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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화폐민주주의연대 뉴스레터 - 4 / 서익진의 Q&A, 용어해설

by 운무허정도 2022. 5. 23.

서익진의 화폐민주주의 Q&A - 4

은행은 새 돈을 원하는 대로 만들어낼 수 있다?

 

 

앞선 3호에서 우리는 시중은행이 어느 누구의 돈도 아닌 새 돈을 만들어 대출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은행은 자신의 돈이나 예금이 없어도 그리고 중앙은행에 빌리지 않아도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것만으로 얼마든지 새 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무(허공)에서 유(돈)의 창조야말로 은행들이 진정 감추고 싶어 하는 최고의 비밀입니다. 이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으신 분은 뉴스레터 3호를 다시 찬찬히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그렇다고 친다면, 이제 은행은 과연 자신이 원하는 만큼 무한정으로 새 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인가? 전문용어로 은행의 신용통화 창조에는 한도가 없는가? 하는 의문이 이어질 수 있겠네요. 오늘은 이 의문을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한국은행과 강단경제학이 제공하는 공식적인 설명부터 살펴본 후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강단경제학이 말하는 은행의 신용통화 창조 메커니즘

경제학을 조금이라도 배운 적이 있는 분이라면 은행의 신용통화 창조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아래와 같은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이 그림은 한국은행 누리집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지만 강단경제학의 수많은 교재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먼저 알아둘 것은 우리나라와 미국 등 상당수의 나라들은 부분 지급준비금(이하 지준금)과 법정 지급준비율(이하 지준율) 제도를 운영한다는 사실입니다.(1) 여기서 지준율은 편의상 10%로 가정합니다. 최초에 한국은행이 100의 본원통화를 발행해 A은행에 빌려줍니다. 중앙은행으로부터 100의 예금을 유치한 것이나 마찬가지죠.

A은행은 지준율에 의거해 100 중에서 10(=100*0.1)을 자신의 중앙은행 지준금 계좌에 남겨두고 나머지 90을 대출할 수 있습니다. 이 90이 모두 대출되고 대출받은 사람이 이 돈을 B은행에 예금한다고 칩시다. 그러면 B은행은 예금 90을 확보하게 되고 이 중 10%(이젠 9가 되겠죠)를 지준금으로 남기고 나머지 81을 대출할 수 있습니다. 81을 대출받은 사람이 이 돈을 C은행에 예금한다고 하면, C은행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72.9를 대출할 수 있고, 그러면 72.9의 예금이 창조됩니다.(주2)

이러한 과정이 끝없이 계속된다고 가정하면 최초의 본원통화 금액과 대출이 이루어질 때마다 창조된 예금들의 총합은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습니다. [100 + 100×(1-0.1)] + [100×(1-0.1)×(1-0.1)] + [100×(1-0.1)×(1-0.1)×(1-0.1)] +...] 이것은 무한 등비급수로서 그 합은 100×(1÷0.1)로 표현될 수 있고, 그 값은 1,000입니다. (뭐 이런 수학 지식까지 알아야 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지식이 나쁜 건 아니죠). 따라서 최초의 종자돈(본원통화, 즉 중앙은행의 예금)이 주어지면, 은행이 창조할 수 있는 신용통화의 최대금액이 주어집니다. 그 크기는 최초의 본원통화 금액에 법정 지준율(10%=0.1)의 역수(10)(이를 통화승수라 부릅니다)를 곱한 값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공식적인 신용통화 창조 메커니즘 설명이 말하지 않는 것

상기의 공식적인 설명이 정말 멋있어 보이지 않나요? 지적 허영도 만족시켜 주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이른바 ‘그것이 말하지 않는 사실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실상과 부합하지도 않습니다.

