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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 18. 00:00

YMCA 연원을 찾다 - 1

오랫동안 회원으로 활동한 YMCA의 연원을 찾아보았다.

얼마 전, 업무 차 런던에 하루 머물렀는데 마침 약속이 오후로 잡혀 오전 시간을 이용했다.

나를 안내해준 분은 런던YMCA의 캔 몽고메리(Ken Montgomery) 국제담당국장이었다.

 

YMCA184466일 런던의 한 상점에서 일하던 조지 윌리암스를 비롯한 12명의 청년들에 의해 탄생되었다.

<조지 윌리암스(George Williams, 1821~1905)>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세계를 지배했고, 수도 런던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구 200만에 도달한 세계 최고 최대의 도시였다.

자신들이 이루어낸 과학기술의 발전이 새 시대를 열어줄 것이라는 확신에 차있던 꿈의 도시였다.

그런 만큼 어두움의 그림자도 깊었다.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은 무제한적 투자와 건설, 끝없는 생산과 착취가 수반되었고 이로 인한 사회적 불안이 극심했다.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기독교는 이런 현실을 외면했다. 교회와 교파는 자신들의 이익을 쫓아 분열했고 종교적 소명도 자기중심적으로 분출했다.

초기 YMCA가 쉽게 전파된 것은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의 요청에 부응했기 때문이다.

 

YMCA를 창설한 조지 윌리암스(George Williams, 1821~1905)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매우 성실하고 사려 깊은 청년이었다.

그는 1821년 영국 남부의 애쉬웨이(Ashway)에서 성공적인 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네 살이 되던 1835년 글로인 스쿨(Gloyn School)을 졸업하고 열다섯에 브리지 워터(Bridge water)의 홈즈 직조공장 견습공으로 취직했다.

조지 윌리암스는 그곳에서 뜻이 맞는 친구들을 규합, 작은 기도 모임 주관하기도 했다.

스무 살이 된 1841,

윌리암스는 런던의 대형 포목점인 히치콕 앤 로저스(Hitchcock & Rogers) 상회에 조수 점원으로 취직을 하는데, 그것이 그의 생애를 결정 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조지 윌리암스가 일했던 Hitchcock & Rogers상회 / 지금은 철거 되고 없다>

 

그 시기에 그가 남긴 기록이다.

“1841년 하느님의 섭리로 나는 런던에 왔다. 그리고 세인트 폴즈 처치야드(St. Paul’s Churchyard)의 어느 상점에 직장을 얻었다. 당시 젊은이들은 저녁시간의 대부분은 멋대로 분망하게 보냈으며, 여기저기 오락장엘 드나들었다. 저들의 말투, 부도덕함, 술타령 등 어느 것 하나 악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내가 그 상점에 취직했을 때 130~150명의 조수점원이 있었다. ……. 나는 5~6명의 점원들과 한 방을 썼는데……

 

<St. Paul’s Churchyard의 현재 모습>

 

조지 윌리암스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라는 회의와 문제의식을 가진 청년들과 은밀한 기도모임을 하면서 문제의식을 키웠다.

그러던 중 1843년 말 어느 날, 모임을 함께 갖던 조지 윌리암스와 친구들은 새로운 각성을 하게 되었다.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임을 조직화해서 확산시켜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고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YMCA (The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 / 기독교 청년회)는 그렇게 시작한 열두 명의 청년에 의해 탄생되었다. 184466일 조지 월리암스의 하숙방에서였다.

창설 초기의 활동은 주로 성경연구와 기도회였지만 세력이 점점 확장되면서 인문, 자연, 종교에 관한 공개강연회와 출판, 도서실 설치 등 다양화되어갔다.

처음에는 10여 개 점포의 젊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활동했으나 참여인원이 많아지면서 일반 청년들에게도 문호가 개방되었다.

창립 후 회원들이 급증했다. 창설 4년 뒤인 1848년에 런던 회원이 100여명으로 늘어났으며 지방 회원도 520명 가입했다.

 

175년 전 런던 세인트폴 처치 야드의 조그만 방에서 시작된 YMCA는 오늘날 세계 최대의 시민조직체가 되었다.

