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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진 도시이야기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1

by 운무허정도 2021. 1. 4.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4) "한 집에서 46년을 살아오면서" ------------------------- 김○○

1940년생

마산회원구 회원동 598-16

날짜 : 2015년 1월 6일

장소 : 조합사무실, 자택

 

- 반갑습니다. 이 동네에서 아주 오래 사셨다고 들었습니다. 동네의 옛날 얘기를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살고 계신 데는 언제부터 사셨습니까?

= 우리 동네 내력을 역사로 남겨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여기 69년도에 들어 왔습니다.

- 예. 정말 오래 되었네요.

= 68년도에 집이 완공 되고 69년도에 입주가 되었는데 우리도 69년도에 들어왔으니까 올해가 46년째인가 그럴 겁니다.

여기가 원래 나락 심고 하던 논이고 미나리꽝이고 그랬다고 합디다. 몇 사람 업자들이 모여 가지고 택지로 개발해서 집 서른두 동을 딱 한꺼번에 지어 가지고 개개인 한테 팔았어요. 매월 얼마씩 부금을 넣어야 하는데 14년 부금이었을 겁니다.

- 여기 주택들이 평수가 다 비슷해 보이던데요?

= 모서리에 있는 집 같은 경우는 조금 어중간 하니까 몇평 더 있어도 그외는 거의 다 비슷해요. 등기상으로는 서른다섯 평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서른여덟 평입니다. 분양할 때는 서른다섯 평인데 그 뒤에 재어 보니까 우리 게 평수가 더 있어요.

똑같이 짓는다고 했는데 우리 집은 세 평이 더 있어요. 그래 69년도에 입주를 했다가 그 뒤에 팔고 나가고 새로 들어오고... 우리는 한번도 옮긴 적이 없었고요.

- 당시에 여기 오셨을 때 이 동네를 뭐라고 불렀습니까?

= 공영주택입니다.

- 그러면 수재민 주택이라는 것은 잘못된 얘기군요? 여기를 수재민 주택이라고 하는 분들도 있던데요?

= 예. 수재민 주택은 아닙니다. 우리가 집을 사서 들어왔는데 수재민 하고는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 이사 들어오고 나서 수재가 났습니다. 그때 도랑가 집들이 홀라당 떠내려가고 그랬습니다.

우리가 여기 오고 얼마 안있어 가지고 사태가 났어요. 큰물이 졌거든요. 우리 동네도 얼쭉 담았어요. 우리 집은 조금 높다 보니깐 안그런데 낮은 집은 방에까지 물이 들어갈 정도였거든요.

그래 우리 여기는 조금 높고 도랑가는 조금 낮습니다. 그러니까 벽을 뚫어가지고 물 빠져나가게 하고 그랬거든요. 그때 수해가 나서 이 밑에는 쓸었어요.

그래 그 사람을 이동시키기 위해서 화란주택이 지어졌습니다.

그때는 내가 젊었을 때인데 천주교에서 화란주택이란 거를 지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 있어요.

- 화란 즉 네덜란드에서 원조를 하고 천주교에서 관여를 해서 주택을 지었다고 들었습니다.

= 맞아요. 거기에 들어간 사람들이 수재민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처럼 주택 단지로 지어진 것은 여기가 처음이었거든요. 그 당시에 보로꾸로 지은 게 아니고 전부다 벽돌로 지은 겁니다.

그때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 동네 집을 보고 우와~ 하고 그랬어요. 슬라브로 깨끗하게 지으놓으니까 전부 다 우와~ 하고 놀라고 그랬거든요.

여기 들어온 사람들도 교감 선생님, 공무원,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당시로는 고급주택이었어요. 처음 지을 때부터 단층 슬라브였는데 우리 집은 그때부터 하나도 안변했습니다.

지금 보면 이층 올린 데는 다 새로 지은 거고 우리는 단층 그대로입니다. 조금 달아냈을 따름이지 나머지는 거의 원형 그대로라고 봐도 됩니다.

그리고 난 뒤론 이 동네는 큰 변화가 없었어요. 집 다 들어서고 난 뒤로는 딱 그대로 입니다. 지금은 좋은 집들이 많으니까 이건 집도 아닙니다. 오두막이지. 하하. 사십 년 전에는 진짜로 좋았습니다.

- 그럼 69년도에 들어오셨을 때 이 밑에 무학상가도 없었겠네요?

= 그렇죠. 우리 오고 나서 그 뒤에 무학상가가 들어섰습니다.

이 주변에는 이 동네만 오물오물 있었고 위로는 전부 논이고 밭이었습니다. 이 위에 올라가면 태양탕 있지요? 거기는 솔밭 비슷하게 언덕받이가 되어 가지고 묘지도 있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태양탕이 들어오고 그 위에 또 황금탕이 지어지고 그랬어요. 지금은 남일탕이 없어졌습니다만 옛날에는 거기로도 목욕하러 다니고 했거든요.

