이 크고 내용이 충실한 것으로 평가된다.

저자 스와 부고츠(諏方武骨)는 부친 고슈(翁洲)의 차남으로 태어나 부친의 영향으로 시문에 일찍이 눈을 떴다 한다.

부친은 아이즈와카마츠(會津若松)란 대번의 무가 출신으로 소년 시기 선발되어 에도에 가서 쇼헤고(昌平黌)에서 10년간 수학하고, 귀향한 후 일신관(日新館)의 교수가 되었다. 보신전쟁(戊辰戰爭)에 연루되어 참전했다가 지금의 후쿠시마 현인 아이즈번의 몰락을 보게 된다. 유폐의 고초를 겪은 후 와카마츠 현 양성학교장 겸 예과학과장, 후쿠시마 현 제3사범학교 학감을 역임하고 1888년(명치 21년) 미야기(宮城) 현 센다이(仙台) 시에서 세이신기쥬쿠(聲振義塾) 관사숙을 열고 한문을 교수했다. 동북의 두 석학 중 일인으로 칭해졌다.

저자는 어릴 적부터 부친의 훈도에 따라 영문, 한문, 일문을 배우고 일찍이 지리 역사에 취미를 가졌다 한다. 몰락한 무산 계급이 대만과 조선으로 진출한 사례의 한 전형으로 저자의 이동 경로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저자는 도한하기 전 먼저 대만에서 일정 시간 주유한 뒤 모친을 히로시마(廣島)의 집에서 장사 치루었다. 오카야마(岡山) 출신의 보육원 교사이자 산파 자격증을 가진 부인과 혼인한 것도 이 시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인천에 도착한 다음, 마산에 온 것은 1906년(명치 39년) 3월이었다. 이 해 6월 하순부터 기록을 개시하여 1908년(명치 41년) 9월에 완성한 것이 바로 『마산번창기』이다.

명치 41년 12월 1일 발행일자의 저자 겸 발행자는 스와 부고츠(諏方武骨)란 본명을 밝히고 책의 서언에서는 거동노부(去洞老夫) 스와 쇼오센(諏方松仙)이란 아호와 필명을 사용한다. 별천지(洞天)를 찾는(去) 소나무 아래 신선(松仙) 이름과 사무라이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무골(武骨)이란 이름이 퍽 대조적이다.

후일 『마산항지』에서는 스와 시로(諏方史郞)란 이름을 사용하고 자신을 겸칭할 때는 국사(局史 ; 시로의 눈)라 하기도 하여 역사기록자임을 자임한다. 자신의 집필 공간을 하쿠엔보(白猿坊)라 하여 백수(白首)임을 은연중 드러내는 문사적 기질을 드러내기도 한다.

17년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마산항지』와 『경남사적명승담총(慶南史蹟名勝談叢)』이란 책을 상재하고 그 후 건강이 악화되어 병상에서 「경남사적보유」를 쓰다가 1927년(소화 2년) 2월 8일 타계하였다.

본 『번창기』는 연구자에게 실물을 제공하기 위해 원본을 그대로 후철하고 번역본을 전철하기로 한다. 원본에는 25쪽에 걸친 광고가 게재되어 있어 당시 마산의 사회경제상 일면을 알려주는 좋은 자료이다. 광고 연구자들에게 희소식일 것이다.

목차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서언

제1장 마산의 대관

제2장 마산의 관공서

제3장 지질 및 기후

제4장 위생 및 의사

제5장 교육기관

제6장 신도 및 종교

제7장 교통

제8장 호구

제9장 경제사정

제10장 마산의 잡록, 여러 근황

마산의 노래

본문 109쪽, 전부(前付) 14쪽, 후부 14쪽으로 전체가 구성되어 있다.

2020년 여름, 창원시정연구원 창원학연구센터 자문위원인 박영주(朴永周) 선생이 일본 내 대학도서관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원본을, 출간한지 110여 년 만에 발굴하여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명치시대의 어문으로 난독의 저술인지라 재일동포 재야사학자이자 교토 소재 국제중고등학교 전 교장 하동길(河東吉) 선생께 번역을 의뢰하였고 쾌히 수락한 번역 작업에 박영주 선생이 각주를 달고 본인이 윤문과 해제를 함으로써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창원학연구센터가 기획하고 있는 창원지역 근대문헌자료 번역 작업의 첫 결과물로서 발간함을 밝혀두고자 한다.

2021년 2월 18일

창원시정연구원 창원학연구센터 초빙연구원 한석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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