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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진해』(1912) - 26. 러·일의 착안점

by 운무허정도 2025. 4. 21.

26. 러·일의 착안점

 

진해만이 러·일 양국의 착안지점이었음은 여러 나라 사람들이 두루 아는 바이다.

마산포 개항은 광무 2년(명치 31년, 1898) 5월 26일 한국 황제의 칙재(勅載, 임금이 옳고 그름을 가림)로 군산, 성진과 함께 허가되어, 각국거류지를 정박지에 가까운 월영동(月影洞)과 신월동(新月洞) 사이에 정하고, 또한 감리자를 두고 개항 준비에 착수했다.

그런데 러시아 공사인 파블로프(아래 사진) 씨는 광무 4년(1900) 3월 30일, 한국정부와 두개의 조약을 체결한 바, 그 첫 번째로 한국은 러시아에 새로 개항할 마산포에서 거류지로부터 거리 3마일 이내에 러시아 동양함대를 위한 석탄저장소 및 해군병원 각 한 개씩을 설치할 것을 허가하였다.

 

두 번째로 러시아는 한국정부에 대해 결코 거제도 및 그 대안 육지 및 그 부근의 여러 섬의 조차(租借, 특별한 합의에 따라 한 나라가 다른 나라 영토의 일부를 빌려 일정한 기간동안 통치하는 일)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은 러시아에 대해 동 지역을 타국에 조차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리고 파블로프 공사는 마산포 조차지를 러시아 동양함대의 동기(冬期)계류소(겨울 시기에 함대를 말뚝 등에 붙잡아 매어 벗어나지 못하도록 해놓는 장소)로 삼는다는 것을 한국정부에 언명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파블로프 씨는 광무 3년(1899) 5월, 러시아동아사령관과 마산포에서 회동해, 진해만 가운데서 가장 명승지로 알려진 자복포 주위 약 6만여 평에 표목을 박아 이 땅을 사들이려 했다. 그런데 일본 이주민이 선수를 치고 이곳을 매입한 바람에 한 바탕 분의(어수선하게 뒤섞인 의론)가 일게 되었다.

동년 11월 거류지 공매를 수행했는데 러시아정부 앞잡이와 일본인 주민 사이에 대경쟁이 벌어져, 전대미문의 고가로 양국인 사이에 낙찰되었다.

이것이 한 때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한 마산포사건이며, 결국 쓰시마해협 제해권을 얻기 위해 그 근거지를 구한 것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가 진해만을 얼마나 탐내고 있었는지 이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러시아 전관 거류지인 율구미만 일대는 각국 거류지의 남쪽에 인접해, 앞에 월영도(月影島)가 있고 영사관, 호텔 등 서너 개 건물이 있다.

그 면적은 30만여 평에 불과하다.

러시아 영사관은 부산에 새로 건축하여 마산에서 철수할 계획이라고 전해온다.

또한 러시아가 지형을 살펴보고 측량 설계했던 구 진해 부근은 군항축성에는 가장 적합한 동시에 모든 공사 비용도 생각 이상으로 소액으로 완성시킬 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진해 땅에 군항을 축조하기에 이른 이유는, 구 진해는 그들이 먼저 측량설계 해 지리를 훤히 알고 있으니까 굳이 안이한 길을 택하지 않고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 진의는 알 수 없지만 혹여 그럴지도 모른다.<<<

 

이 글은 2022년 창원시정연구원이 1910년대와 20년대 진해의 모습을 담은 세 권의 책을 번역하여 하나로 묶어 낸 지역사발굴연구 교양총서 3권 근대 문헌 속 진해』 중 진해』 부분이다. 1912년 출간되었으며 저자는 스기야마 만타(杉山萬太)이다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