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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30. 00:00

그림으로 보는 마산도시변천사 (181) - 강점제3시기

그림 석장입니다.

47. 마산수도배수지

팔용산 저수지에서 공급된 물을 정수하고 배수하던 곳입니다. 위치는 추산동 마산박물관 일대였습니다.

1930년, 정수장이 준공되어 통수식을 할 때, 도지사와 진해요항사령부 사령관까지 참석하여 성대하게 기념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준공식 당시 마산부윤 판원지이(板垣只二 / 제5대부윤 / 1928.3-1930.10 재임)의 글을 석각해 놓은 「水德無疆(수덕무강)」이라는 넉자 글입니다. 한반도 조선을 영원히 지배할 줄로 알았던 일제관료의 확신과 힘센자의 너그러움까지 서려있는 글입니다.

 

48. 산제당

당시 마산 사람들의 종교적 근원지였던 환주산에 있었습니다. 사진의 건물은 없어졌지만 지금도 성덕암이라는 자그마한 암자로 남아 있습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경내의 서어나무 수령을 보면 꽤 오래 되었을 것 같다고 경남대 유장근 교수가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구전에 따르면 약 1,300년 쯤 되었다고 하는데 식물학자도 동의했다 합니다.

 

49. 마산천의 벚꽃

한일병합 전 일본인들은 그들의 조계지인 신마산 중심을 흐르는 마산천(창원천 혹은 대곡천이라고도 부름)변에 벚나무를 많이 심었습니다. 바로 그 나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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