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9. 6. 3. 00:00

등록문화재 제198호 '옛 마산헌병분견대'의 건립연대 오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3·15대로 52 (월남동3가 11)에 소재한 등록문화재 제198호 '옛 마산헌병분견대' 건물에 대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정의]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남동에 있는 옛 일본군 헌병 분견대 건물.

[개설] 구 마산 헌병 분견대는 옛 일본군 헌병 분견대 건물로, 일제 강점기 중반인 1926년에 붉은 벽돌로 지었다. 일본 군대의 마산 진출은 1905년 5월 마산선(馬山線) 철도가 건설될 때 시작되었다. 1909년 12월에 대구 주둔 일본군 헌병 분견소가 신마산에 설립되었고, 3·1 운동 후인 1920년에 이르러 일제는 헌병 경찰제를 보통 경찰제로 바꾸어 경찰이 치안을 맡도록 했다.

1921년에 지금의 마산 중부 경찰서 자리에 있던 헌병 분견대 건물을 증축해 마산 경찰서로 사용하게 되면서 이 건물을 경찰에게 내어 주고 1926년에 지금 자리에 헌병 분견대 건물을 새로 지어 이전했다. 신축 시 대지가 넓었다고 하나 지금은 대폭 축소되어 건물 주위로 한정되어 있다. 건물 인근에는 분견소장 관사(官舍)가 있었으나 지금은 철거되고 없다.

[위치] 구 마산 헌병 분견대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3·15대로 52[월남동 3가 11]에 있다. 남해 고속 도로 서마산 나들목으로 진입하여 마산회원구를 거쳐 국립 3·15 민주 묘지 방면으로 3·15대로[국도 2호선]를 따라 내려가다 3·15 의거 탑과 마산합포구청을 지나 경남 대학교 방면으로 약 13㎞ 정도 이동하면 도착한다.

[변천] 구 마산 헌병 분견대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 마산 지역 독립 운동가들이 잡혀와 고초를 겪었던 근대사의 질곡을 보여 주는 역사의 현장으로 일제의 탄압과 무단 통치를 상징한다. 1945년 광복 후 군 정보기관인 옛 보안 사령부[현 국군 기무 사령부]의 마산 파견대가 ‘해양 공사’라는 간판을 달고 이 건물을 사용하면서 민주화를 주장하는 인사들을 사찰했던 곳이기도 했다. 1990년에 보안 사령부가 폐지되고 군 정보 요원들이 철수하면서 건물만 남게 되었으며, 그 후 기무사 출신 퇴역 군인들의 친목 단체인 ‘충호회 경남 지부’와 보훈 자녀 단체에서 사용하고 있다.

건물 주변에는 상가가 밀집해 있고, 한 블록 뒤에는 저층 주택지가 형성되어 있다. 주택지 외곽에는 중고층 높이의 공동주택 단지가 위치하고 있다.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마산항 및 지금은 폐지된 된 마산항역이 자리 잡고 있다. 2005년 9월 14일 등록 문화재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구 마산 헌병 분견대는 벽돌 조적조 건물로 지상 1층, 지하 1층의 규모이고, 연면적은 175.21㎡이다. 건물의 정면 중앙에 놓인 현관 출입 부를 중심으로 양측에 3개씩의 세로 창을 대칭으로 배치했다. 외벽에는 회흑색 벽돌을 사용하여 다섯 줄의 수평 띠를 둘렀는데, 이는 단조로운 벽면을 분할하여 수평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붉은 벽돌의 물성과 세로로 긴 창은 일제의 통치 보조 기관이었던 헌병대의 권위와 위엄을 강조하는 요소이나 벽면에 넣은 여러 줄의 수평 띠는 이를 다소 완화하는 어휘로 사용되었다. 건물 내부는 가운데 복도를 둔 중복도 형식으로 되어 있었으며, 현재의 출입부 우측편의 사무장실 끝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관 출입부와 창의 위쪽의 인방은 평아치에 가까운 약한 곡률의 아치 형태로 만들었으며, 창 하부의 흰색의 창대는 외벽 밖으로 약간 돌출되어 있다. 아치형 창 상인방의 중앙에는 사다리 모양의 흰색 석재를 끼워 넣어 창의 형태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벽돌로 이루어진 외벽은 길이쌓기와 마구리쌓기를 번갈아 가며 쌓는 영식 쌓기 방식으로 시공한 것이다.