전 세계 123개국에 7,139YMCA, 800여만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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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2. 18. 00:00

공간과 건축의 궤적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 - 13

1. 시작하는 글

2. 주거의 변화(대원2구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기까지)

  3. 공간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5

4. 외관의 변화와 대원2구역 아파트 - 2

5. 마치는 글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의 숙소로 시작되었지만 당시의 아파트는 19세기 서구사회가 꿈꾸었던 유토피아적 공동체의 발현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심리적 일체감과 만족감을 줄 것으로 기대했던 바람과 달리 지금 우리의 아파트는 계층 간 분리라는 새로운 사회 문제를 야기했다.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달리 취급되고 여가와 취미 등 삶의 질을 결정하는 생활방식도 달라졌다.

아파트의 대중화는 주거설비의 획기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가장 큰 변화는 주방시설에서 비롯되었다.

주부의 가사노동을 줄여줄 뿐 아니라 세련된 디자인과 쾌적한 환경까지 제공되는 주방으로 변했다.

주부의 의지에 아파트 분양의 성패가 달렸다는 사실을 간파한 건설업자의 전략 때문이었다.

자동으로 작동되는 각종 기기들은 이와 조화를 맞춘 가구와 더불어 빌트인(builtin)시스템 방식을 탄생시켰다.

미디어·방재·교류 등 생활시설들도 획기적으로 변하였으며 모든 시설들이 자동 혹은 원격 조정이 가능하도록 변하고 있다.

아파트는 오직 현관문 하나만으로 기밀성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단순하고 짧은 동선이 주는 편리함과 단열 및 보온이 주는 냉난방시설의 효율성 때문에 도시주거형식으로 일반화된 지 오래다.

대량공급이 가능해 부족한 주택 량을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는가 하면 매매가 용이해 교환가치도 높다.

이런 점들 때문에 여러 가지 부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는 범 계층적 주거형식으로 정착된 것이다.

경남은 2010년 기준으로 단독주택이 40.1%인데 비해 아파트가 54.1%를 차지하고 있다.

도시지역의 아파트 건설은 경관·교통 등 도시 관리측면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라는 주거형식은 택지가 좁고 인구가 많은 우리나라의 조건에서 쉽게 포기될 수 없는 대안이다.

향후 새로운 대안이 창출되지 않는 한 아파트는 가장 보편적인 주거형식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원2구역의 아파트들은 70년대 공단건설이 시작되고 80년대 독립 시()로서 신도시건설이 본격화되었던 시기에 지어졌다.

주거시설로서는 계획도시 창원의 증언자이자 기원이기도하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버텨온 이 나이든 집들이 사라지고 나면, 같은 자리에 키 크고 반듯하고 훨씬 진보된 새 아파트가 탄생할 것이다.

갯가가 멀지 않았던 한가로운 농촌이 돌과 흙으로 덮여 사라지고 그 위에 집들이 들어섰다.

하지만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그 땅의 과거를 알지 못한다. 새 아파트 사람들도 수십 년간 서있었던 지금의 아파트와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땅의 역사를 기억시키지 못하는 도시에서 토막 삶을 사는 탓이다. 이 글은 단절된 삶에 대한 아쉬움에서 비롯되었다.<<<

 

<동양상가아파트>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 입구에 설치된 게시판>

<세플러코리아사원아파트 어린이 놀이터>

<경남아파트>

 

<참고자료>

창원기계공업공단, 창원기지5년사, 1979

강영환, 집의 사회사, 1992

창원시사편찬위원회, 창원시사, 1997

손수일, 아파트 외관의 시대별 형태변화특성에 관한 연구, 1999

강영환, 한국주거문화의 역사, 2002

마산·창원지역사연구회, 마산·창원역사읽기, 2003

강석재, 아파트 외관의 변천에 따른 분석적 연구, 2004

전남일·양세화·홍형욱, 한국주거의 미시사, 2009

창원문화원, 창원600년사, 2009

이창윤, 근대 한국아파트의 평면변화에 관한 연구, 2009

박노학, 국민주택규모 아파트의 단위주거 평면계획 변화특성에 관한 연구, 2012

박배균·장세훈·김동완, 산업경관의 탄생, 2014<<<

 

- <창원 성산구 대원동 '꿈에 그린' 재건축 터의 역사>는 이번 13회 포스팅을 마지막으로 모두 마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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