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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21. 00:00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9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2) "동네 지킴이칠원쌀상회" ------------------------- 이○○

1948년생

마산합포구 교원동 무학상가 1층

날짜 : 2015년 1월 6일

장소 : 자택

 

- 반갑습니다. 지금 조합원 중에서 이 동네에 아주 오래 사셨다고 들었습니다.

= 예. 이 자리에만 거의 40년을 살았네요. 하여튼 요 동네에서 오래 살았습니다.

처음 왔을 때는 이 아파트 들어서기 전인데 내나 같은 동네입니다. 여기가 3-5번지인데 거기가 교원동 3-6번지이네요.

내가 여기 이사올 때는 단층 슬라브집 지어놓은 데 바로 들어 왔거든요. 주인이 진해에 있었는데 우리가 먼저 들어 왔어요. 방 큰 거 한 칸에 부엌 있고 다락방 있고 조그만 했어요.

지금도 내나 그대로 있거든요.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 사람은 병원에 가 계시고 안계실 겁니다.

그리고 이 무학상가 자리에는 옷짜는 요꼬공장이 있었거든요. 지금 앞에 주차해 놓은 데가 공중화장실 자리고요. 그리고 바로 앞에는 옛날에 영일공업사라고 쇠를 가지고 뭐 만들던 공장이었어요. 그런데 요꼬공장은 이름을 모르겠네요.

그때만 해도 밭은 별로 없었어요. 집이 많이 들어서 있었고요. 초가집은 없었고 전부다 쓰레트나 기와집이고 슬라브 집은 몇집 있었어요.

교방동 쪽에는 논이 많이 있었는데 여기는 전부 집이었어요. 지금도 그때하고 집은 변동이 별로 없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 당시에 동네 주변은 어땠습니까? 동네는 뭐라고 불렀습니까? 요꼬공장도 있었다고 하셨는데 다른 공장은 없었습니까?

= 건너편 회원동 쪽에도 기와집도 있고 쓰레트집도 있고 공터도 있고 그랬는데 내가 오고나서 집을 새로 많이 지었어요.

그때 동네 이름 뚜렷하게 부르는 것은 없었어요. 사람들이 집 위치를 물으면 옛날 요꼬공장이라고 그랬거든요. 우리가 뭐 부탁할 거 있으면 옛날 요꼬공장 옆으로 오라 그랬거든요. 그때 요꼬공장이 컸습니다.

하여튼 여기서부터 저 끝까지 전체였거든요. 그 요꼬공장을 뜯고 짓고 하는데 한 일년반이나 이년 가까이 걸렸을 겁니다. 요꼬공장 했던 사람 성은 모르겠네요.

그리고 상가 지하에 콩나물 공장이 있는데 지금 현재도 하고 있습니다. 그 콩나물 공장이 81년인가 82년인가 모르겠는데 그때부터 계속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한 사람은... 하도 오래돼서 이름을 잊어버렸는데 성은 정씨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사람은 권씨이고요. 여기 콩나물 공장 이름이 수정식품인데 여기 지하수가 참 좋아요. 지하가 다 콩나물 공장입니다. 이 가게 여덟 개 하고 반 정도로 큽니다.

콩나물 공장 말고는 지금 현재로 바로 밑에 고물상이 있습니다. 그 집이 고물상 한 지가 한 칠팔 년 됐나 그럴 겁니다.

- 이 무학상가가 오래된 상가라고 들었는데 그 얘기를 좀 해 주십시오. 상가를 불하 받으신 겁니까?

= 예. 이 상가를 먼저 짓고 그 다음에 아파트를 지었거든요. 상가를 다 짓고 불하를 했는데 그때 가게 하나에 여덟 평 몇 홉인가 그럴 깁니다.

그때 가게가 총 39개였어요. 불하받을 때 평당에 얼마나 주었는지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가게 하나에 2백만 원인가 주고 샀어요. 그래가지고 쌀집을 낸 거지요.

여기에 처음 상가가 형성이 될 때에는 생선장사, 식육점, 참기름집도 있었고 철물점도 있었고 잡화가게도 있었고 연쇄점도 있었고요. 이 무학상가를 지어서 분양한 업체는 개인이 했는데 그 사람도 세상 버리고 없고... 오래되니까 이름도 다 잊어버렸습니다.

여기 상가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은 다 가버리고 지금은 내 혼자 뿐이라예. 연쇄점이 있었는데 그 뒤에 받아서 한 사람이 감천슈퍼라고 있었거든요. 앞에 한 사람은 모르겠고요.

상가는 형성이 됐는데 장사가 잘 안됐어예. 밑에 시장이 가깝고 하니까 상가가 잘 안됐어요. 하나씩 하나씩 문을 닫았는데 한 이삼년간에 다 없어졌어예. 지금은 다 빈 가게만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아파트는 상가 들어서고 난 뒤에 같은 업자가 올린 건데 2층 3층을 증축을 했지예. 처음에 모두 16가구가 들어왔는데 지금은 15가구만 살고 있어요. 한 집만 비어 있고 주인은 다 있고예. 지금 건물이 그냥 낡은 정도가 아닙니다.

