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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창원시 근대건조물 10호, 마산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 - 2

by 운무허정도 2021. 8. 2.

지난 3월 21일 창원시 근대건조물심의위원회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 1가 4-17번지의 옛 전기회사 지점장 사택을 ‘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0호’로 결정하였다.

앞선 이들이 남겨 놓은 문화유산의 보존책무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있다. 그중 근대기 유산은 도시의 형성기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이 크다. 이 땅을 강점한 일제가 남긴 건물이라도 마찬가지다.

근대건조물로 결정된 뒤 이 건물에 대한 명칭과 건축연도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에 산호동 지하련 주택 보전문제에도 관심을 깊이 가졌던 마산YMCA 시민사업위원회는 7월 14일 제22회 시민논단의 주제로 이 문제를 올렸다.

시민논단에서 발제한 내용을 4회로 나누어 포스팅한다.

 

<글 순서>

1. 마산의 전기회사 궤적

2. 건축 연도 추정 - (이번 글)

3. 건축적 가치

4. 제안

 

 

 

2. 건축 연도 추정

이 건물의 건축연도는 1939년으로 알려져 있다.

이유는 건축물대장에 기록된 건축연도가 1939년이기 때문이다. 이 기록을 2000년 마산근대건축물에 대한 최초의 논문인 「한상술」에서 사용하였고 후속연구자들이 이 논문을 인용함으로써 확산되고 확정되었다.

하지만 해방 한참 후 작성된 건축물대장의 건축연도는 신빙성이 낮다.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사(私)건물의 건축연도가 대부분 이 시기로 적혀있어서 기록정리과정에서 편의상 발생된 오류로 보는 이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1939년이라는 건축연도는 다음의 자료들이 그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첫째, 토지대장에 의하면 전기회사 사택이 앉은 터를 경성전기주식회사가 일본인 사토 사부로(佐藤三郞)에게서 매입해 소유권을 이전 등기한 일자가 1927년 6월 3일이라는 점이다. 알려진 대로 건축연도가 1939년이라면 경성전기에서 마산지점장 사택 건축용으로 토지를 매입한 후 12년이나 묵힌 뒤 건물을 지었다는 말이다. 특별한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상식적으로는 납득되지 않는다.

 

 

둘째, 현 사택 건축 당시 실내용 문짝에 바른 도배지의 초벌로 사용된 신문지가 「조선조일(朝鮮朝日)」 1928년 10월 28일자 및 12월 9일자라는 점이다. 이 신문지는 필자가 직접 현장조사 후 확인하였다. 알려진 대로 건축연도가 1939년이라면 이 신문을 무려 11년이나 보관해 두었다가 도배지로 사용했다는 의미다. 특별한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상식적으로는 납득되지 않는다.

 

 

셋째, YMCA 시민논단에 토론자로 참여한 신삼호 건축사의 주장이다. 마산에 수도시설이 준공된 것은 1930년 3월 31일이었고 집집마다 수돗물이 공급된 것을 기려 행한 통수식은 같은 해 6월 6일이었다. 따라서 수도시설이 있느냐 없느냐는 건축연도를 알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된다. 그런데 현장에서 확인한 결과 이 사택 주방으로 인입되는 수도관이 건물외부에 노출 배관되어 있다. 신축 당시 배관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또한 화장실에 설치된 세면기는 아예 급수가 안 되는, 사용자가 직접 물을 부어 사용하도록 만들어진 세면기이다. 이것으로도 이 건물은 수도시설이 없었던, 즉 1930년 이전에 건축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위의 세 가지 이유 외에 몇 가지 추가로 덧붙인다.

1) 앞서 포스팅한 ‘시기별 전기회사 변경과정’에 의하면 1939년 건축했을 경우 이 건물은 ‘남선합동전기(주) 부산지점 마산영업소장 사택’이 된다. 지점에서 격하된 영업소장의 사택 치고는 건물이 너무 고급지지 않은가.

2) 그런가하면 이 시기 경성전기의 전기료는 매우 고가여서 사용자들의 항의가 잇따랐다. 시대일보 (1924. 5. 14일자)와 중외일보(1930. 10. 1일자) 등에 따르면 마산에서도 전기사용자들이 집단적으로 전기료 인하요구를 하였다. 이런 불만은 경성전기에서 생산한 전기가 독점적으로 공급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원성이었고 그만큼 경성전기의 수익이 높았음을 말해준다.

3) 1920년대 경성전기는 서울을 제외한 인천, 수원, 마산 세 곳에 지점을 갖고 있었으며 한국근현대사회사조합자료에 의하면 지점장을 중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경성전기주식회사 마산지점장이었던 야마모토 토시오(山元利雄, 1887~?)는 가고시마(鹿兒島) 출신으로 1914년 7월 동경제국대학 법학과 정치부 졸업한 엘리트였다. 1915년 1월에 한국으로 건너와 동양척식주식회사 입사하였고, 경성전기주식회사에는 1918년 6월에 입사했다. 마산지점장(진해지점장 겸임)으로는 1926년 9월 부임해 1935년 11월 1일 경성전기 마산지점이 조선와사전기주식회사로 넘어갈 때까지 재임하였다. 마산지점장 재직 중 마산체육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런 점들을 모두 종합하면,

1) 토지매입시기 2) 초벌도배지로 사용된 신문 발행일자 3) 신축 당시 수도시설이 없었던 점 4) 건물의 수준 5) 경성전기의 독점적 위세 6) 경성전기 내 마산지점장의 지위 등을 감안할 때,

야마모토 토시오(山元利雄)가 마산지점장으로 부임한 직후인 1927년 후반기나 1928년 봄쯤 착공하여 1929년 초에 준공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