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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간 도시이야기

대구 원도심 '근대로(近代路)의 여행'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6. 15.
지난달 말 경남건축가협회 회원들과 대구의 원도심일대를 투어하고 왔습니다.
마산지역의 원도심은 거의 아시직전에 도시재생이라는 처방으로 노력을 기울이는데 반해,
대구의 원도심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활기가 넘쳐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러한 결과는 대구에서 동성로의 가로경관디자인과 함께,
근대건축물과 근대기의 골목문화를 지속적으로 가꾸고 관리해온 결과일 것입니다.
'근대路의 여행'은 대구시에서 작명한 골목문화 탐방로를 말합니다.
설명에 앞서 대구 원도심에 대한 간략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 대구읍성 : 대구의 원도심은 원래 대구읍성터를 경계로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이 읍성이 철거하게된 배경은 역시 일제강점기때에 경부선이 북문쪽으로 개통되자 (1904년) 연이어 1908년에 기존의 성곽을 철거하고 성벽자리에 폭3칸(약5.4미터)의 일주도로를 건설한뒤, 동 서 남 북내외에 연결되는 도로가 개발되면서 원도심 상권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역세권이 형성되면서 중심가로 탈바꿈하게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동성로는 동쪽 성곽이 있던자리이고 서성로는 서쪽 성곽 이런한 형태로 가로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읍성의 중앙부에 경상감영이 자리잡고 있다.

● 경상감영 :  1601년(선조34년)에 개영돼 1910년까지 310년간 관찰사가 근무한 대구가 영남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의 중심지로 성장하는 배경이 된 역사적인 장소이다.
현재는 도심 한복판의 공원으로 상업지역내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좌측건물이 정청인 선화당, 우측이 관찰사의 처소인 정청각)

* 경상감영공원에서는 매주 토요일 전통민속행사로 수문장 교대식을 포함한 다양한 행사들을 지난4월부터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계산성당 :

(국가사적 290호인 계산성당은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번째로 세워진 고딕양식의 성당이다. 프랑스 로베르신부가 1902년 건립하였으며, 1911년 주교좌 성당이 되면서 증축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중앙 신자석의 모습 : 상부 뾰족한 아치 천정이 수직적 상승감을 강조하고 있다.)

(제대부분 : 십자형 평면의 교차부에 해당되며, 후진부의 스테인드글라스에 의해 상당히 밝은분위기다.)


(일제강점기때 계산성당모습과 후면부의 성내풍경)

(근대로 안내판: 모자익디자인으로 그려진 성당의 모습)


●  역사로의 여행 : 계산성당에서 우측면 도로를 따라 근대로가 시작된다.

(근대로 여행 출발지에 마련된 안내판 모습)

(빼앗긴 들녘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선생 벽면초상화)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서상돈선생의 벽면초상화)


(성곽의 남문에 해당하는 '영남제일문': 성문을 경계로 선 시장의 활기찬 모습)


● 이상화선생과 서상돈선생 고택
※ 대구시민이 지켜낸 상화고택
- 2003년 주상복합건물 신축예정으로 고택이 사라질 위기에 처함
- 고택보존운동분부가 설립되어 모급을 통해 상화고택 인근의 서상돈, 이상정 고택까지 보존키로 운동전개
- 대구광역시에서 건물신축시 상화고택 보존 조건부 가결
- 2005년 고택보본운동본부 모금액과 시집 시에 기증결의
- 2007년 상화고택 보수공사 착공 연내 공사완공
- 2008년 8월 12일 상화고택 개관식

서상돈과 국채보상운동

(고택 앞마당에서 토요일마다 열리는 '국채보상운동' 당시의 상황을 연극으로 보여주고 있다.)

(연극배우의 수준이 장난이 아니다. 주연급 배우가 엄청 출연함)

(엑스트라 포함해서 줄잡아 50명정도는 출연하는 것 같았다.)


동산병원 박물관
- 선교박물관은 선교사 챔니스와 블레어의 주택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의료박물관'과 '교육, 역사박물관' 으로 사용되고 있다. 

● 은혜정원 : 선교사업중 돌아가신 선교사 및 가족의 묘비가 모셔져있는 곳이다.

(선교사와 그의 가족, 애기 무덤까지 같이 모셔져 있다.)

(선교사 아내 딕 : 그는 죽지않고 잠자고 있을 뿐이다)


● 약전골목 :읍성의 남쪽에 있는 남성로에 해당된다.
읍성이 헐린뒤 약령시가 남성로 일대에 상설화되면서 약전골목으로 유명하게 된다.

(남성로 일대 골목길을 소개하는 안내판)

 

(김원일의 소설 '마당 깊은집'의 배경이 된 골목을 스토리텔링하여 소설속 이야기를 골목에서 설명하고 있다.)


 ● 근대건물 안내도 : 한약박물관 앞에 비치된 근대건물 사진 및 위치안내도

(약전골목 안내도)

(진골목안의 정소아과 : 진골목의 인간문화재로 불리는 정필수선생이 최근까지 진료를 했던 건물이다.)

 

(진골목 입구 안내판)

(진골목 안내도)


기생들의 거리 종로 : 부자들이 사는 진골목과 전국최대의 약령시가 인접해 있어서 기생들의 수요가 많았던 거리이다. 일제강점기때 '달성권번'이 있을 정도로 기생집인 많았던 거리였었다.

(기생에 관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 대구 제일교회 : 남성로의 명물로 1933년에 건립된 교회이다. :

(담쟁이 속에 파묵혀 있는 교회의 모습)


● 동성로 : 10대들의 거리
우리가 투어한 날이 마침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동성로 초입에 들어서자 마자 10대 청소년들이 운집해 있었습니다.
중학생 정도되는 여행생들이 떼지어 군무를 하는데 이것을 보는 학생들의 모습입니다.
세련된 춤사위는 아니었지만, 사람구경하는 재미가 만만치 않터군요


-이어진 가로의 풍경입니다.
차량출입이 금지된 보행자 전용도로입니다.
길가에 않아선 모습하며,
모처럼 사람들의 활기를 피부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이러한 공공시설물들의 역할의 가로활성화에 큰 소품역할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벤치, 휴지통, 바닥분수, 수경시설 등등

 

 

 

* 마무리하면서
대구의 원도심에 해당하는 읍성은 둘레가 2.7킬로미터 정도의 범위에 해당되는 도심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수많은 세월속에 영욕이 녹아있는 역사적인 장소에 해당된다.
당장 보기에 볼품없고 남루한 모습일지라도 거기에 담겨져있는 역사적 사실과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가꾸어서 近代路라는 상품으로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
만약 이러한 역사적 상징성을 고려하지 않고, 싹 밀고 재개발을 하였다면 대구가 가진 역사적인 원도심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인가? 물론 아닐것이다.
마산과 진해지역은 근대기에 개항 및 군항도시로서 근대기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우체국, 양조장 건물에서 부터 관사 및 주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건물들이 삭어져가고 있다.
이러한 근대건축물을 문화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보존하고 활용하는 노력들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더 늦기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