먼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법정통화는 전부 신용통화입니다. 지폐, 동전, 은행 예금계좌에 기록된 전자수치 등 그 형태가 어떠하든 발행자가 누구이든 모든 돈은 으로 표현되고 또 언제든지 서로 교환될 수 있는 동일한 (법정)신용통화죠. 모두 신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법정통화이거든요. 그런데 이 신용통화의 발행이 중앙은행과 시중은행에 의해 분담되는데, 전자가 발행한 신용통화를 본원통화’, 후자가 발행한 신용통화를 예금통화또는 은행통화로 구분해 부릅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상기 메커니즘을 다시 살펴보면, 지준율이 4%일 때, 중앙은행이 본원통화 100을 창조해서 은행에 빌려주면 그 25배인 2,500의 신용통화가 생기죠. 이 중에서 중앙은행이 창조한 본원통화 100을 공제한 나머지 2,400은 은행들에 의해 창조된 예금통화죠. 그러나 공식적인 설명은 이처럼 통화 발행이 중앙은행과 시중은행 간의 분업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물론 통화 창조에서 시중은행이 중앙은행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강조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통화의 발행과 대출은 이익(이자수입)을 가져다주는데 그 이익의 극히 일부(예컨대 4% 정도)만 공공은행인 중앙은행이 가져가고 나머지 거의 전부(예컨대 약 96%)를 시중은행이 가져간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예 ‘침묵이 금이다’라는 격언을 고수합니다.

다음, 신용통화 창조 메커니즘에 관한 공식 설명은 다음 두 가지 착시를 조장합니다. 하나는 예금이 있어야만 대출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은행의 신용창조에는 상한이 있어 무한정 대출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착시부터 살펴봅시다. 이 착시는 은행은 법정 지준율에 의거해 예금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만 대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옵니다. 이는 사실을 말하자면 이 예금이란 게 그에 앞선 대출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는 점을 망각한 데 기인합니다. 생각해보세요. 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돈이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이죠사실은 예외가 있습니다만 다른 기회에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은행대출이 없다면 애당초 시중에 돈 한푼은 없을 것이고, 돈이 아예 없는데 예금이 있을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죠.

따라서 현행 시스템에서는 ‘예금이 대출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대출이 예금에 선행’합니다. 다시 말해서 은행은 예금이 있어야만 대출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은행이 대출을 하는 만큼 예금이 창조되고 통화량도 그만큼 늘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수중에 돈이 늘어날 수 있는 것은 남의 수중에 있는 돈을 가져올 수 있거나(이 경우 통화량은 늘어나지 않죠) 아니면 누군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그의 예금잔고가 늘어남과 동시에 시중 통화량이 늘어났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두 번째 착시를 보겠습니다. 이것은 이 글 서두에서 제시한 질문과 직접 관련되어 있습니다. 상기의 신용통화 창조 메커니즘은 은행은 최초의 본원통화에 통화승수를 곱한 값만큼 통화를 창조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실, 공식 설명은 은행이 창조할 수 있는 신용통화의 양에 상한이 있다고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부분 지준금과 법정 지준율 제도에 근거해 신용통화 창조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치 상한이 존재한다고 착각하기 십상이라는 겁니다.

“아! 나하고 똑같은 민간인 자격을 가진 시중은행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특권을 누리고는 있지만, 이 특권을 무한정 행사하는 것은 아니고 여러 가지 공적 규제를 받으면서 하는구나”. 그래서 이 시스템이 통화승수, 무한등비급수 등 현란한 수학을 동원해 설명해야 할 정도로 복잡한 것이긴 하지만, 아니 오히려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니, 뭐 부당하거나 부정한 건 없을 거야”라고 착각하게 되는 겁니다.

사실, 은행은 신용통화를 무한정 창조할 수 있습니다만, 현실에서 이 이론적인 가능성을 결코 온전하게 실행하지 않으며, 그래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것은 독과점 기업이 무한정의 가격 인상이라는 가능성을 누리지만 가격을 무작정 높게만 책정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입니다. 독과점기업이든 은행이든 자신의 이윤 극대화를 가져다주는 생산량과 대출 수준을 유지하고자 하죠. 그러나 이러한 실제의 행태가 무한 가능성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잘 인식되고 있지는 않지만, 은행()은 사실상 돈의 발행권을 독과점하고 있는 민간기업()이죠. 안 그런가요?

