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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9. 6. 00:00

마산번창기(1908) - 3

 

 

제1장 마산의 대관(大觀) -1

 

한국에서 마산같이 산이 좋고 물이 밝은 데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음양의 영혼인 대기(大氣)가 응어리져서 마산만의 물이 되고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빛이 나는 아지랑이 속에 마산항의 땅이 굳어진 것이다.

구라파의 어떤 이는 이 항만을 가리켜 태평양 해안으로서는 호주의 시드니 항, 북 아메리카의 샌프란시스코 항에 다음가는 세계 세 번째 최우량의 산수(山水)라 하여 그 얼마나 군침을 흘렸는지 모른다.

러시아가 동양에서 얼어붙지 않는 항구로서 마산을 얻으려고 마산사건을 일으킨 것만으로도 짐작이 가듯이 얼마나 마산이 그 형세가 좋고 그 풍경 역시 보기 좋기는 누구나가 아는 바이다.

마산만은 부도수도(釜島水道)라 부르는 입구에서 9해리 거리를 두고 진해만에 붙어 있다. 진해만에는 가도(가덕도), 칠천도란 두 섬이 있으며, 거기에다 거제도를 으뜸으로 한산, 가덕, 미륵, 욕지, 장사 등 기타 수십 개의 작은 섬들이 외양(外洋)에 대해 보루를 서고 있다.

통로는 거제도를 중앙으로 해서 남쪽은 통영, 북측은 가덕이란 두 개의 좁은 물길을 통과하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게다가 통영수도에는 항만 입구의 수심이 얕아서 300톤 이상의 선박이 취항하기가 어려워서 큰 배는 반드시 가덕수도 쪽으로 가야만 한다.

마치 크나큰 호수를 이루고 있고 산과 물이 명승 같은 마산항만을 가지고 있음은 군사적으로도 중요하다. 1906년(명치39년) 한국 정부는 그 부근 일대를 구획하여 해군 군항 예정지로 지정하고 관보에 공표한 것도 그 때문이다.

러일전쟁 때 연합함대 사령관인 도고 대장이 이 지역을 공방의 중요 거점으로 삼으며, 발틱 원정함대가 조선해(海)에 그 모습을 보이자 “국가 존망은 이 싸움에 달렸다. 제군 노력하시오”라고 무전을 보낸 곳이 현재의 군항, 현동의 앞바다였다.

전쟁이 끝나고 일본 해군이 진해만방비대를 창설하고 그 사령부를 거제도 송진에 두고 육군도 역시 가덕도 기타에 요새를 배치하고 근해 경비에 전념하고 있다.

그 때문에 진해만에 여러 규모의 선박, 함대가 때때로 입항하여 대표 시험 발사나 사격 연습을 할 때, 마산에는 청천벽력 같은 굉음이 울리곤 한다. 이 소리가 울릴 때 마산 상인들은 많이 기뻐하기도 한다.

마산만은 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진해만과 한 줄기 수로로 붙어 있는 아름다운 항구여서 외해가 아무리 사나운 파도에 휩싸여도 만내의 파도는 아주 잔잔하고 사방 경치도 거울에 비친 듯하다.

또한 수심이 깊어 수십만 톤의 함선을 여유 있게 받아들일 수가 있다. 바다, 육지의 생산물은 기차든 선편이든 자유로이 수출이 가능할 것이다.

실업의 실정으로 봐서는 개항 후 겨우 10년이므로 수백 년 전부터 개항된 부산에는 미치지 못하겠으나 폭풍우가 몰아치는 곳이 아니어서 부산에서 험한 날씨는 볼 적에도 마산은 마치 평상시처럼 고요하고 안전하다.

언젠가 세상과 민심이 안정되었을 때 천황이 순행을 바라는 곳은 한국 13도를 통틀어 오직 이곳, 마산뿐일 것이다.

마산의 위치는 경상남도 중부의 남쪽으로 북위 35도 10분 45초 동경 128도 34분 15초의 교차점을 중심으로 10한리(韓里), 즉 일본의 1리 이내 권내를 총칭한다.

앞에는 얼마 안 떨어진 곳에 한국 황실 의친왕이 관리하는 월영도가 있으며, 뒤에는 무학, 일화(日和, 각국거류지의 러시아 영사관과 일본영사관 뒤편의 높은 언덕의 이름으로 개항 이후 일인들이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고운대 등의 봉우리와 가토커상관(加藤鬼上官-가토 기요사마 加藤淸正, 1562~1611-임진왜란 때 제2군 사령관으로 조선을 침략한 장군으로 ‘귀-幽靈-上官’으로 불리기도 했다)과 인연이 있는 장군산맥(將軍山脈)을 지고 좌측에 마을을 안고 있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올 초에 번역한 『馬山繁昌記』(1908) 중 세 번째 것이다. 『馬山繁昌記』는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단행본으로는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항 이후 마산으로 몰려 들어온 일인들의 수는 1908년 6월 3천355명에 달했다. 같은 통계로 한인은 7천515명이었으니 당시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책의 제목처럼 당시 마산은 '번창'해 가고 있었다.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에게 마산은 꿈을 주는 신도시였다. 책의 제목과 내용은 이런 시대 상황과 그들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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