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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9 00:00

얼음장수의 뜨거웠던 하루 : 3.15의거 한 참여자에 관한 미시사적 분석 - 5

1. 그는 왜 시위에 직접 참가했던가

 

1) 사회적 요인

 

2) 개인적 요인

동일한 사회적 요인이 주어져 있다 해도 모든 시민이 동일한 반응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저항심이 강하든 정의감이 투철하든 또는 사회적 불만이 가득하든 모두가 위험한 시위에 가담하지는 않는다.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진지한 대답이 주어진 적이 없는 까닭은 참가자 개개인에 관한 탐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최초로 왜 하상칠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하상칠의 경우 가장 궁금한 것은 315의거 당시 세 명의 자식을 가진 35세의 가장이었고 잘 나가는 얼음 판매업자였던 그가 왜 그토록 위험한, 잘못하면 목숨을 잃거나 잡혀서 거의 병신이 되거나 아니면 빨갱이로 몰려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도 있는 상황 속으로 스스로 뛰어들었는가라는 의문이다.

당시 경남도경 수사과장 김경술의 국회조사단 증언(증언록, 674)에 의거해 경찰에서 취급한 사건 관련자를 직업별로 구분해보면 232명 중 중고학생이 58, 무위도식하는 무직자가 50, 나머지 절반이 넘는 사람은 직공이거나 소규모 상인이었다.

요컨대 참가자의 다수는 창녀, 거지, 소 가게 직원 등과 같은 사회 하층민들이었다. 이러한 참여자들의 사회적 구성에 비추어볼 때 학생도 정치인도 실업자도 하층민도 아닌 사람이 시위에 적극 참여한 것은 희귀한 일일 뿐만 아니라 믿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그가 부자 소리를 듣는 등 경제적으로 윤택한 중산층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는 증언에서 순식간에 발생한 일이고 또 그 상황에서 내가 생각하고 배운 가장 정의로운 행동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싸웠던 것이다(하상칠, 2010, 478)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하상칠의 이처럼 높은 사회의식(정의감)과 참여의식(실천)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에 답하려면 그의 삶 속에서 다양한 실마리를 찾아보는 방법밖에 없다. 예컨대 성격, 가족 구조, 가정 형편, 교육, 친구 관계, 직업, 사회활동 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젊은 시절, 친구와 함께 - 오른쪽이 하상칠 선생>

 

하상칠은 초등학교조차 다닌 적이 없고 서당 교육의 유무도 확인할 수 없어 학교 교육의 영향은 논외다.

역으로 그는 많은 한국인들이 그러하듯이 자식 교육만큼은 최대한으로 시켰고 수많은 조카들까지 자기 집에서 먹이고 재우면서 학교를 다니게 했다.

이 사실은 한편으로는 그가 가문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음과 동시에 교육을 통한 개인의 신분 상승과 이로써 가문의 영광을 구현한다는 유교적 관념을 가지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어쨌든 그는 관직만이 출세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실제로 그는 자식이 정치와 행정이 아니라 학계나 예술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도 높이 평가하기는커녕 거의 무관심했음을 필자는 기억한다.

이는 그의 권력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그가 체험한 권력의 무서움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작용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한국인의 권력에 대한 양면성을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그가 받은 가정교육이나 소년기와 청년기에 대해 뭔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생존해 있지 않다. 그러나 이미 프로필에서 본 바와 같이 그는 어릴 때 지지리도 못 사는 속에서도 진양 하씨 가문이 간직한 선비 정신의 분위기 하에서 자랐다.

이것이 나중에 선비 가문의 전통을 자랑스러워하고 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나타났고, 특히 오촌 당숙인 백촌 선생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그는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고 옳은 일을 해야 한다는 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가 받은 교육의 효과를 추정할 수 있는 길은 없다 해도 그가 자식들에게 제공한 가정교육을 통해 역으로 유추해볼 수는 있다.

자식들은 그가 불의를 보고 그대로 넘어가지 못하는 대쪽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조모(조부는 그가 아주 어릴 때 돌아가셨다)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자식 중 하나가 작은 잘못이라도 저지르거나 도덕적으로 삐딱한 행동을 해도 자식들 전부가 단체로 야단을 맞거나 벌을 받았다.

꾸중을 할 때는 반드시 정치적 또는 사회적 모순을 예로 들었다. 그래선지 자식들도 사회적 불의에 대해 공동 책임감을 느끼고 잘못된 것을 보고 그냥 넘어가지 않는 입바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셋째 딸은 198020세 때 창동의 모 상인의 횡포를 알리는 플랫카드를 들고 단독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서에 잡혀갔고 부친이 와서 풀려난 적이 있는데, 큰 벌을 받을 각오를 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사람을 상대로 승산 없는 싸움하느라 고생했다며 칭찬을 들었다며 그때 아버지가 엄청 존경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친구 면에서 그의 성격이나 행동거지를 아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315의거 이전의 친구 관계는 전혀 알 도리가 없고, 92세로 장수해서 사건 이후에 사귄 친구도 이젠 찾기 어렵다.

