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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4 00:00

무등산 산행기-2

무등산 산행기 - 2

 

갑자기 울리는 알람 소리. 아침 6시다.

8시에 식당에서 바지락 죽 먹기로 되어 있는데 무슨 기상이 6시람. 7시 기상해도 충분한데... 다들 나이 값 하느라 그런지 별 불평도 없이 일어난다.

바지락 죽 일인당 1만원. 그러나 그 환상적인 맛 덕분에 100산대장 어젯밤 받았던 비난을 상당히 회복했다.

 

 

주인장이 포장해준 닭 조리탕 남은 것을 받아들고 전체 기념사진을 찍는데 차오차오 개가 우리 옆에 어슬링거린다. 이름이 문수란다. 좀 위에 있는 원효사에서 키우다 사정이 안 되어 자기에게 그냥 주었단다.

문수와 함께 사진 찍으려고 앞에 앉혔는데 셔터 누르는 찰나 도망가 버려 실패했다. 그래 환생하신 문수보살께서 어찌 중생들과 같이 사진 찍으려 했으랴.

830 숙소 출발.

 

금방 원효사 앞 사설주차장(3천원/하루)에 주차하고 즉시 산행을 시작했다.

무등산이 국립공원인 줄은 안내판 보고 이미 알았지만 산행로(팻말에는 옛길로 되어 있다) 입구에 수 명의 직원이 서서 감시하는 줄은 몰랐다.

입산자 자동 체크 장치도 있다. 어흐, 담배와 라이터 뺐길까봐 조바심이 들었는데, 조사는 하지 않는다.

막 오르막으로 들어서다가 물을 준비하지 않은 게 생각나 다시 내려와 가게에서 생수 작은 것 8개를 신삼호 대원이 구입해 나하고 4개씩 나누어 배낭에 넣었다. 다른 회원들 이미 올라가 버리고 보이지도 않는다.

얼마 안 올라가서 만난 제철유적지 푯말을 그냥 지나쳐 올라가니 김덕령 의병장 묘 푯말이 나온다. 이번에는 유심히 읽어본다. 그의 활약상과 무고로 인한 억울한 죽음에 관한 간단한 기록이다. 언제 어디서나 영웅을 시샘하는 자들은 있게 마련인가!

 

 

조금 더 올라가니 무등산 옛길 물통거리란 나무 팻말이 나온다. 나뭇꾼들의 땔감이나 숯 이동길이었다가 1960년대에 무등산 정상에 군부대가 들어선 후부터 보급품 나르던 길이었다가 1980년대 이후에는 그냥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봉에서 오는 능선 길과 만나는 곳에 도착해보니 절반 이상은 올라온 것 같기도 하고, 화장실 겸 휴게소가 있어 보급대장이 나눠준 보급품을 먹으며 줄어든 에너지를 재충전하다. 보급대장의 은혜를 되새기는 시간이다.

다시 출발해 얼마 지나니 갑자기 주상절리 형태의 암벽이 턱 하니 나타난다.

사진들 찍으며 야단법석 하는데 지난 가는 등산객 진짜 서석대는 좀 더 위에 있단다. 약간 머쓱해진다.

서석대(瑞石臺) 장관을 바라보는 전망대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주상절리는 보통 해안가에 있는데 산봉우리 주상절리대라 처음 본다. 국내 유일한 것인지 궁금하다.

 

 

좌측으로 난 길을 돌아서 올라가니 서석대 위쪽 뒤편에 무학산 서마지기 같은 펑퍼짐한 곳이 나오고 무등산 정상이 정면으로 마주보인다.

등산객인 시민은 더 이상 접근금지다. 군부대가 무등산 정상의 천왕봉, 지왕봉, 인왕봉을 점령한 것이다.

푯말에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정상의 원래 모습과 비교해 보니 암석봉우리들을 통째로 파괴해 버렸다. 이러한 만행을 과연 1960년대 야만의 시대, 군부독재정권이 아니고서야 어찌 감히 저지를 수 있었을까? 전두환의 광주시민 학살도 그 연장선임을 알겠다.

서석대(1100m)라고 새겨진 비석 앞에서 학봉산악회 현수막을 앞세우고 단체증명사진을 찍다. 가장 중요한 의식이다. 현수막이 주인공이다. 이 사진을 위해 여기까지 발을 절뚝이며 올라온 것이다.