지붕은 단정한 형태의 우진각 지붕으로, 목조 트러스 위에 일식 기와를 덮었다. 정면 현관 출입 부 상부에는 본래 작은 삼각형의 박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철거되었다. 지면에서 4단의 계단을 올라온 지점에 1층 바닥이 있으며, 그 하부는 지하층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건물 우측면의 대지가 좌측보다 낮아 지하층의 우측면은 외부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현황] 2008년에 지붕을 해체하여 수리한 후 최근 건물의 원형 복원을 위한 수리를 했다. 보수 전 건물의 창은 본래 목제 오르내리창이었으나 미서기창으로 바뀌었다. 고증과 외벽에 남아 있는 흔적을 고려할 때 건물의 우측면에는 지하층으로 통하는 복도각과 원형창이 시설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일제가 마산에 헌병을 파견하여 치안을 확보함과 동시에 독립 운동가를 탄압했던 역사적인 건물이다. 일제의 강권 무력 통치를 상징하는 건물이자 당시 외래 건축의 영향을 받아건축된 서양식 건축이라는데 역사적·건축사적 가치가 있다.

 

다음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등록문화재 제198호 구 마산헌병분견대'에 대한 설명 중 일부다.

1926년 건립된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 당시 잔악한 일본의 대명사였던 헌병대가 민중을 억압하고 독립투사들에게 가혹 행위를 자행했던 곳으로 일제 강점기의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벽면 전체에 돌림띠를 둘러 장식하고 수직의 긴 창을 반복적으로 배치하는 등 관공서 건축물로서의 권위적인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마산헌병 분견대는 1905년 일식의원 건물을 빌어 사용하다가 1909년 12월 2일, 관할이 대구로 옮겨지면서 현 소재지로 이관하여 사무를 개시하였다. 현재의 벽돌조 건물은 1926년에 신축되었으며, 당시 근무인원은 8명이었다고 한다.

 

위와 같이 두 공식 기록에서 이 건물의 건립연도를 1926년으로 확정하고 있다.

이 포스팅은 그에 대한 글이다.

 

필자가 아는 한 이 건물의 건립연도를 가장 먼저 추정한 이는 한상술 씨다.

한상술 씨는 2000년 「마산의 근대건축에 관한 연구」라는 경남대학교 석사논문 54쪽에서 이 건물의 건립연도를 1926년이라고 밝혔다. 

한 씨가 이 논문에서 각주를 달아 근거로 제시한 문헌은 일본인 스와 시로우(諏方史郞, 추방사랑)가 쓴 『마산항지』(1926년) 155쪽이었다.

한 씨가 인용한 『마산항지』 155쪽 '마산헌병분견소' 항목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간략한 번역문도 함께 올린다.

 

馬山憲兵分遣所

本町四丁目に在り、明治三十八年中晉州より派遣せられ、現都橋畔にて水上医院なる建物を借充し、其その後管轄は大邱に移り遂ついに馬山憲兵分隊となり現建物は此この時、建築せられしものにて分遣所の建物として比較的広大なるは夫それ之こか為ためなり、幾干もなくして分隊は鎭海に移り建物は分遣所に於て其の儘そのまま之これを使用し別室に郷軍馬山分会事務所を借設せり、本町五丁目角に分遣所長官舎の新築あり、現時の所長は曺長片桐文三氏なり。

마산헌병분견소

본정 4정목(현 월남동 3가)에 있다. 1905년 진주에서 파견되어, 현 중앙동 다리 근처 수상의원 건물을 임대해서 사용하였다. 그 후 관할이 대구로 이관되어 마산헌병분대가 된 현 건물은 그 시기에 건축된 것으로 분견소 건물로서는 비교적 광대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얼마 후 분대는 진해로 옮겨가고 건물은 분견소에서 그대로 사용하였다. 별실에 향군마산분회사무소가 임대 사용하고, 본정 5정목 모퉁이에 분견소장 관사를 신축하였다. 현재 소장은 상사(曺長) 가다키리 분조(片桐文三. 편동문삼) 씨다.

 

그런데 내용을 아무리 봐도 이 글에서는 건물의 건립연도를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무슨 연유인지 한 씨는 이 부분을 인용하며 1926년으로 확정하였다.

한상술 씨가 논문에서 밝힌 건립연도 1926년은 이후 여러 후속연구에서 인용되었다.

필자의 글에서도 별다른 확인 없이 그대로 인용하였다. 필자 뿐 아니라 이런 저런 문헌 여러 곳에서 인용되었고, 강의 자료로도 활용되었다.

