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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간 도시이야기

'가출 청소년 쉼터'에서 비롯된 '담장허물기 운동'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12. 1.
시작은 아주 작고 미미한 일에서 비롯되어 큰일로 번졌을 때 '일파 만파'라는 말을 하죠, '나비효과'라는 말도 이와 비슷한 경우에 사용됩니다. 이 말 뜻 그대로 일어난 사회운동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골목 주택가 담장을 일부 허무는 일로 시작한 것이 급기야 대구의 대규모 관공서와 종합병원, 학교, 심지어 공항과 교도소의 담장까지 허무는 일로 확산이 되었다고 하네요, 

삼덕동 골목바람이 대구 전역을 휩쓸고 전국으로 확산되는 신풍같은 역할을 한 신통방통(?)한 '대구 삼덕동 마을'을 지난주에 다녀왔습니다.

<시작은 '대구 가출 청소년 쉼터'에서 일어난 사고수습이 동기>
- 때는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구의 전통적인 구시가지인 삼덕동에 '가출청소년 쉼터'가 들어오면서 조용한 동네에 비상이 걸렸다.
- 쉼터에서 생활하는 십대들은 노랑머리, 배꼽티를 입고 밤낮없이 골목을 휘젖고 다녔다.
늦은 밤, 쉼터대문 앞에서 애인(?)과 헤어지기 아쉬워 뽀뽀하는 것도 예사이며, 
한술 더떠서 한 밤중에 쉼터에 있는 친구를 부르며 나오라고 고함을 지르는 탓에 동네는 졸지에 퇴폐의 도가니가 되어버렸다.
- 동네 어른들의 눈밖에 난 행동으로 분위기가 흉흉하던 차에 희안한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얘들이 쉼터에서 담배피우는것 까지는 용서를 해줬는데, 미안했던지 쉼터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고 앞집 담장으로 꽁초를 하나, 둘 버리다가 아예 쓰레기통으로 여기고 오만 못쓸 것들을 앞집 담장너머에 던져서, 동네주민들이 탄원서를 돌려서 쉼터가 마을에서 쫓겨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문제의 가출청소년 쉼터, 공식명칭은 '대구YMCA 청소년나눔센터')

- 이러한 위기상황을 극복한 사람은 다름아닌 쉼터 소장인 김경민씨였다.
그는 대구YMCA에 일하는 사람으로, 쉼터 맞은편이 자신이 사는 집이었는데, 대구Y에서 가출청소년 쉼터를 계획하던 차에, 바로 앞집을 청소년쉼터로 사용하기 직접 전세를 통해 쉼터를 개설한 장본인이였다.
- 그래서 그가 생각해낸 묘책이 담장허물기를 통한 골목 가꾸기 운동이였다.
몇개월간 집주인과 그 부인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1998년 11월 중순 어느 비오는날 담장을 허물었다. 골목 공원만들기가 시작된 것이다.

- '담장 허물기'는 마을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작은 마당을 쉄터로 개방함으로써 골목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담장을 허물었다. 뭔가 공유하는 공간을 통해,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한 것이다.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로, 어른들의 쉼터로 마당을 제공하였다. 뿐만 아니라
- 청소년들의 행실을 정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1년에 두번 마을잔치를 개최할 때, 쉼터 아이들을 참여시켜서, 동네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게해서 서로가 이해하고 마음을 열수 있도록 하였다.

(담장을 허무는 살신성인을 통해서 주민과 소통을 시작: 담장만 허물고, 대문은 살려두었다.)

<주택 담장에서 마을 담장 허물기와 담장 벽화작업으로 진화>
- 김경민씨는 자기집 지하실에 '초록화실'이라는 미술학원을 열어 후배에게 내주고 동네 아이들이 와서 그림을 그리게 했다. 그리고 방치되었던 1층 점포를 개조해 '녹색가게'를 만들어 그곳을 통해 골목주민들 사이에 서서히 교류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 동네 꼬마들이 그린 그림으로 '꾸러기 환경 그림대회'를 골목에 전시하여 골목 분위기도 살리고, 불법주차도 해결하는 방법을 통해 골목문화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
- 이어진 프로그램은 골목벽화작업에 들어갔다. 작업은 주로 동네꼬마들을 참여시켰다. 녹색가게의 외벽은 병두껑 8천개를 모아서 만든 작품이며, 이후 페인트, 깨진병, 곡식(녹두, 참깨, 밥풀) 등으로 마을의 빈공간을 하나씩 채워서 골목은 완전히 다른모습으로 단장했고 주민들의 표정이나 이웃관계도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 이후에 이동네에서 담장을 허문 곳은 삼덕동 주민자치센터, 삼덕초등학교, 빗살미술관, 마고재, 동부교회 등 10곳의 담장을 허물게 되었다.
- 이 운동은 1999년 5월 '대구사랑운동'의 주요사업으로 담장허물기가 채택되어 대구시의 병원, 종교시설, 학교, 국가투자기관 등에 확산되어 전국의 이목을 집중시켰었다. 