- 이쪽 교원동으로 이사 오시게 된 거는 직장 때문이었습니까? 또 쌀가게도 오래 하셨지 않습니까?

= 그때 여기로 온 것은 남의 집이라도 새 집에 살아보자 해서 이사 온 겁니다. 직장은 우리 아저씨가 자유수출에 다녔어요.

나는 고향이 의령인데 회사 다닌다고 대구에 가 있다가 결혼해서 마산으로 왔어요. 우리 아저씨는 총각 때부터 여기에 있었고요.

아저씨 하고는 같은 동네는 아니고 나는 이병철이 생가 있는 정곡면이고 거기는 지정면이고 그래요. 그래 여기로 이사와 가지고 수출에 다니다가 거기 경기가 좀 안좋아가지고 해서 그만두고 가게를 사서 장사를 시작했지요.

그때부터 여기서 쌀집을 했습니다. 이름이 칠원쌀상회인데 태풍에 간판이 날아가버리고 나서는 그냥 간판을 안달았어요. 칠원쌀상회라고 한 거는 다른 사람이 하던 가게 허가를 우리가 받았기 때문이지요. 칠원쌀상회는 원래 다른 데 있었어예. 거기도 교원동인데 옛날 북마산역 밑에 그 안골목에 있었어예. 하도 오래 되어서 그 사람 성도 모르겠어예.

그래도 쌀집 냈을 때는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개업한 날이 78년 4월 10일입니다.

그때 개업잔치도 하고 떡도 하고 그랬어요. 십몇년 지나고 우리 아저씨가 기술을 배워서 도배를 했거든요. 옆에 가게를 세 얻어서 도배도 하고 장판도 팔고 하는 가게를 했어예. 그 가게 이름이 무학장식인데 지금은 안합니다. 안한 지가 육 년 정도 됐나 그렇습니다.

쌀가게는 그대로 하고 그때 장사는 잘 됐어요. 그때 쌀은 주로 함안 대산장에서 사왔어요. 의령하고 경계선이고 고향이 가깝다보니까요.

또 촌에서 누가 방아 찧어놨다고 연락오면 거기 가서 사오고 그랬어요. 그때 장날 쌀을 사놓으면 쌀집마다 배달해 주는 트럭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장날마다 배달하는 장차가 있었거든요. 그때는 정부미 취급을 많이 했는데, 조합에 신청을 하고 한 이삼일 있으면 배달이 됩니다. 또 쌀집은 보통 소금을 다 취급하는데 우리도 소금도 하고 잡곡도 하고 그랬어요.

- 한때는 쌀가게를 크게 하셨네요? 요즘은 어떻습니까?

= 할 때는 많이 했어요. 그때는 일반 쌀은 그렇지만 떡집에 들어가는 정부미가 억수로 많았어요. 정부미 한 창고 들여 놓으면 일주일만에 다 나가고 그랬거든요.

이 칠원쌀상회가 제일 잘 될 때는 이십년 전쯤 되겠네요. 우리가 78년도에 했으니까 85년부터 95년 그 사이에 최고 잘 되었을 때라고 봐야 되겠네요.

쌀이 많이 나가는 데는 떡집인데 우리가 주로 거래한 데는 어시장 지금 농협 있는 맞은편 골목에 서울떡방앗간 부산떡방앗간 그런 데 였어요. 이 근처에는 삼양떡방앗간이라고 있었는데 지금은 회원1동 파출소 있는 데로 이사를 갔어요.

우리가 취급한 쌀도 옛날에는 통일벼, 밀양3호... 또 정부미, 납딱보리쌀, 혼합미 그런 종류가 많았어요. 지금은 아예 정부미라고는 없습니다.

지금은 주로 함안 산인 정미소서 바로 찧어 오거든요. 지금은 납품은 없고 오는 사람 있으면 조금 팔고 그렇습니다.

지금은 옛날에 비하면 장사도 아닙니다. 옛날에는 되로 팔고 그랬는데 지금은 소포장이 많이 나오니까 사람들이 시장에 가서 달랑 사오고 그렇거든요. 지금은 내가 재개발이 아니면 진작 그만두었을 겁니다.

- 예전에 큰 홍수가 난 적이 있다면서요?

= 쌀집 하면서 홍수 난 것은 뚜렷하게 기억납니다. 쌀가게 차리고 나서 얼마 안됐을 때입니다. 비가 엄청나게 와가지고 이 상가 앞에 돌다리도 다 떠내려가고 그랬습니다.

옛날에는 기둥도 비석 만드는 돌이고 그랬는데 그때 떠내려가고 나서 일년 동안 외나무다리로 다녔어요. 그때 우리 집 앞에 땅이 일 미터 놔두고 다 파여 내려가 버렸습니다.