이 글 첫머리에서 소개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과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등록문화재 제198호 구 마산헌병분견대'에 대한 설명문에서도 이 건물의 건립연도를 1926년으로 소개하고 있다.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두 공식기록의 건립연도 역시 한상술 씨의 논문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최근 이 건물의 건립연도가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 나왔다.

도시 건축의 역사를 탐구하고 있는 신삼호 건축사가 이 건물의 건립연도를 1912년이라고 했다.

 

신삼호 건축사가 제시한 자료와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지도를 소개하며 이 건물의 건립연도에 대한 의견을 밝힌다.

 

1) ‘조선주차군경리부’에서 1914년 발간한 『조선주차군 영구병영, 관아 및 숙사건축 경과개요』에 의하면 마산헌병분견대 건물은 명치45년 즉 1912년 건립되었다.

이 문건의 ‘마산헌병분대청사 및 부속건물’ 항목을 보면 마산헌병분견대 건물은 ‘1912년 2월에 기공하여 같은 해 7월에 준공하였다'고 적혀 있다.

축척 1/300 ‘마산헌병분대배치도’까지 첨부(아래 그림)되어 있고, 아래에서 보듯이 도면 내용도 실재하는 건물과 동일하고 정확하다.

 

<배치도>
<평면도>
<정면도>

 

2) 1913년 마산부가 발간한 『마산부세일람』의 '마산헌병분대' 편에도 이와 관련한 기록이 있다.

'1909년(명치42년) 12월 2일 마산 본정 3정목(현 월남동 3가)에 대구헌병분대분견소로서 설치되어 1910년 7월에 편재개정의 결과 마산분대로 개칭되어 김해, 웅천, 진해, 진동, 배둔역, 고성, 장목포의 7분견소를 관할하고 있으며 지금의 청사는 1912년(명치45년) 7월에 낙성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3) 1916년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가 발행한 1/10,000 지도 「마산」 에서 이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이 지도를 확대(아래 그림)해 보면 '헌병분견소'라고 표기된 건물이 정확히 그려져 있다. 위치도 정확하고 건물의 배치형태도  『조선주차군 영구병영, 관아 및 숙사건축 경과개요』의 ‘마산헌병분대청사및부속건물’에 첨부된 축척 1/300 ‘마산헌병분대배치도’의 도면과 동일하다.

 

 

이 세 자료, 즉 1914년 조선주차군경리부에서 발간한 『조선주차군 영구병영, 관아 및 숙사건축 경과개요』 기록과 1913년 마산부가 발간한 『마산부세일람』의 내용, 그리고 1916년 조선총독부 육지측량부가 발행한 지도 「마산」 등이 이 건물 건립연도가 1912년임을 말하고 있다.

도 「마산」은 1912년이라고 확정 짓기보다는 1916년 이전에 지어졌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적어도 건립연도가 1926년은 아님은 확실히 보여준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등록문화제 제198호 구 마산헌병분견대의 건립연도는 1926년이 아니라 1912년로 추정된다.

다른 의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 자료만으로도 지금 사용하고 있는 건립연도는 재고되어야 하고 이에 대해 다시 정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

법적으로 지위를 보장 받는 '등록문화재 제198호'의 건립연도에 대한 문제다.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사과드린다.

논문에 있는 내용이라고 해서 사실관계를 직접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인용한 것은 온전히 제 잘못이다. 잘못된 글을 읽은 모든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

 

 

 

Trackback 0 Comment 0
2017. 4. 20. 00:00

한국 100명산이야기 22 : 부처님이 누워계시는 대륜산

3월 25일 토요일 아침  메트로시티 정문과 후문을 통과하여 학봉산악회 대원 5명이 새벽6시 30분에 출발했습니다.

새벽녁에 출발한 터라 섬진강 휴게소에서 유부우동과 준비해 온 충무김밥으로 아침요기를 했습니다.

예상대로 두륜산에 도착하니 10시입니다.

비오는 것을 예상했지만 막상 산행을 하려니 발걸음이 무거운 것은 비옷 무게때문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내려와서 막걸리를 마실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비옷을 갈아입고

10시 반에서야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 출발인증샷 : 떨더름한 표정을 지은 사람들이 몇 있습니다.

