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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번창기(1908년) - 28(마지막) -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by 운무허정도 2022. 3. 14.

제10장  마산잡록잡황(馬山雜錄雜況) - 7

 

(20) 마산시(馬山是)

표제의 시(是)란 무엇인가.

시란 도리에 맞는 것, 곧 일반 사람들이 인정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방침을 말한다.

마산은 미두(米豆)가 풍요하게 생산되는 곳이니 쌀과 콩을 가지고 마산의 시(是)로 삼는 것이 좋다. 연해의 고기잡이의 이익(漁利)도 풍부하니 이것을 가지고 마산의 시로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항만은 태평양 안의 제3위의 최량 항만이긴 하나 군항이 있어서 상업 대항구로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한국인을 상대로 한 장사만으론 마산시(馬山是)로 삼을 수는 없다. 그래서 저자는 양조업(釀造業)을 마산의 시로 권하고 싶다. 술, 간장, 된장을 양조하는 양조지가 되어 한국의 12도에 판매토록 함으로써 미두와 어업과 합쳐서 마산시로 하고 싶은 것이다.

마산의 산과 바다는 청명하고 마산의 항만은 우수경승이며, 마산의 변두리에는 수많은 사적들이 있다. 옛 사움터도 유명하고 또한 달구경도 유명하다.

명승구적(名勝舊蹟)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본 시리즈 제3편 명소구적지(名所舊蹟志)에 기술하겠거니와 저자는 우선 이 산과 바다, 이 경승, 이 명소구적, 이 건강한 공기, 이 병 없는 토지를 가지고 마산 첫째의 시(是)로 삼고 실을 것이다.

이 마산의 시를 가지고 시찰이나 관광하러 오는 손님을 모시고 동양 제일의 곳임을 세계에 알리고 싶은 것이다.

미두, 어업, 양조는 마산의 부시(副是)로 삼고 싶은 것이다.

이 부시는 어떤 부분에서 바로 수익을 가져올지 모르나 그 수입은 일부에 한정되어 미치는 바가 넓지 못하다.

본시(本是)는 수익을 올리기에 시간이 좀 걸리고 그 파급이 간접적일 수도 있으나 돈 회전이 넓게 전파되므로 뼈를 마산에 붇고 마산을 고향으로 삼고 대대로 살아가려는 각오를 각자가 가져야 할 것이다.

 

<일제강점기 마산의 술>

 

(21) 수도회

진언종의 포교사 미츠미야 류코오(三宮隆晃) 스님이 이끄는 정신수양의 모임으로 고오보(弘法) 대사당(大師堂)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것이다.

당일에는 미츠미야 스님이 선(禪) 강의를 하고 또한 이 책의 저자 부고츠(武骨)도 대학부터 사서(四書)를 통관하는 강의도 하고 때때로 일본 황도(皇道)에 관한 강의를 하기도 했다.

본원사의 히다카(日高) 스님, 정토종의 미스미다(三隅田) 스님도 앞으로 강사로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정신 수양으로서는 들어야 할 유익한 모임이라고 생각한다.

 

(22) 마산신보(馬山新報)

마산의 어두운 면을 비추어 줄 등불이 되려는 격일 발간의 마산신보가 10월 1일 하마마치(濱町) 3정목의, 배들이 많이 모여 있는 데서 탄생하게 된다.

그 갈 길이 관능주의(官能主義)인지, 민권주의(民權主義)인지는 나와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사청이나 민단의 공포식(公布式)의 신문지가 될 것이라는 예상은 지금이라도 되고 있긴 하다.

그 출범에 관해 여러 이야기가 오가지만 좌우지간 고리타분한 말이 되겠으나 사회의 목탁이라는 사실, 기자나 신문사 뇌리에서 한시라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불이 되어, 또한 무고한 일을 제어하는 칼이 되어 붓으로 사람의 목숨을 좌우하는 일이 없도록 아주 신중해야 하면서 오로지 마산을 위해 그 진가를 발휘해 그 발전책을 논하고 사업계의 부진한 형황을 만회하는데 진력해 줄 것을 바라는 것은 거류민 전반의 마음일 것이다.

단풍이 아직 덜 익었건만 가을은 오고 공기는 맑고 달이 밝은 좋은 계절에 시간을 알리는 뻐꾹새 소리같이 경치가 수려한 이 진해만 일대에 이제야 올리게 됨은 마산을 위하여 아니 마산이사청관 내 거류민을 위해 경하할 만한 일이다.

마산신보 만세, 마산 거류민 만세.

 

마산의 노래

 

거동노부(去洞老父) 스와 쇼오센(諏方松仙) 초(草)하다.

 

(1) 신공황후(神功皇后) 강탄(降誕), 고운대(孤雲臺) 등을 노래함

(2) 추산정(騶山亭), 안산(安産) 기원의 터 등을 노래함

(3) 유서 깊은 마산포(馬山浦), 신시포(新市浦), 월영 신월 완월, 척산 교방 상남 등을 노래함

(4) 무학산(舞鶴山) 신도안, 구산(龜山) 일화봉(日和峯), 성둔산(星屯山), 별언덕과 공원터 등을 노래함

(5) 까치나루(鵲峴), 고노에(近衛) 언덕 등을 노래함

(6) 월영대(月影臺), 돝섬 등을 노래함

(7) 중포병영(重砲兵營), 월포(月浦), 장군령(將軍嶺) 등을 노래함

(8) 원군(元軍) 신수 만, 몽고정(蒙古井) 등을 노래함

(9) 마산성지(馬山城址), 정한역(征韓役) 등을 노래함

(10) 천자봉(天子峯) 일본 벚꽃 등을 노래함

(11) 고깃배(魚舟), 상선, 군함, 진해만 등을 노래함

(12) 마산철도 기점(起點), 창원 진영 낙동철교(洛東鐵橋) 등을 노래함

(13) 소학교(小學校) 등을 노래함

(14) 상업기관, 상업회의소(商業會議所) 등을 노래함

(15) 마산이사청(馬山理事廳), 경찰서, 거류민단역소(居留民團役所) 등을 노래함

(16) 민단의원(民團議員) 소집 등을 노래함

(17) 서기(書記), 평민주의(平民主義) 역소(役所) 등을 노래함

(18) 삼한사온(三寒四溫), 삼음사청(三陰四晴) 천혜의 마산포, 산자수청(山紫水淸) 등을 노래함

(19) 포성(砲聲) 진동, 군함(軍艦) 위무당당 등을 노래함

(20) 천공(天空) 쾌활월징(快闊月澄) 등을 노래함 (끝)<<<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올 초에 번역한 『馬山繁昌記』(1908) 중 스물여덟 번째로 마지막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繁昌記』는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단행본으로는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항 이후 마산으로 몰려 들어온 일인들의 수는 1908년 6월 3천355명에 달했다. 같은 통계로 한인은 7천515명이었으니 당시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책의 제목처럼 당시 마산은 '번창'해 가고 있었다.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에게 마산은 꿈을 주는 신도시였다. 책의 제목과 내용은 이런 시대 상황과 그들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