저 산 위에서 나무뿌리며 나뭇가지 같은 것이 떠내려 와서 다리발에 엉켜서 못내려가니까 물이 차올라서... 그때 여기 서서 땅이 막 파여 쓸려내려가는 것을 봤어요.

또 저 위 축사에서 돼지도 떠내려오고 냉장고도 떠내려가고... 큰 바윗돌도 떠내려가고... 사람들이 구경한다고 와글와글 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혹시나 싶어서 쌀을 마루 위에다 재어 놔서 쌀 피해는 없었어요. 또 이 동네는 집이 떠내려간 거는 없었는데 이 밑에 전당포 있는 그 근처 집들이 다 떠내려갔습니다.

- 홍수로 큰 피해를 입힌 하천이지만 옛날에는 물이 맑았지요?

= 지금은 회원천이라 하지만 옛날에는 회원도랑이라 했거든요. 이사 오고 나서도 다리 밑에 내려가서 빨래 많이 했습니다. 물이 참 좋았어요. 위에 사람들이 많이 안사니까 깨끗한 물이 내려왔거든요. 꼬맹이들 목욕도 하고 그랬는데 어느 때부터 물리 더러워졌더라고예.

또 수도물이 하루 나오고 하루 안나오고 할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빨래를 주로 앵기밭골 위에 가서 하고 아니면 서원골 큰 은행나무 있는 그 옆에 가서 씻고 그랬어요.

목욕은 건너편 현대탕에도 가고 태양목욕탕에도 가고 또 옛날에는 지금 자이아파트 들어선 그 자리에 보성탕이라고 있었는데 거기도 가고 그랬지요.

- 이 동네 살아보니까 어떻습니까? 오래 사셨는데요.

= 다른 동네는 살려고 아예 생각도 안해 봤습니다. 그냥 이 동네에서만 쭉 살아왔으니까 쉽게 말하자면 찌끼미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상가를 내가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게가 서른아홉 개인 줄 퍼떡 알지요.

리고 내가 이 동네서 통장을 오래 했어요. 1통 통장을 12년 전에 8년을 했거든요. 이번 1월 1일부로 또 통장 임명을 받았습니다.

- 재개발이 잘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이 글은 창원 소재 '도시문화콘텐츠연구소'에서 펴낸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사업 ‘마을흔적보존사업 실행계획서(2017)’ 중 발췌한 것이다. 지금은 이미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어버린 이 재개발 지역의 변천과정과 그곳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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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6. 18. 00:00

경남지역 주거변천사 - 10 /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4) 새마을운동의 농촌주택개량사업 - 2

 

농촌 주택개량사업은 새마을운동 시작 다음 해인 1972년부터 전개되었으며 담장이나 지붕 등의 부분적 보수와 개량으로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관리들은 초가지붕이 비위생적이고 아름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시멘트 기와나 슬레이트로 바꿀 것을 강압적으로 독려하여 옛 부터 이어 온 초가지붕은 급속히 사라져갔다.

초가지붕 대신 들어선 울긋불긋한 원색의 낯선 지붕들은 자연경관과 부자연스러운 풍경을 만들었다.

그런가하면, 초가지붕이 가지고 있었던 단열기능과 빗물처리의 능력을 시멘트 기와나 슬레이트가 대신 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집이 되거나 비가 자주 새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시작된 농촌 주택개량사업은 1978년에 이르러 목표 대비 107%의 초과 실적을 올리게 된다.

목표를 초과달성한 정부는 한걸음 더 나아가 전국의 농촌주택을 새롭게 건설할 요량으로 1978년부터 표준농촌주택설계안을 마련하여 재정지원을 약속하며 권장하였다.

하지만 입식부엌과 마루를 중심으로 한 집중형 평면의 표준주택은 농촌지역의 풍토와 생활관습에 맞지 않았을 뿐 아니라 융자금 상환에 대한 부담까지 작용하여 농민들로부터 외면 받아 실패하였다.

 

 

새마을운동은 초기에는 농민들의 자발성이 매우 두드려졌지만 해가 갈수록 공무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대통령의 최고관심사가 새마을운동이다 보니 그 과정에서 거둔 공무원들의 실적은 승진과 바로 직결되었다.

그렇다보니 일부 몰지각한 공무원들이 지붕개량을 하지 않는 집의 초가지붕을 갈고리로 뜯어내거나 통일벼를 심지 않은 못자리를 장화발로 짓밟는 일까지 빈번히 발생하였다.

하지만 유신체제의 경직된 분위기는 이런 상황을 묵인 방조하였다.

새마을운동이 농촌근대화의 징표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지만, 수백 년 이어온 집과 마을의 경관이 하루아침에 낯선 모습으로 일시에 뒤바뀌었고 그 과정에서 국민들은 타율적 존재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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