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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전면 오서리3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5 Ⅱ. 성장 환경 및 3.1운동 때의 독립활동 (4) 그렇다면 이교재와 함께 형무소에 갇힌 위의 인물들은 누구일까. 순서대로 적힌 인물들을 검토해 보자. 沈相沅에 관한 기록은 재판 기록 이외에서는 신상정보를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형량에 있어서 이교재보다 적지만 다른 이들보다는 많은 1년 형이다. 다음으로 서석천의 경우, 1949년 4월에 발간된 한 언론에 실린 19명의 명단 속에 그의 이름이 있다.(민주중보 제1034호(7권) 1949년 4월 29일자. 이곳에 실린 명단은 沈倫, 金義植, 南海, 咸陽 金守東, 洪源轍, 徐錫天, 孫吉童, 朴洙東, 統營 金宜錫, 洪鍾濟, 宋孟守, 朴○漢, 馬山 金浩鉉, 高昇柱, 卞甲섭, 金英煥, 洪斗益, 卞相福, 李基鳳 등이다.) 이들 중에서 예컨대 마산지역 출신으로 구.. 2020. 1. 20.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3 Ⅱ. 성장 환경 및 3.1운동 때의 독립활동 (2) 이교재가 소년시절을 보냈던 조선조 말기와 대한제국시기에 진전면 일대에는 몇몇 서당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대체로 마을 단위이자 문중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특히 문중 중에서도 이 지역의 주요 문중이라고 할 수 있는 안동권씨, 초계변씨, 선산김씨, 밀성박씨, 창녕조씨, 회산황씨 등이 각각의 문중에 서당을 소유하고 있었고, 안동권씨가 운영하던 경행재도 그 중의 하나였다. (진전면에는 일암리의 誠久祠 경내의 道山書堂(草溪卞氏 문중), 오서리 동대에 있는 景行齋(安東權氏 문중), 오서리 서대(회동이 맞음. 필자주)에 있는 龜川精舍(密城朴氏 문중), 오서리 탑동에 있는 西溪精舍(安東權氏 문중) 등이 있었으며, 20세기에도 근곡리의 慕遠堂(善山金氏 문중), 평암리 미.. 2020. 1. 6.
창원 진전 출신 이교재의 독립운동과 상해 임시정부-2 Ⅱ. 성장 환경 및 3.1운동 때의 독립활동 (1) 이교재(사진)는 1887년(고종 24년) 7월 9일 경상도 진해현 서면 대곡리(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 578번지)에서 농민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그가 부농의 아들이었다는 기술이 있지만(삼진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삼진독립운동사, 2001, 234쪽) 어느 정도의 부농이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그가 태어나고 자란 오서리 578번지의 대지 규모를 보면 적어도 중농 이상의 농가였다고 생각된다. 현재 세 필지로 구획된 이곳에는 1931년 당시 목조 초가 본채 건물 3평과 부속의 목조 초가 3평, 그리고 물건적치용 건물 각각 1평 5홉, 1평 2홉 등 모두 4채가 있었다.(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등기계 발행, 폐쇄등기부 증명서 고유번호 19.. 2019. 12. 30.