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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항지(1926년) - 1 - 발간사, 해제

by 운무허정도 2022. 6. 19.

일제강점기 마산 관련 사료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문헌인 스와 시로(諏方史郞)의 <마산항지(馬山港誌)>가 2021년 9월 번역돼 나왔다. 창원시정연구원 창원학연구센터의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의 하나로 지난 2월에 발행된 '마산번창기'에 이어 두 번째이다.

1908년에 나온 마산번창기와 같은 저자의 저술로 1926년에 발행되었다. 이 책은 크게 건, 곤(乾, 坤) 두 권으로 이뤄져 있는데 乾권에서는 마산항의 위치, 지세, 기상 등을 개관한 후 마산의 상고사, 중고사, 근고사, 개항사, 일본인 이주사 등을 서술하고, 현세사인 坤권에서는 1920년 중반 당시 마산의 행정, 경제, 교육, 교통, 통신, 문화, 풍속, 현안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자료적 가치가 뛰어나다. 때문에 이 책은 일제강점기 마산에 대한 여러 연구에 자주 인용돼 온 그야말로 마산 지역사 연구의 기본 텍스트이다.

마산항지는 근대 역사학의 시대구분법에 따라 마산의 역사를 (사실상) 처음으로 서술했다는 점에서 이후 지역사 편찬에도 큰 영향을 미친 저작이다. 그럼에도 철저한 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씌여진 기본적 한계에다 여러 가지 오류도 있어 '비판적 읽기'가 필요하다.

이번 번역은 마산번창기와 마찬가지로 재일사학자 하동길 선생이 맡았고 창원학연구센터의 한석태 초빙연구원이 윤문과 해제를 하였다. 주석은 내가 맡았다.

그동안 난해한 문장으로 인해 전문을 완독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는데 이번 번역으로 연구자뿐 아니라 지역사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들도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은 이 책의 주석 작업을 맡은 박영주 선생의 페이스북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발간사

지난해 7월 출범한 창원시정연구원 창원학연구센터는 창원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창원에 관한 역사·문헌 자료를 발굴하고, 시민 여러분과 공유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의 발간은 그 중 하나로 일제강점기 시대에 쓰인 기록물을 찾아 현대의 우리말로 번역·해제하는 작업입니다. 이는 외국어로 쓰인 문장을 우리말로 단순히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저자의 생각과 뜻을 오롯이 이해하고, 우리에게 가치 있는 의미를 찾아내야 하므로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닙니다. 새로운 글을 지어 발표하는 것보다 몇 배의 수고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원학연구센터에서는 올해 초 발간한 『마산번창기』에 이어 『마산항지』를 첫 돌을 기념하며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수 개월간 이를 위해 애써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특히, 우리 지역사에 의미 있는 문헌을 찾고, 현대적 감각을 더해 새로운 발간물을 만들어 내기까지 크고 작은 작업을 차질 없이 진행해 주신 송효진 센터장과 한석태 초빙연구원, 김은비 전문연구원,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글에 한 자 한 자 우리말의 숨을 불어넣어 주신 재일사학자 하동길 선생님, 꼼꼼하게 주석 작업을 맡아주신 박영주 선생님, 그리고 디자인과 편집을 맡아주신 불휘미디어 김리아 대표님을 비롯한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출간하게 된 『마산항지』는 일제강점기 시대 마산에 거주했던 스와 시로(諏方史郞)에 의해 쓰인 책입니다. 여기에는 당시 마산의 경제상황, 사회문화, 주민들의 일상생활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마산이 당면했던 과제와 저자가 제안한 해결방안도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생동감 넘치는 과거의 마산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창원학연구센터는 창원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할 것입니다. 역사·문헌 자료를 발굴해 정리하는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발간 외에도 시민·전문가가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는 ‘창원학의 장’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매년 ‘창원’을 주제로 한 시민연구를 지원하고, 그 결과물을 엮어 『창원학연구』로 발간할 것입니다. 또한, 보다 다양한 ‘창원학’이 연구되기 위해세미나, 포럼 등을 개최하여 시민 여려분의 많은 참여와 소통의 기회를 꾸준히 제공할 것입니다.

