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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3. 29. 00:00

옛날 사진 속에서 '마산노동병원'을 찾았다

2021년 1월 19일 페이스북에 흥미로운 글이 하나 떴다. 창원지역에서 기록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박영주 선생의 글이었다. 1950년대 설립된 마산노동병원을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반가운 일이라 포스팅한다.

 

옛날 사진 속에서 '마산노동병원'을 찾았다.

며칠 전 마산의 한 고등학교의 1960년대 초반의 졸업앨범 한 권을 (자료수집용으로) 샀다. 앨범을 살펴보는데 눈에 띄는 사진이 있었다. 사진 크기가 너무 작아 확대해서 보니 '노동의원'이라고 세로로 쓴 한글 간판이 선명하다. (표시 부분)

 

 

노동의원!

중앙동 1가에 있었다는 건 알았지만 정확한 위치를 몰라 궁금해했었던 바로 그 '마산노동병원'인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이 사진은 1962년 5월 16일, '5.16혁명 1주년'을 맞아 학생들이 시가행진을 벌이고 있는 모습으로 위치는 현재의 통술거리 일대이다.

이날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기념식이 펼쳐졌는데 마산에서도 중앙부두 앞 광장에 학생과 공무원, 시민 등 3만여 명이 모인 가운데 '성대한' 기념식이 열렸다.

기념식을 마친 참석자들은 신마산 일대를 돌아 마산시청 앞에 설치된 사열대 앞을 지나 구마산 방면으로 군대식 시가행진을 했다.

이들이 학생 브라스밴드를 앞세워 저 '노동의원' 앞을 지나갈 때 그 병원의 실질적 설립자인 마산부두노조 위원장 노현섭은 형무소에 갇혀 있었다.

당시 마산노동병원, 노동병원, 노동의원 등으로 불리던 이 병원은 마산부두노조에서 1957년에 부설 기관으로 설립한 병원이었다.

당시 부두 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힘든 노동에 종사하고 있었다. 더구나 각종 재해와 질병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도 힘든 실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병원의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대두되었고 마산부두노조에서는 이미 1954년부터 설립을 추진했지만 당시 여건상 쉽지 않았다.

마산부두노조 위원장 노현섭은 지역 내 의사들의 동참과 각계의 후원과 협조를 끌어내 1957년 8월 노동병원의 개원을 실현하게 된다. 그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다.

마산노동병원은 조합원과 그 가족, 영세시민 환자 치료를 목적으로 하여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한 명의 의사들이 당번을 맡아 진료하고 치료비는 최저 실비만 받았다.

노동자들을 위한 병원 설립은 일제강점기부터 추진되었는데 특히 1928년 설립된 원산노동병원이 유명했다.

마산에서도 병원 설립은 아니지만 노동자의 보건 향상을 위한 여러 시도가 있었다. 1923년 마산노농동우회는 '무산계급'을 위해 삼성의원 학산의원 등 5개 의원을 섭외하여 이들 병원에서는 노동자에게 무료 진찰을 해주고 약값은 반으로 할인해 주게 하였다.

또 1930년 마산자유노동조합에서는 시내 6개 의원과 교섭하여 극빈 조합원들에게 무료치료권을 배부하여 화류병을 제외한 병의 무료치료를 해주기도 했다.

해방 이후 마산노동병원이 설립된 시기를 전후로 하여 목포, 화순, 대전, 부산 등지에도 노동병원이 세워졌다. 한편 마산부두노조에서는 노동자 결핵요양소 설치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추진에 나서기도 했다.

마산노동병원의 운영은 매우 어려웠다. 노현섭 위원장은 "우리(노동자)의 병원은 우리(노조)의 힘으로 세워야 하고 운영해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전임의사를 확보하기 어려운 재정 상황에서 시내 의사들의 희생적인 협조로 근근이 유지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병원이 설립된 지 채 4년이 지나지 않은 1961년 5.16쿠데타 이틀 뒤 노현섭은 육군 방첩대에 전격 체포되었다.

노현섭은 마산부두노조 위원장으로서 노동운동의 전면에 나섰을 뿐 아니라 마산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고 마산씨름협회 회장을 맡는 등 지역사회 활동에도 열성적이었다.

4월혁명 후에는 교원노조 활동을 지원하고 '양민학살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피학살자유족회를 이끌고 있었다. 박정희 쿠데타세력은 혁신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가했다. 노현섭은 '혁명재판부'로부터 징역 15년의 중형을 언도받게 된다.

마산노동병원은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

노현섭 위원장의 수감 이후 병원은 운영난으로 인건비 염출에도 애로를 겪게 된다.

마산부두노조는 노동병원의 시설을 확충하고 사단법인화를 통해 운영난을 타개하려고 했다. 그 후 여러 차례 원장이 바뀌면서 병원은 이어져 갔지만 운영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965년 말 이후 병원이 어떻게 되었는지 현재로서는 모른다. 더 자료를 찾아보고 해야 하지만... 누군가 마산노동병원의 설립과 운영에 관한 연구를 했으면 좋겠다. 충분히 가치가 있는 주제이다.

마산노동병원은 노동자와 노동단체의 힘으로 의료인과 연대해 노동복지를 실현시키고자 했던 흔치 않은 사례이다.

어쩔 수 없었던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극빈 노무자'들의 '의료후생'을 위한 그들의 노력은 소중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 혹시 노현섭 선생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은 그의 평전인 "불세출의 혁명가 소담 노현섭"(홍중조 이상용 저, 2016.)을 보시길 바람.