주공아파트, 지금 블루밍 안있습니까? 거기도 다 언덕받이 비슷한 그런 상태였어요. 도랑 건너에 집이 조금조금 있고 회원국민학교가 있었고 그런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조금 아래 미나리꽝 있는 그 언덕으로 집이 몇채씩 있었어요. 부분부분 조금 있고 또 논이 있고 그랬어요. 그때는 차가 없으니까 부림동으로 내려 가려면 마을 가운데 샛길을 지나서 모 심어놓은 논길을 지나서 걸어다녔거든요.

이 아래 북마산역에 가려고 하면 사선으로 질러가는 길로 다녔습니다. 구마산역 쪽으로 해서 공설운동장, 양덕 한일합섬으로 가려고 하면 문디고개라 하는 데가 있었는데 그 길로도 넘어 다니고 그랬어요.

거기도 약간 언덕받이처럼 그랬는데 온통 흙구덩이였어요. 산호동 학교 뒤로 그쪽으로는요.

- 여기 오셨을 때 주변에 작은 공장은 없었습니까?

= 엄청 못사는 동네였어요. 여기가 옛날에 산동네 아닙니까? 그러니까 큰 공장은 없었어요. 도랑 따라 내려가면 저쪽 건너편에 건빵 공장, 또 회원초등학교 쪽에는 장갑 짜는 공장 그런 잔잔한 공장들이 있었어요. 지금은 다양한 과자가 나오지만...

옛날에 뻥튀기 비슷한 과자 안있습니까? 그 만드는 공장이 언덕받이에 하나 있었습니다. 여기서 얼마 안올라갑니다. 무학농장 올라가는 길 쪽에 지금 형제상가 근처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 거기에 과자 공장이 있었어요.

거기 가면 과자를 많이 줬어요. 모양을 만들어서 튀기는 과자인데 그런 걸 사러 간 적이 있어요. 애들이 어릴 때니까 한 70년대 중반쯤 되겠네요.

- 그 당시에 무학농장이 아주 유명했지요?

= 그렇죠. 무학농장은 처음에 누가 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나중에는 한일합섬에서 인수했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왔을 당시에는 무학농장 관리 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 당시는 참 좋았어요. 마산에서 유명한 유원지 아닙니까?

봄 되면 사람들이 여기 얼마나 많이 온지 모릅니다. 앵기밭골 하고 무학농장은 또 다릅니다. 위치가 약간 다르거든요. 무학농장은 성인들 술 먹고 노는 그런 위주고 앵지밭골은 초등학생 중학생 소풍 가는 장소로 많이 이용 됐어요.

그때 무학농장이 얼마나 많이 알아줬다고요. 마산시민이 진짜 다오다시피 했어요.

우리가 신마산에서 살았는데 걸어서라도 여기까지 왔어요. 봄 되면 꽃이 많이 피고... 봄 되면요. 여자 두어 명 모이면, 우리 무학농장에 치마 주워러 가자, 이럴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유명했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여자들이 술 먹고 놀다 보면 옷상태가 형편없이 되고 그렇거든요. 치마도 내팽겨치고 가버리고 하니까 그런 말이 나온 겁니다. 그만큼 여기가 유명한 곳이었어요.

무학농장 옆으로 앵기밭골 쪽에는 젖소도 유명했어요.

- 옛날에는 이 앞 도랑에서 빨래도 하고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하고요. 그 송사리 같은 고기도 잡고 그랬어요. 물이 얼마나 깨끗했다고요.

70년대에 태어난 애들은 여기서 목욕 했어요. 우리 애들도 데리고 나가 씻기도 그랬거든요. 다라이에 담요 같은 거 들고 가서 밟아서 행구고 그랬어요.

그리고 그 당시만 해도 수도물이 제대로 안들어 왔거든요. 우물도 안파져 있었거든요. 집 지었을 때 수도는 넣었는데 수도물이 잘 안나왔습니다. 격일제로 나왔거든요. 열두 시에 나올 때도 있고, 잠시잠시 주고 그랬거든요. 물이 없어 가지고 물 이로도 많이 댕기고 그랬어요. 온 동네 댕기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주로 도랑가에서 빨래를 씻었지요.

- 여기 도랑에는 샘이 없었습니까?

= 지금 위에 다리 있지요? 이 앞에 다리 말고 위에 다리, 그 바로 밑에서 물이 나왔어요. 얼마나 물 좋았다고요.

겨울에도 얼지않고요. 여자들은 거기 가서 빨래 씻고... 밤되면 저녁 묵고 설걷이 다 해 놓고, 아이들 다 그거 해 놓고 거기 가서 빨래 씻고 목욕하고 오고 그랬어요. 여름에는 시원하고...

- 그럼 그 샘을 뭐라고 부르지는 않았습니까?

= 물이 솟으니까 물난데라 그랬지요.

여자들은 우리 저 위에 목욕하러 가자, 하면서 여자들 혼자는 안가고요. 너는 씻으로 안갈래? 그랬어요. 다리 밑에 물이 송송송 났거든요.