 

- 대흥사 일주문입니다. 생각외로 고찰이었습니다. 백제때에 세워진 사찰로 규모도 범어사나 통도사 몾지않게 큰 사찰이었습니다. 비가 오는 관계로 한적하였습니다.

대흥사 배경의 두륜산은 부처님이 누워계신 형상이라고 합니다. 우중이라 사진으로 닮을 수는 없었으나, 사진으로 본 설명은 그리보였습니다.

 

- 사찰의 역사를 상징하는 부도탑(스님의 사리탑)과 각종 기념비

 

 

- 사찰 아래를 내다보며 : 외부공간이 시원시원하게 넓었습니다.

 

 

- 요사채 전경 : 경사면을 적절하게 활용한 건물 배치가 자연스러웠습니다. 낮은 담장과 조경을 통해 프라이버시도 확보하는 배치기법이 돗보였습니다.

 

- 비를 맞으며 산행을 하다보니 체력이 고갈되어~ 간식을 먹으며 처져있는 모습

 

- 9부능선 도착 : 12시에서야 경사면을 지나쳤습니다. 바둑이 바위가 우리를 반겨줍니다.

 

 

- 두륜봉에서 인증샷 대열 : 우리의 원로 대장님

 

 

- 비장한 표정의 드론대장님 : 이번에 가지고 오려고 했는데, 얼마전 연습중 추락하여 몹시 상심한 듯~~

 

- 둘레길 대장님 : 지난번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삐친 발까락 때문에 아직 고생중이라서~~~

 

 

- 보급대장님 : 보급품 조달 및 운전까지 맡아서 고생을 표정이 역력~~

 

                                             - 난생첨 비옷입고 등산했음, 헉헉~~

 

 

- 저기가 고지인데 : 일기가 고르지 못한 관계로 하산을 결정하였습니다.

 

 

- 아쉬움을 달레며 : 인증샷 - 하산한다는 결정에 기분이 좋은 표정

 

- 비오는날 충무김밥 : 비를 맞으며 빗물, 땀물 섞인 된장국물과 충무김밥, 맛은~~

하산 후,  파전과 도토리묵으로 1되짜리 막걸리 한통을 비우고 완도로 급히 향하였습니다. 2시에 출발~!

 

- 3시에 도착해서 도선료를 지불하고 4시에 '청산아일랜드'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 청산도행 배는 카페리호입니다. 절반이 주차공간이고 나머지가 승객실입니다.

 

내려서 섬 북측을 아주 천천히 드라이브 하였습니다. 중간에 포구를 구경하다가 단체로 사진촬영온 팀들과 만났습니다. 사진을 찍어소 보내주기로 했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습니다.

언젠가는 보내주겠지 하면서 기다려보니다.

우리의 숙소인 슬로시티여행자센터로 향하였습니다. 숙소는 별채로 된 방과 거실, 욕실이 있는 방가로였습니다. 여장을 풀고 식사하려 선창가로 나왔습니다.

인터넷에 소문난 집 *녀횟집으로 갔습니다.

이곳의 명물, 전복을 한접시 시켰습니다. 술이 술술들어갔습니다.

 

- 한접시당 가격을 달리하였습니다. 비싼게 큰놈을 골라서 준것 같았습니다.

 

 

청산도에서 두번째로 유명한 것이 홈삼이라고 합니다. 붉은 해삼을 말합니다.

한마리가 1키로정도 됩니다. 키로당 2만5천원정도입니다. 먹을만 했습니다.

식사는 우럭매운탕으로 하였습니다. 가격이 조금 쎄긴 했지만 해산물과 쏘주에 쩐 속을 짝 풀어주었습니다.

잘 먹고 숙소에 도착해서 가지고 온, 개인 술을 풀었습니다. 와인과 30년산 발렌타인이 있었으나, 피곤해서 몇잔 하지 않고 쫙 뻣듯이 주무셨습니다.

 

● 3월26일 아침 7시에 기상하여, 마을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아침밥은 일찍 준비해 달라고 앴으마,  8시 반쯤에야 된다고 합니다. 슬로시티라서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1시간을 산책하고서야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는 스로시티 여행자센터에서 제공하는 아침정식입니다.

1인분에 1만원이며 사전에 예약해야 가능합니다.

 

- 생선과 전복찜 1마리, 섬에서 자라는 나물, 그리고 김국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별도로 말리지 않고 채취한 채로 국을 만들었답니다. 시원 짬쪼롬한 맛이 괜찮았습니다.

- 식사후 9시 쯤에 출발했습니다.

