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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 29. 00:00

기억을 찾아가다 - 15

15. 정전 후의 체험들 - 공군 요양소

 

우리 동네 대여섯 채의 적산가옥(일본인들이 살던 집)들은 다 불하되어, 동네 사람들이 들어갔지만, '봉선각'은 그 얼안이 커서(500평은 되었을 듯) 동네 사람들은 엄두를 못 내었던 듯 한동안 비어 있었다.

<봉선각 / 1930년대 촬영>

 

그러다 시내의 누군가가 임대하여 영업을 했던지 한때 장구소리를 듣기도 했었는데, 시국이 시끄러워지고 팔룡산 꼭대기에 봉홧불이 오르고, 곧이어 전쟁이 나고 하면서 봉선각은 폐가로 되어갔고, 우리들도 거기 가길 꺼려했었다.

그래선지 내 어렸을 때 거기에 얼킨 이상한 얘기들 밤 되면 말 달리는 소리도 들리고, 여자 울음소리도 들린다는 투의 괴담들 을 많이 들었다.

그러다가 그곳이 부활한 건 공군 병원이 들어오면서다. 정전 직후부터 오륙년 동안 주둔했었는데, 주로 결핵환자들이 많았었다. 그래서 공군 요양소라고 부르기도 했다.

의무병을 비롯해 사병들이 이삼십 명 있었던 것 같고, 장교는 군의관 외엔 준위 한 사람만 보았다.

부대 규모는 그래도 농촌 작은마을이라 그런지 이들의 존재감은 꽤있었다.

장기 복무자 대여섯 명은 동네 집들에 세 들어 살면서 병원 약들과 간단한 주사 등을 동네 아픈 사람들에게 주었고, 여러 친분을 통하여 다른 군용품들도 흘러 나왔다.

당시로선 참 귀했던 소화제나 다이아진, 소독용 알콜 등도 얻을 수 있었고, 디디티나 쥐약도 구할 수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기침을 많이 했는데(백일해 후유증이라고 들었다) 우리 집이 공군 병원 바로 아래 있었기에 기침이 심할 때는 병원에 올라가 마이신 주사를 엉덩이에 맞고 오는 혜택도 입었었다.

맞을 때의 아픔과 주무르면서 내려올 때 엉덩이가 뻐근했던 기억이 난다.

의무병 박 하사는 동네 할머니에게 갈 때도 별 필요도 없는 낡은 가방을 들고 다녀 똥가방이라는 별명을 듣기도 했고, 수송부 김석규 하사는 아무나 요청하면 잘 챙겨주어 나이도 좀 들었는데도 우리들까지도 안 듣게는 석규’ ‘석규하기도 했었다.

수송부에는 매일 아침 신마산으로 가는 중형차 한 대가 있었다. 차종 이름을 스리쿼터라 불렀는데, 거의 매일 같이 신마산으로 가서 부대 부식을 실어 온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 차가 얼마나 고물이었던지 발동이 제대로 걸리는 날이 거의 하루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여러 군인들이 밀어서 발동을 걸곤 했는데, 어느 날인가 부터는 우리가 밀게 되었고, 기다렸다는 듯이 이후로는 거의 우리가 자임했다.

부대 앞에 예닐곱 명이 서 있다가 석규 씨가 차에 오르면 우리는 익숙한 협력으로 땀을 흘리며 스리쿼터를 밀어 아리랑 고개 위에 올려놓고는 모두 탄다.

차가 내려가 가속도가 붙으면 내리막이 다하는 지점쯤에서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발동이 걸리는데, 그때부턴 전혀 고물 티가 없이 힘차게 달렸다.

석규 아저씨는 예의 그 청춘고백을 신나게 불러가며 자갈길을 널뛰듯이 달렸고, 떨어질세라 찻전을 꽉 붙잡으면서도 우리도 신이 나서 흥얼거렸다.

합포초등학교는 너무 가까워 아쉬웠고 마산중학교에 진학해서는 승차 재미에 더 빠졌었다. 그래서 하교 시에도 석규 스리쿼터가 지나가지 않는지를 살피러 종종 뒤를 돌아봐가면서 걷는 습관들도 생겼다.

어쩌다 타이밍이 맞아 몇 번 탄 일도 있긴 했었다. 언젠가는 수송부 텐트에서 석규 아저씨와 두세 명의 군인들을 모셔 놓고 연말 파티를 연 기억도 있다.

공군 부대에 대한 또 하나의 뚜렷한 기억이 있다. 천 상사 이야기다.

2 미터 가까이 됨직한 키에 쫙 벌어진 어깨와 가슴, 반쯤 걷어 올린 소매 밑으로 드러난 절굿대 같은 팔에 돌판 같은 손, 거기에 약간 거무스레한 빛이 도는 얼굴에(잘 생긴 편이었다) 반 곱슬머리였으니 그 모습만으로도 보는 사람들 누구나 위압감을 느낄 만 했다. 거기다 당시론 드문 태권도 고단자라 했으니 더 그럴 만 했다.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간혹 나가는 외출 때는 여러 사병들이 그를 앞세우고 창동 남성동 거리를 활보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그럴 땐 주차장 깡패들도 슬슬 피했고, 진해 뿐 아니라 마산 시내까지 휘젓고 다니던 막사 해병들도 감히 시비 걸 엄두도 못 내었다는 이야기들이 우리들 사이에서 신나게 회자되었다.

그러나 그 천 상사(천규덕)가 몇 년 후 한국 최고의 프로 레슬러까지 될 줄은 차마 몰랐다. 레슬링이라는 용어도 몰랐으니까.

그는 배우 천호진의 아버지다.<<< 

박호철 / 창원미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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