 

현실 부적합성과 지적 허영

끝으로 상기의 신용통화 창조 메커니즘 설명은 은행 대출의 실상을 반영하지도 않습니다.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이 말은 이론이 현실에서는 그대로 관철되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하죠. 그런데 돈의 발행과 관련해 이론과 현실은 서로 다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상충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실상은 어떨까요? 민간은행은 고객의 대출 요구가 있을 때만 돈을 창조합니다. 그리고 고객 요구만 있으면 무조건 그에 응하는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은행이 대출 여부를 결정할 때 지준금 잔고나 고객예금 잔고 또는 법정 지준율 따위는 아예 염두에 두지도 않습니다. 은행은 오로지 대출 신청자가 과연 자신이 해준 대출금을 온전히 상환할 능력이 있는지(신용등급, 담보나 보증인 여부) 그리고 정기적인 원리금(원금과 이자) 납입을 위한 소득이 있는지(직업, 직종, 지위, 소득 등)만 따집니다.

은행은 민간기업으로서 이윤 극대화라는 목적이자 지상명령에 충실할 뿐이죠. 만약 어떤 은행이 일정 시점에 일정 기간 동안 대출을 시행한 결과 예금 잔고가 증가로 지준금 시재가 법정 규모에 미달하는 상태가 될 수 있죠. 그러면 일단 이 부족분을 콜 시장(은행 간 초단기자금시장)에서 지준금에 여력이 있는, 즉 초과 지준금을 가진 다른 은행에서 차입해 메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호황이 도래해 은행들이 너도나도 대출을 늘려 은행 시스템 전체 차원에서 의무 준비금이 부족해지는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은행들이 콜 시장 거래로 지준금 부족액을 메울 수는 없죠. 이제 은행들은 중앙은행에 호소합니다. 중앙은행은 은행들의 부족한 지준금을 메울 수 있도록 본원통화를 그만큼 발행해 해당 은행들에게 빌려줍니다. 이때 중앙은행도 은행이 그 고객에게 하는 것과 꼭 같은 방식으로 해당 금액을 컴퓨터 자판으로 두들겨 만든 돈을 해당 은행의 지급준비금 계좌에 기입해주면 그만입니다. 즉 이미 말했듯이 본원통화도 예금통화처럼 신용통화인거죠.

중앙은행도 자판으로 두들겨 만든 새 돈을 빌려준다는 사실은 양적완화 관련 의회 청문회에 출석한 미국의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그린스펀 의장도 인정했었죠. 하기야 민간은행도 신용창조를 하는 마당에 중앙은행이 못할 이유가 있을까요? 진실을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돈을 만드는 것은 중앙은행에게만 허용된 특권인데, 무슨 이유로 그리 되었는지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지만 어쨌든 소수의 민간은행도 중앙은행과 똑 같은 특권을 누리고 있다, 아니 이 특권을 중앙은행보다 예를 들어 25배나 더 많이 행사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습니다.

바로 이러한 실상을 알아챈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중앙은행의 행태를 중앙은행의 수동성이라고 부릅니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오히려 민간은행의 능동성또는 선제성을 봅니다. 중앙은행은 은행의 자율적이고 선제적인 대출 활동에 따른 통화량 변동으로 야기되는 은행들의 지급준비금 수요에 수동적으로 그리고 사후적으로 공급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러한 은행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은행 파산이 일어날 수 있고, 한 은행의 파산은 다른 은행의 파산으로 이어질 수 있고, 궁극적으로는 은행 간 네트워크와 지급결제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지고, 극단적으로는 경제 전체가 마비되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앙은행은 통화량을 능동적으로 통제하지도 않으며 통제할 수도 없습니다. 누군가의 이걸 은행의 ‘협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림 출처 :

https://www.wikiberal.org/index.php?title=Cr%C3%A9ation_mon%C3%A9taire&mobileaction=toggle_view_desktop