추가 ; 아래 사진은 마산일보 1965년 10월 29일자 3면에 실린 '노동병원을 확장-보사부장관 지정으로' 기사에 실린 것입니다. 위 박영주 선생이 발견한 사진과  '노동의원'이라는 간판이 똑 같습니다. 두 사진과 주변 건물들을 보면 병원 위치는 현재의 '홍시통술(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앙동 1가 11-1)'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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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11. 00:00

김형윤의 <마산야화> - 14. B29의 맹위, 15. 학병의 출진

14. B29의 맹위

 

그라만 함재기가 수십편대로 동경 천지를 저공으로 전주 사이를 날아다니며 곡예식으로 맹습한 것은 일본이 진주만을 암타(暗打)한 131일만인 1942년 4월 18일인데,

그로부터 오랜 침묵을 지켜오던 연합군 측의 소위 대공의 요새라는 B29기가 행동을 개시한 것은 1940년으로서 중국 성도에서 이륙, 마산의 무학산정을 거쳐 천자봉을 경과, 일로(一路) 일본 본토를 진공하였는데 처음 마산 상공에 나타난 것은 한여름 오후 9시경. 어스름 달밤에 가는 비가 내렸다.

이로부터 한반도 상공으로 B29기가 통과하지 않는 때가 없었다.

이것들이 통과하고 나면 일본 각 도시는 소이탄(燒夷彈)과 폭격으로 날로 초토와 폐허가 되어가고 있었다.

한국은 무사했느냐 하면 그렇지 않아 다소의 피해가 있었으니 마산, 부산 간 여객열차가 삼랑진 역을 통과 약 9km 지점, 원동 역 전(前) 철교에서 B29기가 기총 소사를 하여 기관차의 중요부분이 파괴되어 운행 정지가 되었으나 승무 기관사 김석권 외 조수 2명은 다 무사하였다.

피습의 기관차는 해방 후 대판 공작창에서 수리하여 6·25 때는 군에 징발되었다가 지금은 디이젤에 밀려 호남선 이리역 소속이 되어 화차(貨車)를 끌면서 노후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피해는 마산 부산간 정기 여객선이 가덕도 연안을 지나다가 B29기의 폭격을 입어 승객 중 한 사람도 구조되지 못하였는데, 이 가운데는 전 부산일보 마산지사장이었던 일인 고교무부(高橋武夫)도 타고 있었다.

이리하여 일본 광도(廣島)와 장기(長崎)에 원폭이 투하되면서부터 일본의 패전이 결정되었지만 1940년 8월 3일 상오 8시경 창원군 구산면 덕동에 그라만 B51을 표식한 폭격기 5대가 저공으로 정찰하다가 솔단으로 위장한 목선 2척을 목격하고 파상적으로 선회 끝에 투탄하였다.

이것은 일본 해군 당국이 정예 비행정을 수일 전에 구입하여 시험 결과 성능이 나빠 부득이 소개를 시켜 솔단으로 위장을 해둔 것을 탐색, 폭파한 것이다.

또 통영에서도 수차 연합군 비행기가 나타났는데,

일본 군수물자 수송선들은 정찰의 눈을 피하여 거제도 칠천도와 송진포 쪽으로 해서 통영 판도다리 방면으로 항해하는 것을 정확하게 포착하여 수송선이 나타남과 동시에 이를 맹폭 격침한 일이 몇 차례나 있었으며, 인근 동장과 동민들은 폭사된 표류 시체 처리에 눈코 뜰 사이가 없었고,

한번은 통영 벽지에서 연합공군의 기총 소사를 받아 조선인 십수 명이 폭사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15. 학병의 출진

 

일본의 침략 군국주의자들이 명치 유신을 단행한 후 그들의 팽창해 가는 외국 영토 잠식의 마수는 대만을 위시하여 조선, 만주 대륙을 유린, 기어코 소위 대동아 전화(戰火)를 일으켜 대평양 전쟁까지 확대시켜 서전(緖戰)의 암타(暗打)로 달콤한 맛을 보았지마는 수개월 후 마리아나 해전에서 패전으로 역전되자 개전 만 1년 358일만인 1943년 12월 일본 각 대학 학도병을 강모출진(强募出陣)케 하였다.

이 때 조선의 총독정책은 어떠하였는가?

조선에서는 지원병 제도라는 미명 아래 하등의 병역 의무도 없는 조선 청년들 특히 전문교 학생들에게는 병역 면제라는 특권을 부여해 놓으니 영장이 발부될 것을 전전긍긍하던 나머지 중산 계급층 자제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전문교에 응시 입학하여 마음 놓고 면학에 힘썼던 것이다.

그것도 한바탕 꿈으로 돌아갔으니, 1944년 침략자들은 조선인 전문학도들에게도 학도병 출진이란 일본 제국주의 전쟁 재단의 희생물로써 강제 소집 영장이 발부되어, 마산과 인근 학도병들의 소위 환송 및 장행식(壯行式)이 마산부내 공락관에서 거행되었다.

그날 밤 민충식 학도는 약소민족의 비분을 통렬히 토로하여 만장을 숙연케 하였으며 평소와는 다른 ‘출정 학도병’인 만큼 구금도 할 수 없는 판국이라 헌병 당국은 마치 울면서 겨자 먹는 격이 되었던 것이다.

마산 출진 학도병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민충식, 이진영, 정태열, 이정우, 문호식, 조호제, 노현섭(아래 사진), 하광호

부기 ; 태평양 전쟁 당시 강징(强徵)된 학도병들은 해군으로서 일망 부제한 대평양으로, 또 육군으로서 광막한 남북 대륙으로 갖은 고초를 당하다가 사선을 넘어 생환한 학도병들은 1월 20일이라는 출진일을 영구 기념하기 위하여 1·20회라는 명칭 아래 친목과 단합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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