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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30. 00:00

2003년생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의 외침

어른들, 언제까지 돈타령만 할 건가?

 

최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2003년생 소녀 그레타 툰베리에 대한 이야깁니다.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9월 23일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연설자로 나섰습니다.

툰베리는 세계의 지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저는 이 자리에 있어서 안 됩니다. 저는 대서양 건너편에 있는 학교에 돌아갔어야 합니다. 근데 당신들 모두는(어른들은) 희망을 말하면서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다가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당신들은 속빈 말로 내 꿈과 유년시절을 빼앗아갔습니다.” 라고 질타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정상들을 향해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는데도 각국 정치 지도자들은 돈 타령과 영구적 경제성장 타령만 하고 있다. 언제까지 돈타령만 할텐가” 라며 꾸짖었습니다.

그러고는 “미래세대의 눈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들이 우리를 저버린다면, 우리 세대는 결코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매서운 비판을 쏟아 냈습니다.

툰베리는 연설 도중 떨리는 목소리로 격한 감정을 조절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며, 회의장을 깜짝 방문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자들과 떠들썩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굳은 표정으로 쏘아보기도 했습니다.

 

 

툰베리는 작년 8월 스톡홀름 의사당 앞에서 기후변화 대책 촉구 1인 시위를 벌이면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급기야 올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녀는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이산화탄소를 뿜어내는 비행기 대신 태양광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해 미국에 도착했습니다.

툰베리의 이런 모습에 동조하는 전 세계 미래 세대들이 툰베리의 캠페인을 이어갔으며 이로 인해 유엔총회의 기후변화 대응이 글로벌 이슈로 부상했습니다.

 

그레타 툰베리는 올해 대안 노벨상인 바른 생활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바른 생활상’은 1980년 스웨덴의 한 우표 수집가의 기금으로 만들어 졌으며, 지구가 직면한 시급한 문제에 대안을 모색하는 실천가에게 주어집니다. 기존의 질서에 맞서 다른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주는 값진 상입니다.

지난 9월 25일 AP통신에 따르면 바른생활재단은 툰베리가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정치적 요구를 고무시킨 공로가 인정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재단은 또 툰베리는 모두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2003년생 스웨덴 한 소녀의 외침, 우리 어른들이 못 들은척해도 될까요? 우리 아들딸의 미래에 대한 이야긴데 말입니다.

툰베리의 연설 동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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