 

 

 

서석대는 한자로 상서로운 바위라는 뜻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해설판은 이 유식한 해석이 식자우환임을 금방 깨닫게 한다. 선돌의 한자식 표현(음 차용)으로 고대 선돌 숭배신앙의 중요한 표상이라는 거다. 반만 맞춘 것도 아니다. 전혀 맞추지 못했다.

! 상식(常識)의 허망함이여! 세인이여, 상식이 많다고 자랑하지 말지어다!

그렇다면 옆에 있는 입석대(立石臺)도 마찬가지로 선돌의 한자식 표현에 지나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고, 역시 그러함이 곧 확인되었다.

사방이 확 트인 곳이라서 그런지 올라올 때는 없던 세찬 찬바람이 횡행한다.

이제 보급품을 소진시키고 하산할 시간이다.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백산대장 멋진 곳을 찾았다. 돌병풍으로 둘러싸여 등산로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이다.

돌병풍을 우측으로 돌아가니 아늑한 서향받이 조그마한 분지가 나타나고 중심부에 파헤쳐진 무덤(?)이 있다. 문외한이 봐도 명당자리인데... 국립공원 내 무덤의 이전 공고를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고. 짐승이 그랬는지 파헤쳐진 이유를 모르겠다.

드디어 100산대장이 자기도 모르게 숨겨두었던 반전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왔다. 남은 보급품을 끌러먹는데 여전히 온기를 간직한 닭도리탕이 남다른 맛을 준다.

 

 

산 정상에서 먹는 닭도리탕은 세상에서 역사상 우리가 처음일 것이고 향후 역사에서도 있을 법하지 않은 쾌거가 아닐까.

기대하지 못했던 커피까지 나눠주는 보급대장. 모두들 만족하며 선견력 있음을 맘속으로(?) 칭송하다. 언젠가 송덕비라도 세워줘야 하지 않을까.

배를 든든히 채우고 본격적으로 하산한다. 곧 입석대를 만났다. 단체도 찍고 개인별로도 찍고.

 

 

입석대에 관찰사 등의 이름이 큰 글자로 새겨져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실감난다.

전 세계 유명 관광지마다 한국인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곳이 없다하니, 낙서의 민족인지 기록의 민족인지 헷갈린다. 나도 어딘가 이름을 새겨 놓아야 할까봐? <<<

글, 사진 / 서익진 경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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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25 00:00

한국100명산. 3. 최치원의 수양지 무학산

예상치 않았던 무학산 100명산 탐방 : 둘레길만 걷던 초보등산꾼들이라 원거리 원정일정을 잡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예정대로라면 포항 내연산은 8월말에 가기로 되어있었는데, 이런 저런 핑계로 8월의 100명산 원정은 취소가 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빼먹기를 쉽게하면 앞으로 애로사항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심 기회가 닿으면 무학산이라도 오를 기회가 있다면 그 달의 건수는 채워야지 하는 생각에 원정기념 현수막을 넣어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지지난주에 회원 모두가 참석하는 흔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잘되었다 싶어서 "오늘은 모처럼 모두 참석했는데 정상한번 가입시더"라고 의견을 내어서 100산중의 하나인 무학산을 오르게 되었습니다.

무학산 지명의 유래

무학산은 마산 중심가를 둘러싸고 있는 산으로, 본래 이름은 [경상도지리지]에 두척산(斗尺山)이라는 이름으도 등장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두척산이 회원현에 있은데 봉우리에 위에 고운대가 있으며, 월영대에서 북쪽 5리에 있다고 하였다. 아시다시피 월영대는 신라시대 문창후(文昌候) 최치원이 대(臺)를 쌓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며. 두척산의 고운대는 최치원선생이 수양지로 보고 있습니다.