앞으로도 창원학연구센터는 과거로부터 내려 온 유산을 통해 창원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모쪼록 창원시민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8월

창원시정연구원장 전수식

 

해제

창원시정연구원 창원학연구센터에서는 『마산번창기』 번역에 이어 동일저자의 『마산항지』를 번역하고 각주 등을 해석하는 일을 속행하게 되었다.

 

 

마산과 진해지역은 일본 제국주의가 건설한 대표적인 식민도시였음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식민도시 건설 당시 일본인의 시각과 사관에 의해 기록된 문헌자료 가운데 『마산항지』는 분량 면에서나 내용의 충실도가 뛰어난 향토 지리지라 할 수 있다.

1906년 마산에서 거주하기 시작하여 1926년에 이 책을 발간하기까지 20여 년을 마산에서 식민도시 건설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한 스와 시로(諏方史郞)은 『경남사적』(慶南史跡)과 그 『보유』(補遺)를 집필하는 등 문필과 저술활동을 펼치다가 이듬해 1927년 2월 8일 타계하여 마산에 그 뼈를 묻게 되었다.

스와 시로는 일본 동북지방의 석유(碩儒)로 이름을 떨친 부친 고슈(翁洲)의 차남으로 부친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시문에 눈을 떴다고 한다.

부친은 아이즈와카마츠(會津若松)한 대번의 무가 출신으로 에도쇼헤코(昌平黌, 창평횡)에서 10년간 수학하고 귀향한 후 일신관(日新館)의 교수로 재직하였다가, 보신(戊辰)전쟁에 연루되어 참전했다. 이때 지금의 후쿠시마 현인 아이즈번의 몰락을 보게 된다.

유폐의 고초를 겪은 후 와카마츠현 양성학교장 예과학과장, 후쿠시마 현 제3사범학교 학감을 역임하고 1888년 미야기 현 센다이 시에서 세이신시쥬쿠(聲振義塾) 관사숙을 열고 한문을 가르쳤다. 동북의 두 석학 중 일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마산항지』의 저자는 어릴 적부터 부친의 훈도에 따라 영문, 한문, 일문을 배우고 일찍이 지리, 역사에 취미를 가졌다고 한다. 몰락한 무사계급이 대만과 조선에 진출한 사례의 한 전형으로 저자의 이동 경로를 확인해 볼 수 있다. 정한(征韓)의 주도 세력인 현양사(玄洋社) 계열의 인물들과 교류한 흔적이 두드러지기도 하였다.

저자는 1906년 3월 마산에 도착하기에 앞서 대만에서 일정 시기를 보낸 후 인천을 거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해 6월 하순부터 기록하기 시작하여 1908년 9월에 『마산번창기』를 발간한 후 이를 보강하고 확대·심화하여 내놓은 것이 바로 『마산항지』인 것이다.

저자는 부산일보 마산 주재기자, 마산에서 발간된 남선일보의 고문 등을 역임한 언론인으로서 기록에 특장을 지닌 기자 출신이면서 마산신사 건립 당시 지진재식(地鎭齋式)의 재주(齋主)로 추거될 만큼 일본 국가종교인 신도(神道)를 숭상하는 국수주의자이기도 하다. “정한을 은어에 점친 옛적 있었네”라는 하이쿠를 마산신사의 시회에서 읊은 것을 자랑하기도 한다.

식민도시 건설의 한 주역으로서 마산민회 의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기도 하였다. 이때 저자의 본명인 부고츠(武骨)가 촌스럽다는 비방을 받아 역사 연구자임을 표방하는 시로(史郞)로 개명하고 거동노부(去洞老父), 스와 쇼오센(諏方松仙)이란 아호와 필명을 사용한다. 시작(詩作)에는 하쿠엔보(白猿坊)라는 별칭을 쓰기도 한다.