사회 활동으로 얼음 판매업계 회장, 종친회 회장, 노인당 회장 등 성격이 전혀 다른 여러 조직의 장을 맡았다는 경력이 그가 무학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리더십과 불편부당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게 해줄 뿐이다.

가족들이 아는 한 그는 정당이나 사회단체 등 정치적 색채를 띤 활동을 한 적이 없다. 315의거 참가 이후 그는 자신의 활동을 완벽하게 숨기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모든 정치 관련 활동에서 의식적으로 멀리 했을 가능성이 높다.

단 경우회 자문위원 위촉은 의거 참가 이후의 일인데다 이 또한 의거 참가나 사상을 의심받지 않기 위한 보신책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이는 그가 목적 달성을 위해 용의주도하게 대처하는 성격이었음을 추정케 한다.

가족들은 그가 평소 전형적인 보수주의자의 언행을 일관되게 해왔으며 특히 전라도에 대한 강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한다.

그의 반 전라도 감정은 거제도 포로수용소 시절에 친하게 지내면서 잘 대해주었던 전라도 출신의 한 동료 포로에게 배신당한(자신의 돈까지 들고 튐) 경험과 나중에 마산에서 사업을 하면서 전라도 출신자들과의 접촉에서 겪은 경험의 소산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국가관이나 공동체 의식(의무감)과 관련해서는 약 3년간의 포로수용소 경험이 상당히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반공포로 경력도 완벽한 비밀로 유지해왔기 때문에 거기서 구체적으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들려줄 사람이 아예 없다.

그러나 당시 포로들의 생활과 거기서 벌어진 유혈 사태들은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포로수용소는 훌륭한 정치 및 이데올로기 학습의 장이었을 것이다.

그는 친공과 반공을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치열한 사상 투쟁을 보면서 국가와 민족, 정치와 이데올로기, 공동체와 사회적 정의, 옳고 그름의 분별, 이데올로기의 실천 등에 관한 나름의 의견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형성했을 것이다.

단지 처 신을순은 그가 다른 포로들에게도 반공포로로 분류되도록 설득했다는 사실을 들은 적이 있다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강한 반공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그가 박정희 개발독재에 친화성을 보였지만 박근혜 국정 논단 사건에 대해서는 가혹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음을 기억한다.

반공, (개발)독재 등 한국 보수주의의 핵심가치를 지지하면서도 그것이 사회적 정의(법치와 법의 준수, 절차적 민주주의의 존중 등)에 바탕을 둔 것이어야 한다는 사고는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모습이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절차적 민주주의를 위반한 부정선거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고, 선거 무효를 위한 개표 저지 활동은 선비 정신의 구현이었을 것이다.

요컨대 뿌리와 가문을 중시하고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선호했던 보수주의자이면서 불의를 용인하지 못하는 하상칠의 성격은 정의 실현과 원칙 준수가 보수와 진보를 넘어 한 사회를 유지케 하는 공통의 기본가치임을 잘 보여준다.

당시 그는 마산의 도심 유흥가 업소들을 주 고객으로 얼음 소매업을 적어도 5년 이상 해왔다. 지방 도시의 도심 유흥가는 정재계를 비롯한 각계의 지역 유지들 사이에 정보 교환과 정치적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보고 들은 것들도 그의 사회의식과 정치의식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수많은 부정부패의 현장을 보거나 관련 소문을 들었을 것이고, 이에 대한 반감과 저항심을 키웠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유력한 상인이 되려면 편의주의(편법 활용), 보신주의(신상 안전)와 기회주의(이익 우선)를 키웠을 법한데 그는 달랐다.

상당한 부를 쌓았음에도 부동산 재테크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고 나중에 이를 후회하는 말을 한 적도 거의 없다는 사실은 그가 땀 흘리지 않고 얻은 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이는 그의 남다른 정의감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는 공로자 심사에서 탈락한 후 줄기차게 재심을 요구하면서 사망하기 얼마 전에도 진정서를 보냈으며, 면담은 못했지만 직접 보훈처장을 만나기 위해 본청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노인의 아집이라기보다는 목적 달성을 위한 집요함과 공적에 대한 강열한 인정 욕구를 보여준다. 이는 달리 보면 그의 증언의 진실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로 해석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그의 삶의 편린들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그의 시위 참가가 개인에게 체화된 강렬한 정의감에 기인하는 것임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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