 

그리고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라는 것도 통화량의 사전적인 결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은행들의 대출 규모에 따라 시시각각 변동하는 통화량을 자신이 원하는 수준으로 유도하기 위해 이른바 기준금리와 공개시장 운영이라는 수단을 사후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통화정책은 화폐경제 시스템의 안정과 경제의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 시행된다고 설명하죠. 정말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요컨대 강단경제학이 말하는 신용통화 창조 메커니즘은 현실과 부합하지도 현실을 해명하지도 못하는 쓸데없는 지적 허영의 산물로 전락했습니다. 강단경제학자들 중에는 이러한 이론적 설명의 허망함을 자각하고, 이처럼 현실과 무관한 설명은 교재에서 삭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상기의 그림과 설명은 여전히 경제학 교재들에 실려 있어 강단에서 가르쳐지고 있으며, 중앙은행 누리집에도 버젓이 게재되어 있습니다. 왜 이들이 이토록 무용한 이론을 계속 고집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솔직히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합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을 고집하는 것은 어떤 진실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누차 말하지만 감추고자 하는 진실이 ‘돈의 본성’과 ‘은행의 비밀’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그런데 우스꽝스럽게도 그들 대부분은 자신이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다음 호부터는 ‘이자’를 둘러싼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재미있는 얘기가 많죠. 기대해 주세요.

(주1) ‘지급준비금’이란 은행이 예금(특히 요구불예금)을 한 고객들의 인출에 대비해 간직하고 있는 준비금입니다. ‘지준율’이란 고객 예금잔고에 대한 지준금 잔고의 비율을 말합니다. ‘법정 지준율’은 은행들이 법적으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무 지준율이며, 그 수준은 중앙은행에 의해 결정됩니다. 은행은 이윤 극대화를 위해 가급적 예금 총액 전부를 대출하고자 하는 유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우려가 불필요하다며 호주나 캐나다처럼 법정 지준율을 폐지한 나라도 적지 않습니다.

사실 은행들은 이 제도가 없어도 뱅크런(다수 고객의 동시 예금인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해 은행이 지급 불능에 빠지는 상황)을 피하려면 경험적으로 적당하다고 판단되는 비율의 금액을 지급준비금으로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또 실제로 뱅크런이 발생하면 쥐꼬리만한 법정 지급준비금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명약관화합니다. 그리고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서 지준율 변경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 수단입니다. 게다가 법정 지준율이 있으나 없으나 현행 은행 중심의 통화 공급 및 배분 시스템과 지급결제 시스템의 작동에는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주2) 참고로 신용창조 메커니즘의 설명에서 은행의 수효가 여럿이든 단 하나든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현실에는 여러 은행이 존재하지만 모든 은행이 하나의 은행으로 합병한 것으로 가정하거나 은행 시스템 전체를 하나의 총체로 간주하면 되니까요.


서익진의 용어해설 - 4

'시뇨리지'란 무엇인가?(1)

 

혹시 우리말로 ‘통화 발행 차익’으로 해석되는 시뇨리지(seignorage 또는 seigniorage)라는 용어를 들어보셨나요? 아마 들어봤다는 분이 거의 없을 겁니다. 강단경제학 교재에 등장하지도 않을 뿐더러 경제학자조차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이 적지 않거든요. 안다고 자신하는 경제학자라 해도 그 자세한 함의까지 알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만큼 그것은 생소하기 짝이 없는 용어입니다. 그런데 이 용어가 지난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금융위기 이래 화폐금융 분야에서 가장 핫(hot) 하게 뜨고 있습니다. 특히 현행 통화 발행 시스템의 부당성과 화폐 시스템 개혁의 필요성을 논함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핵심 용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화폐 민주화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이 용어의 외연과 내포를 제대로 이해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시뇨리지’라는 용어의 어원

시뇨리지라는 용어는 어원상 프랑스어 세뇨르(seigneur, 영주)에서 파생한 단어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세 영주나 왕(대영주이거나 영주들의 영주)이 금속화폐 발행과 관련해 얻을 수 있었던 이득을 지칭했다는 겁니다.

