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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5 00:00

기억을 찾아가다 - 11

11. 정전 후의 체험들 - 수학여행

 

전쟁이 막바지로 갈 때쯤 해선 민간자동차도 많이 다니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주로 화물차가 많이 보였는데, 마산 부산 간에만 다니던 버스 숫자도 상당히 불어난 걸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 군에서 불하된 차들을 개조한 것이었다고 했다. 화물차는 약간만 고쳐서 다니는 것으로 보였고, 버스는 엔진만 쓰고 껍데기는 드럼통 등을 두드려 맞춘 것이었다고 들었다.

<전쟁 직후 미군이 버린 드럼통을 펴서 만든 한국 최초의 버스>

 

어떤 차든 그때 우리들 사이에선 차타본 경험이 큰 자랑거리가 될 정도로 자동차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봉암동에서 양덕동으로 조금 나오면 양덕교(수출자유지역후문앞)로 오르는 고개가 지금보다 높게 있었는데, 당시 화물차의 엔진 힘으로는 그 정도의 고개에서도 힘들어 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거기에서 차에 기어 올라타고 가다가 오동동다리 고개에서 뛰어내려 학교로 가는 행태에 재미를 붙였었다.

차타는 재미에 허기졌던 아이들처럼, 때로는 차위에서 조수에게 꿀밤을 맞아 가면서도 그 행위에 재미가 들어 있었다.

그런 우리들에게 삼 일내내 차를 타고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호기였다할 만큼 뜻밖이기도 했다.

행선지는 경주, 차는 트럭이었다. 과정은 전술한 졸저 상식의 서식처를 활용하겠다.

 

행비는 아주 쌌지만 그것도 부담할 수 있는 상당수는 못 갔다. 차는 한반에 한대씩 배정되었다.

60명 중에 40명 안팎이 참가한 것으로 기억되었는데, 체격이 작은 애들이었지만 3톤 트럭에 40명이 앉으니 너무 비좁아서 앞사람의 엉덩이에 뒷사람의 다리를 꽉 붙이고도 제일 뒤의 두어 줄은 앉지 못하여 선생님들이 더 붙어 앉으라고 고함을 치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런데 그 다음의 과정들은 더 뚜렷한 영상으로 남아 있다.

차가 출발한지 10분도 안되어 뒤에 앉은 우리들이 신기함에 놀라 웃어댔던 일이다. 그렇게 좁던 자리가 등 뒤에 4~50cm 남을 정도로 넓어진 것이었다.

굵은 자갈들이 어지럽게 깔린 길을 털털거리며 달리니 짐칸이 키질을 하여 짐들(우리들)을 모두 앞쪽으로 쓸어버린 것이었다.

당시는 마산시내도 중심 간선도로 한두 곳만 엉성하게 포장이 되어있을 정도였으니 경주까지는 물론 이런 험한 도로의 연속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시속 30~40km를 넘지 못했을 속도였으련만 그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큰 돌에 바퀴가 튀어 뒤에 앉은 우리들은 한참동안 공중에 떴다가(기분에) 쿵하고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는 일이 거의 연속되다시피 했지만, 그것을 괴로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엉덩이에 멍도 들고 멀미난 친구들도 있었으련만 그런 것을 보았거나 느낀 기억은 지금 남아있지 않다. 대부분 처음 경험하는 쾌감에 웬만한 고통은 묻힐 만 했으리라는 생각을 나이 들어서도 한번 씩 해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열차로 진영 정도만 갔다 와도 다음날 친구들로부터 큰 부러움의 눈길을 받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칙칙푹푹 내달렸던 옛날 기차>

 

창밖으로 팔을 내미니 팔꿈치가 부러지는 것 같더라 느니, 전봇대가 뚝 부러지는 것 같더라 느니, 말도 안되는 뻥을 쳐도 신기함과 부러움으로 넋을 놓던 친구들의 모습에 더욱 신이 나서 점점 더 부풀려 떠들어 대던 시절이었다.

저기 가는 저 아가씨 유우에엔 사아모님.”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어디서 배웠는지 시속을 풍자하는 노래나 유행가 등을 한 사람이 선창하면 대부분이 따라 불렀다.

레코드나 라디오를 구경하기 어려운 시절이었는데도 어떻게들 익혔던지 목이 터져라 잘들도 불렀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가 흙먼지를 퍼부어도 노래는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서도 주먹밥을 먹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입엔 흙먼지가 덮여 간혹 모래가 씹혀도 뱉어내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밥을 입으로 가져가는데 차가 튀어 오르면 밥 뭉치가 뺨이나 턱을 쳐 발리기도 해 서로 보며 웃기도 했는데, 그럴 때도 먼지 묻은 밥 알갱이지만 말끔히 뜯어 먹었다. ……

 

고적 관람시의 느낌은 기억나는 게 없고, 첨성대와 다보탑 앞에서 찍은 명함크기의 학급 단체사진이 있었는데 그것도 보관 못 한 내 처신이 아쉽다.