'고운대'는 조선시대의 지도나 전통 시대의 문인들이 남긴 시에 종종 출현한 지명이다물론 이 명승처를 최치원이 직접 고운대라고 지칭하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아마 조선 초기 문인들이 전국에 산재한 고운대를 이야기하였고, 무학산의 고운대에 관해서도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므로, 그 지명의 연원 또한 월영대와 마찬가지로 유구하다 할 것이다, [무학산의 '학봉', 이제 '고운대'로 불러야 , 유장근교수]

즉, 무학산에서 현재 학봉이라 불리우는 고운대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그러나 두척산이 언제부터 무학산으로 불러지게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일제시대부터로 산의 형세가 학이 춤추는 모양과 같다고 하여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1.팔각정에서 근심바위까지(9시 45 - 10시 30분) : 출발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습도가 높은게 마치 비가 못와서 짜증을 부리는 듯한 그런 날씨였습니다.  항상 오던 무학산이라 별 감동도 없이 오직 정상에서 사진하나 박겠다는 마음으로 올랐습니다. 계곡을 사이로 요리조리 걸어 오르다가, 약간 급한 경사를 앞두고 하천근처에 잠시 쉬기로 하였습니다. 나무데크 위에 마련된 의자는 한숨돌리기 좋은 휴게쉼터인 것 같았습니다. 습기에 몸이 땀과 더불어 촉촉해진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때 누가 이야기 했습니다. "정상까지 45분만에 올라갈 수 있다 하더라"라는 말도 않되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것은 산을 잘타는 누구누구 얘기고 우리는 1시간 반은 걸려야 된다"는 오고가는 얘기를 들으면서, 앞으로 죽자고 1시간 이상은 올라야 정상에 도착하겠구나라고 생각하며 바위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코스가 정상을 향한 가장 근거리 코스인 관계로 경사도 가장 심한 코스라 난코스임에는 틀림이 없는 ㄱ것 같았습니다.  두번째 쉰곳은 팔각정자가 있는 근심바위였습니다. 도심을 내려보니 안개비와 운무에 의해 말그대로 자욱한 안개속에였습니다.은 뿌연 상태였습니다. 숨고르기와 물 한모금을 마신후 다시 출발했습니다.(걱정바위 정자) : 시내를 잘 볼 수 있는 단골쉼터(시내전경) : 운무에 쌓인 마산시내

2.근심바위에서 정상까지(10시 40분 - 11시 20분) : 몸이 어느정도 풀려서인지 걷기는 한결 수월해 졌습니다. 10여분이 지나자 '1년계단'에 도착했습니다. 그냥 걷기 지루할까봐 1월 1일부터 12월 말일까지 적혀진 나무계단입니다. 계단을 오르기 한결 가뿐한 것 같았읍니다. 암튼 서마지기에 도착해서 다시 물 한모금하고 정상을 향하였다. 날씨가 꾸무리 한것이 비가 못와서 마지막 발악을 하는 듯한 읍습한 기후였습니다. 그럼에도 서마지기에서 무학산 정상으로 향하는 1년계단을 다시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꺼이! 꺼이! 정상에 다다르자, 이게 왠일입니까! 갑자기 시껀먼 하늘에서 짜증을 부리던 구름끼리 한바탕 나타전이 벌어진 것 같았습니다. 쏴아 하고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도 정상에서 기념촬영할려고 하던 차에 순식간에 쏟아 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도 기념촬영은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비옷도 대충 걸친채 사진부터 한방 박았습니다. 쉴틈도 없이 하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100명산 세번째 산행은 우중에 짧게 마무리 하였습니다.

(서마지기에서 시내전경) 완전히 구름에 체포되어 있음(서마지기에서 봉화산방향) : 오히려 산중의 시야가 더 좋음(서마지기에서 정상방향) ; 이렇게 인적인 없었던 적은 없었다.(정상에서 비상훈련): 소나기공습에 우산과 비옷을 급히'')(정상기념촬영) : 비는 왔지만 표정은 엄청 좋읍니다.(다시 한컷) 무학산은 한국100명산에 해당됩니다.