과연 통화 발행 차익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먼저 스스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뭔가 떠오르는 게 있나요? 차익이란 단어로부터 시뇨리지가 돈을 발행해서 얻을 수 있는 수익과 돈을 발행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의 차이를 떠올리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죠. 그래서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시뇨리지는 돈의 명목가치’(액면가치 또는 표시가치)소재가치’(실제가치, 사용가치 또는 효용)의 차이라고 정의됩니다.

그런데 명목가치와 소재가치가 차이가 나는 다른 상품이 없는 건 아니죠. 일반 상품 중에서도 가격(명목가치의 시장적 표현)이 그 소재가치(실제가치, 효용, 생산비)를 상회하는 상품이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아파트를 생각해보세요. 이런 상품은 이 차익의 획득하고자 하는 투기거래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죠. 그럼 화폐의 경우도 이런 상품과 동일할까요?

차익이 발생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 발생 원인이 정반대입니다. 즉 앞선 투기성 상품의 경우엔 정해진 비용 이상으로 명목가치(가격)이 올라서 차익이 생기는 반면, 화폐의 경우엔 거꾸로 명목가치는 일정한데 그 소재가치(생산비)가 너무 낮아 차익이 생기죠. 예를 들어 5만 원 권 한국은행 지폐의 경우 명목가치는 5만 원인데 그 소재가치를 형성하는 생산비는 100원 정도로 알려져 있거든요.

시뇨리지는 이러한 돈의 발행 권한을 가진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이득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불로소득인 시뇨리지를 독점하기 위해, 달리 말해서 통화 발행권을 쟁취하기 위해 인간들 사이에 격렬한 투쟁이 벌어져왔을 것으로 짐작되지 않습니까? 이 투쟁의 역사를 알고 싶은 분에게는 영국 학자 마틴(Martin)<>이라는 책을 진심으로 강추합니다. 그리고 현대에서는 누가 이 시뇨리지를 가져가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죄송하지만 궁금하신 분은 계속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시뇨리지라는 통화 발행 차익은 사실 이론적으로 그리고 추상적으로만 존재합니다. 이 차익을 실제로 현실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시뇨리지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법과 그로써 획득하는 이득의 형태는 역사적으로 변화해 왔습니다. 이 변화는 특히 상품화폐와 명목화폐라는 화폐의 성격 및 형태 변화와 더불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https://blog.naver.com/hopoiuyt/222157434101

 

중세 상품화폐의 시뇨리지

고대 이래 인간사회는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 또는 동이나 철과 같은 일반금속으로 만든 금속화폐를 오랫동안 사용해왔습니다. 예컨대 로마의 데나리우스 은화는 로마제국의 흥망을 결정했을 정도였죠. 로마제국의 멸망한 뒤 중세에는 이런 금속을 가진 사람이나 집단은 누구나 필요하다면 자유롭게 주화를 만들어 사용했고, 또 주화를 녹여 금속 자체의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귀금속 없이는 통화를 발행할 수 없다는 사실이 황금계곡을 둘러싼 인간들 간의 생사결투를 그린 유명한 서부영화 ‘맥켄나의 황금’(1969년)의 시대적 배경이기도 하니 금속화폐의 역사는 정말 오래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암호화폐도 그것을 발굴하는 사람만이 사실상 돈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금속화폐나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죠. 지금(地金)과 금화를 어딘가 안전하게 맡겨놓고 거래와 지불의 편의를 위해 보관자가 발행한 금 보관증(태환지폐의 원조)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지금(地金)이나 금화의 대용품에 지나지 않는 것이죠.