거기서 내려오면 공동샘이 또하나 있었거든요. 옛날에 설훈 집 옆에 깊지는 안해도 우물이 하나 있었어요. 그 물을 이고오고 그랬어요.

지금 도랑 건너 미장원이 하나 있는데 그 미장원 뒤에 조그만 기와집이 있었고 그 앞에 설훈 집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 집이 남아있을 겁니다.

지금 민주당 국회의원하는 그 설훈입니다. 막내 동생 하고 마고 동기거든요. 이 집에도 놀러 오고 했어요.

또 이 밑에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메워져 있어요. 그 우물은 얼마 안됐어요. 우리 집 굼티 있는 데로 나가면 대문에 키위나무 있는 집 그 안에 우물이 있었어요.

그 우물이 너무 좋았어요. 거기로 물 뜨러 가기도 하고 그랬죠. 옛날에는 조그만 터만 있으면 방을 지어서 남 세주고 그랬는데 그 구석에 샘이 있는데 참 물이 좋더라고요. 이 동네가 옛날에는 참 물 좋다 했는데 지금은 집들이 많이 들어서서... 그때만 해도 골짜기 아닙니까?

옛날에는 회원동 산다고 하면 사람들이, 아이고 지금도 회원동 그 골짜기 사나? 이런 말을 했어요. 실제로 참 못사는 동네였어요. 택시도 안올려고 했습니다.

우리가 제사 모실려고 제사장을 봐서 택시 불러서 회원동 정자나무로 가자고 하면 택시를 딱 대다가도 가버립니다. 세 대쯤 보내야 택시를 잡을 수 있었어요. 그랬는데 이제는 서로 올라 합니다.

하하. 회원동 정자나무(아래 사진), 그 나무가 육백 년 됐다고 그러는데 그게 많이 알아줬거든요. 무학농장 가는 길 정자나무라 하면 알아줬거든요.

 

 

- 하나 더 여쭤 보겠습니다. 예전에 마포중학교라고 들어보셨습니까?

= 마포중학교 알지요. 그 자리가 어디인가 하면 무학자이 있는 그 자리입니다. 마포중학교가 야간도 있었고 주간도 있었고 그랬는데... 그 주위에 있던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르지요.

없어진지 오래됐는데 그래도 거기가 추억이 어린 곳이요. 우리 때는 마중이나 동중 이런 데는 시험을 치고 들어가야 하니까, 또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 배운다고 마포중학교에 많이 다녔어요.

그런 얘기하면 눈물 흘리는 사람 많을거요. 참 못살아서... 먹을 것도 없었거든요. 그래도 배우겠다고 밤에도 오고... 신마산에서도 여기 오고 그랬어요.

- 그리고 혹시 이 공영주택 입주 당시 사진이라든지 옛날 이 동네 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는지요?

= 그때는 카메라도 귀했어요. 애들 운동회 한다고 카메라 하나 빌리려고 해도 사진관에서도 잘 대여 안해줬거든요. 그러니까 여기 사진 남기고 그런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사진 찾아봐 달라고 얘기하길래 지금 좀 찾아 보니까 옛날 사진이 몇장 있네요. 아이들 어릴 때 사진인데 한번 보십시오. 이 사진은 결혼 사진인데, 이 날이 1969년 12월 21일입니다. 성호초등학교 앞에 있던 청락예식장에서 식을 마치고 우리 집사람이 이 집으로 들어오는 사진입니다.

- 예. 사진 찍은 날짜가 분명하고 또 그 당시 주택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정말 귀중한 사진입니다. 앞으로 잘 활용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계획대로 잘 추진되면 몇년 안에 새로 아파트가 들어설 것 아닙니까? 이 동네서 오래 사셨는데 남다른 감회가 있을 것 같은데요?

= 이 동네 서른한 집 중에서 우리가 제일 오래됐어요. 이사도 안가고 지금까지 사는 집은 우리밖에 없습니다.

내가 고향이 월영동 만날고개 올라가는 데 거깁니다. 큰 당산나무 밑 동네인데 거기서 태어났어요. 그런데 거기보다 여기서 더 오래 살았습니다. 이 동네서 늙어간다 아닙니까?

지금 이 사업이 빨리 되었으면 하는 게 시작한 지가 벌써 십 년이 넘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기록해 두는 것은 참 좋은 겁니다. 왜냐하면 이걸 안해 두면 이 역사가 땅에 묻혀버리고 모른다니까요.

그러니까 옛날에 이런이런 게 있었다는 이게 시의 역사거든요. 나도 마산시청에서 삼십몇 년 근무 했습니다. 청소과, 세무과, 공보실 안가본 데가 없습니다.

또 중앙동 동서기부터 시작해서 교방동, 회원2동, 월영1동, 서성동, 저 구산면 면서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렇게 역사를 밝혀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앞으로 재개발이 잘 진행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 하천이 깨끗해져서 빨래까지는 아니더라도 송사리 노는 거는 한번 봐야 안되겠습니까?

= 그리 될 날이 오겠지요.

- 오늘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