일본인으로서의 한국의 역사를 정한의 사관에 입각하여 정리한 점은 일본 국수주의자의 시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 준다. 마산에서의 친일개화파의 거두 박영효와의 교분을 자랑하고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혼인을 장려하는 등 저자의 식민지 건설 의욕은 일관된다.

조선에서 뉴 재팬(New Japan), 신일본의 도시 건설에 최적지로 마산을 꼽은 저자는, 노일전쟁 후 동양 정국이 안정되면 제일 먼저 일본의 천황을 모시고 싶은 곳이 진해만에 깊숙이 자리한 마산이라고 할 만큼 마산의 지리와 풍광에 대해서는 열광적이다. 고노에(近衛) 귀족원장의 별장 터, 대정(大正) 천황의 동궁 시절 마산항 방문, 이토오(伊藤) 통감의 잦은 내유와 별장 터, 순종 황제의 남순(南巡) 행차 등을 열거하며 마산의 기후와 지리에 대해 자신의 고향보다 더 예찬한다.

마산항의 대관, 영광이 넘치는 마산의 산수, 마산 상고사, 마산중고사, 마산근고사, 마산개항사, 일본인 동포발전사, 거류민단 시대사요를 내용으로 하는 여덟 개 장으로 건권(乾卷)을 구성하고 곤권(坤卷)에서는 개황 일반, 마산의 교육기관, 운수교통기관, 보건의료조산원, 통신기관, 숭경신앙기관, 금융기관, 경비기관, 사직기관, 창원군청, 기업전습소, 남선일보사, 공장 및 여러 회사, 여러 단체, 긴지로(金次郞) 문고, 월포원(月浦園), 중앙공설운동장, 일용품 수급기관, 마산미곡상조합, 마산주조조합, 오락기관, 마산멸치판매조합, 마산의 경제현황, 문화를 향한 선인의 잡속, 내선융화의 체조와 언어, 마산의 장래 시가지와 매립지 등 29개 장으로 편성하였다.

건권이 통사적 접근이라면 곤권은 공시적(共時的) 서술이라 하겠다. 권말에 마산의 장래에 대한 희망과 염려를 덧붙임으로써 사론, 지리지 성격에다 논설의 주제 의식을 가미함으로써 본 저술의 값어치를 배가시켜 준다. 가까운 장래에 실현되어야 할 마군마목(馬群馬木) 철도, 신시가지의 실현이 가까워지고 있다.

신마산 해안 간석지 매립, 마산포 각 도로 및 기타의 정비, 마산 민중의 소리 마산부의 위치, 유곽 문제, 중학교 문제, 마산우편국 문제, 등을 거론함으로써 당시 마산이 당면한 과제들을 적절하게 짚어 주기도 한다.

원저의 번역은 『마산번창기』의 경우와 같이 하동길(河東吉) 선생이 맡아주셨다. 재일동포 유학생으로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정치학과와 대학원에서 수학한 후 일본에서 교토국제중고등학교의 교장을 역임하고 한겨레신문에 상당 기간 투고하는 등 재야사학자로 활동하는 중이다. 일본 속의 가야국 자취를 찾는데 열중인 하동길 선생의 번역은 해일(解日)의 인환이기도 하다.

각주 작업 역시 『마산번창기』처럼 우리 지역사 연구와 기록의 전문가인 박영주 선생이 수행해주었다. 원저의 오류를 빈틈 없이 찾아서 수정한 내용을 각주에 충실하게 반영하였다. 마산의 지명이나 함안의 파수(巴水)로 오인한 절령(岊嶺)을 교정한 점 등은 이 지역 전문사가의 안목이 아니면 짚어내기 어려운 바이다.

끝으로 윤문과 해제는 창원학연구센터의 초빙연구원 한석태(韓錫泰)가 맡았다.

2021년 8월

창원시정연구원 창원학연구센터 초빙연구원 한석태<<<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2021년에 번역한 『馬山港誌』(1926) 중 첫 번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港誌』는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앞서 게재한 『馬山繁昌記』와 같은 스와 시로(諏方史郞)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