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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번창기(1908년) - 23 -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by 운무허정도 2022. 2. 7.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 2

 

(2) 마산경제협회(馬山經濟協會)

1907년(명치40년) 봄 즈음에 마산 유지자들이 구두 약속으로 성립된 조직이며 별도 규칙, 규약이 있는 것도 아니며 일정한 회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마산포와 신시에서 격월로 모임을 가져왔으나 중도에 뜸해지다가 1908년 봄 다시 활발해지고 매월 한 번의 모임이 신시에서만 개최되고 있다.

매회 마다 전 간사는 당일 이후의 간사 2명을 지정하며 지정 받은 자는 어떠한 이유라도 이를 사퇴할 수가 없다. 이렇게 의리와 인정이 있는 모임이라 한 층 재미가 있어 보인다. 회원에는 관리, 신문기자, 은행가, 종교인, 야채 집 주인도, 의사도 있어 아주 다양한 모임이다.

그리고 마산의 이해에 관련되는 사안은 아무나 문제를 제출할 수가 있다.

상업회의소 같이 정해진 수의 머리에서 나오는 사안이나 저기장의 수완에 의한 사안 이외에는 의제도 삼지 않는 측면과는 달리 그 범위가 좁지 않다. 문제에 대한 폭넓은 의론(議論)이 활발할 것이다. 자리에서 으스대는 사람도 없으며 언론의 자유가 있다. 어떤 관권 만능주의라도 이 정신적인 결속을 억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상업회의소도 여기서 나왔고 여름철 해수욕장 개장도 이 모임에서 나온 것이다. 기타 기차 출발시간 설정이나 마산 진주간 도로 신설에 관해서도 본 모임이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

 

 

(3) 동우회(同友會)

마산포의 유지자에 의해 조직된 것이며 그 취지는 마산경제협회의 그것과 별 차이는 없다. 단 그 근거는 경제협회보다 아주 탄탄한 것 같다.

 

(4) 마산부인자선회(馬山婦人慈善會)

박애와 자선의 큰 주의에 의해 이사관 미마스 구메키치(三增久米吉) 씨 부인 도모코(友子) 여사가 중심이 되어 조직한 것이며 1908년 1월 19일 마산심상고등소학교 강당에서 개최식이 거행되었다.

그 후 한 번의 모임도 없었지만 아직 활동하고 있는 줄로 안다. 회비는 한 사람에 10전이라 한다.

 

(5) 월포회(月浦會)

하이쿠(俳句, 일본 고유의 짧은 정형시) 짓는 사람이 여는 모임인데, 후지하라 겐주(藤原建樹) 씨가 주도하며 모다 젠시로(小田善四郞), 호리에 다마노신(堀江玉之進) 씨 등이 주로 알선을 해 왔는데 후지하라(藤原) 씨가 평양, 호리에(堀江) 씨가 경성으로 떠나고 난 뒤에는 부진해진 것 같다.

 

(6) 한어야학회(韓語夜學會)

마산이사청 통역인 시마오 센기치(島雄潛吉) 씨가 제안하며 1907년 말에 개회식을 하고, 당시에는 아주 융성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열이 쉽게 식어가기 쉬운 일본인의 특성이 드러난 것인지 몰라도 현재는 모임이 부진한 모양이다.

 

(7) 소방조(消防組)

신시의 소방조는 1907년 2월 1일 밤에 마산 교마치(京町) 2정목 하나미자카(花見坂)란 곳에 있던 희락좌(喜樂座)라는 극장에서 불이 난 것이 동기가 되어 조직되었다.

그 다음날 경찰관은 민단 사무소에 유지들을 모아 놓고 협정이 이루어져 마침내 80명의 소방조를 보게 된 것이다. 현재 임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조장 아카츠카 도쿠지로(赤塚德次郞)

부조장 혼다 츠치고로(本田槌五郞)

보좌 이와다 조자부로(岩田常三郞)

보좌 이사누마 가메지로(淺沼龜次郞)

보좌 모치즈키 츄고로(望月忠五郞)

 

마산포의 소방조는 그 후에 조직된 것이며 일본, 청국, 한국의 동맹인 것이다. 그 조합원은 인구수에 따라 산출된 것이며 다음과 같다.

 

일인 36명, 청국인 4명, 한국인 40명<<<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올 초에 번역한 『馬山繁昌記』(1908) 중 스물세 번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繁昌記』는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단행본으로는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항 이후 마산으로 몰려 들어온 일인들의 수는 1908년 6월 3천355명에 달했다. 같은 통계로 한인은 7천515명이었으니 당시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책의 제목처럼 당시 마산은 '번창'해 가고 있었다.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에게 마산은 꿈을 주는 신도시였다. 책의 제목과 내용은 이런 시대 상황과 그들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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