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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1. 20. 00:00

기억을 찾아가다 - 6

6. 한국전쟁기의 봉암동 - 징병, 피난 귀향

 

전쟁 나고 열흘 쯤 되었다. 낯선 얼굴을 보기 어려운 시골마을에 낯선 복장에 낯선 체형의 사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린 아직 어려 잘 인지하지 못했으나, 어른들이나 형들의 말을 들으면서 우리의 눈에도 그들의 양태가 박히게 되었다.

허름한 바지저고리에 짚신이나 낡은 검정고무신 차림과는 완연히 대조되는, 색깔 있는 셔츠에 빳빳한 바지, 그리고 단단하고 날렵해 보이는 운동화 차림이었다.

가을이 되어서는 당시로선 구경조차 하기 어려웠던 점퍼들도 입고 있었다. 체격도 구부정한 농민들과는 달리 몸이 곧고 날렵해 보였다. 형사들이었다.

그들이 나타나면 우리들도 알아보게 되었고, 형들이나 아저씨들에게 전해주기도 했었다.

그들은 징집대상자들을 차출하러 그렇게 다니면서 나이 웬만한 남자들을 보면 꼬치꼬치 추달했었다.

골목 어귀에서 맞닥뜨린 동네 형이 산 쪽으로 도망치다 잡혀오는 것도 보았고, 미리 귀띔을 받고 산골로 들어가는 동네 형이나 아저씨들도 더러 보았다.

내 큰형은 고1(당시 학제로는 중4)이라 징집 적령이 멀었는데도 키가 컸던 탓으로 그들의 추달에 곤욕을 치른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그랬는데도 우리 동네에선 간 사람보다 안 간 사람이 더 많다고들 했다.

한편, 보국대(전시근로동원법에 의한 차출)라는 명칭으로 차출되었다오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주로 삼십대 후반이나 사십대 초반의 남자들이었던 것 같은데 그보다 훨씬 나이든 아저씨들도 끌려갔다 왔다는 이야기도 몇 번 들었다. 할당 받은 사람 수를 채우지 못할 땐 그렇게 된다고들 했다.

 

<산악전 지원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보국대>

 

피난 직전, 그러니까 7월 중순쯤에는 사태의 심각성도 모른 채 내 큰형도 나갔다가 온 식구가 조바심을 쳤던 기억도 가지고 있다.

진동에 가서 길 고르는 일 두어 시간만 하고 점심 전으로 데려다 준다고 집집마다 한 사람씩 나오라고 해서 큰형이 자원했고, 그래도 행여나 해서 아버지는 같이 가는 이웃집 아저씨들한테 신신당부해두었는데 그날 자정이 넘어서야 사색이 되어 걸어서 돌아왔던 것이다.

가니까 참호를 파라고 했고, 거기에 모래자루 쌓는 일까지 다 마치니 멀리서 대포소리 같은 것이 들려 더 공포스러웠다고 했다.

거기다 감독하는 사람이 형의 나이를 묻고, 회유도 하고 협박도 하는 통에 이웃집 아저씨까지 합세해서 회피하느라 더 힘들었다고 했다. 형사들 들락거림은 아마 전쟁기 내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마산이 인민군들이 들어오지 못한 얼마 안 되는 지역이었던 터라 피난 갔다 온 얼마 후부터 다른 피난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외지에 나가 있던 동민 가족들이나 친척들도 상당수 보였다.

어느 날, 이웃에 살던 물집(염색업하는 집) 어머니와 딸들이 울면서 아리랑고개(1차 매립 때 동네 서쪽 들머리에 생긴 조그만 고개) 쪽으로 뛰어가는 것을 보았다.

부모님들과 우리 형제들도 한길로 나가 그쪽으로 보고 있는데 얼마 안 있어 고갯마루로 그 집 가족들이 나타났다. 우리 부모님들도 울먹거리며 마중을 나가다가 통곡하며 오는 그 가족들과 마주 했다.

부모님들끼리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었는데, 어린 내 눈에도 그 아저씨와 두 딸의 모습은 너무나 남루했다. 딸 일곱으로 해서 딸부자 소리를 들었던 그 아저씨는 전쟁 일 년 전 쯤 딸 둘을 데리고 서울로 가서 고무신 공장을 했었다.

자세한 얘기는 못 들었지만, 전쟁나자 바로 딸들 데리고 귀중품만 챙겨 군인들을 피해서 걸어왔다고 했다.

인민군도 피하고, 미군도 피하고, 국군이나 경찰도 되도록 피하며, 길도 묻고 물으며 빈집이나 산야에서 숙식하며 사십 일 이상이나 걸어왔다고 했다. 준비한 고무신 다섯 켤레씩이 모두 걸레처럼 됐다고 했다.

 

 

그로부터 여러 달 후에 서울 살던 넷째 고모 네가 우리 집에 왔다. 고모부는 서울에서 무슨 장사를 했었다고 들었다.

그들은 산호동에 큰댁이 있어 거기에 거처를 마련했는데 그날 우리 집에 다니러 왔던 것 같다. 나보다 대여섯 살 아래인 딸과 아직 업혀 다니는 딸을 데리고 왔었는데, 그날 큰딸이 보인 행태가 아직도 내 눈에 삼삼하다.

마당에서 나와 내 여동생과 무슨 놀이를 하고 있을 때 공중에서 제트기 소리가 났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신기한 소리였으나, 전쟁 후부터는 하루에도 십여 차례씩 들었던 소리라 예사로 느꼈는데, 갑자기 그 동생이 내 바짓가랭이를 붙들고 부들부들 떠는 것이었다.

의아해하는 우리 가족들은 고모의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서울 수복 때 제트기의 공습이 수없이 있었고, 그때마다 군데군데 불바다가 일어 질겁했는데, 그때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얼굴도 예쁘고 눈매도 초롱초롱했던 그 여동생은 그 후 오랜 세월 동안에도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 정신 이상 상태로 고생하다 갔다.<<<

박호철 / 창원미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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