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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10. 00:00

경주 남산 산행기

2019년 2월 23일(토) 산행 친구(서익진, 김재현, 신삼호, 김용운, 임학만, 손상락, 신성기)들과 경주 남산에 올랐던 기록이다. 서익진(경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의 글이다.

 

오전 7시 30분, 3.15아트센터 주차장에서 차량 2대에 분승하여 경주를 향해 출발했다.

신삼호 대장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다. 허 원로 요즘 ‘스도쿠게임’을 즐긴다며 휴대폰으로 하는 숫자 맞추기 퍼즐게임을 소개하자 퇴직 후 시간이 남아돌 것으로 남들이 착각하는 김재현 회원이 덥석 관심을 보였다.

결국 허 원로의 노회한 술수에 걸려 10분 내 퍼즐을 풀면 커피 사주긴가 뭔가를 걸고 내기가 붙었다. 그런데 김 회원이 이에 성공하자 김이 빠졌다. 허허, 철학박사를 돈 주고 딴 게 아니라 바둑 같은 게임하면서 땄음이 증명되었다. 사실 김 회원은 한 때 프로기사 지망생이었고 경남대 최고 고수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겠지만 깜빡 하시지 않았나 싶다.

진영에서 새로 난 고속도로로 접어든다. 나는 처음 가보는 길이다. 터널들을 지나고 계곡들이 이어진다. 좁은 계곡들에 공장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차량 속에서도 역한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공기가 탁하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곳에 공장들이? 우리나라에서 공장은 입지선정에 사실상 아무 제약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들판 한 가운데, 산 중턱에, 계곡 속에 어디든지 어떻게든 허가가 난다. 공장과 자본의 유치는 정부의 과업이자 지자체의 살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않나 싶을 정도이지만 경제가 사회와 정치는 물론 문화예술까지 지배하는 세상이니 가히 ‘경제의 시대’에 걸맞는 나라꼴이 아닐까. 그런데 왜 ‘경제학’은 인기가 없을까? 정말 궁금하기 짝이 없다.

언양휴게소에서 쉬면서 우동으로 못 먹은 조식을 때웠다. 어묵우동과 해물라면 두 가지만 시켜 놓고 하나를 골라 먹으라 한다. 나야 당근 어묵우동이지. 그러나 항상 선택하지 못한 게 더 좋아 보이는 건 인지상정. 해물라면이 갑자기 맛있어 보였다.

언양 휴게소 건물은 최근에 전면 신축한 것이다. 수도권 휴게소들에서 신축 건물들을 이미 상당수 본 적은 있지만 영남 일대에서는 처음 보았다.

다시 출발한 차 안에서 나는 김 회원이 가져온 경주 남산 소개 책을 살펴봤다. 동승자들을 위해 중요한 것은 소리 내어 읽었다. 매월당 김시습의 금오신화가 남산을 대상으로 한 것임을 재확인했다.

남산이나 앞산 같은 산 이름은 전국에 산재한다. 대도시라면 거의 다 있다. 그만큼 산이 많고 거주지들과 함께 있다. 우도나 저도가 전국 바다에 산재해 있듯이. 그만큼 섬도 많은 나라다.

하지만 도시 근처에 있는 작은 산이라 해서 얕보다간 큰 코 다친다.

 

삼릉 앞 국도변에 조성된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준비물을 갖춘 후 도로 건너 등산로 입구로 갔다.

남산은 국립공원이다. 산 자체보다는 이 산이 가진 보물 덕분이리라. 공원 관리원들이 입구에서 주의사항도 주고 안내도 하고 사진도 찍어준다. 모두 여자들이다. 무등산 국립공원에서는 관리인들이 모두 남자였던 게 문득 떠올랐다. 우리도 관리인한테 단체사진을 찍었다.

 

 

등산로로 들어서자말자 바로 울창한 송림이다. 그 속에 삼릉이 있다.

