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옛날과 지금(古今)
진해의 고금은 소생이 말할 필요 없이 토지 그 자체가 말하고 있다. 토지에 부수하는 건축물이 말하며 사람이 말하고 있다.
특별히 고금이란 항목을 지어 말할 필요까지는 없는 줄 안다. 새로 발전하고 있는 곳이라 모든 것이 생생하다.
현재의 건축물과 인간을 제외하고 자연을 상기한다면 진해의 옛적을 알 수가 있을 터이며 지금은 보는 대로 들은 대로이다.
지금 즉 현재에 관해서는 건축물과 인간이 다 말하고 있다.
사람의 변전을 반영해 '사흘 안보는 사이에 피는 벚꽃'이라는 비유가 있듯이 토지에도 '시골이 서울이 된다.'는 일이 있다.
진해는 소위 시골이 서울이 된 격이다.
다만 그 변하는 속도가 아주 빠르다는 점이 딴 데와 다르며 그 다르다는 점이 새롭고 그리고 생생하다는 것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29. 안락경(安樂境)
안락경이라 하면 약간 활동무대에서 떨어져 있는 것 같이 생각될지 모르나, 여기서 안락경이라 함은 부근의 비봉리, 경화동, 덕산 등을 가리키는 것이다.
신시가지가 활기찬 세계임에 비해 조금 가라앉은 기분을 갖게 한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말한 것에 다름 아니하다.
• 비봉리
비봉리는 마산에서 오는 기선이 맨 먼저 기항하는 곳이며 호수(戶數)는 백 호 정도이다. 그 종류를 막론하고 장사는 상당히 번성하며 방비대 이전(移轉) 후부터는 경기가 아주 탈바꿈했다. 사사노, 다카스(笹野, 高須) 두 통조림 회사를 필두로 요리점, 음식점, 잡화상 등 없는 것이 없다.
• 경화동
경화동은 해군에서 신시가지 부근에 산재하고 있었던 11곳 마을 한인에게 퇴거를 명령한 대신 한 호당 45평 씩 주게 된 한인 마을인데 지금은 내지인도 많이 살게 되어 3일, 8일의 장날에는 상업 등도 비교적으로 활발하다. 활동사진 등의 흥행이 끊임없이 행해져 있다. 시가지와 더불어 경기가 좋은, 살기 좋은 곳이라 다들 얘기한다.
• 덕산
덕산은 행암만에서는 배로 갈 수 있으며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어류공동판매소, 철관시험소, 주재소(파출소) 등이 있다. 이시다(石田), 오오모토(大本)란 두 여관은 항상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니 조금 시골이긴 하나 일감이 상당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해수욕장으로서는 지극히 적당한 곳이라고 한다.
이 글은 2022년 창원시정연구원이 1910년대와 20년대 진해의 모습을 담은 세 권의 책을 번역하여 하나로 묶어 낸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3권 『근대 문헌 속 진해』 중 『진해』 부분이다. 1912년 출간되었으며 저자는 스기야마 만타(杉山萬太)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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