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얼음장수의 미스터리
3․15의거 역시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일어났던 다른 대규모 시민항쟁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기존 분석은 대부분 거시 사회사 분석으로서 항쟁 참가자들의 정의감이나 불만이 저항적 행동으로 표출되도록 만든 사회적 요인이 무엇이었던가를 규명하는 데 치중해왔다. 따라서 3․15의거의 경우 “왜 하필 마산인가”라는 의문을 해명하는 데 집중되었다.
그런데 특정 개인의 항쟁 참가, 예컨대 “왜 하상칠인가”라는 의문에 답하려면 이러한 사회적 요인보다 개인적 요인이 더 중요하다.
사회적 요인이 모든 참가자에게 해당되는 공통 요인이라면, 개인적 요인은 특정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개별적인 특수 요인이다. 양자를 동시에 살펴보는 것은 3․15의거를 좀 더 복합적이고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는 특정 사건에 대한 기존의 거시 사회사적 분석에 미시 문화사적 분석을 부가하려는 시도의 일환이기도 하다.
<신을순과의 결혼식 사진 / 1953년 가을>
1. 그는 왜 시위에 직접 참가했던가
1) 사회적 요인
마산 3․15의거를 다룬 문헌들에서 “왜 마산인가”라는 질문은 가장 빈번히 제기되거나 다루어져왔다. 『3․15의거 학술논문총서』에 실린 많은 글들도 이 질문을 예외 없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당시 한국의 모든 도시가 이승만 정권의 정치적 폭압, 원조경제의 위기에 따른 경제적 곤란, 자유당의 노골적인 부정선거 획책 등 대동소이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하더라도 그 표출 강도는 지역이나 도시에 따라 달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산 지역에서 이러한 객관적인 사회적 요인들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작용해 유혈시위가 발생하도록 만든 것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논자에 따라 구조적 요인과 상황적 요인으로 또는 지역적 요인과 역사적 요인으로 구별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정치, 경제, 사회 및 역사적 요인으로 나누어본다. 요컨대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사회적’ 요인은 이 모든 요인을 포괄하며 이 글의 목적상 사회사보다는 미시사에 관심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주요 요인들을 간략하게 요약함으로써 뒤이은 ‘개인적’ 요인의 검토를 위한 배경으로 삼고자 한다.
첫째, 역사적으로 마산 지역은 조선 말기 개항장이자 구미 열강의 조차지로서 근대 문물에 상대적으로 일찍 눈을 떴고,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 노동운동, 통일운동, 무정부운동 등 사회운동의 주요 중심지의 하나였다.
일본인들과 상권을 둘러싼 충돌도 첨예했기에 일반인도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이 상당히 높았다. 강만길(1999)은 이러한 역사적 경험이 마산인의 진취성과 저항성을 키워왔음을 강조한다.
둘째, 사회적 측면에서 해방 직후의 귀환동포와 6.25전쟁 기간의 피난민 중 상당수가 마산에 정착해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난민촌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날품팔이, 고아, 부랑아 등 최하층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인구의 사회적 구성상의 특징에 주목한 이은진(1998)은 정치적 억압, 경제적 곤란, 새로운 사회공동체의 형성이 지역사회의 유동성과 급진성을 촉진한다고 분석했다.
셋째, 경제면에서 마산은 1950년대의 수입대체 기반 경공업화 과정에서 상공업도시로 빠르게 발전했던 만큼 동 연대 말 미국 원조의 감소에 따른 경제 불황(서익진, 2000)의 여파가 상대적으로 더 컸을 것이다.
높은 실업률 등 시민의 경제적 불만도 상대적으로 더 강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넷째, 정치적으로 민주당 허윤수 국회의원의 변절(자유당 입당)이 미친 다면적인 영향이다.
이 사건은 허윤수와 자유당에 대한 시민의 반감을 부추겼을 뿐만 아니라 자유당에게는 충성경쟁으로 부정선거 획책을 위해 공무원뿐만 아니라 경찰과 반공청년단까지 대거 동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민주당에게는 상대적으로 선명성이 강한 신파 세력이 선거운동을 주도하게 만들어 의거의 발단이 된 전국에서 가장 먼저 선거포기 선언을 하고 가두시위를 조직하게 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이은진, 1998).
이러한 요인들을 배경으로 3․15 선거일 직전 마산 시내 분위기는 가히 폭풍전야의 상태였다고 평가된다(홍중조, 1992: 108).
지역의 정보나 소문이 집결되는 도심(번화가이자 유흥가)에서 장사를 하던 중년의 하상칠은 이러한 시내 분위기나 민심 동향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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