삼릉 앞에 30명은 족히 될 만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 있다. 뭐 하나 보니 시산제를 지낸다. 아직 2월이니 그럴 만하다. 엄청난 자태를 자랑하는 금강송들을 감상하면서 계곡을 향해 올라갔다.

삼릉곡 초입에서 ‘석조여래좌상’을 알현했다. 그런데 머리가 없다.

사실 머리 잘린 부처님이나 보살상이 남산에는 수없이 많다. 그 이유를 놓고 설왕설래했다. 일본인들이 그랬을 것이라는 설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의 짓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에도 상당히들 공감한다.

‘선각육존불’, ‘석조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터’를 연이어 감상하고 올라가는데 갑골모양의 문양이 새겨진 바위가 길 가에 나타났다. 거북등이다 자라등이다 논란이 분분하다. 몸체 전부를 보더라도 분간하기 어려울텐데 등만 보고 자란지 거북인지 우예 알겄노. 그것도 흐릿한 문양 밖에 없는데, 다 사람들이 이름 붙이기 나름이지.

‘선각보살상’을 거쳐 올라가니 ‘바둑암’이다. 남산 전체의 북쪽 끝에 해당한다. 북쪽으로 경주 시내가 보이고 서쪽으로 경부고속도로가 남북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단체사진을 찍고 다들 가는데 엽서가 비치된 우체통이 있다. 남산 관련 사진이 새겨진 엽서다. 주소와 사연을 적어 널어놓으면 1년 후에 배달해준단다. 가장 젊은 신성기 회원이 한 장 써 넣길래 나도 따라 한 장 써 넣었다. 마눌님 귀중! 아까운 주말 자기와 함께 안 보내고 나간다고 불평하시는 마눌님 달래는 돈 안 드는 방법으루다가. 사실은 무릎이 안 좋아 같이 등산 다니는 건 포기한지 오래다.

남쪽을 향해 능선을 탔다.

얼마 안 가서 남산의 주봉 금오봉이었다. 학봉산악회 플랭카드를 앞에 펼치고 단체증명사진을 찍었다. 이건 반드시 필요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그리고 단체는 사진을 남긴다. 명언이 아닌가. 아니라꼬?

 

 

‘마애석가여래좌상’을 지나 ‘상사바위’와 ‘석조여래입상’이 있는 곳에 왔다.

표지판에 남근석이 있다는데 모두들 어느 것인지 열심히 찾았지만 결국 못 찾았다. 누군가 상상력을 너무 발휘한 것은 아닐까? 우측 멀리 산중턱 암벽에 현신한 ‘마애석가여래좌상’ 한 분이 삼릉계곡을 내려다보고 계신다. 육안으로 잘 안보이시길래 줌을 당겨 사진을 찍어보니 그런대로 잘 나왔다.

조금 후 펑퍼짐한 바위가 나왔다. 논란 끝에 여기서 점심을 먹었다. 사실 잘 한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여기부터 줄곧 내리막이었으니 말이다.

함포고복(含哺鼓腹)이라 했던가. 배부르고 노곤하니 노래 생각이 났던가. 벌써 오래 전부터 학봉 가수로 추대되신(?) 김용운 회장에게 모두들 노래를 주문한다. 좀 빼던 김 회장, 갓바위 노래를 열창한다. 가사도 안 보고 하는 것 보니 가수가 맞기는 한데, ‘신라의 달밤’은 엇다 두고 웬 팔공산 갓바위인가.

이어 메들리를 구성지게 부르는 가수는 임학만 대장이 가져온 이동식 스피커로 증폭된 사이버 가수 ‘레몬’이다. 바위에 기대어 남산의 계곡과 봉우리들을 바라보면서 노래를 듣고 있으니 따스한 햇살이 잠결로 이끌어 간다.

여기서 하산해 목욕탕으로 직행할 것이냐 애초의 계획대로 맞은 편 ‘고위봉’을 공격할 것이냐를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

사실 지도상으로는 능선으로 이어진 길인 줄 알았다. 와 보니 계곡을 한참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한다. 전체가 남산이지만 고위봉은 전혀 다른 산이나 다름 없다.

