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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화폐민주주의연대 뉴스레터 - 9 / 서익진의 Q&A

by 운무허정도 2022. 10. 8.

서익진의 Q&A - 은행과 금융은 왜 불안정한가?

 

 

현행 통화 공급(발행 및 배분) 시스템이 지닌 가장 기본적인 모순은 이자 불입용 돈의 부재가 경제성장을 강제한다는 사실이 아닐까 합니다. 이 점은 앞서 이자 미스터리를 다룬 뉴스레터들에서 이미 다룬 바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현행 통화 공급 시스템에 내재된 또 다른 중대한 모순인 이른바 ‘금융 불안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매력 덩어리 은행업과 예금 유치 경쟁

은행업(banking)은 기본적으로 남의 돈을 싸게 빌려와 다른 사람에게 그보다는 비싸게 대출하거나 운용해서 그 차익을 수익으로 삼는 돈벌이 사업으로 알려져 있죠. 돈이 출현한 이래 금융업은 번창일로를 달려왔으며,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금융 자본주의라고 규정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금융 중개업을 주도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은행업이 매력 덩어리인 까닭은 금융 중개와 통화 창조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데 있지 않을까요?

가지고 있지도 않은 새 돈을 만들어 빌려줄 수 있고, 더욱이 이로부터 이자라는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니까요. 정말 멋진 업종 아닌가요? 이러한 특권 및 특혜에다가 누구에게 얼마를 어떤 조건으로 빌려줄 것인지를 결정함에 있어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는 자유를 포함시킨다면 달리 무엇이 금상첨화일까요?

은행들은 새 돈을 만들 특권을 누림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예금 유치 경쟁을 하는 게 앞뒤가 안 맞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러분은 왠지 아시나요? 어디에도 해명이 없어서 제 나름의 머리를 굴려 보았습니다.

“은행 시스템 전체로 보면 대출이 새로운 예금통화를 창조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A은행이 대출을 통해 창조한 예금이 A은행에 들어온다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부분지급준비금 제도 하에서 신용창조를 하려면 지급준비금이라는 밑돈이 있어야 하는데, 논리상 은행들이 신용창조로 만들어낼 수 있는 돈은 밑돈에 법정지준율의 역수를 곱한 것 만큼이다. 이건 앞선 뉴스레터에서 이미 설명드린 바 있죠. 최초의 지급준비금은 중앙은행이 은행들에게 빌려준 본원통화인데, 이것이 주어져 있을 경우 대출을 통해 창조된 예금통화를 많이 확보한 은행이 더 많은 은행통화 즉 예금통화를 창조할 수 있고, 그만큼 더 많은 대출을 통해 더 많은 이자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스템의 논리와 개별 행위자의 논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요렇게 해석해보았습니다. 물론 앞선 뉴스레터에서 말한 것처럼 중앙은행은 은행들의 자유로운 – 그러나 당연히 대출수요에 따라 - 신용창조 활동으로 지준금이 부족해지면 사후적으로 본원통화를 발행해 빌려줌으로써 은행들이 항상 법정지준율을 준수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어쩌면 이것도 엄청난 특혜라 할 수 있겠네요.

이제 시스템 전체로서는 특정 시점에 신용통화 창조 최대액이 정해져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은행들은 신용 창조의 밑돈이 되는 예금을 더 많이 확보하려고 경쟁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만기 불일치 : 은행업의 기본 기능에 내재된 불안정성의 근원

그리고 은행이 통화창조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해도 다른 모든 경제주체들과 마찬가지로 대차대조표의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은행 대차대조표의 대변(즉 부채)은 주로 단기로 조달되는 자금(주로 예금과 차입)으로 형성되며, 차변(즉 자산)은 장기 대출(주로 주담보) 또는 장기 자산(프로젝트 금융)으로 형성되죠. 여기서 은행의 숙명이 나옵니다. 장단기 만기 불일치에 따른 지급불능(default) 사태, 그리고 이에 따른 신뢰상실로 인한 은행부도(bank run)의 발생이라는 항상 잠재된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 즉 이른바 ‘만기 일치’를 도모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여기서 만기 일치라는 말은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기가 서로 다른 채권과 채무를 물리적으로 일치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니까요.

따라서 만기 일치는 단기 부채의 지불액 흐름과 장기 대출 자산의 수익 흐름을 대차대조표 상에서 시간적으로 일치시킴으로써 지출만큼 수입을 확보해 지급불능 사태를 방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건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거나 다름없네요. 이러한 은행업의 근본적인 불안정에 대한 대비책들이 역사적 경험들을 통해 발전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은행 간 콜 시장, 중앙은행 차입 프로그램, 심지어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역할이 그러합니다. 그럼에도 은행의 역사는 부도와 파산으로 점철되어 왔습니다.

 

엔 캐리 트레이드

엔 캐리 트레이드(yen-carry trade)라고 들어보셨나요? 25년 전인 1997년 말 이른바 ‘IMF 외환위기’ 이전에 주로 종합금융회사(종금사)사 이것을 많이 이용했죠. 당시 일본 금리가 거의 0%에 가까왔기에 일본의 은행에서 단기로 차입한 돈을 한창 경제개발에 열중이던 동남아 나라들에서 부동산 등 고수익 자산에 운용했죠.