 

- 고인돌이 있는 산책로에서 본 노거수 입니다. 걷기 좋은 길을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조금만 표식을 따라 가면 다양한 풍광들을 체험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 청산도의 키워드는 '서편제'입니다. 이 동네에서 촬영을 하였다고 합니다. 초입에 들어서자 서편제의 노랫가락이 영화속으로 이끄는 듯합니다.

 

 

- 이곳은 수군이 진을 치고 왜적에 대항했던 수군기지였다고 합니다.

 

- 신발의 의미 : 바삐가지 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 무거운 돌신을 신고 천천히 다니라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는 예술작품입니다. 청산도에서 딱 어울리는 것 같네요~~

 

- 청산도의 해변 외곽에 쌓은 성벽들이, 지금은 걷기 좋은 길로 변신하였습니다.

 

- 동네 아주머니들이 만들어서 제공하는 쑥전, 막걸리와 더불어 입을 축였습니다. 마을기업에 일조를 한다는 의미로~~

 

- 선창에 12시에 도착해서 1시배를 기다리며 식사를 하였습니다.

간단하게 전복죽으로~~

전복죽의 맛은?, 비밀입니다.

 

- 대합실에 배를 기다리며~

대합실 옆에 마련된 특산품 판매매장에 마련된 선술집입니다. 3만원에 해산물을 한접시 담아 줍니다. 소주 한잔으로 청산도의 추억을 각인시켜 봅니다.

 

완도항에 도착하고도 바빳습니다.

해창주조장과 다산초당에 들르는 일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창주조장은 지난날 일인이 경영한 청주공장인데, 막걸리 공장으로 현재까지 운영된다고 합니다.

100년전의 건물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는 볼만한 곳이었습니다.

막걸리 도수가 독특하게 일반적인 6도 외에 12도짜리가 있었습니다. 거의 소주도수에 가까웠습니다. 진한 맛은 좋치만, 한번에 쭉 들이키는 목넘김의 맛을 느낄 수 없어서 저는 6도짜리가 좋았습니다.

시음주를 종류별로 하다보니 어찔한 느낌이 왔습니다. 공짜 낮술에 어질 어질~~

 

 

● 해장주조장 옆의 근대기 건물들

주인장의 소개로 살펴본 주조장 옆의 창고건물입니다.

오랜 세월의 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어 있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겉은 시뻘건 녹물이 끼어 있지만 속살은 신비로웠습니다.

 

-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창고 : 일찌기 대한통운 창고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전에 일본인들이 지은 목조창고로 사용하다가, 해방이후 대한통운에서 사용한 듯 합니다.

 

- 실내전경 : 요즘 보기 드문 목제트러스 구조입니다. 100년이 지났지만 구조제의 성능에는 전혀 이상이 없는듯 합니다. 근대목구조 전시장으로 사용하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원형이 잘 남아있습니다.

 

- 트러스의 접합부는 중심에서 좌우 로 배치하였으며, 꺽쇠로 사용하여 대공과 빗대공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부재가 원형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 벽기둥과 트러스 접합부 : 트러스와 기둥사이 사선재를 사용하여 강성을 높혀주고 있습니다.

 

 

- 벽면부 상세 : 구조제와달리 벽면에 세로 및 가로 부재를 두고 흙벽으로 마감하였습니다. 요즘 보기 드문 구법입니다.

 

- 출입문 디테일입니다. 견고하게 하려고 철판을 덧된 디자인이 정겹습니다.

 

해창주조장 창고를 보면서

해창주조장 건물은 원래의 형태에서 증축을 하면서 원형이 변형된 상태이긴 하나, 원형을 복구하는데는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창고건물은 원형이 너무나 잘 보존되어 있는 건물입니다. 겉보기에 녹이 쓴 모습으로 인해 허접해 보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구조제가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조사하여 근대건축물로 등록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전국에 이만한 근대기 건물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인근에 있는 대학교의 건축과 교수님들이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다산초당을 향하여

해창주조장에서 각자 필요한 술을 주문하고 나서, 다산 초당으로 향하였습니다.

● 다산초당을 보면서

정약용선생님이 유배를 가지 않았다면, 흠흠심서 등 그 많은 책을 저술할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을 가져봅니다.

만약 조정에 있어서 제대로 정치를 하였다면, 나라를 그 꼴로 만들이 않았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암튼 유배지에서 보낼 암담한 시간에 저술로서 활용했다는 것이 대단한 발상인것 같습니다.