금화와 같은 금속화폐의 경우 소재가치=명목가치이므로 그 자체가 발행자에게 시뇨리지를 가져다줄 수는 없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죠? 그런데 당시 영주(또는 왕)는 이러한 민간의 자유로운 금속화폐 제조 행위에 주조세를 부과했다는 겁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번다는 식으로 돈의 발행과 관련해 금 보유자가 아닌 영주가 이득을 보았으니 이를 진정한 시뇨리지로 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시뇨리지와 전혀 무관하다고 치부하기도 어렵지 않습니까? 금속화폐 제조자는 주조세를 내더라도 그것이 제공하는 거래상의 편익이 더 크다면 제조를 계속 할 겁니다.

그 뒤 영주는 민간의 주조 행위를 아예 금지시켜 버린 뒤 스스로 (왕립)주조소를 설립해 주조사업을 독점해 버립니다. 그러고는 금속화폐가 필요한 사람에게 제조를 해주고는 주조 수수료를 받습니다. 이제 시뇨리지의 실현형태가 세금에서 수수료로 바뀐 것을 알 수 있죠.

더욱이 왕은 머리를 더 굴려 묘안을 짜냅니다. 예를 들어 금의 시세가 10g=1달러였다고 한다면 1달러짜리 금화를 주조해주기 위해 10g의 금을 받은 후 예컨대 9g만 사용해 1달러 표시 금화를 만들어주고는 1g을 떼어먹었죠. 백성들은 이 사실을 모를 수도 있지만, 알았다 해도 왕에게 대들 수는 없었죠. 통화 발행권을 가진 자의 횡포가 분명하지만, 이것도 시뇨리지를 실현하는 방법의 하나임에는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금을 비축할 수 있었던 영주나 왕은 스스로 자신의 금화를 발행하기도 했죠. 그러나 영주나 왕이란 족속은 전쟁이나 사치 등으로 지출하기 바빠 금을 지속적으로 비축할 수는 없었고, 오히려 늘상 돈이 부족했죠. 그래서 자신의 돈을 발행하던 왕은 일정량의 금속으로 더 많은 양의 돈을 만들기 위해 금속화폐의 금속 함량을 이전보다 줄이는 방식으로, 즉 명목가치는 그대로인데 소재가치를 낮추는 방식을 궁리합니다.

당연히 돈의 단위당 가치는 감소하고, 이 돈에 대한 사회적 신뢰는 하락하겠지만 여전히 1달러의 가치를 가진 모든 상품을 구매할 수 있죠. 이러한 감가 발행은 영주에게 또 다른 이득을 가져다주었죠. 빚이 많은 영주라면 동액의 채무를 전보다 더 적은 양의 금속으로 상환할 수 있으니 채무 부담도 경감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감가 발행을 넘어 심지어는 아예 명목가치(얼마짜리인지)를 새겨놓지 않고 왕의 상징만 새긴 주화를 발행한 뒤 그 명목가치를 칙령을 통해 임의로 인하한 경우도 있었다 해요. 이러한 영주의 폭력적인(달리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행태는 오늘날의 정부들이 통화를 남발해 인플레이션(통화가치의 하락)을 일으켜 정부채무의 부담을 줄이는 행태, 이른바 인플레이션 조세추구가 이미 봉건시대에도 만연했음을 알게 해주죠.

 

다시 말하지만 금화 같은 금속화폐는 시뇨리지를 창조하지 않습니다. 어떤 주화의 명목가치와 동일한 양의 금속을 투입해야 정상이니까요. 왕처럼 폭력을 기반으로 화폐주권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금화의 소재가치를 인위적으로 명목가치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뜨려 양자 간의 차이를 만듦으로써만이 시뇨리지를 도모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악화(惡化, good money)가 양화(良貨, bad money)를 구축한다는 그레샴 법칙, 들어보셨나요.(1) 그레샴은 16세기 영국의 금융업자이자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재무 고문이었죠(cf. 네이버 경제학사전). 그는 시중에 유통하는 금화의 상태를 관찰한 후 이 유명한 명언을 남겼는데요. 양화는 소재가치가 명목가치와 일치하는 금화를, 악화는 의도적으로든 자연적으로든 소재가치가 명목가치보다 낮아진 금화를 말합니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악화만 지불수단으로 사용하고 양화는 축장하거나, 녹여서 실물금속으로 사용하거나, 외국으로 유출하는 경향이 생겼죠.

