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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 8.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56) - 강점제3시기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중앙부두 공사>

중앙부두 건설공사도 제1부두와 같이 1936년 10월 조선총독부에서 경성의 삼택조(三宅組)에 맡겨 시공하여 제1부두와 같은 날인 1939년 5월 19일 준공하였습니다. 총 25,475평 규모로서 총길이 1,080m의 물양장도 갖추었습니다.

현재 이 중앙부두에는 연안여객터미널․마산지방항만청․모래부두․쌍용양회 시멘트 사일로․세관․검역소 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만 현대아이파크 앞에 합동청사가 준공되었기 때문에 공공기관은 곧 이전할 것 같습니다.

공공기관들이 이전하고 나면 이 일대를 근래에 조성한 서항부두와 함께 해양친수공원으로 조성할 것입니다. 마산 해안에 큰 변화를 가져올 계획이므로 시민들 기대가 높습니다.

시멘트 사일로도 철거한다고 하는데 여수엑스포 때처럼 재사용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래 설계도는 중앙부두 공사 때 작성된 도면입니다. 조선총독부 내무국 초량토목출장소에서 설계한 것인데 정부기록보존소에 보존되어 있는 자료입니다.

 

 

이 설계도면 좌상부에 있는 단면도를 보면 당시 해안매립지의 지반고(Ground Level)를 알 수 있습니다. 설계도를 보면 만조 시의 해수면과 지반면이 거의 동일한 위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낮게 설계된 지반고가 태풍 매미 때의 엄청난 피해를 불러왔고 지금도 어시장 해안에 사리(매달 음력 보름과 그믐날, 조수가 가장 많이 밀려오는 때) 때가 되면 바닷물이 육지를 덮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한 장의 설계도가 말하고 있는 의미는 큽니다.

일본인들이 적은 돈을 들여 마산해안을 매립하려했다는 것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에 이 설계도는 태풍매미의 원인을 분석하는 자료로 중앙언론에 소개되기도 하였습니다.

매립지의 지반고를 적절한 높이까지 올리려면 엄청난 양의 흙을 반입해 다져넣어야 되는데 그러기엔 건설장비가 없었던 당시에 어려움이 많았을테고 당연히 고비용이 필요했을 겁니다. 따라서 도시의 백년대계보다는 적은 돈을 들여 당장 필요한 부지를 확보하겠다는 판단을 했던 겁니다.

그렇게 볼 때 태풍매미 때의 피해와 지금 어시장에서 입는 피해는 일제가 남기고간 부실한 매립 탓입니다. 

 

<조선총독부가 시행한 제1부두 2차 공사>

제1부두 1차 공사에 이어서 시행된 제2차 공사는 8,600여 평 규모의 추가 공사로 매립되어 이 이후 제1부두는 총 면적 12,000평 규모의 용지를 확보했습니다.

해안선에는 석축안벽이 설치되었고 그 외 물양장․계선장(繫船場) 등이 건설되었지만 준공되기 직전 해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부두공사는 거의 끝난 상태여서 해방직후부터 부두로 사용되었으나 서류상으로는 1966년 6월 3일 비로소 지목이 설정되고 국유화가 된 땅입니다.

위치는 가고파국화축제가 열리는 바로 그 곳입니다.

위의 두 매립지 위치도입니다.<<<

 

 

2012/07/30 - [역사속 도시이야기] -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20) - 강점제3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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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19. 00:00

'태풍 산바'가 지나고 난 뒤 풍경

태풍이 왜이리 자주오는지 모르겠습니다.                                                        - 역사상 우리가 알만한 태풍의 기록을 살펴보면 1959년 9월 11일 발생한 '사라호 태풍'으로 당시 중심 최대풍속이 85m/s로 이로 인한 사망 및 실종 849명으로 한국에서 재해 기록이 이루어진 1900년도 이래 당시에 많은 인명 피해가 났다고 합니다.               - 다음으로 우리지역 마산에서 2003년 9월에 발생한 '태풍 매미'입니다. 당시 인명피해 130명이 발생하여 마산지역이 전국의 뉴스 포커스에 오르기도 하였읍니다.  올해만 해도 '태풍 볼라벤'에 이어 일주일 만에 '태풍 산바'가 우리지역을 거쳐 지나갔습니다.

 

태풍 산바가 지나간 다음날 아침                                                            수출자유지역 해안로를 따라 출근하는 중이였읍니다.  해안로 도로확장을 위해 물막이 공사벽 옆에 설치한 오탁방지망 튜브가 놓여진 곳에 이름모를 철새들(이름을 모르는 관계로?, 바다새?)이 튜부 위에 줄지어 않아있었습니다. 그것도 가장 내측면인 오탁방지막이 끝나는 지점에 모여 있었습니다. 얘들도 아마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하였을 것입니다. 새들의 생태학적인 감각으로 태풍으로 부터 가장 안전한 곳으로 온다고 온 곳이 이 지점이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풍 덕택에 얘들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것 같습니다. 

 한편 도심내에 얘들이 놀만한 갈대숲이나 습지가 있으면 좋은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까이서 더 자주 보기위함이 아니라 새들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은 우리 인간들에게도 당연히 좋은 환경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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