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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4. 00:00

마산번창기(1908) - 7

제2장 마산의 관공서 - 1

 

□ 마산이사청(馬山理事廳)-신시(新市) 다이마치(臺町) 소재

언덕 위의 조망이 좋은 데에 있으며 1899년(명치 32년) 개항 당시 부산 영사관의 분관으로서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郞)로 하여금 건축하게 했던 것을 빌려 쓰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규모가 작고 그 위치가 놓은 데 있어서 사람들이 불편해 하니 이사관 미마스 구메키치(三增久米吉, 1861~?. 1901년부터 서울 일본영사관 영사로 근무하다가 1906년 마산이사청 이사관으로 발령받았다. 이후 계속 이사관으로 근무하였으며, 초대 마산부윤으로 임명받은 뒤 1919년 11월까지 부윤으로 있었다) 씨가 1908년(명치 41년) 5월 그 북쪽 위치에 새 건물을 짓기로 했다.

공사는 아직 낙성을 못 보았지만 그 건축물의 수려함은 마산에서 으뜸이라 한다. 아마 11월 3일 천장절(天長節, 1896년에 제정된 메이지 일왕의 탄생 축일로 날짜는 11월 3일이었다. 1927년부터 1947년까지는 명치절로 불렸다)이란 좋은 날을 잡아 낙성식을 거행할 예정이라 생각한다.

이사관 관저는 이사청 뒤의 언덕에 있으며 1907년(명치 40년) 9월 중에 신축이 시작되고 미마스 이사관이 스스로 위치를 정하고 설계한 것인데 조망 좋은 터에 수려하게 세워져 있다.

 

<1908년 말 준공한 마산이사청(현 경남대 평생학습원). 뒤쪽 건물은 미마스 이사관이 살았던 관저(현 마산종합사회복지관)>

 

미마스 이사관은 야마구치(山口) 현(縣) 옛날 하기번(萩藩) 출신이며 1860년(명치 17년) 생이다. 삿포로 농학교를 졸업한 농학사이며 열정적이며 호걸 같은 사람이다. 거기에다 성결이 강직하고 쉽사리 자기 소실을 꺾지 않는 점은 무사의 기질을 간직하고 있다고 하겠다.

미마스 씨는 1887년 외무성에 들어가 1888년 7월에 독일 브레멘 영사관에 부임하고 그 후 함부르크와 베를린 영사관에 근무하며 후쿠시마(福島, 후쿠시마 야스마사 1852~1919. 일본의 군인으로 최종계급은 육군대장) 장군이 필마단기도 유럽과 아시아를 여행했을 때에 성심껏 도움을 드리기도 했다.

1895년 9월에 본국으로 돌아오자 바로 하와이 제국공사관 서기관으로 전임되었고 1898년 귀국하여 5월에 마닐라 영사도 전임되었다. 당시는 때마침 미국-스페인 전쟁(米西戰爭) 중이었다. 1900년 4월까지 거기서 근무하였다.

같은 해 7월에 한국 경성 주재 영사가 되어 러일전쟁의 비상한 시기에 공로를 아끼지 않았다.

1906년 7월에 한국통감부제의 실시로 마산주재 영사였던 미우라 야고로(三浦彌五郞, 1872~1941, 1902년부터 1906년 1월 31일 마산영사관이 폐지될 때까지 영사로 근무하였다. 영사관이 페지되고 이사청이 설치되자 마산이사청 이사관으로 잠시 근무 후 경성이사청 이사관으로 임명되었으며, 통감부 서기관을 겸임하면서 1910년까지 경성 이사청 이사관으로 근무했다.) 씨가 경성이사청 이사관으로 전직하게 되자 미마스 씨가 그 후임으로 경성 영사에서 마산이사청 이사관으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미마스 씨는 이렇듯 외교관의 경력만을 가진 사람이라 교제가로서는 평민적인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 세상 사람들의 동정은 얻지 못하는 편이다.

문필을 업으로 하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아주 개방적이며 위세를 부리는 사람은 아니다. 다만 소박하고 솔직한 점으로 관리에 딱 맞는 사람이라 하겠다. 단도직입적인 면도 있으나 세평에서 말하는 관권(官權) 만능주의자라는 지적은 맞는지 모르겠다.

부이사관인 와다 시로(和田四郞)도 역시 야마구치 출신이며 판검사 등용시험에 합격하여 일본에서 지방재판소 판사를 지낸 사람이다.

온건한 성격으로 자만심을 드러내 놓지 않는 사람으로 현재는 민형사(民刑事) 사무를 담당하고 있다. 공명정대한 수완을 발휘하여 교제 석상에서도 원활한 자세로 칭찬받는 진지한 서생(書生)과 같은 사람이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올 초에 번역한 『馬山繁昌記』(1908) 중 일곱 번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繁昌記』는 1900년대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단행본으로는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항 이후 마산으로 몰려 들어온 일인들의 수는 1908년 6월 3천355명에 달했다. 같은 통계로 한인은 7천515명이었으니 당시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책의 제목처럼 당시 마산은 '번창'해 가고 있었다. 마산으로 이주한 일인들에게 마산은 꿈을 주는 신도시였다. 책의 제목과 내용은 이런 시대 상황과 그들의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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