상대적으로 젊은 회원들은 공격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너무 험해 보이고 멀어 보인다, 이미 많이 걸었고 돌아가는 길도 상당하다며 안 가려고 하는 원로들을 이길 방법은 없다. 언제는 안 그랬나? 속으로 투덜대며 내려들 간다.

내려와서 보니 다들 잘 내려왔다며 다시 공격했더라면 고생 좀 했을 것 같다는 데 모두들 동의한다. 거 봐, 원로들의 천리안과 선견지명을 실감했으렸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었다. 역방향으로 오는 등산객도 많다. 정오 무렵이니 등산객이 가장 많을 시점이긴 하다.

웅장한 자태의 ‘용장사 삼층석탑’이 계곡을 내려다보는 지점에 절묘하게 서 있다. 탑의 층수를 셀 때는 좌대가 몇 층이든 아무리 높든 지붕 개수로 따진다는 원칙을 되새겼다.

 

 

단체사진을 찍어준 웬 중년 여인의 애교에 모두들 반한 것 같았다. 애교가 아예 없거나 부족하거나 이젠 더는 없다고 생각하는 마눌님들을 모시고 사는 사내들의 본능이다.

탑 아래에 있는 ‘마애여래좌상’에게 예배를 올리고 내려가니 바로 ‘용장사지’다.

절 구경할 생각을 했었는데 웬 걸 절터만 있다. 터의 생김새로 보아 규모는 작았던 것으로 짐작되지만 삼층석탑과 마애여래좌상을 가진 명찰이었을 것이다. 제법 내려 왔나? 작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설잠교’를 건너니 삼거리다. 왼쪽 오르막길이 ‘고위봉’으로 간다고 팻말이 가르쳐 준다. “으잉, 여기서부터 고위봉으로 다시 올라가야 한다고, 우와 포기하길 잘 했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제부터는 거의 평평한 계곡길이다. 이름하여 ‘용장계’다. 계곡 입구 거진 다 온 곳에 매월당 김시습과 금오신화에 관한 소개 패널이 길가에 늘어서 있다. 올 때 차 안에서 읽었던 내용을 복습하는 시간이다.

이어 다리를 건너니 동네가 시작되고 아줌마들이 토마토 등을 팔고 있다. 먹음직해 보였고 값도 싸 보였지만 그냥 지나쳐왔다.

동네를 따라 내려오니 국도다. 작지만 주차장이 있고 화장실도 있다. 여기서 문제의 사진사 여인을 다시 만났다. 이 여인이 친구 한 명과 함께 토마타를 먹으면 맛있다 한다. 아까 아줌마들한테서 산 것이다. 우리도 아는 체 하면서 한 개씩 얻어먹었다. 기꺼이 준다. 얼굴이 예쁘장하니 마음도 고우스레한 걸까! 이건 법칙일까 착각일까!

이제 국도변을 따라 걸어가야 한다. 같은 거리를 걸어도 산길보다 포장도로가 훨씬 힘들다는 것은 누구나 체험으로 안다. 뜨뜻한 목욕탕을 에 노곤한 육신을 담굴 것을 생각하며 다리 아픈 걸 참고 간다. 기사 회원 두 분은 계속 걸어가서 차를 가지고 오기로 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단체가 돌아가고 사회도 돌아가는 법이지. 그런 사람이 제대로 대접 받는 세상이 되기를!

갈 때는 통도사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마산에 도착해 파도횟집에서 도다리 회를 실컷 먹었다. 4월 일본 북해도 대설산행을 기대하면서 헤어졌다.

이렇게 천년의 왕국, 황금의 유토피아, 불국토의 한 자락을 건성으로 다녀왔다. 백산(百山) 리스트 꽉 채우기를 갈망해 마지않는 신 대장에게 경주 남산은 25번째 백산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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