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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간 도시이야기

신라 古都 경주에 다녀왔습니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5. 18.
경주하면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통해 한번씩 다녀왔던 곳이지요!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보문단지 주변 휴양숙소에 들르는 정도일 뿐,
불국사에는 갈일이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작정을 하고 갔답니다.
초등학교 때, 약 3-40년 전에 갔었던 기억의 흔적이라도 찾을겸 해서
선후배 동문 건축사들과 지난 4월 말에 당일치기로 갔다 왔습니다.

● 불국사
- 토함산에 자리잡은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751년)때 지어진사찰이었느나, 조선 선조(1593년)때 왜구의 의해 건물은 대부분 불타버리고, 일부 건물만 그 명맥을 이어오다가 1973년 복원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춘 사찰입니다.

- 불국사 정문 모습입니다.
원래 사찰 배치에 의해 지어진 것은 아니고 최근에 관리상 만들어진 정문 같습니다.
보통 절에 가면 불이문(不二門)이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불국사는 출입구 부분에 이러한 것이 없네요?
 

 

● 대웅전 모습입니다.
- 석가모니를 주불로 모시는 대웅전은 절의 중심 건물입니다.
- 현재의 대웅전은 영조(1765년)때 중창된 것으로 신라시대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다보탑입니다. 10원짜리 동전 주인공입니다. 우리나라 전형적인 탑의 형식에서 벗어난 특수한 양식이죠,

- 석가탑은 백제 석공 아사달의 처인 아사녀가 남편을 못 만나 연못에 몸을 던졌던 슬픈 전설이 서려있답니다.


● 자하문과 범영루의 모습입니다.
- 자하문은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자하는 '붉은 안개'라는 뜻으로 부처님의 몸에서 나는 빛을 상징한답니다.

● 자하문에서 아래를 본 모습입니다. 수학여행온 초등학교 학생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 원래 이곳의 일부에는 연못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더군요

● 당항리 사지 및 쌍탑
 - 경주외곽 감포가는 길 중간쯤에 있는 사지(寺)址)입니다. 

● 절 앞에 있었던 쌍탑입니다.
- 하나는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고, 하나는 널부러져 있던것을 대충 세워 놓았다고 합니다.
 

- 탑신에 새겨진 사천왕의 위용이 대단합니다.

- 천년세월을 견딘 사천왕의 모습, 참 섬세하군요



● 석불 좌대
- 석불이 앉아있던 곳으로, 몸체는 부서진것을 복원하여 경주 박물관 야외에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 좌대만 왜 여기 남겨 놓았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 석불 좌대의 조각상입니다. 장식이 화려하고 정교함을 볼 수 있습니다.

 

● 감은사지 및 쌍탑
-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표지 모델로 등장하는 탑입니다.

- 신라 문무왕이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대왕암에 묻히자, 아들인 신문왕이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感恩寺를 지었다고 합니다.

● 쌍탑과 대웅전 자리입니다. 대웅전이 있던 자리의 돌마루모습이 특이하군요!


- 대웅전 자리의 돌마루로 구성된 바닥구조입니다.
- 당시 용이 바닥 하부로 들락 날락했다는 얘기도 있답니다.

● 남산의 오릉과 송림

- 오릉은 신라초기 4명의 박씨 임금과 혁거세 의 황후인 알영왕비 등 5명의 무덤이라 되어 있읍니다.

- 오릉 주변의 송림의 모습입니다.
- 구비 구비 비틀어진 송림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더군요
- 사진작가 배병우의 송림사진으로 유명해진 장소라고 하더군요!

● 오릉에 대한 설명에 열을 뿜는 박근재 사진작가 : 천천히 들어보십시오!


- 마무리 하면서
경주는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불국사와 석굴암 정도인데
도시 곳곳에수많은 유적들이 산재해 있을 뿐만 아니라
남산에만 수십개의 마애불과 왕릉이 있답니다.
최소 천년전 이것을 만든 장인들의 작품입니다.
세월의 무상함과 함께 장인들의 숨결이 화강석에 부드럽게 베어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것중에 후대에 남길만한 무엇이 있는지?
경주는 사람을 센티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