3. 정상에서 서원곡입구까지(11시 30분 - 12시 20분) : 당초 계획은 우회하는 코스로 학봉을 통해 하산을 하려했으나 가장 단거리 코스를 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던 길로 다시 하산을 하였습니다. 서마지기에 도착하자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했는데, 그 소리의 충격이 워낙 큰지라 모든 사람이 정자안으로 숨게 만들었습니다. 정자 안에서 비옷을 다시 정비하고 하산을 하였습니다. 모처럼 맞는 비로인해 기분이 몹시 상쾌했습니다. 비닐 우의는 걸쳤지만 바지와 신발은 빗물에 잠기기 시작했습니다. 산에 오를때 피부를 끈적이게 했던 습한 기운을 소낙비가 앗아가는 듯 합니다. 갑자기 내린비로 주변의 나무와 바위도 한결 깨끗해 보입니다. 신록이 더욱 푸르러 보이고, 바위가 더욱 파란빛을 띠는 것 같습니다. 암튼 소나기로 인해 무학산의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모든 사물을 그대로인데 괜히 보는 사람의 기분땜에 그렇게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근심바위정자에서 만난 고교생) : 고3 청소년들인데 도시락까지 싸서''', 기특했습니다. 용마고학생이랍니다.(비에 젖은 등산로) : 물만난 대지와 나무들(물 만난 돌탑) : 바위의 열기가 식혀지는 것 같습니다.(자작히 젖은 낙엽들) : 낙엽을 보니 가을이 온 것 같기도 하고

- 내려 오는 길에 오를때 보지 못했던 것을 하나 건졌습니다. 죽은 나무에 새겨진 웃는 장승입니다. 아시는 분들오 있겠지만 창원에 사시는 분인데 주로 죽은나무에 나무 조각을 한다고 하는데, 창원 인근의 산에 주로 산행하면서 죽은 나무를 보아 두었다가 때를 봐서 조각을 한다고 합니다. 그 중 하나가 무학산에 있는 것을 처음으로 보게 되니 엄청 반가웠습니다. (웃는 장승모습) : 한그루 나무로 2개의 장승을 만드는게 보통 실력이 아닌것 같습니다. 특히 오른쪽 두상의 일부를 삐쭉하게 남겨둔 이유는? 심오한 뜻이 있는지도 모를''''

- 일행 중에 한명은 그런 사람을 추천해서 상을 줘야 된다는 둥의 이야기를 하면서 서원곡 입구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분의 정체는 신들린 조각님이랍니다.(네이버에서 블로그명입니다.

암튼 별탈없이 100명산 3번째 등정은 성공리에 마무리 하였습니다. 이 참에 기념비 하나를 소개할 까 합니다. 서원곡 팔각정 주차장에서 팔각정으로 가는 초입 우측에 큰 바위위에 비석하나가 있답니다. 신경쓰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답니다. 언젠가 신경이 쓰여서 올라가 보니 최치원 선생의 후손들이 최치원선생을 기리는 기념비인데 시멘트로 제작되었으며, 건립시기는 1965년도로 되어있습니다. 의미있는 기념비인것 같았습니다. 무학산 오를때 시간이 되시면 한번 보시기 권합니다.

(큰바위 위에 외로이 선 비석)(비문) 건립시기가 정묘년이면 1987년 아님 1927년이고, 경주 후인 김무영씨가 적은 것 같으며, 내용은 고운 최치원 관련 내용인 것 같읍니다.

* 무학산 주변산들 : 무학산 (716미터)자락에 연해 있는 봉우리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읍니다. 정상에서 북측으로 봉화산(262.9미터)이 있으며, 남측으로 대곡산(516.4미터), 만날고개에서 더 남측으로 내려가면 밤밭고개 아래쪽으로 청량산(323미터)까지 연결됩니다. 앞서 언급된 고운대(397미터)에서 동측으로 내려가면 환주산(추산공원)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밤밭고개로 향하는 도로로 인해서 청량산과 단절되어 있으며, 고운대에서 환주산과 연결되는 곳은 산복도로(합포고등학교 앞으로 산복도로가 개설되면서 산맥이 단절되어서 일주순환을 할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언젠가 이 두곳이 산행을 위한 종주코스를 위해 어떠한 형태로라도 연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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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kdaudrb 2013.09.25 21:16 address edit & del reply

    반갑습니다 우선 무학산이 100명산 탐방대 축하 드립니다 저의는 님들께서 소개한 죽은나무에 조각한 네이버에 신들린 조각입니다 감사합니다

    • 삼식 2013.09.26 16:51 address edit & del

      반갑군요, 사이트 한번 방문하겠습니다.

  2. rkdaudrb 2013.10.14 20:23 address edit & del reply

    이렇게 다시 뵙게되어 반갑습니다 비오는날 산행 멋져요
    비오날에는 운치도 있고 낭만도 있고 비를 맞는 기분이 좋아요
    창원에 정병산에 있는 장승도 올려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그건 kbs 생생 투데이에 나온 장승 이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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