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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9. 27. 08:03

현기영의 '누란'을 읽었습니다

《현기영의 ‘누란’을 읽었습니다》

‘책 읽어주는 남편’이란 책을 낸 뒤 여기저기서 만나는 사람마다 “요즈음도 아내에게 책을 읽어주나요? 지금은 무슨 책 읽어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지난 17일에는 CBS 라디오 전국방송에 출연하여 개그우먼 장미화 씨와 1시간가량 생방송을 했는데 거기서도 ‘지금은 무슨 책을 읽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최근 읽었거나 읽고 있는 책을 시간 날 때마다 소개해 볼까합니다.


지난주에는 소설가 현기영 선생이 쓴 ‘누란’을 읽었습니다.
자전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 이후 10년 만에 접한 그의 소설입니다.

현기영 선생의 작품에는 언제나 그의 고향 제주도가 빠지지 않았는데 이번 작품은 제주도와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늘 보듬고 고민하던 한국현대사의 고통과 질곡에 대한 내용이란 점은 다른 작품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80년대의 극렬 운동권이었던 소위 386세대 주인공 허무성이, 구속된 뒤 참혹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동지들을 감옥에 보낸 후 겪는 심리적 갈등을 주제로 한 소설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한국사회가 민주화되었지만 물신주의와 배금주의에 지배당해버린 오늘의 현실을 질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소설은 첫 장부터 허무성이 당하는 끔직한 고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아, 까무러칠 수만 있다면!
아니, 차라리 죽을 수만 있다면!
이 저주의 육체를 포기해버릴 수만 있다면!
푸아, 푸아, 가쁜 숨을 몰아쉬는 희생물 앞에 얼굴을 바싹 들이댄 포식자 김일강. 이 위로 입술이 잔인하게 말려 올라가 있다.

“이 빨갱이 새끼, 허무성! 항복해! 뭐, 더 이상 자백할 게 없다고? ·········
이 새끼, 자백할 게 없으면 소설이라도 써봐, 픽션이라도 만들란 말이야.
네가 항복할 때까지 고문은 멈추지 않을 거야. ·········
알았어? 이 새끼 다시 물에 처박아!”

너무 끔찍하여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안경 쓴 박종철의 선한 눈매가 떠올랐고 회색 빛 그 시절의 추억이 이것저것 떠올랐습니다.
고문장면을 들으면서 아내는 인상을 찌푸리며 “나쁜 놈들, 아휴 나쁜 놈들”을 연신 되뇌었습니다.
지금은 잊혀졌지만 그 시절에는 흔히 있었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일류 대학을 나와 사법고시를 거친 검사출신의 그 고문기술자는 문민정부 이후에 국회의원으로 버젓이 활동합니다.
주변에서 흔히 듣고 본 일이었지만 이 책을 읽다가 가만히 생각하니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 허무성은 모진 고문 끝에 친구들을 배신한 후, 바로 그 고문기술자의 도움으로 일본에 유학했고, 다시 그의 도움으로 대학교수가 됩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트라우마를 앓으며 고통 속에 빠져 살다가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노숙자가 됩니다.
이런 줄거리 속에서,
80년대를 관통했던 민족과 국가 그리고 민주와 자유라는 무거운 주제에 대한 고뇌보다는 물신숭배의 소비와 향락에 빠져 사회문제에는 아무런 의식조차 없는 세태에 대한 작가의 한탄과 절망이 그려져 있습니다.

요즈음 대학생들을 빗댄 재미있는 글 한 줄이 있어서 소개합니다.

‘진주의 논개가 왜장의 목을 껴안고 인당수에 몸 던지면서 하는 말,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낄낄낄’


- 우리 시대 물신숭배에 대한 깊은 우려와 절망이 곳곳에 배여있어 -


책을 읽기 전에는 책의 제목 ‘누란’이 그저 ‘위태로운 상황(累卵)’이라고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읽다보니 ‘누란’이 그 ‘누란’이 아니라 고대국가 ‘누란(楼蘭, Loulan)’임을 알았습니다.

책을 읽다가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니
‘누란’은 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 사이, 즉 지금 중국의 신장-위그로 자치주에 있었던 고대도시국가로 실크로드의 중계거점이기도 했던 오아시스였는데 1,600여 년 전 주변 국가들의 침입과 자연의 변화로 멸망하여 지금은 옛 성터만 유적으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주인공 허무성이 서울 한복판에 불어 닥친 짙은 황사를 보면서,
무풍의 고요한 오아시스 ‘누란’국의 하늘에 돌연 폭풍이 몰아치며 청천하늘을 가리면서 누런 모래가루들이 초록의 땅을 순식간에 무(無)로 만들어버렸던 사실을 떠올립니다.
벼랑 끝으로 질주하는 듯한 참담한 한국사회의 물신숭배주의에 대한 절망을 토로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막 사이에 한때 크게 번창했던 옛 왕국 누란을 삼켜버린 그 가없는 모래바다,
모든 것이 죽고 모래폭풍과 인광들만이 살아 움직이는 곳이었다.
폭풍이 몰아쳐 거대한 바퀴 모양의 깊은 궤적을 파놓으면 흰 뼈들이 드러나고, 밤에는 무수한 인광들이 불티처럼 날아다녔다.’

이 시대 최고의 가치인 돈,
그 돈의 마력과 물신숭배가 결국 우리 사회를 타락으로 멸망으로 끌지 않을까 한탄하는 우리 시대 대작가의 깊은 우려와 절망이었습니다.

책장을 덮고 난 뒤에도 오래 동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우리 부부야 나이 들었으니 별 걱정은 없지만, 살아갈 길이 먼 아이들을 생각하며 아내와 긴 한숨을 나누었습니다.

책을 읽으니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복도 끝의 창이 없는 방이었습니다.
그 방 한쪽 벽 아래에는 욕조를 뜯어낸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저게 뭔지 알아? 욕조 뜯어낸 자국이야, 박종철도 저런 욕조에서 죽었어,
여기는 그런 곳이야, 얌전히 굴고 순순히 응해!”
윽박지르던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예전에는 생생했는데 오래되어 그런지 흐릿했습니다.





누란 - 10점
현기영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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