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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번창기(1908년) - 27 -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by 운무허정도 2022. 3. 7.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 6

 

(16) 마산야학회

마산 본포의 입구에 그 간판이 걸려 있는데, 이 건물은 한인, 일인의 공유물이며 전에 마산공립학교이었던 한동(韓童) 교수소와 가키하라 지로(柿原次郞) 씨가 지도하는 일어학교의 합동 교습실이었던 곳이다. 지금도 한국 학동(學童)의 야간교습소라 하는데 책 읽는 소리가 들릴 때는 많지가 않은 것 같다.

 

(17) 마산아마추어 사진연구회

이것은 신시에 사는 부고츠(武骨)란 이름을 쓰는 본 책의 저자가 중심이 되어 조직한 것인데, 사진 도락(道樂)같이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없으니 회원은 많지 않으나 모두 열심이다.

그 사무소는 신시에서는 이와모토(岩本) 사진관, 마산포에서는 진해헌(鎭海軒) 사진소의 두 군데이며 회원 사진화(寫眞畵)의 현상, 수정 또한 사진 촬영법의 설명도 해주고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갖고 각자의 사진화의 평가를 하곤 했다.

 

(18) 마산청년단

마산 거류민단 민회 의원 선거 때 그 싹을 트기 시작한 것이나 아직 조직되기까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 모임은 마산의 고참자가 만들어낸 신시(新市)라든가 구포(舊浦)란 장벽을 부숴버리고 함께 합동하여 마산의 발전책과 경제상의 융화책을 연구하려는 것이다.

이 생각에 찬성하는 사람은 사업가나 관리, 법률가, 학자들도 있고 인의와 도덕을 종중하며 공명정대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위험하거나 비열한 사람은 입단에 허락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다만 이것을 정신적인 모임으로 경제협회나 동우회 같은 단체로 한 것인지, 혹은 구체적인 것으로서 관청 등의 인가를 받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유지들이 다시 회합 속에서 의논을 더 해보아야 판명이 날 것 같다.

단 이 모임에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것과 경제협회나 동우회 이외의 실업적인 단체가 되어야 한다 함을 전해들은 바 있다. 다시 말하면 선거 같은 경쟁 장에서의 혁신파가 바로 이 모임이 아닌가 생각된다.

 

(19) 개의 날

임산부가 두르는 이와타와비(岩田帶, 아래 사진)라는 배띠(腹帶)에 관해서는 일본에서도 개의 날인 술일(戌日)에 띠를 구함을 귀하게 여기는 곳이 있지만 한국에 와보니 그 귀하게 여기는 점은 임산부의 배띠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술일에 혼례나 경사를 치르게 되는 마산의 새로운 습관에 관해선 이 이유를 물어보아도 모른다거나 남이 하니까 따라 한다는 대답이니 제 나름의 해석은 이렇다.

그 시대는 잊어 버렸는데 중국의 어느 황후가 임신 때문에 산전(産殿)에 들어가셨다. 그 때 한 마리의 암캐가 산전 건물의 바닥 밑에 기어 들어와 새끼를 낳았다. 황후가 점쟁이를 불러 그 길흉을 따졌더니 점쟁이가 길조라 아뢰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르기를 “개 견(犬)자의 옆 점을 대(大)자 밑으로 가져다 붙이면 태(太)가 되니 출산하시면 그 아이는 장차 태자가 될 것이다. 또한 그 옆 점을 위로 가져다 붙이면 하늘 천(天)자가 되니 태자는 반드시 천자가 되겠다.”는 길조라 했다.

황후는 얼마 안 되어 남자 아이를 낳고 그 아이는 많은 형들을 제치고 태자가 되다가 기어코 천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개의 날, 술일(戌日)이 경하스럽다는 말이 생겨나고 중국에서 일본에까지 그 이야기가 전해 들어오게 될 것인데, 임산부 이외까지 이 날을 길일(吉日)로 응용하는 것은 마산뿐일 것이다.

그러나 결코 습관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 것이다. 길상(吉祥)의 날에 나오는 습관이니만큼 오래 보전해야 할 것 아닌가 싶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올 초에 번역한 『馬山繁昌記』(1908) 중 스물일곱 번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繁昌記』는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단행본으로는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항 이후 마산으로 몰려 들어온 일인들의 수는 1908년 6월 3천355명에 달했다. 같은 통계로 한인은 7천515명이었으니 당시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책의 제목처럼 당시 마산은 '번창'해 가고 있었다.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에게 마산은 꿈을 주는 신도시였다. 책의 제목과 내용은 이런 시대 상황과 그들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