한국 종금사들에게 돈을 빌려준 일본은행들이 어떤 사정으로 - 의도적인지 아닌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만, 당시 일본 은행들은 마침 약속했던, 8%로 높아진 BIS 자기자본 비율을 맞추기 위해 대출 회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 있다면, 미국이 한국에 본때를 한 번 보여주기 위해 일본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말도 있죠 – 해마다 말없이 해주던 만기연장(roll over)을 더 이상 거절하고 원금 상환을 요구하니 한국 종금사들의 만기 불일치 문제가 대규모로 불거졌죠.

이것이 당시 외환위기의 중요한 한 측면입니다. 종금사들이 유동성 내지 채무 위기에 빠지자 이들을 자회사로 운영하거나 지분을 가지고 있던 시중은행들도 덩달아 곤란에 빠졌죠. 이렇게 단기채무 상환용 달러 수요가 급등하니 환율은 치솟을 수밖에 없었지요. 해외에 투자된 장기 자산이 아무리 많더라도 당장 달러 현금을 확보할 수 없으니 문제가 된 겁니다. 흑자 대기업이나 부자도 부도를 낼 수 있는 까닭입니다.

 

지급결제 네트워크와 은행들 간의 상호의존 그리고 시스템 위험

오늘날과 같은 신용화폐경제에서는 실물거래의 대부분이 현금에 의한 즉각 지불(요즘은 휴대폰 앱을 통한 계좌이체)보다는 신용을 바탕으로 한 외상으로 이루어지죠. 그 수단이 전통적으로는 수표나 어음이고 현대적으로는 카드죠. 그런데 이것들은 사실상 차용증서(또는 채무증서)라는 유가증권이지 현금이 아니죠.

수표나 어음은 지불(지급, payment) 수단이긴 하지만 채무의 최종 청산 즉 결제(settlement) 수단은 아니죠. 오히려 이것들은 채권-채무 관계의 존재를 증명하는 수단입니다. 이러한 증권에 의한 지불은 그 수취자가 은행이나 발행자에게서 현금(현찰 또는 예금)으로 무사히 바꿀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화폐 지불은 부도와 전혀 무관하지만 증권 지불은 부도의 가능성이 남아 있죠.

비 은행 주체들이 거래 대금을 증권으로 지불하면 이 채권-채무가 은행 간 채권-채무로 전환되고, 이 은행 간 채권-채무는 매일 정산됩니다. 이 정산이 무사히 이루어지면 즉 화폐로 지불이 될 때 비로소 비 경제주체들 사이의 거래에 따른 채권-채무 관계도 완전히 청산되는 겁니다. 따라서 수표나 어음으로 지불한 사람은 만기에 이 증권이 화폐로 전환될 수 있도록 자신의 은행계좌 잔고를 충분히 유지해야 하는 겁니다.

이처럼 신용화폐경제에서 일상적인 실물 거래에서 발생하는 지급 (지불, payment)은 은행들 간의 결제(settlement) 네트워크로 연결됩니다. 한 나라 전체에서 거래로부터 발생하는 지불(채권-채무의 발생)과 결제(채권-채무의 청산)가 이루어지는 방식 전체를 지급결제 시스템이라 합니다. 이 시스템의 최상층에 중앙은행이 위치합니다. 진정한 화폐(돈)의 창조자이니까요. 아, 물론 현행 시스템에서 중앙은행은 돈 중에서도 현금통화(지폐와 동전)만 발행하고 나머지 예금통화(은행계좌에 들어있는 수치)는 민간은행이 대신 발행하도록 하고 있다는 사실은 망각해서는 안 되겠죠.

이처럼 은행은 중앙은행이 관장하는 지급결제 시스템의 작동에 직접 참가해 복잡한 채권-채무 관계를 청산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은행이 없다면 이런 사회적 편의 시설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거래는 물론 경제 전체가 마비될 수 있죠. 문제는 이러한 은행들 간의 복잡한 채권-채무 관계로 인해 한 은행의 부도는 다른 은행의 부도로 이어지기 십상입니다. 이러한 가능성을 시스템 리스크(systemic risk)라 하며, 그 현실화를 시스템 위기(systemic crisis)라 부릅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런 시스템 위기가 자주 일어났기에 중앙은행의 대 은행 긴급대출 프로그램과 최종대부자 기능이 나오게 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현행의 채무통화 공급 시스템에는 근본적인 불안정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은행 활동에 다양한 규제가 가해졌던 이유입니다. 1980년대 초 이래 금융 빅뱅(은행, 보험, 증권 등 금융 부문들 간의 업무 경계의 철폐와 이에 따른 보편은행의 출현), 금융 규제 철폐, 금융 혁신(서브프라임 대출, 금융 파생상품의 창조)의 허용 등 일련의 신자유주의적인 금융 자유화 조치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지금에 와서는 불문가지입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 이래 각국의 중앙은행이 통화 안정에 금융 안정이라는 목표를 첨가한 것도 이러한 이유가 있습니다.

다음 호에서는 이 시스템이 어떻게 금융 사이클과 경기변동을 증폭시켜 롤러코스터 또는 붐-버스트(boom-burst) 현상을 만들어 내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서익진 / 화폐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전 경남대 경제금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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