이 현상이 문제가 되는 것은 새로 주입되는 양화가 유통에 주입되자마자 사라진다면 통화량은 늘어날 수 없고, 이에 따라 거래는 줄고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데 있습니다. 물품화폐나 금속화폐를 사용하던 상품화폐 시대의 고질병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상품화폐의 시대는 사실상 1930년대 초반 대공황 속에서 주요 선진국들이 금본위제를 폐지되고 태환지폐를 불환지폐로 전환할 때까지 계속되었죠. 그 후로 아직 100년도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현대 법정화폐의 시뇨리지

기술 발전에 따라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현대화폐는 종이나 전자에 기록된 수치에 형태를 취하고 있어요. 이러한 현대화폐가 가진 속성에 따라 법정화폐, 증표화폐, 명목화폐, 신용화폐 등으로 규정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가 필요하지만, 여하튼 현대화폐가 현대 이전의 모든 상품화폐과 결정적으로 중요한 차이점은 그것이 진성 시뇨리지를 가진다는 사실이죠.

앞서 예를 들었던 5만 원 짜리 한국은행권이 그러하구요. 여러분의 은행계좌에 들어 있는 100만 원의 생산비는 컴퓨터 자판에 수치를 두드리는 수고비에 지나지 않죠. 이처럼 현대의 불환지폐와 전자수치로서의 예금화폐의 시뇨리지는 어마어마합니다. 중세에 탄생한 시뇨리지라는 단어가 현대에 와서 비로소 제 값을 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이로 인해 생긴 부작용의 하나는 위조화폐 제작과 해킹 그리고 금융사기입니다. 이러한 부정행위의 유인이 현대화폐가 지닌 이토록 엄청난 크기의 시뇨리지에 있고, 이것이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러한 부정행위의 존재를 이해할 만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역으로 왜 각국이 화폐의 위조와 동 행사를 가혹하게 처벌하는 화폐법을 시행하는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죠?

또 다른 부작용은 이러한 통화의 발행권을 합법적으로 독점하고자 하는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투쟁이 더욱 치열해진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 투쟁이 어디서 벌어지고 있나요? 현대판 맥켄나의 황금골짜기는 어디에 있을까요? 여러분은 이제 그런 투쟁도 있나 하며 의아한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이러한 투쟁에 대해 진지한 의문을 품은 사람은 없다시피 하죠.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나요?

현대 통화 시스템에서는 누가 이 막대한 시뇨리지를 어떤 방식으로 누리고 있을까요? 그리고 이 시뇨리지를 누가 가져가야 마땅할까요?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동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바로 이 문제가 현행 통화 발행 시스템의 근본적인 모순 그리고 개혁의 당위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겁니다.

죄송합니다만 글이 너무 길어져 이 문제는 다음 호에서 다뤄야겠습니다. 궁금하시더라도 한 달 동안 기다리시면서 스스로 생각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주1) 여담이지만 그레샴 법칙은 적어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수많은 나라의 정치판에 대한 비유로 사용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정치판에는 악화 정치인만 있고, 그래서 스스로 양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예 정치판에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거죠. 악화만 유통하는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듯이 악화 정치인만 있는 정치판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서익진은 경남대 경제금융학과 교수였다. 프랑스 그르노블 사회과학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경제와 국제경제를 다룬 다수의 저서와 논문, 번역서를 출간하였다.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를 계기로 화폐금융의 문제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현재는 화폐의 본질과 현행 통화 공급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화폐민주주의연대’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 글은 그가 「화폐민주주의연대 뉴스테러」에 게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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