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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번창기(1908년) - 25 -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by 운무허정도 2022. 2. 21.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 4

 

(9) 바둑과 일본 장기

이것들은 앞서 나온 기다유부시(義太夫節) 보다 대유행인데 바둑에 관해선 대충 아래와 같은 것이다.

다나카 손(田中遜) 씨가 마산에서 바둑을 처음 두기 시작한 사람이며 방원사(方圓社, 1879년 발족된 일본바둑 조직) 급수로 8, 9급 정도나 될 것 같다. 그 다음으로는 노지마 타이조(野島種造), 기무라 구메타로(木村久米太郞) 씨가 될 것이다.

둘 중 어느 쪽이 잘 두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 다음으로 오가타 치요사부로(緖方千代三郞), 야마모토 구니츠구(山本國次), 후지사키 도모히데(藤崎供秀) 씨 등이다. 그 외에도 두는 사람은 다음과 같다.

유키모토 야타로(行本彌太郞) 씨, 이이즈카 추타로(飯塚忠太郞) 씨, 모모키 게이이치(百木惠一) 씨, 사로 지로(左藤次郞) 씨, 도조 겐타로(東條源太郞) 씨, 오카타 다스케(緖方本助) 씨, 히사시게 간사쿠(久重勘作) 씨, 마츠자게 한지(松崎半治) 씨, 미츠미야 류코오(三宮隆晃) 씨, 다마노 하지메(玉野一) 씨, 와카타 유메지로(和縣梅次郞) 씨, 아카마츠 가이치로(赤松龜一郞) 씨, 니시카와 다로(西川太郞) 씨, 요시무라 도라지로(吉村虎次郞) 씨, 사토 미노스케(左藤巳之助) 씨, 야마노 겐지로(山野源次郞) 씨 등인데,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길이 없고 아마도 실력을 갖춘 이도 숨어 있으리라 본다.

장기(아래 사진 - 일본 장기) 실력자 두 사람은 신시의 기무라 구메타로(木村久米太郞, 요리점) 씨와 마산포의 히라야마 규지(平山久治, 목수) 씨이다. 기타 자기 실력을 자랑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 실력 차이는 크지 않은 것 같다.

 

 

(10) 화투(花合戰)

신시, 마산포 양쪽에서 이전에는 유행했는데 기다유부시(義太夫節)나 바둑, 장기의 유행에 밀려 많이 쇠퇴한 모양이다. 그러나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며 가산을 탕진한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빚 때문에 가게 운영에 차질이 생겨 문을 닫은 데도 있다. 트럼프의 경쟁 대회는 찾아볼 수 없다.

 

(11) 가루타(歌牌) 경기(競技)

이것은 신구(新舊) 정원에 유행하지만 그때가 아니어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놀이에는 회가의 위 구절당과 아랫 구절당의 두 방식이 있다. 윗 구절당은 윗 구절을 부르면 그것의 아랫 구절이 적힌 가루타를 찾는 것이며, 빨라도 한 게임에 10분은 걸린다. 여기에는 남자도 참가하지만 주로 간사이(關西) 지방의 부인들 사이에서 행해지며 이곳에서는 후지하라 겐주(藤原建樹) 씨가 주도했던 것 같은데 이미 떠났으니 그 뒤를 잇는 이가 누구일지.

아랫 구절당은 아랫 구절을 부르고 그 가루타를 찾는 단순한 것이며 상대방이 가르치기만 하면 그 가루타는 잡지 않는 것이라 윗 구절당이 보이는 가루타를 잡고 댕기고 하는 일은 없다. 아랫 구절당이 사용하는 가루타는 목재이며 게임은 빠르면 5분 내로 승부가 난다고 한다.

이 판의 주도는 아마 이 책의 저자인 하쿠엔보오(白猿坊)가 맡게 될 것이다.

 

(12) 한처(韓妻)

한처란 한국에서 결혼한 마누라라는 의미인데, 정당한 중매혼의식이 있는 이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마치 대만에서 만처(灣妻), 대련에서 련처(連妻)라 하듯이 기생, 작부나 매음부 등과 맺은 내열을 뜻한다. 따라서 한처 중에는 고향에 남편이나 자식을 두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합집산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 세상 사람들의 양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이 계통의 사람들은 생식기가 건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임신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많은 사생아 출생은 또한 이 사람들에 의하는 바 크다.

 

(13) 고참자(古參者)와 신참자(新參者)

한국에 오래전에 이주해 온 사람들은 일본의 최신 사정도 잘 모르며 장사에는 민감하게 빨리 움식일지 몰라도 두뇌가 낡아빠져 아예 질서라는 것이 없다. 그래도 일찍이 도한(渡韓)했기에 좋은 건 먼저 챙겨서 돈 번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 중에는 어부 출신이나 차부(車夫) 출신 사람도 있고 소위 벼락부자란 자가 많다는 것이다.

고참자를 가만히 살펴보니 글을 아는 사람은 적다. 따라서 도의나 덕정(德精) 같은 온화한 일본 혼이 적다. 신참자를 거만하게 경멸하고 신참자가 뭘 아느냐, 의원 같은 감투는 오래 있던 사람이 당연히 맡아야지 하는 막말까지 한다.

이러다 보니 유지자니 민회 의원이니 상업회의소의원이니 해도 공공성을 가지고 공정한 의론을 벌이자는 생각이 없다. 이렇게 그 기관이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 한국에 일인 이주민의 실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마산에서는 이러한 악폐가 없다. 고참자 스스로가 불러서라도 신참자를 추켜 세우려하는 의협심이 있는 고참자가 많음에 감탄하면서 이는 마산의 큰 행복이라 생각한다.

이러니 마산의 발전도 그 걸음을 계속 앞으로 내디딜 것이리라. 아 마산이여 참 좋은 것일세. 서기가 가득한 곳이고말고.<<<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올 초에 번역한 『馬山繁昌記』(1908) 중 스물다섯 번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繁昌記』는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단행본으로는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항 이후 마산으로 몰려 들어온 일인들의 수는 1908년 6월 3천355명에 달했다. 같은 통계로 한인은 7천515명이었으니 당시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책의 제목처럼 당시 마산은 '번창'해 가고 있었다.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에게 마산은 꿈을 주는 신도시였다. 책의 제목과 내용은 이런 시대 상황과 그들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