허대장님 왈, "만약 그 시대에 정약용이 영국의 옥스포드나 캠브릿지 대학에 다녔다면 더 훌륭한 세계적 위인으로 컷을 것이다"

충분히 동감이 가는 얘기 입니다.

우리 드론대장님도 동감을 하였습니다.

곧 저술에 들어가리라 생각합니다.

 

하여,

이번 투어는 단기간에 너무 많은 내욜들을 소화하려다 보니, 소화불량이 걸리는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내적으로 뭔가 채위진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다음 산행 6월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뵙길 바랍니다.

이상~~~

 

 

 

 

 

 

 

 

 

 

Trackback 0 Comment 1
  1. 오동추 2017.04.21 09:22 address edit & del reply

    엄청난 여행을 하셨네요~ 몸을 잘 추스리세요. 다음을 위해서 ~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2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5) "서민들 사는 보통 동네에서의 조용한 기쁨" ------------------------- 최○○ 1936년생 마산합포구 교원동 1-5 날짜 : 2015년 1월 7일 장소 : 자택 - 반갑습니다..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1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4) "한 집에서 46년을 살아오면서" ------------------------- 김○○ 1940년생 마산회원구 회원동 598-16 날짜 : 2015년 1월 6일 장소 : 조합사무실, 자택 - 반..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20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3) "삼십 년 넘게 한 자리에서 콩나물을 길렀다" ------------------------- 권○○ 1949년생 마산합포구 교원동 무학상가 지하 수정식품 날짜 : 2015년 1월 6일 장소 : ..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9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2) "동네 지킴이, 칠원쌀상회" ------------------------- 이○○ 1948년생 마산합포구 교원동 무학상가 1층 날짜 : 2015년 1월 6일 장소 : 자택 - 반갑습니다. 지금 ..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8

3. 주민 열 분의 이야기 <일러두기> 1) 주민 면담은 2015년 1월 중에 이뤄졌습니다. 2) 인터뷰이(interviewee)는 가급적 오래 거주하신 분들을 모시고자 하였습니다. 3) 게재 순서는 편의상 인터뷰가 이뤄진 시..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7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4) 인근 지역의 역사 유적 - 2 3) 봉화산봉수대(烽火山烽燧臺) 회원동 봉화산에 있는 고려 말~조선 시대의 봉수대(아래 사진)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157호로 지정되어 ..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6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4) 인근 지역의 역사 유적 - 1 1) 교방동 관해정(校坊洞觀海亭)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유학자였던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년~1620년)가 그의 제자들과 함..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5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3) 인접 지역의 기업과 공장들 - 3 ● 협동정미소 터 상남동 회산다리 건너 회원천변에 붙은 회원동 429-1번지. 현재 환금프라자 건물이 들어서 있다. 삼성그룹 창업자..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4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3) 인접 지역의 기업과 공장들 - 2 ● 교원동 일대의 공장들 건설목공소(가구 제조), 교원동 117번지, 대표 김협환 광전사(전기공사업), 교원동 54번지, 대표 한..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3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3) 인접 지역의 기업과 공장들 - 1 회원동과 교원동, 교방동 일대의 기업체와 공장들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한다. 실제 경제 활동의 기초가 되는 회사와 공장들을 살펴봄으로..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2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5 ● 북마산중앙시장, 북마산청과시장 북마산중앙시장이 현재의 자리에 들어선 것은 37년 전인 1976년 11월이다. 이 ..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1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4 ● 비치거리 상남동에서 회산다리를 건넌 회원동 초입의 거리를 말한다. 옛날 이곳에는 비석이 있었기 때문에 비석거리로 ..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10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3 ● 회원동 500번지 회원동 500번지 일대의 동네를 말하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이곳에 일본군 기마병의 마굿간과 창고가..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9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2 ● 배넘이 고개 [배드나무 고개, 배드난 고개] 회원동 골짜기에서 마재고개로 넘어가는 산중허리를 세인들이 지금도 배넘..

창원시 마산 회원1지구 재개발지역 이야기 - 8

2. 회원동, 교방동, 교원동의 생활공간의 역사와 흔적 2) 사업구역 인접 동일생활권 내의 삶의 흔적 - 1 ● 돌산 못산마을 위쪽 무학산 자락으로 돌과 바위가 많았다고 한다. 예전 주공아파트 위쪽 편으로 돌이 많아서 돌산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