(동산의료원의 허문 담장 일부를 병원내 정원에 옮겨 종탑으로 활용하고 있다.)

(동판에는 동산의료원의 개원 100주년 기념 종탑을 허물어진 담장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기념하고 있다.)


<재개발의 태풍도 이겨낸 도심속의 문화낙도 머머리섬>
- 지속적인 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해 적산가옥인 삼덕초등학교 교장관사를 개조하여 '빗살 미술관'을 만들었으며, 미술관 건너 한옥집이 경매에나오자 매입하여 '마고재'라는 '동네문화사랑방'역할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다.

(마고재 마당에서 인형마임축제)

(빗살미술관에서 기획전시행사)



- '마고재'에서는2006년부터 인형마임축제를 개최하여 '인형극 동네'로서 새로운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 우연한 기회에 버스회사로부터 폐차 직전의 버스를 얻어서 마을의 이동도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버스 외벽은 벽화로 장식하여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명물인 이동도서관)

(적산가옥을 개량한 빗살미술관)


- 그러나 이 동네에도 재개발 광풍이 불기 시작하였다. 2000년부터 원룸업자들이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적산가옥이나 오래된 집, 한옥이 하나씩 헐려나가기 시작하였다.
이어서 2005년 말부터 재개발 예정구역에 포함되어 마을이 없어질 상황에 처하였다.
김경민씨는 대처방안으로 2006년 '삼덕동 인형마임축제' 조직위원회를 만들어 마을여론을 키워나가며, 재개발 업자와의 치열한 일전을 벌여야 했었다. 다행히 2008년부터 미분양사태가 속출하면서 재개발의 바람은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 담장허물기의 도화선 역할을 한 '청소년 쉼터'는 대구시에서 출연한 청소년 재단으로 운영주체가 바뀌면서 도심상업지역으로 이전하였고, 그 자리에는 '청소년 평화나눔 센터'로 변경하여 쉼터가 보호하지 못하는 가출 청소년들을 찾아내고 복지상담과 일자리 지원을 하고 있다.
- 녹색가게는 사회적 일자리 창출의 일환으로 지역노인들이 참여하는 '희망자전거제작소'로 간판을 바꾸어 운영되고 있으며, 한 켠에는 피스트레이드(Peace Trade)상품을 판매하는 '길 카페'로 바뀌었다.

(녹색가게는 현재모습 '희망자전거제작소"와 '길 카페')

(희망자전거제작소는 사회적 일자리창출을 위해 지역노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 진화하는 마을만들기 : 커뮤니티 비지니스 >
- 이 운동은 12년전 김경민 사무총장(대구YMCA)이 자기가 사는 집의 담장을 허물면서 시작되었다.

(커뮤빌더 운동가 김경민)


- 삼덕동 마을만들기 운동은 개발논리로 무장한 거대한 자본으로부터 지켜내고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체계적인 커뮤니티를 조성하기 위한 '커뮤니티 비즈니스'을 진행하고 있다.
- 이것은 마을 공간 주변의 도시환경을 개선하는 것과 마을사람들에게 공공근로사업이다.  마을에 인접한 신천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며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였다.
- 뿐만 아나리 '희망자전거 제작소'를 통해 자전거의 수리, 임대, 판매를 통해 노인들의 소득을 창출하고 있다.
- '피스 트레이드'(Peace Trade) 가게는 세계 각국의 공정무역 상품을 판매하는 사업과 바리스타 교육을 통해 가출청소년들의 건강한 일자리 제공 교육을 동시에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을 통해 삼덕동의 저소득층과 노인들에게 사회적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 대구 YMCA의 김경민 사무총장 >>  
- 그는 우리 사회가 필요로하는 '커뮤빌더'(Community + Builder = CommuBuilde)로서 우뚝 서있었다. 

아무도 상상치 못한 '삼덕동 마을만들기'를 이끌어낸 운동가로서의 모습이 아닌, 시골 아재같이 푸근한 인상과 소탈한 웃음 그리고 어눌한 경상도 말투에서 그의 끈기와 낙천적인 면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천진난만함 웃음 속에 뭔가 또 다른 음모(?)를 꾸미고 있는 듯한 상상과 기대를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