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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도시이야기

마산항지(1926년) - 65 - 곤권(坤卷) / 제2장 교육 기관

by 운무허정도 2023. 9. 18.

4. 공립마산상업학교

상남동에 있으며 도로를 사이에 두고 구마산 역사와 마주하고 있다. 지방세의 지원을 받아 세워지게 되었다.

대정 11(1922) 425일에 개교했다.

현 교사는 개교 당시 초대 사이토 하루야(齋藤晴治郎) 교장 때 동년 겨울에 현재의 위치에 3240평의 토지를 매수하고 총 경비 금 439백 원의 예산으로 공사를 시작, 다음 해 5월 말일 굉장한 양식 2층 건물 교사와 온돌식 기숙사, 기타 부속건물, 대운동장 등이 낙성되었다.

다음 날, 61일 이시마치(石町)에 있던 야학회의 임시교사(구 마산민의소 자리의 사립노동야학교 교사를 가교사로 사용하다가 상남동 신축교사로 이전하였다)에서 이전하여 다음 달에 관민 약 백 명을 초대해 순정한 다과의 향연으로서 낙성식을 거행한 것이다.

 

본교는 내선공학(內鮮共學)을 표명하여 신입생에 대해서 교장의 배려에 의해 내지인은 25푼을 표준으로 하는 것 같다.

현재의 학생 수는 제1학년 50, 2학년 43, 3학년 27명 합계 120명으로 그중에서 내지인은 30명이다.

직원은 교장 기타가와 가츠지로(北川勝太郞) 씨 이하 내지인 교유 5, 선인 교유 2명과 선인 교의 1명이 있다.

재적생의 연령은 1학년은 123개월을 최저로, 3학년은 214개월을 최고로 하여 전교 학생 평균 연령은 169개월보다 약간 위가 되고 그 중에서 기혼자는 1학년 5, 2학년 4, 3학년 3명이 있다.

 

5. 복수회(福壽會) 야학부

조동종(曹洞宗) 복수사(福壽寺, 아래 사진)의 사회교화사업으로 오로지 선인(鮮人) 자제에 대한 초등교육 이외에 직업훈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현재 취학아동은 120명이며 제1학년 46, 2학년 48, 3학년 26명이다.

대정 13(1924) 8월 경상남도가 주최한 죽세공(竹細工) 강습회가 열리자 여기에 상급생이 참가해 그중 한 학생이 우등상을 받게 되니 도의 보조로 오이타현(大分縣) 벳푸(別府)에 죽세공 연수생으로 보내고, 앞으로 죽세공 수산회(授産會)를 개최하고자 준비 중이다.

대정 14(1925) 71일부터 양복, 미싱, 재봉 수업을 개시하여 교사 한 분을 초빙, 고용해 학생 30명을 수용함으로써 아주 비상한 주목을 받게 되었다.

본 야학은 당초 보통교에 통학할 수 없는 가난한 선인의 자제 100명을 복수사 객전(客殿)에 수용하여 천막으로 칸이 쳐진 교실을 두 개 쓰면서 교사로서 선인 2명과 소학교 교원인 내지인 훈도가 가르치게 된 것이다.

당시 즉 대정 12(1923) 겨울에 현재의 주지인 고에이 히로아키(光英博明) 스님에게 훈화된 학동들이 서국 33(西國三十三三番, 일본 시고쿠(四國)의 관세음보살이 안치된 33곳의 영장(靈場). 신자들은 요미노(詠歌)를 부르고 순례한다. 서국순례(西國三十三所巡禮)라고도 한다.) 순례의 노래를 외워 읊어 매일 밤 "관세음보살님이 살던 곳 피안을 치는 물소리 구마노나치(熊野那智)의 산에 메아리치는 폭포로구나" 이하를 차례대로 읊어가면서 마산항을 추위 속에 행진한 것은 사람들을 많이 감동시켰다.

이에 앞서 도지사는 대정 11(1922) 지방비에서 금 50원을, 대정 12(1923)에는 60원을 보조했고, 대정 13(1924) 131일에는 총독부로부터 금 3백 원을 보조받았다.

그래도 객전을 영구히 쓸 수 없어 기어코 복수회관을 신축하기로 결정하여 인접한 논밭을 매수하기로 하였다.

그 구매비용은 활동사진기를 구입해 벌게 된 수입 15백 원, 종파 본산에서 2천 원, 총독부에서 3백 원, 도에서 3백 원, 유지 등의 자발적인 기부금 1천 원을 바탕으로 하고 부족한 금액은 기채에 의존하는 것으로 하여, 대정 13(1924) 111일 제1기 교사가 준공되었다.

이 미담은 천황에게도 알려져 궁내성에서 장학금 약간이 하사되기도 하였다.

불법이 작금에는 말법이 되어 내지인 승려 중에 조선에 오는 자는 모두가 내지인들 상대로 호구지책을 구하고 심지어는 신자를 주고받기도 하고, 법공양이나 장례만 거행하면 된다고 하여, 사회사업에 공헌하기를 망각한 지 오래된 오늘, 히로아키 스님의 이 아름다운 거조는 이 감사해야 할 일이다.<<<

 

이 글은 창원시정연구원이 2021년에 번역한 『馬山港誌』(1926) 중 65번 째 것이다. 그림은 별도로 삽입하였다. 『馬山港誌』는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일본 문헌 중 가장 가치가 높은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 저자는 앞서 게재한 『馬山繁昌記』와 같은 스와 시로(諏方史郞)이다. 본 포스팅은 비영리를 전제로 창원시정연구원의 양해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