그리고 올 때의 기억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것은 피로 때문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박호철 / 창원미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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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8 00:00

신라 古都 경주에 다녀왔습니다.

경주하면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통해 한번씩 다녀왔던 곳이지요!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보문단지 주변 휴양숙소에 들르는 정도일 뿐,
불국사에는 갈일이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작정을 하고 갔답니다.
초등학교 때, 약 3-40년 전에 갔었던 기억의 흔적이라도 찾을겸 해서
선후배 동문 건축사들과 지난 4월 말에 당일치기로 갔다 왔습니다.

● 불국사
- 토함산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751년)때 지어진사찰이었느나, 조선 선조(1593년)때 왜구의 의해 건물은 대부분 불타버리고, 일부 건물만 그 명맥을 이어오다가 1973년 복원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춘 사찰입니다.

- 불국사 정문 모습입니다.
원래 사찰 배치에 의해 지어진 것은 아니고 최근에 관리상 만들어진 정문 같습니다.
보통 절에 가면 불이문(不二門)이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불국사는 출입구 부분에 이러한 것이 없네요?
 

 

● 대웅전 모습입니다.
- 석가모니를 주불로 모시는 대웅전은 절의 중심 건물입니다.
- 현재의 대웅전은 영조(1765년)때 중창된 것으로 신라시대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다보탑입니다. 10원짜리 동전 주인공입니다. 우리나라 전형적인 탑의 형식에서 벗어난 특수한 양식이죠,

- 석가탑은 백제 석공 아사달의 처인 아사녀가 남편을 못 만나 연못에 몸을 던졌던 슬픈 전설이 서려있답니다.


● 자하문과 범영루의 모습입니다.
- 자하문은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자하는 '붉은 안개'라는 뜻으로 부처님의 몸에서 나는 빛을 상징한답니다.

● 자하문에서 아래를 본 모습입니다. 수학여행온 초등학교 학생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 원래 이곳의 일부에는 연못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더군요

● 당항리 사지 및 쌍탑
 - 경주외곽 감포가는 길 중간쯤에 있는 사지(寺)址)입니다. 

● 절 앞에 있었던 쌍탑입니다.
- 하나는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고, 하나는 널부러져 있던것을 대충 세워 놓았다고 합니다.
 

- 탑신에 새겨진 사천왕의 위용이 대단합니다.

- 천년세월을 견딘 사천왕의 모습, 참 섬세하군요



● 석불 좌대
- 석불이 앉아있던 곳으로, 몸체는 부서진것을 복원하여 경주 박물관 야외에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 좌대만 왜 여기 남겨 놓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 석불 좌대의 조각상입니다. 장식이 화려하고 정교함을 볼 수 있습니다.

 

● 감은사지 및 쌍탑
-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표지 모델로 등장하는 탑입니다.

- 신라 문무왕이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대왕암에 묻히자, 아들인 신문왕이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感恩寺를 지었다고 합니다.

● 쌍탑과 대웅전 자리입니다. 대웅전이 있던 자리의 돌마루모습이 특이하군요!


- 대웅전 자리의 돌마루로 구성된 바닥구조입니다.
- 당시 용이 바닥 하부로 들락 날락했다는 얘기도 있답니다.

● 남산의 오릉과 송림

- 오릉은 신라초기 4명의 박씨 임금과 혁거세 의 황후인 알영왕비 등 5명의 무덤이라 되어 있읍니다.

- 오릉 주변의 송림의 모습입니다.
- 구비 구비 비틀어진 송림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더군요
- 사진작가 배병우의 송림사진으로 유명해진 장소라고 하더군요!

● 오릉에 대한 설명에 열을 뿜는 박근재 사진작가 : 천천히 들어보십시오!


- 마무리 하면서
경주는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불국사와 석굴암 정도인데
도시 곳곳에수많은 유적들이 산재해 있을 뿐만 아니라
남산에만 수십개의 마애불과 왕릉이 있답니다.
최소 천년전 이것을 만든 장인들의 작품입니다.
세월의 무상함과 함께 장인들의 숨결이 화강석에 부드럽게 베어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것중에 후대에 남길만한 무엇이 있는지?
경주는 사람을 센티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Trackback 0 Comment 2
  1. 이현주 2011.05.20 14:57 address edit & del reply

    불국사입장할때 후문으로 잘못들어가셨네요. 정문으로들어가면 사천왕사 있읍니다

    • 삼식 2011.05.22 10:19 address edit & del

      정문출입이 따로 있나보죠!
      암튼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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